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圓)이야기

원(圓) 이야기를 하여 보겠다.

필자는 설명을 위해 ○와 같은 원의 그림을 많이 사용한다. 원을 이용하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원은 구를 평면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라 하였다.) 아라비아 숫자 중에 기호"0"이 있다.

"시파"라고 말하며 비어있음을 뜻하던 기호였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100, 1000, 10000 하지만 1자 옆에 비어있음을 뜻하는 '0'이 4개 붙으면 "만(萬)"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수학에서는 지동설에 뒤지지 않는 일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없음을 "0"이라는 그림으로 기호를 만들었을까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말도 없다. 그래서 필자가 한번 추리해 보았다.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을 ×, ∪, ∋, ∈, ∞, □, △ 등으로 하지 않고 "0"이라 하였을까. 단순한 편리함이나 우연에의해 누군가 그렇게 해 본 것이 그냥 전해지다가 오늘날처럼 되었을까?

원래 ○은 구형체 ( 그림 000 )에서 만들어 졌으며 2차원적 즉 평면적인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와 같은 그림이다. 곧 "0"이라는 그림의 기호는 우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기억하는가 가우리(고구려) 솝울(서울)이라는 글자의 "울", "우리"는 ○ 즉 원을 말한다.

「 그윽이 생각해 보건대 삼신은 하늘에서 태어나시자 물질을 만드시고 한인(桓因)은 사람을 가르치어 의를 세우시니 이로부터 자손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현묘한 가운데 도를 얻으시고 광명한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시니라. 이미 천지인 삼극은 있었고 대원일(大圓一)은 이것이 곧 만물의 원리가 되었으니...」

- 삼신오제본기 -

대원일이 만물의 원리라니 무슨 말일까? 아니 대원일 곧 큰원 하나는 무엇일까? 대원일(大圓一)이라는 글자를 쓴이는 무엇을 보고 한문으로 大圓一 이라 적었을까

「 < 삼신이 하나 >라는 이치는 대원일에 그 뜻이 있으니 조화의 신은 -천일- 내려와 나의 성품을 이루고 가르침의 신은 -지일- 내려와 나의 삶을 이루고 다스림의 신은 -태일- 내려와 나의 정신을 이룬다. 」

- 단군세기서 행촌 이암 -

이암은 고려말의 학자이다. 시기야 어떻든 옛 책 어디선가 읽었을 것이다. 대원일에 <삼신이 하나>라는 이치가 있다한다. 대원일은 글자일까, 그림일까?

「 천부의 인(天符印)을 가지고 대원일의 그림을 누전에 걸어 놓으셨으니 이를 일러 거발한(居發桓)이라 한다. 」

- 11세 단군 도해 단군세기 -

아! 그림이였구나. 그럼 어떻게 생긴 그림이었을까? 동그라미가 좀 큰 것이지 뭐겠는가.

단기고사에는 흥미 있는 내용이 있다. 단군세기와 종합시켜 보았다.

「 이해 10월에는 한웅의 성상을 신전 안에 모셨다. 이 성상의 머리에서 찬란한 광채가 비치고 마치 큰 해와 같았다. 둥근 빛은 온 우주를 비추며 박달나무 밑 한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 원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같았다. 」

어디선가 이런 종류의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군세기의 거발한은 커다란이란 말의 어원도 될 것이다.

거발한은 크게 빛나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관심을 둘 것은 이 글이 아니다. 누전에 걸어 놓았다는 대원일의 그림이란 무엇일까? 큰해와 같은 것, 머리 위에서 빛나는 둥근 빛은 무엇을 글로써 표현한 것일까? ○일 것이다.

"0"이라는 숫자는 아랍에서 유럽에 전해지기 이전 인도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했었다. "0"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순야(sunya)라고 하며 한역불전에서는 空이라 번역되고 있다. 순야의 뜻은 부풀어 오른 텅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럽으로 건너간 "0"이라는 기호는 "0"이라는 기호가 가진 철학적 사상적 의미는 떨어져 나가고 유럽인들 특유의 관념에 의해 의해 수학에 "0"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사고 방식에도 혁신이 일어나고 "0"에는 새로운 관념이 생겨났다.

어느나라건 "0"의 관념, 개념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호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수학적인 기호로 표시 할 수가 혹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0이라는 기호가 수학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몇 천년 걸렸는지 모르는 것이다. "0"의 개념은 산술적인 계산 외에도 오늘날의 컴퓨터 원리인 이진법의 "0"과 "1"의 개념에서도 톡톡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만일 "0"이라는 기호가 아직 사용되지 않고 있다면 현대의 문명은 아마 다른 길에 들어섰을 수도 있을 것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불경에서 말하는 空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소멸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떠난 모든 사물의 현상이자 근원이다. 긍정과 부정, 유와 무, 삶과 죽음, 생과 멸, 대립과 조화 등과 같은 두 가지의 이분법을 떠난 것이다. 이런 기호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은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 모습인 空의 본질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坵不淨 不增不減

「 사리자여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관념,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새로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더러워지는 것도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空인 것이다. 」

- 반야경 中 -

아마 서양인들은 이런 글을 읽으면 곧 zero sum을 떠올리거나 구상해 낼 것이다. 그들의 문화와 관념의 버릇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나 중국인 인도인 일본인 등은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 사람이라 한다. 首露는 머리이슬이라 읽어낼 수 있다. 이 뜻은 머리는 통치자를 뜻하고 "이슬"은 "잇+을"이다. 풀잎에 맺히는 이슬이 아니라 "잇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흡사 신라에서 왕을 가리키던 명칭인 "이사금"의 "이사"가 "잇다"라는 뜻을 갖고 있던 것과 같다. 首露는 통치를 이어 받았다는 뜻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듯 허황옥은 단지 그 부모의 꿈속의 계시에 의해 머나먼 한반도 지역까지 항해하여 왔을까. 그러나 허황옥 일행이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하여도 좋다.

