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모노는 feed back이라는 용어로서 인체에서의 음양의 항상성과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자크모노는 인체의 생명현상을 두고 합목적성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생명이란, 아무 목적이 없어도 생명이 유지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가진 물질 단위가 살아있으려 하는 것은 무의지, 무조작이라는 것이다. 조건없이 살아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모노는 인체의 합목적적 기능은 단백질이 지니는 특성에 있다고 보고, 단백질이 지닌 아로스텔릭 효소에 의한 반응이 이루어짐에 따라 세포작용과 신경, 내분비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로스텔릭 효소에 의해 기관과 조직 사이에 세포와 세포사이에 통합과 조절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노가 말하는 인체의 합목적성은 feed­back 저해와 feed­back 활성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림으로 그려 설명해 보겠다.

X′, M : 일련의 반응 결과를 낳는 최종대사 화합물

아로스텔릭 효소는 어떤 특정한 기질을 식별하고 선택적으로 이와 결합하며 그것을 일정한 생성물로 전환하는 반응을 촉매하는 것이다. 이 효소는 한개 내지는 여러개의 기질이 다른 화합물을 선택적으로 식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화합물들은 단백질과 입체특이적인 결합을 일으킴으로써 효소단백질의 작용을 변화시킨다.

⑴은 A→B가 되는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효소의 활성이 M에 의해 저해된다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A→B는 일정하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M이 많으면 A→B가 나오는 것 역시 많이 억제되어 그에따라 C도 그리고 M도 다시 억제된다. M이 적으면 적게 영향을 받아 A→B→C는 활성화가 증가하고, M이 증가하면 다시 A→B가 억제가 되며 자체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항상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⑵는 반응을 일으키는 효소가 최종대사물 X가 분해되어 만들어진 생성물인 X′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을 나타낸 그림이다. ⑴과 다른 점은 ⑴은 M에 의해 A→B가 억제되며 항상성이 유지되는 것이고, ⑵는 X′에 의해 A→B가 촉진되는 것이다. 음양에서는 이는 기초이다.

 

이제마는 음양의 이러한 특성을 ' 보사진퇴 ' 라는 용어로써 말하였다. 보사진퇴는 음양은 서로 억제하고 촉진하며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을 말한다. 음양이 보사진퇴(補瀉進退)한다는 말은 음양은 서로 보하고 사하며 나아가고 물러선다는 말이다. 동의수세보원 본문중에 비와 신은 음식물을 서로 보하고 사하며, 폐와 간은 기액을 가지고 서로 나아가고 물러선다는 글이 있다.



위의 그림으로 설명하여 보겠다.

우리 인체라는 태극은 일정한 음양에 이해 이루어져 있으며 개인마다 특정한 음양을 갖고 있다. 한 개인의 특정한 음양은 항시 그 나름의 태극이기도 하다. 이 태극이 머금고 있는 음양은 그 한사람 개인으로 보아선 그사람의 정해진 음양이며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음이 강해지면 양은 때론 약해지기도하고 그러다 반발하여 강해지기도 한다. 양이 강해지면 음 또한 그러하게 된다. 음이 강해질 때 양이 약화되거나 이와 반대의 경우일 때가 음양이 서로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이다. 음이 강해질 때 양도 강하게 반발하고 양이 강해질 때 음도 강해지려하는 것, 음이 약할때는 양도 반발하는 강한 힘을 갖지않고 양이 약할때는 음은 반발하는 강한 힘을 갖지 않는 것, 이것이 음양이 서로 보하고 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속에서 한 개인의 태극은 현재 건강한 사람으로 쳐서 항상 그 건강이 유지되는 것이다. 좀더 깊게 들어가면 인체에서 태양과 태음은 서로 나아가고 물러서며 소양과 소음은 서로 보하고 사하고 있기도 하다.

태극기는 음양이기의 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태극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론 원으로 둘러쌓여있는 그림이다. 폐쇄된 공간의 그림을 이용하지 않는 한 태극의 의미는 느낌이나 막연한 직관으로써밖에 이해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O 을 만든 것은 논리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무극에서 태극을 이끌어내는 첫과정인 것이다. 때문에 굳이 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폐쇄된 공간이면 사각형이든 팔각형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내부의 붉은색과 푸른색은 각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붉은색은 양, 푸른색은 음을 나타낸다.

