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之謂易

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 … 陰陽不測之謂神

음양은 생기고 생기고 또 생긴다. 양에 음이 이어지고 음에 양이 이어진다. 음이 양을 낳고 양이 음을 낳고 음 중에 음양이 갈라지고, 음 중의 음 중에 다시 음양이 갈라져나가고, 음 중의 양 중에서도 음양이 갈라져 나가기가 무한정으로 계속된다. 이를 易이라 한다는 말이다.

象(현상 : 고정적 실체, 본체가 아닌 변화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이룸을 일러 乾이라 하고, 法(법칙 등의 현대적인 용어로 생각치 말 것. 水+去(갈거), 물이 흘러가는 모양에서 나온 글자가 법임.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뜻하고 있는 글자임)을 본받는 혹 따르는 것을 일러 坤(곤)이라 한다.

지극한 혹 순수한 양은 자극하고 반응을 유발시키며, 지극한 혹 순수한 음은 수용하고 자극을 받아들여 반응하고 온갖 가능성을 지닌 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여기 행동하는 한 인간이 있다하자. 그가 일으키는 갖가지 행위들은 乾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나 그 행위의 몸에 해당하는 것은 坤인 것이다.

음양은 계속 생기고 생기며 변화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공중에 동전을 던질 때처럼 무엇이 나올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음양이다. 이를 가리켜 神이라 한다는 말이다.

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翁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건은 움직임이 없어보일때도 계속 이어져생기고 있고 그리하여 움직임이 나타날 때 있어서는 바르게 뻗어나간다. 이런 고로 크게 生한다고 하는 것이다.

곤은 움직임이 없을 때는 닫혀 있는 듯하지만 (움직이고 있으며) 그 움직임에 있어서는 드러나 펼쳐져 수용하여 넓게 열린다는 것이다. 이런 때문에 넓게 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해석을 이렇게 했지만 한자를 충실하게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필자 나름의 주관에 의해 이 책 저 책에서 뽑아낸 내용을 함부로 쓰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일단은 원문을 되도록 정확히 번역하였다.

乾의 작용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 상태에서도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있는 것이다. 겨울철의 벌거벗은 나무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꽁꽁 얼어붙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계속 生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봄이 되면 다시 잎을 드리우고 무성해져 여름날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당신이 누워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당신의 피와 정은 계속 양분을 전달하고 산소를 운반하고 있다. 잠이들어 죽은 것 같은 당신의 생각과 마음(神과 氣)도 계속 작용하여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坤은 말없이 고요하다. 그 모습은 항상 乾으로 나타나기에 없는 것 같기도하고, 설사 안다해도 꽉 닫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곤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을 예로 들자. 인간은 형체를 가지고 있기에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인간은 끊임없이 공기를 흡수하고 음식물을 받아들여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땅과 바다를 예로 들자. 땅과 바다는 아무말 없기에 그 중요성이 잊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땅이 있기에 모든 것은 그 위에 실려 존재할 수 있고, 그 위에 살아가는 각종 생물체들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역시 그러하다. 바다는 작은 시냇물조차 받아들이며 생명체가 처음 창조된 곳이다. 바다가 없다면, 소금이 없다면, 인간은 말라 비틀어진 고목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坤의 도는 이러하다. 따라서 坤은 넓게 생한다는 것이다.

물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단위는 무엇일까? 쿼크일까? 쿼크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기본단위일까?

그러나 음양은 무한으로 쪼개져 나간다. 모든 물질은 아무리 작더라도 심지어 쿼크라도 음양이 있기에 쪼개어 질 수 있다. 이는 마치 N극만 있는 막대자석이 있을수 없는 경우와 같다.

그럼 물질의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태양일까? 우주에는 태양보다 수백 배나 큰 별들도 많다고 한다.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은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장자의 친구이기도 했던 궤변가로 알려진 혜시는 가장 작은 것을 小一 이라고 하는데 그 안이 없고, 가장 큰 것은 大一 이라고 하는데 바깥이 없다고 하였다. 분명 말이 되는데, 말도 안되는 말이다. 그럼 불경에 나오는 ' 공즉시색 색즉시공 ' 과 ' 소일, 대일 ' 의 차이는 무엇일까? 글자그대로 풀어보면 " 아무것도 없는 것이 곧 현상계요, 지금 현상되어오는 것은 곧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가 ' 공즉시색 색즉시공 ' 이라 할 수 있다.

' 공즉시색 색즉시공 ' 을 궤변이라 할 사람은 불교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 이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궤변 중에는 거짓이나 변설 등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혜시와 같은 궤변은 생각이 가능한 논리이다. ' 공즉시색 색즉시공 ' 과 같은 논리는 소도경전에도 나온다.

「 빈 것과 큰 것을 한 몸이라 하겠고, 하나는 또 모두와 한가지로 같다. 」

33세 단군 감물

우리 주변의 모든 논리는 그럴 수 있다고 또는 스스로 생각해서 그렇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때론 처세적으로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러한 논리 중 '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하는 논리를 가능논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 일부가 이른바 진리가 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가능한 논리이지만 뭐라고 딱 꼬집지는 못하지만 선뜻 수긍할 수 없는 논리. 이러한 논리 중 반박이 모호하기에 될 수 있는 것처럼 논리화 된 것이 궤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논리는 직관적으로 생각되어오는 것을 말한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 왜 어른들은 밤낮 싸움질만 하느냐? " 물었다 하자. 이런 의문은 한국같은 경우에선 당연히 품어봄직한 생각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밤낮 싸움질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일어날 법한, 일어날 수도 있는 ' 가능한 생각 ' 인 것이다.

가능논리는 paradox와도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paradox는 틀린 것 같으면서도 옳은 말이나 옳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석연치않은 모순된 말속에 역설적인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가능논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논리를 말한다. 가능논리는 paradox도 진리도 궤변도 포함하는, 생각하여 봄직한 모든 논리를 말한다.

제논의 paradox 중에 ' 아킬레스와 거북 ' 의 이야기가 있다. 토끼는 거북이 보다 10배 빠르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에게 100m 경주를 시키는데 거북이는 토끼보다 90m 전방에서 출발시켰다하자.


토끼는 C점을 통과할 무렵 거북이는 D점을 통과할 것이다.



나머지 10m만 따져보자.

토끼는 D점을 통과할 무렵 거북이는 E점을 통과할 것이다.



토끼가 E점을 통과할 무렵 거북이는 F점을 통과할 것이다.

이와 같이 끝없이 추론하여 나아가다 보면 100m지점에 도달할때까지 토끼는 영원히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이 가능하다. 우리는 논리를 이용 이것을 분석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