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Ⅰ)

「 경자 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이 있다해도 열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 」

- 단군가륵편 한단고기 中 -

아마 이런 상황이 삼국시대 때까지도 이어진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이두, 리두(吏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두에 대해 깊은 지식은 없다. 배운 바도 없고, 폭넓게 여러 가지 책을 연구한 바도 없다. 다만 옛 서적을 이 책 저 책 보다가 거기 나오는 이두에 관한 지식을 어깨 넘어 배우는 식으로 슬쩍 엿보았을 뿐이다. 그런 중에 기존의 리두에 관한 책들이 너무 "글자"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틀을 만들어 보았다. 필자가 이제부터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오류와 착오, 잘못 알고 있는 지식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또 이두에 관한 얕은 지식으로 인해 필자는 이두가 어떤 체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어떤 방법과 과정을 거쳐 쓰이게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고, 그럴만한 능력과 지식도 없다.

리두는 과거(신라시대로 알려져 있음) 어느 때인가부터 한자를 빌어 고대 한국인들의 생각과 말을 표현하는 글자였다. 신라시대 설총이 만들었다고 되어있으나 기원 이전부터 사용되어 졌거나 최소한 기원 직후부터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다면 설총은 다만 항간에 쓰이는 리두의 여러 쓰임새를 정리하여 놓은 것이 된다. 필자는 이 주장이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대해서는 꽤 말이 길어지기에 다음으로 미루겠다. 리두는 그 한자로 표시된 단어인 리두(吏讀)가 의미하듯 관리들이 사용하던 글이다. 그러나 한자는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들의 생각을 글로 표현함에 한자를 가져와 사용하며 리두 혹 리독의 많은 복잡함이 생겨 나왔다. 예를 들어 글자는 한자(漢子)로 썼지만 고유한 우리말을 한자로 썼기에 한자의 뜻을 생각하면 전연 알 수 없는 내용이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한자의 뜻을 그대로 빌어와 사용한 경우도 있다. 후대로 내려오며 구결이라 하여 다시 정리되었지만 필자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구결식의 (한자글 뒤에 토를 붙이는 것. 고려, 조선에서 한자에 없던 고유한 한자를 만드는 것) 방법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리두 혹 리독이 관리들이 사용하던 글자였다고 한 바 있는데 관리들은 한두명이 아니라 수백년에 걸쳐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각 나라를 생각하면 최소 수천 수만명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차이도 변화도 많다. 또한 한자는 익히 알고 있듯 중국 사람들도 익히기 어려운 글자이다. 人자를 두고 △모양 같기도 하고, ×자 모양 같기도 하다는 소설 속의 인물이 나올 정도의 글이다. 때문에 근대에 들어서도 중국은 문맹율이 높았고, 과거 2000년 전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지역마다의 방언의 차이는 중국 북쪽 사람이 남쪽 사람의 말을 이해 못하고(맹자는 초나라 사람의 말을 까치가 ' 까까 ' 거리는 것으로 알아들었을 정도 : 그 시절 맹자가 활동하던 제, 노, 송, 양과 초나라는 거의 인접해 있었음), 서쪽 사람이 동쪽 사람의 말을 이해 못할 정도였다. 하물며 중국 여러지역의 글과 그 글의 음과 뜻을 저마다 개별적인 경로를 통해 받아들인 고구려, 신라, 백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을 것이다. 한자라는 것이 오늘날처럼 통일된 체계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각기 인접해 있거나 자주 왕래하던 국가들의 영향을 받다보니 우리 옛지명을 표기한 리두 글자들도 통일된 체계가 없이 뒤죽박죽이며 거기다가 리두의 발전과정 중에 옮겨적는 사가(史家)들의 문화속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도 중국의 한자음과 우리의 발음은 다르고 그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조차 모른다. 때문에 한자의 음을 빌려왔다면 그 시대 중국의 어떤 나라의 발음인지와 우리식으로 발음된 것인지까지 알아보아야 하니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많아진다. 그리고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리두에 관한 글들은 글자 위주로 되어있어 너무 한편으로만 치우쳐 있다. 2000년전 당시에는 지금 사용하는 한글을 사용하지 않을때다. 비록 녹도문자라는 고유의 글자가 있었지만 아마 잘 사용되지 않았거나 귀족층이 전유물로 삼다가 왕조의 몰락과 함께 불에 타버리거나 땅에 묻히거나 빼앗겨 여기저기 흩어져 갔다가 소실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필자는 소리가 위주가 되어 특히 각지역의 사투리를 위주로하여 리두에 관해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는 비록 고유의 문자(신시시대때 만들어졌었고 한자의 모태일수도 있다. - 단군"가륵"때도 만들어졌었음 - 아마 훈민정음과 같은 발음을 위한 글이었다고 생각된다)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중국의 국력과 문화에 밀려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음만은 즉 말소리만은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왕족이나 귀족들이 독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두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관리계층, 지식인계층에서 사용했었다는 것·중국, 우리나라 모두 지역적인 방언이 있었다는 것·세월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일단 기본적으로 머리속에 넣어두고 시작해보자.

