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음양론

1) 음양( ―, --)의 유래

이제부터 이 책의 본론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실질적인 본론이야 동의수세보원 원문을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이제부터 이야기할 음양론과 유학편은 그 전단계로서 사상론(四象論)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에 이제부터 본론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음양이라는 단어의 유래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겠다.

음양은 한자로 陰陽이라고 쓴다. 글자의 왼쪽에 있는 부는 邙(나라이름 망)자나 邦(나라 방)자처럼 오른쪽에 붙는다면 고을"읍" 부이고, 왼쪽에 붙는다면 언덕을 뜻한다. 음양이라는 글자는 모두 언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볼 수 있다.


그림

그림처럼 언덕을 기준으로 해가 비칠 때 빛이 비치는 곳이 있음과 동시에 그늘진 곳이 있는 모습에서 陰陽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한다. 이러한 음양이 이때 당시 이미 현재의 음양론의 중심 되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이때 - 음양론이라는 방법론이 명칭 붙여질 때 - 이미 음양에 관한 여러 가지 관념들이 있었을 것이며 이에 관한 글자나 말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양론은 당시의 그러한 관념이 종합되어지고 발전되어온 것일 것이다. 처음부터 현재 전해지는 것과 같이 음양의 이론이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엔 원시적인 음양에 관한 기본적인 관념이 있었고 이 관념은 기호로써 나타내어졌을 것이다. 단 그 기호가 말인지 글인지 부호인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기호가 가지고 있는 관념 또는 개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발전되었을 것이다. 단지 추측일 뿐이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은 밑도 끝도 없이 생긴 게 아닐 것이다. 음양이라는 단어는 기존에 존재해 있던 어떤 관념 또는 개념을 글로써 나타내기 위해 이미 있던 글자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거다. 또는 바슐라르 식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글자였을 수도 있다 . 혹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양지가 존재할 때 음지도 존재한다는 소박한 사고가 발전되어 현재의 음양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이나 가능성으로 보아 이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음양은 해가 언덕을 비칠 때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한다는 관념과는 너무도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제외)

설사 중국측의 기록이 사실이더라도 음양이라는 단어는 후세에 명칭 붙여진 것이고, 그 전에는" ―" 과 "-- "라는 부호가 있었을 것 같다. 음양이라는 말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과 - - 이 아니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과 -- 는 음양이라는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필자가 ―과 -- 를 陽과 陰이라 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을 늘어놓는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런 궁금증이 들었으면 한다. 만일 그런 궁금증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이제라도 가지길 바란다.

필자는 음양이라는 단어와 이 음양이라는 기호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있기 이전 ――과 ―라는 부호가 먼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과 -- 을 무엇이라고 발음하였는지는 모른다. ―과 -- 을 고대 중국인들은 陰과 陽이라 하였다. 혹 그 반대로 陰과 陽을 기호로써 ―과 -- 로써 나타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 ―과 -- 는 음양이라 발음되며 -- 는 陰적인 특징을 가진 것으로 ―는 陽적인 특징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 과 ―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 는 현재는 분열해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는 결합이 이루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다. -- 는 →←⇒ ―의 성질이 있는 것이고, ―는 ↔⇒--의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과 -- 의 이와 같은 특징은 -- 는 수렴, 축적, 저장, 끌어당김, 고요함… 등으로 연역되어 질 수 있고, ―는 확산, 폭발, 분열, 움직임, 밀쳐냄… 등으로 연역되어 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특징들이 현재 통용되는 陰陽의 주된 관념이 될 수 있다. 易 계사전을 보면 계사전이 쓰여질 당시까지도 -- 과 ―는 陰과 陽외에 靜(고요함)과 動(움직임), 剛(강한 것), 柔(부드러움) 등으로 이해되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 에 대한 이러한 많은 관념들은 -- 과 ―에 대한 발음이 陰과 陽으로 발음되어지며, 또 이에 따라 많은 관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음양론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과 ♂라는 기호가 남자와 여자라는 말보다 먼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등의 부호가 말보다 먼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필자가 위와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은 한단고기에 나오는 글에 바탕하고 있다.

 ―과 -- , 두 부호에 대한 기록은 이 책을 지은 태백일사 神市 본기에 나온다.

「 거발한 한웅천왕으로부터 다섯번 전하여 태우의 한웅(BC 3512쯤)이 계셨으니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 조식보정(調息保精 : 호흡을 고르고 정기를 순하게 보존하는 것)케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장생구시의 술이다. 아들 열둘을 두었으니 맏이를 ' 다의발 ' 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太   )라 하니 또는 伏犧氏라고도 하였다. 어느 날 삼신(三神)이 몸에 내리시는 꿈을 꾸어 만가지 이치를 깨닫고 곧 삼신산으로 가서 제천하고 괘도를 천하에서 얻으시니, 그 획은 세 번 끊기고 세 번 이어져 있어서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가 있고, 삼극을 포함하여 변화무궁하였다. 」

- 임승국 注 -

이쯤 되면 음양에 대한 최초의 개념은 한 천재적인 개인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행여 그 당시 쓰이지 않았을 표현들이 너무 많다는 답답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한다. 현재 우리가 쓰는 기호는 오랜 시간을 이어 내려오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동안, 손질이 많이 가해졌을 것이다.

