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밖의 다른 음양에 대한 사항도 알아보기로 하자 .

「 한역의 체는 원이며 용은 方 , 모양 없음으로 해서 實을 알게 되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다. 희역(주역의 모체)의 체는 方이며 用은 원이다. 모양 있는 것에서 그 변화를 아니 이것이 하늘의 命이다. 그러나 하늘의 원은 스스로 이것이 하나의 커다란 허무의 空일 뿐이니 어찌 몸이 있다 하겠는가. 」

- 소도경전 본훈 -

여기서 말하는 지금의 易은 지리숙의 8괘 상중론이나 문왕의 周易을 말하는 것 같다.

한자에는 동그라미 (O) 의 형태가 없다. 한자의 형태는 모두가 각( ))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한글에 는 O  이 있다.

하늘을, 우주를 그림으로 그려 보기로 하자.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보르헤스가 말하는 가장 정확한 제국의 지도는 그 제국의 크기만 한 것이다. 가장 정확한 우주의 모습은 실제 우주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를 묘사하기 위해 우주를 다 다녀볼 수도, 그릴 수도 없다. 그러면, 단순히 하나의 ○를 그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그리고 실제 원은 가장 이상적인 우주의 모습일 것 같다. ○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모습이며, 텅비어 있으며, 주위로는 테두리가 있는 모습이다. 우주는 아마 빈 공간이 99%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꽉 조여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로 알고 있는" O "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부호이다. 0은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0은 사실 중앙 아시아,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단지 아직 부호화되지 않은 그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나온다.

우주는 비어있으나, 그러나 당신앞의 세계는 한계가 있고 형체가 있다. 마치 시간은 무한히 자유로우나, 우리는 자유로운 시간속에서 자유롭게 될수록 막막함과 심심함이라는 감옥속에 있는 것과 같다.

모양이 있으면서 모양이 없음을 아는 것, 그것이 "O" 인 것이다. 이러한" ○  "는 공(空)의 개념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나가르주나는 공(空)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不滅 不生 不斷 不常 不一義 不二義 不來 不去

「 (우주에서는) 어느것도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 끊어져 멈추는 것도 없고, 항상적인 것도 없다. 어느 것도 그 자신과 같지 않고, 또 다르지 않다. 어떤 것도 오지않고, 가지 않는다. 」

잘 이해가 안 가는가? 필자도 잘 안된다. 그러나 막연하게 추상되어져 오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직관의 바로 전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空의 상태는 유학으로 치면 무극과 비슷할 것 같다. 그러나 같지는 않다. 이러한 空은 바로 ○  의 관념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원에 대해서는" 잡설" 방 "원 이야기" 에 쓰여있다. 

  논조가 너무 빗나간 것 같다. 음양의 이론이 폭넓게 나오는 책이 또 한권있다. 바로 <황제내경>이라는 의학서적이다. 약칭 <내경> 이라고 하는데 의학이론뿐 아니라 천문학, 기상학, 운기학, 심리학, 생리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는 음양과 관련된 극히 일부분만 소개하겠다.

「 음양은 천지의 도이자, 만물의 강기요, 변화의 부모이며, 삶과 죽음이 근본과 시작이 되고, 살아 숨쉬고, 활동함에 근원이 됨으로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근본이 되는 음양 법칙에서 구해야 한다. 」

- 소문 음양응상대론 -

천지 사이의 모든 것은 바로 음양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음양을 알아야 사람의 질병도 고칠수 있다는 말이다.

양이 쌓여 하늘이 되고, 음이 쌓여 땅이 되며(흙이 아님 - 육지 + 바다임)

음은 고요히 있고, 양은 이리저리 날아 다닌다.

양은 생겨나게 하고, 음은 자라게 하며

양은 밖으로 퍼져나가 사라지며, 음은 안으로 간직되어 저장한다.

양은 기(氣)가 되고, 음은 형체를 이룬다.

- 소문 음양응상대론 -

크게 보아 음양은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미시적으로도 계속 분석하여야 한다. 가령 크게 보아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지만 저녁은, 또 새벽은 무엇일까? 같은 낮이라해도 오후 12시나 1시에 비해 11시나 2시는 상대적으로 음이다. 우리의 몸은 음양이지만 우리의 몸의 가장 작은 세포도 음양에 의해 이루어지고 소멸한다. 때문에 음 중에 양,음이 있고, 양 중에도 음,양이 있다 한다. 아침에서 日中(하루중 햇볕이 강한 시간대)까지는 天의 陽인데 陽中의 陽이고, 日中에서 황혼까지는 天의 陽인데 陽中의 陰이다. 완전하게 어둠이 깃든때부터 새벽까지는 天의 陰인데 陰中의 陰이고, 새벽에서 아침(원문에는 平旦이라 하였으니 대략 8시나 9시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까지는 음중의 양이라 할 수 있다. 음이 극에 이르면 양이 되고, 양이 극에 이르면 음이 되는 외에 음중에도 음양이 있고, 양중에도 음양이 있는 것이다. 그 음이 극에 이르면 양이 되고, 양이 극에 이르면 음이 됨을 내경에서는

「 열이 극에 이르면 한을 생하고, 한이 극에 이르면 열을 생한다. 」

- 음양응상대론 -

이라고 한다.

극이라는 표현은 을파소가 지은 참전계경에는 진(盡)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陰盡陽生이라 하였다.(盡 ; 다할 진) 실제 과학적으로도 열이 극에 이르면 냉(冷)이 생겨나오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우리 몸에서는 쉽게 발견된다. 열감기가 들었을때를 예로 들면, 보통은 열만 계속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열과 한기가 반복되게 된다. 신체는 자율적으로 음양이 조절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서도, 음진양생 혹 음극양생이나 양진음생이 나타난다. 평상시 다혈질인 사람은 흥분도 빠르지만 진정시키려는 마음도 빠르다. 젊었을 때 성급했던 사람이 늙어가면서는 지나치게 냉정해 지기도 한다. 양진음생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 얌전한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조용하던 사람이 평상시 흥분을 잘하던 사람보다 물불을 가릴줄 모르게도 된다. 음진양생이리라.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양은 밝다고 음은 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구별해 생각할 때는 양은 상대적으로 밝은 것을, 음은 상대적으로 탁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게됨에 따라 우리의 인식은 중심 즉 기준을 잡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이른바 황극의 개념이 필요해지게 되고 中一이 요구되어 진다. 하는데까지 하고, 그칠 때 그쳐야 하며, 무엇으로 어디까지 할 것인가가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무위로 하라, 그대로 두라, 하는것도 인위이다. 기호에 의해 전달되고, 기호를 사용하는 한 인위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자연스럽게 하려 할수록 사실은 부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어쨌든 현대인은 아니 배워서 깨닫는 다는 것은 무위도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다.

「 사람의 마음은 본래 고요하다. 그러나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의 움직임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말로서 나타난다. 」

- 정정숙 고문진보 中 -

말이란 태극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명의 기를 가진 물질은 자연 조건에 적응하고 저항하여야 존재할 수 있다. 이 적응과 저항은 (음과 양은) 살아 있기에 별탈이 없는 한 균형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 균형' 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균형이 지금 당장은 별탈이 없기에 ' 균형 ' 이라고 말되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천지음양(이른바 자연현상) 역시 불균형으로 되어있다. 그 불균형이 갖가지 모습으로 운동을 하며, 여러 가지 현상을 만들어 내며, 이른바 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혼란의 상태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