우리말은 알다시피 수많은 발음현상들이 있다. 구개음화, 자음접변, 원순모음화, 전설모음화 …… 등등. 또한 지역적으로 쓰이는 오마니, 어머니, 어무, 엄마, 오메 등은 모두 표준어 ' 어머니 ' 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외 덩거당­정거장, 정오는 증오로도 쉽게 발음되며 지역에 따라 쌀­살, 월요일은 월뇨일­워료일, 평양­피양, 관광객­강간객­간강객, 경제­겡제 식으로 소리되어 나온 발음들이 모두 이두 표기에도 적용되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밝다는­박따·발따, 시커멓다­시커머타 또는 새카맣다…… 등의 소리속에서 지역에 따라 이것 저것 등으로 발음되며 그들의 발음대로 한자로 적기도 하였을 것이다.

고대 한국인들이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 음을 빌리는 것과 둘째, 뜻을 빌리는 것이다. 기호에는 그리고 그 기호를 형상으로 나타낸 글자에는 뜻과 음밖에 없으니 ' 글자 ' 를 빌려오더라도 이 이상은 안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빌려오는 쪽(고대 한국)에도 ' 말 ' 즉 ' 음 ' 은 있었다는 것이다. 말은 뜻을 가지고 있으니 뜻도 또한 있었을 것이다. 단 ' 글자 ' 만 없었던 것이다. 알파벳처럼 소리 글자였으면 글자만 빌려오면 되었을 텐데 한자는 뜻글자이다. 불가피하게 뜻도 가져와 쓰게 된 것이다.

처음 한자를 빌려 올 때는 고대 한국에도 말이 있었다. 그리고 한자를 가져오며 그 말(지명, 인명, 사물을 가리키는 명칭, 형용사, 부사 등)들을 한자로 적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원래 있었던 고대 한국의 말 대신 한자로 된 말들이 쓰여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熊津(웅진)이 있다. 웅진(熊津)의 풀이는 곰웅, 나루진 이다. 원래 곰나루로 불리던 지명을 熊津이라는 한자로 적은 것이다. 아마 이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한자를 가져와 적는 방법에는 다른 방법도 있다. 고구려 지명중 국내성(國內城)은 수도 혹 중요거점도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경우는 웅진처럼 새김을 빌려와 적었을 가능성도 또는 새로이 뜻을 대구, 부산식으로 만들어 적었을 수도 있다. 국내성(國內城)이 있던 곳은 현재 집안(輯安)이라 한다. 이 ' 집안 ' 이라는 발음이 중국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원래 옛날부터 있었던 그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쓴것이라면 國內는 뜻빌림이 된다. 고구려인들이 집안(輯安)이라고 또 쓰던 것을 중국인들이 그대로 사용하여 지금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집안. 말그대로 ' 우리집 안 ' 이 된다. 집이 옛날에 나라의 뜻도 있었다면 집안이라 불렀던 지역을 國內라고 한자로 적을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맞다면 국내는 새김을 쓴것이고, 집안(輯安)은 음을 빌려온 것이 된다. 단 이 경우에는 그 당시도 고구려에서 輯을 집으로 安을 안으로 발음했느냐가 문제이다.