을축 4년 ( BC 2092 ) 身毒(신독) 사람이 표류해 왔다. - 5세 단군구을 (이 글의 BC 이전의 거의 모든 연대표는 임승국교수의 연대기순을 따랐다.)

신독은 인도를 일컫는다 한다. 과거 신독이 어느 나라를 뜻했는지 인도는 무엇이라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옮긴이는 그 어떤 나라를 두고 신독이라 하였을 것이다. 신독 사람이 표류하여온 이곳은 어디일까. 한반도일까? 어쨋건 지금부터 4000년전에도 사람들은 먼 거리를 배를 타고 돌아다닌 것이 된다.

어쩌면 이 당시 "0"의 관념이 인도사람에 의해 (표류해온 사람이 아님) 단군 조선에 들어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대원일의 관념과 그림 등이 인도로 넘어갔고 후에 인도는 인도 나름대로 空의 사상으로 발전 시켰는지도 모른다.

비단 해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육로를 통해 인도와 한족(桓族)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 허황옥의 조상은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 아리아인들은 고대 인도의 드라비다 족을 정복하였었다. 이들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와 드라비다인들이 사용했다는 기호들은 훈민정음을 만들 당시 깊게 참고로 했던 고대 범어라고 한 글이기도 하다. 아리아가 아리라 정도 유추만되도 곧 고대 한족문화권에서 흔히 쓰이던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은 그렇다고 치자. "0"이라는 기호는 왜 그렇게 둥그렇게 그리고 처음 출발한 점에서 선을 기울어지게 그어 둥그렇게 그리고는 그 선이 끝나는 점을 처음 출발한 점에 일치시켜 폐곡선을 그렸을까.

천부경의 시작은 일시무시일(一時無時一)이고 끝은 (一終無終一)이다. 이는 끝없는 순환을 말하고 있으며 그림으로 그리자면 ○ 이렇게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허공.

「 너희들 오가의 무리들아 파아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아만 것이 하늘인 것은 아니다. 하늘은 얼굴과 바탕이 없으며 첫끝과 맞끝도 없으며 위아래와 사방도 없고 겉은 황하며 속은 텅비어 있지 않은데가 없으며 싸지 않은 것이 없나니라 」

- 소도경전본훈 -

이러한 글은 글보다는 관념이 먼저 있었을 것이다. 기호의 변천을 보면 글자 이전에 그림이, 그림 이전에 관념이 있었다. 또한 인간의 사고 행위는 그 이전의 기호나 그림. 언어를 익히고 그 이후 기호에 의해 자극되고 나름대로의 사유체계를 세워나가고 그에 따라 새로운 또는 발전된 방향으로의 관념이 생겨난다.

윗글 역시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이 있기전 어떤 관념이나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윗글의 모태가 된 관념이 글자이었다면 그 글자 이전을 유추해 들어가다 보면 역시 원시적인 기호나 그림에서 마지막으로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림 등에 의해 자극 받지 않고 어떤 고도의 사유과정을 통해 ○의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위의 글이 어떤 그림에 대한 관념 혹 개념을 적은 글이라면 그 관념의 모태는 ○일 것이다.

○은 크게는 대우주요 작게는 세상의 모든 물체요 인간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필자의 독단적인 추리일 뿐이다. 지나친 김에 내쳐 더 써보겠다. '울'이란 단어가 있다. 울/알/얼/올은 모음의 변화만으로 만들어지는 말이다. 물론'ㅏ ', ' ㅓ', '  ㅗ',' ㅜ ' 라는 기호는 한글창제후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그 "음"은 그 이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그럼 그 이전에 있던 ㅏ , ㅓ , ㅗ, ㅜ ,  의 음은 어떻게 해서 있게 된 것일까? 필자는 한글창제 이전 아주 오래 전에도 한글의 음에 대한 "창조적인 성과" 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울/알/얼/올에는 모두 원의 관념이 들어있다. 울과 알은 그렇다 치고 "얼"은 "얼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듯 동그란 것과 관련이 있으며 "올"도 실의 한"올" 두"올", 올가미 등의 단어가 의미하듯 아주 작은 단위의 원을 뜻하고 있다. (입모양 역시 그렇다.) "올"은 별로 발전적인 관념을 이끌어 내지 못했지만 ("오다"라는 단어는 올의 관념에서 만들어진 듯 하다.) 울/ 알/ 얼은 여러 가지 관념을 형성하며 나갔다.

이중 울은 주로 나라, 지역, 범위를 뜻하게 되었고 알은 생명, 시작, 씨, 등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얼은 머리, 정신, 등을 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대원일의 기호로 표시하던 ○에서 파생되어 나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혹은 잡다한 여러 형태의 관념 속에서 "○"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새로운 혹은 발전적으로 분화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이 원(○)의 관념은 불교에서 空이 되었지만 도교나 유학에서는 虛나 無, 무극, 태극의 관념을 형성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의 억단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고구려 때 을파소가 지은 참전계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無極者 周而復 始之元氣 : 무극이라는 것은 두루두루 한바퀴 돌고 다시 시작하는 크나큰 기운이다. 이것 역시 원을 말하고 있다. 주렴계가 말한 無極, 도가적인 虛, 無, 등은 이러한 공간 속에 "울"이 일어나는 관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