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움이 그렇지만 음양론 역시 끝없이 어려움이라는 벽과 계속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의문이라는 질척거림에 부딪히게 된다.

필자는 아직도 혼돈속에서 이글을 쓰고 있다. 장자에 나오는 글인데 계백옥이라는 사람은 나이 육십에 이르기까지 먼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 그르다고 생각을 바꾼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 옳다고 알고 있는것도 언젠가는 다시 고쳐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어느때건 필자의 견해는 수정되어질수도 있다. 이런 점은 지금까지 이글을 읽어주느라 고생하신 분들께는 대단히 죄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걱정이 자주 들었었다.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이런글이 있다.

한 바보가 있었다. 그는 기차가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지가 궁금했다. 며칠동안 기차역 주변에서 관찰하고 주시한 결과 내린 결론은 기차는 차장의 호각소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다. 어쩜 난 이 바보처럼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음양의 움직임은 악도 선도 옳고 그름도 없다. 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신은 인간의 일에는 관여치 않는다. 무극속에서건 태극속에서건 모든 것은 운동하고 변화하고 순환하고 서로 섞인다. 세계는 굴러간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뒤뚱뒤뚱 울퉁불퉁 거리면서도 굴러간다.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것이 생각하는 자의 비극일 것이다.

「사계」의 노래가사처럼 여공은 얼굴이 눈처럼 하얗게 되어 죽어나가도 여공이 앉은자리에 있던 미싱은 돌아가는 것이다. 음양도 자연도 변화무쌍하지만 인간 역시 그러하다. 그것이 태극의 모습이다. 지금 절대적이라고 알고있는 진리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잠시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어느 땐가 더 유용하다 생각되는 관념이 생기면,새로 자라나는 사람들은 저절로 ,그리고 대부분의 변덕스러운 동시대의 인간들은 새로운 꿈과 가치를 찾아 철새처럼 옮겨 갈 것이다. 아마 그때는 니체처럼 인간은 몹쓸 것이다라는 현자의 말이 그에게도 위안이 되게 될 것이다.

인간은 한번 깨어나는 운명을 지닌 채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죽기 직전에야 번쩍 정신이 들게 된다. 아! 하며 꿈에서 깨어나지만 이번에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야 한다. 소외와 절망 속에서 살다가 진정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마지막 절망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인간은 마지막 절망의 순간을 눈앞에 두지 않고서도 꿈에서 깨어나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마지막 절망을 앞에 두지 않고도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잠이 들었을 때 우리의 꿈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 다닐수 있다. 잠시 잠새가 되는 것이다. 잠새는 먼 기억의 하늘을 날아다니다 인간의 꿈속에 내려앉는다. 그리하여 잠새는 꿈속을 날아다니다가 꿈속으로 사라진다.

이런 경우도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아니 그것이 꿈이기도 하다. 길을 가다 무엇인가에 열중하다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이 들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난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누구일까? 마치 어릴적 상상했던 동화 속의 먼 별에 다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낮설어지며 마치 먼 타국의 거리 위에 홀로 버려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그것도 잊은채 허공중에 사라져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를 모르고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철저히 홀로이다. 잠시 잠새가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가 부딪혀와 무엇에 부딪혀, 아니 그냥 발이 걸려 깜짝 놀라 깨어나면 이번엔 내가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하고 서운하면서도 안타깝지만 도무지 잘 기억이 이어지질 않고 그러다 시간에 쫓겨 다시 허우적대며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아내가 죽자 통곡하던 장자는 곧 술동이를 두르리며 노래를 했다고 한다. 친구인 혜시가 이유를 묻자

' 나라고 어디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생이란 없는 것이다. 생뿐만 아니라 형체도 기운도 없다. 혼백속에 기운이 일고, 형체가 나타나고 생명을 드러냈다가 다시 죽어 사라졌으니 이는 사시사철 하늘이 그리 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순환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내가 계속 울고 있다면 난 命을 모르는 것이 되지 않는가? '

그럴까? 일관성은 유지되었지만 좀 지나치긴 하였다.

이제 음양론을 끝마치려 한다. 음양론은 매우 방대하여 이 정도 글로써는 다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수많은 개별적인 예들을 설명하기보다는 교과서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제 독자가 응용하기 나름이다. 분명 이 책의 음양론 정도만 제대로 이해하면 다른 책에 나오는 음양에 관한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필자의 음양에 대한 부족한 지식으로 음양론을 이렇게 써본것도 무리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정도만 알면 앞으로 이 책을 읽어가는데 별 부족함은 없을것이라 생각된다. 사상의학은 분명 음양론의 영향을 받고 있고 사상의학과 같은 동양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음양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무리를 하여 보았다. 글을 쓰면서도 정말 나 자신을 아는 것 조차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난 내 지식과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선 내 자신을 납득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이 없더라도 항상 나는 나와 대화하고 있다. 내안의 여러 생각들은 때론 대립하기도하고 때론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음양론을 마치며 다시한번 주지코자 하는 것은 음양은 서로 평등하게 생각하여야 할 개념이라는 것이다. 음은 죽음이고 양은 삶의 기운이라는 식은 음양의 논리가 과잉되거나 잘못 연역된 결과이다. 인체는 음만 있어도 죽지만 양만 있어도 죽는다. 인간은 활동하고 휴식을 취하고 쉬고나야 다시 활동할 수 있다. 인체에서의 음양은 그러한 차원에서 생각하기 바란다. 또한 음양론을 ㅡ 과 - - 라는 기호로써도 생각하기 바란다.- - 과ㅡ 는 기호로써 고정되어 있지만 운동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 - 과 ㅡ 에는 아무런 이름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ㅡ 는 그 운동이 극에 달하면 - - 이 되고, - - 는 극에 달하면 ㅡ 이 된다.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 -  →  ㅡ  이 되고, ㅡ  →  - -  이 된다는 것이다.ㅡ 이전은 - - 이다.따라서 - - 는 ㅡ 에서 온 것이 된다.

·사상

음양이란 - - 과 ㅡ 이다.

사상이란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다.

〓 (태양) : 양( ㅡ )에 다시 ( ㅡ )이 생겨난 것이다. 양이 매우 많고 활발한 것이다.

(소양) : 음( -- )에 양(ㅡ )이 생겨난 것이다. 작지만 매우 강한 양이다.

 = = (태음) : 음(- - )에 다시 (- - )이 생겨난 것이다. 음이 매우 많고 활발한 것이다.

(소음) : 양( ㅡ )에 음(- - )이 생겨난 것이다. 작지만 매우 강한 음이다.

  ㅡ  괘는 ↔ 의 속성 즉 흩어지고 폭발하고 분열하고 떨어져나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하였다. 〓 괘중 아래 괘는 그러한 성질이 더욱 강하다.

  - - 괘는 흩어지고 폭발하는 중에 강하게 축적하고 잡아당기고 모이려하고 쌓이려하는 것이다.

  - -  괘는 →←의 속성 즉 무거워 내려앉고 모이고 쌓이고 잡아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하였다.

  = = 는 그러한 성질이 더욱 강하다.

    괘는 쌓이고 잡아당기고 하는 중에 강하게 폭발하고 분열하고 떨어져 나가려는 것이다.

이 책에선 인체와 관련시켜서만 말하겠다. 더 자세한 것은 본문 속에 조금씩 조금씩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