태극은 음양이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태극이다. 또한 易有太極이라 했듯 인간은 계속 그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이런 면은 인체에서 뿐만 아니라 사고와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이렇게해서 안되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안되겠다 싶으면 또 다르게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는 인간성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의 방법이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음양으로 속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태극의 그림은 총론적으로는 일원성과 절대성을 나타내고, 각론적으로는 이원성·상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현상은 수많은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때문에 단순한 이분법으로 속단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 역시 절대적으로는 태극이지만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그러한 태극들이 모여 거대한 태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거대한 태극을 어떤 범위까지 설정할 것인가는 자신의 생각과 지식 등에 의해 한정되어 결정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사고 행위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제한적이다.

아직도 인간의 마음이 선하냐 악하냐를 분별하려는 사람들이 있는줄로 안다. 자연은 조화도 부조화도 아니고 조화이기도 부조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태는 불안한 균형이라 말되어 질수도 있을 듯하다. 지금 살아있는 인간은 별탈없이 생명을 유지하여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불안한 균형이란 무엇일까?

음악에서 오음계는 변음이 없는 완전음계를 말한다. 그러나 오음계만으로 연주하면 곡이 끝나도 종지감을 느낄수 없게 된다. - 우리 민요의 아리랑이나 한 오백년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 사인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 역시 음악의 기본음에서 4도와 5도 차이는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화음이다. 그러나 Root음과 4, 5도 차이나는 음으로 화음을 만들어 연주하게 되면 어딘가 비어있고 허전한 느낌을 주게 된다. - 물론 문화에 따라 이러한 음들이 이루어내는 음악이 귀에 익숙하기도 하다 - 그러나 여기에 파와 시의 변음이 들어가 7음계가 되면 화성도 풍부하게 되고 여러 가지 감정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수 있으며 종지감도 느껴지게 된다. 파와 시는 불안정한 음이라 하여 우리 옛선조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기를 꺼려했던 음이다. 실지 파와 시의 음은 긴장감을 일으키고 듣는이의 신경을 거슬린다. 그러나 파 다음에 미를 이어주거나 시 다음에 도를 이어줌으로써 이러한 긴장감이나 불안정한 느낌은 해소되어진다. 이러한 긴장감은 계속 안정된 상태에서는 느낄수 없던 상쾌함이라 할까? 뭔가 막혔던 것이 풀리는 느낌을 주게 된다. 긴장감과 그것을 해소하고픈 움직임, 이것이 불안한 균형의 성질이다. 이 불안한 균형의 움직임이 우리의 마음속 뿐만아니라 사고 행위와 육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살아있는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완벽한 조화는 죽음일 것이다. 또한 완벽한 부조화 역시 죽음이다. 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조화와 부조화가 적절히 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양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양의 과학이었다. 원래의 음양론은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배척했듯 매우 객관적인 분석론이고 미신적인 면을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음양론은 편하게 생각하면 너무나 그럴듯하고 편하게 결론도 이끌어져 나온다. 백양보라는 사람은 음양의 논리를 가지고 지진을 이렇게 설명했다.

" 양이 엎드려서 나오지 못라고 음이 눌려서 증발하지 못해서 지진이 생긴다. "

그럴듯한 말이다.

과학도 음양론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사람에게나 있는 객관적인 태도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아무래도 음양이 논리에 의한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설득적이지 못하다. 특히 서구식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당연에만 의존하는 음양의 논리는 ' 우연 ' 역시 당연으로 돌리게 마련이다. 음양의 논리는 음양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듯 상대적인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음양론 역시 상대적인 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음양의 논리 역시 적의 논리가 있어야 발전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이것은 모순과는 다른 개념이다 - 음양론은 그 상대적인 논리를 받아들여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기야 음양론은 이러한 것을 수용하는 능력이 좋기도 하다. 음양론은 직관은 빠르게 이끌어 낼수 있지만 현대의 과학처럼 실증적이지 못한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음양론은 하나로써 일관하고 모든 것이 음양에 귀납될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음양의 논리는 어려운 관계나 이론을 쉽게 생각하게 하여주지만 자체 모순에 의해 - 너무나 쉽고 단순하다는 - 혁명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못하다. 그저 아직까지 3000년전과 다름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려는 숙명론이 그안에 담겨있기도하기 때문이며, 사람처럼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먹어치울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선도 악도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그저 특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