요사이 호흡을 통한 건강강좌나 소위 기(氣)에 관한 관심이 많은 줄로 알고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조식(調息) 이다. 곧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이미 5500년전에" 태우의" 한웅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결코 중국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 …그 획은 세 번 끊기고 세 번 이어져 있어서 … 삼극을 포함하여 … 」

그림으로 그려보면 , ≡ 이다. 서로 자리를 바꾸면 주역에 나오는 ,,,,, 등의 팔괘도 쉽게 만들어진다. 단지 요새 쓰고 있는 음과 양이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삼극(三極)은 천·지·인을 말한다. 이것이 -- 과 ―에 대한 첫 기록이며, 이 당시 --과 ― 의 개념이 있었다는 기록이라 생각한다.

태백일사는, 한말에 계연수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고대 기록들을 모아 편찬한 한단고기 - 환단고기라 부르기도 한다 - 속에 있다. 이 책은 아직 위서시비에 휘말려 있는 책이다. 위서시비를 거는 기준이 되는 문헌은 국내의 자료는 삼국유사의 몇 종류 안되고 그 외 우리보다 훨씬 더 방대한 중국과 일본의 자료들에 근거해서이다. 우리의 자료가 부족하고 상당부분 소실된 탓이다. 하긴 요즘의 한국인들도 변변한 5·18에 대한 기록이 없이 외국에만 대고 자료를 공개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기록이 많이 소실된 것에 대해 조상들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위서시비를 가지고 있는 책의 내용을 함부로 인용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한단고기 속의 내용이 몇 사람의 창작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기존의 지식에 비추어서만 판단하려하지 않고, 편견이 없이 제대로 한단고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태백일사에 나오는 ―과 -- 라는 부호가 음양론과 그 내용이 같은지 어떤지는 위의 글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과 는 주역이라는 책에 나오는 "건"과 "곤"괘를 뜻하고 있고, 그 자리를 바꾸는 내용에 관해서는 설괘전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그리고 주역이라는 책 역시 음양론을 기초로 하여 쓰여진 책이기에 태백일사에 나오는 ' 그 획을 세 번 끊기고 세 번 이어져 있어 ' 와 음양론이 더나아가 주역과도 서로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 번을 끊기고 세 번은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무엇을 두고 끊어지고 이어져 있다하는 것일까? ' 가운데 ' 를 두고 말할 것이다. 가령 ―○― 에서 ○ 가 끊어져 있으면 ― ―고, 이어져 있으면 ―가 된다. 주역에서 사용되는 -- 과 ―의 기호는 태백일사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있는 것이다. 이것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매우 중요하다. -- 과 ―는 동양사상의 뿌리이고 ' 가운데 ' 는 천지인에서의 "인"도 中도 空도 虛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과 ―가 태우의 한웅 당시 무엇이라고 발음되어졌는지는 모른다. 그 당시의 발음들을 글로써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 과 ―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천(하늘)·지(땅과 바다)·인(사람, 동식물 등)을 포함하여 변화가 무궁하였다라고만 쓰여져 있다. 이것이 바로 易이지 않는가?

' 그 획은 세 번 끊기고 세 번 이어져(其劃三絶三連) ' 라는 글자 몇 자를 놓고 너무 심하게 억측한 것이 될까? 이러한 억측을 바탕으로 三皇內文(이것 역시 易과 관련있을 것 같다하였음) 경이 자부선생에게서 헌원에게 그 내용이 전해질 때 넘어간 -- 과 ―의 뜻하는 바가 周易의 모체가 된 것이라 한다면 억측도 보통 억측이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 과 ―의 사상이 중국쪽에서 더 발달된 것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발달되었던 문명도 정체되면 쇠퇴의 길을 걷고, 그 문명에 크게 자극되었던 낙후된 혹 여타의 다른 민족에 의해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것은 이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복희(伏犧)라는 인물은 易의 창시자로써 주역 계사전에도 그에 관한 글이 나와 있다. 包犧, 包희, 伏犧라고도 쓰는데 이런 글자들은 이른바 六書 중 가차(假借)자로서 원래 한자에 없던 음과 글자의 의미를 가진 것을 다른 문화권에서 받아들여 사용하며 원래의 음과 비슷하거나 같은 음을 가진 한자를 빌어 표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과정에서 그들이 들은 발음이 정확한 것도 아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표준어 발음을 들은 것도 아니다. 단지 들어서 옮겨 적은 이가 자신이 접촉했던 사람에게 - 어느 지역인지는 모른다 - 들은 바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

복희는 한자의 뜻을 보아선 아무리 머리속을 캐내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그 아래에 엎드렸다 " 하여 엎드릴 복(伏)자를 쓴것도 아닐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복희는 ' 복히>복해>박해>밝해>밝새>밝히(다) ' 에서 나온 글로 생각된다. 옛날 앞에 예로든 여러 가지 발음 중 하나였을 소리를 오늘날 중국인의 선조들이 듣고 음역한 것이 ' 伏犧 ' 라는 말이 된다. 또는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 썼을수도 있다.

참고로 복희의 현재 중국어 발음은 ' 빠오시 ' , ' 파오시 ' 이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른다. 빠/파, 오시로 끊어보면 빠/파는 배/바와, 오시는 아시와 발음상 연관이 될 수 있고, 배, 바는 밝다에서 아시는 아사/새와 연관이 될 수 있다. 중국어 발음으로도 우리말로도 伏犧는 밝다, 새롭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이 때의 중국어 발음은 한자의 뜻이 아니라 우리말의 뜻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이때의 발음들은 옛날의 발음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간략하나마 음양론에서 -- 과 ―의 즉 음양론의 유래에 대해서 필자가 습득한 지식을 피력하였었다. 음양의 유래에 대한 나의 견해는 내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확인되거나 검증된 사실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