2) 역과 음양

A. 역(易)

「 아아 음양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일찍이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

- 이 율곡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엇인가 집착하며 이 책을 읽으려다가는 몇 장 못 넘기고 맥이 빠질 것이다. 가볍게 정신을 쏟아 장편소설을 느긋하게 읽는 기분으로 읽다보면 어느 틈엔가 어떤 관념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요구하는 바로써 ' 가이 ' 란 이것을 가리킨다.

「 파아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아만 것이라고 하늘인 것은 아니다. 하늘은 형태와 바탕(質)이 없으며, 첫끝(端)과 맞끝(但)도 없으며, 위아래와 사방도 없고 겉은 황하며 속은 텅비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싸지 않은 것이 없나니다. 」

- 삼일신고 中 허공 임승국 注 -

이와 같은 글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직관으로써라면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말들이다.

음과 양의 논리는 서구의 철학과 종교, 자연과학이 유입되기 이전 동아시아의 자연에 대한 사유방식이었다. 음양의 사상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감각되는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행위에 있어서의 잣대를 형성하여 주기도 하였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느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느니 하는 속담들은 모두 음양사상과 직.간접의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알고있는 음양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독자의 대부분은 남자는 양, 여자는 음. 태양은 양, 달은 음. 불은 양, 물은 음. 강한 것은 양, 부드러운 것은 음. …등 이런 식으로 음양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 음양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음양론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필자 역시 얼마전만 하더라도 위에 쓴 것 정도로 알고 있었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비슷한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필자가 음양론에 대해 설명하기에 가장 좋을 것 같다. 단 필자가 기존의 편견에 집착하지 않았듯이 독자도 언제든지 기존의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필자는 아직도 음과 양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러한 사람이 이렇게 아는척하고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음양론은 필자가 아는 만큼만 쓰여있는 것이다라고. 이 책의 음양론은 필자가 단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만 쓰여졌고, 또 그것밖에 안되기에 필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비평받고 수정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독자 역시 나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전체적인 음양론의 줄기에 대해서는 큰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음과 양에 대해 남자는 양, 여자는 음, 하늘은 양, 땅은 음, … 등의 방법으로 구분 짓는 것을 이원적 해석이라고 한다. 이런 방법론을 가지고 이분법이나 변증법적인 모순론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선과 악, 낮과 밤, 위와 아래, 앞과 뒤, 좌우, 진보와 보수, 적과 친구, 연역과 귀납, 작용과 반작용, 팽창과 수축 등은 가장 기초적인 이분법이고, 입자와 파동, 물질과 에너지, 理와 氣, 의식과 무의식, 색과 공, 시간과 공간 등은 그보다 좀 발전된 이분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 음양론은 아니다.

음양론은 서로 상대되는 요소 또는 모순되는 것들의 갈등과 화해, 대립과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완전히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음양이전은 태극이며 태극은 일원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양론 에서 그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서로 상대적인 것은 갈등과 조화 외에 陰적인 것과 陽적인 것의 구별이 있다. 즉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음과 양이라는 거대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위와 아래, 하늘과 땅, 불과 물, … 등으로 이분하는 것 외에 음적인 것을 내려앉는 것, 찬 것, 물러서는 것, 저장하는 것, 축소되는 것, … 등을 말하며, 양적인 것은 올라가는 것, 뜨거운 것, 나아가는 것, 발산하는 것, 확대되는 것, … 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음적인 것과 양적인 것에는 음과 양으로 나눌 수 있는 기준과 함께 음과 양의 공통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 기준과 공통적인 속성은 무엇일까?

이 기준과 공통되는 속성만 제대로 알면 음양론의 반은 알게 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 서두에 써놓았듯이 음양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바깥과 안도 없다. 개념을 잡기 힘든 이 말이 음양의 기준이자 속성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음양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을 연구·검토하여 보는 것일 것이다.

지금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음양이라는 단어는 단지 기호일 뿐이다. 어떤 관념이 구체적으로 축소되고 그 축소된 생각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음양인 것이다. 과거 어느 시기 음양의 관념이 생겨나 발전되어졌을 것이다. 기호가 정해짐에 따라 인간의 관념도 그 기호에 맞추어 정렬이 되고 더욱 미시적으로 발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양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하면 상대적이거나 변증법적이거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음양론은 이러한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다. 음양은 곧 태극을 말하고 있고, 태극은 곧 하나의 氣로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氣이든 음만을 갖고 있다든가, 양만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 음이 많다거나 양이 많다고는 할 수 있다. 예를들어 하나의 형상이 있다면 음양이 있는 것이다. 곧 음양은 항상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그 붙어있는 하나가 태극이며 음양 나아가 사상,팔괘 등의 구별은 단지 구분지은 것일 뿐인 것이다.

기존의 서적 중 음양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은 주역과 황제내경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책들도 많이 있지만 이 책들에 나오는 내용이 그 모든 책들의 뿌리라 할 수 있기에 두권의 책에 나오는 음양의 이론 - 특히 계사전 - 을 위주로 글을 써나가기로 했다. 또한 음양은 바로 역을 말하기에 易에 대해서부터 말하겠다.

모르는 사람들은 역과 주역을 같은 것으로 알고 있을 것도 같다. 그러기에 우선 역(易)과 주역(周易)의 차이점부터 말해 보겠다.

역경 또는 주역이라는 말은 유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 주역 ' 이라는 그 이름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주역은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익히 알고 있듯이 占을 치기 위함이 주목적이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주나라 문왕(文王)이라 하는데 그는 한때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에의해 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다. 주역은 이 문왕이라는 사람이 옥에 갇혀있을 때 지었다는 책이다. 이때 문왕이 쓴 주역은 독창적인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당시 그가 쓴 주역이라는 책은 문왕 자신이 알고 있던 역에 대한 지식을 나름대로 인간사의 길흉과 연결지어 지은 책이다. 즉 주역은 역(易)이 아니라 易에서 점(占)서적인 내용을 이끌어낸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文왕이 알고 있던 역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역에대해 모르고 있다가 소위 동이(東夷)계열의 국가였던 은나라의 옥에 몇 년 갇혀있는 동안 역에대해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

그것은 복희씨의 역이 삼황내문경이라는 이름으로 헌원에게 넘어간 이래 요,순 시대와 하나라를 거치며 이어져 내려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복희씨의 역은 무엇일까? 복희씨의 역이 어떠한 내용이었는가에 대해 남겨진 자세한 글은 없다. 다만 앞서말한 한단고기라는 책에 어렴풋이 그 내용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복희씨의 역에대한 내용이 계사전에 많이 남아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애냐하면 계사전은 문왕이 지은 주역을 어떻게 하면 이해할수 있는가에 대해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주역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것 저것 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역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공자시대 까지도 문왕이 보고 배웠던 역에 대한 글과 개념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때의 글과 개념들이 복희씨의 역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래도 보다 온전하게 원래의 내용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공자 혹은 그의 제자들이 썼다는 "계사전"은 문왕이 쓴 주역을 사람들에게 올바로 이해시키기 위함이 목적인 글이다. 그러기에 계사전에 나오는 음양에 대한 글들이 원래의 역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말한바가 역과 주역의 차이점이며 필자는 역에 대해, 음양에 대해 설명하며 계사전의 내용을 위주로 하였다. 이른바 르네상스식으로 역에 대해 접근 하겠다는 것이다.

易의 쓰임새가 애초부터 占을 치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易이 담고 있는 이론적,사상적인 내용은 占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易은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하여 易이란 책 속에 현상계의 이치와 미래의 현상계의 질서가 설명되어져 있으면 당연히 占도 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