이 경우는 당시도 지금과 같이 거의 비슷하게 발음하였다고 하자. 이 이유는 좀더 뒤에 말하겠다. 음빌리기에는 이러한 문제점 외에 각 지역마다 방언 즉 사투리가 표현되어져 있다. 즉 한자를 가져다쓰며 자기 지역말을 한자로 적다보니 같은 것을 가리키면서도 음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밝다, 붉다. 밝은해, 붉은해 등의 표현은 현대 표준어이지만, 과거 2000년전에는 이와 같은 글자도 없었고, 그 발음도 지역마다 달랐을 것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또다른 이름은 弗矩內(불거내, 불구내)이다. 이 말의 뜻은 붉은해 또는 붉으네(동사) 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뜻은 赫居世(세상을 밝게 비춘다)와도 통한다. 붉은해. 참 밝기도 하네, 붉기도 하네라는 뜻을 경상도 지역의 사람들은 한자를 가져다 적으며 지금도 사용하는 그들의 발음대로 불거내, 불구내에서 弗矩內라 적었을 것이다. 혹 그냥 붉은해를 경상도 사람보고 발음하라 하면 ' 불거내 ' , ' 불구내 ' 로 발음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지역이었다면 뜻을 어떻게 적었을까? 빨개, 바∼알개;발개, 발거, 불거, 발해, 박해, 발기, 불기, 불개 백이…… 등의 발음들 중에서 적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상은 매우 쉽고 단순한 예였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앞에 쓴 예가 여러모로 변용되고 기술 등이 첨가된 것이다. 독자는 일단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첫째, 음을 빌리는 방법, 두 번째, 뜻을 빌리는 방법이다. 그리고 음을 빌리는 방법은 각 지역의 방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뜻을 빌리는 방법에는 새김을 쓰는 방법(이 책에서는 새겨쓰기라 되어있다)과 뜻을 만드는 방법(우리가 한자로 이름을 만들며 大治, 美禮 식으로 뜻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뜻빌리기라 하였다)이 있었다.

앞에 쓴 熊津(웅진 : 곰나루)는 새겨쓰기 방법이고, 弗矩內는 음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國內는 새겨쓴 것일수도 뜻을 만든 것일수도 있다.

이제 음을 빌려쓰는 방법에서 지금의 한자를 읽는 음이 과거에도 별 차이가 없었음을 말하겠다.

과거 우리말의 ' 소리 ' 를 한자로 표기하였다면 그 소리는 그 시대 한자의 ' 발음 ' 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시다시피 지금 사용되는 중국어의 한자음과 우리말의 한자음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高(고)가 현대 북경어로는 카오, 東이 뚱, 黃(황)이 후앙으로 발음되는 식) 2000년전에 중국에서는 어떻게 발음되었을까? 또 고대 한국인들은 어떻게 발음하였을까? 이러한 의문은 2000년 전에도 高는 고라고, 東은 동이라고, 黃은 황이라고 발음되었으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그러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알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각종 옛책에 나와있는 한자들을 보면 고대 한국인들은 한자를 가져오며 그 한자의 음을 지금과 유사하게 발음하였을 것도 같다. 그런데 북경어 장셰스가 산동지방에선(옛 오나라지역) 장가이섹으로 발음되듯 중국어 역시 지역이 넓은만큼 사투리의 차이도 심하다. 지금도 광동어와 북경어는 통역이 없이는 의사소통을 못할 지경이다. 지금의 우리 한자어의 발음은 북경어보다는 옛 오나라지역의 발음과 비슷하고 이 지역은 단군조선의 여러나라들이 있던 지역이었다. 지금의 우리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신라라는 국가는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과 동호족이 연합하여 만들어졌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이 지역의 발음들이 지금 한자의 주된 발음으로 상당부분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금의 북경어는 高를 카오, 毛를 마오, 黃을 후앙으로 발음되는 식으로 두자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중국어의 성조 때문도 있다. 중국어에 있는 네가지 성조인 1성(높은데서 평탄하게 발음하는 것), 2성(중간음부터 최고로 높이는 것), 3성(다소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최저로 내리는 것), 경성(그냥 가볍고 약하게 발음하는 것)발음하기 위하여는 두자로 발음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각기 한(one)자로된 발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말은 성조가 없다. 두자로 발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위에 든 예들처럼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전연 발음상의 관계가 없지도 않다. 아니 관계가 쉽게 만들어진다. 카오, 까오에서ㅏ, ㅇ 을 탈락시키면 꼬, 코>고, 다른것도 마오→모, 후앙→황(합쳐서 발음)의 관계가 글자로는 쉽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방법을 일종의 반절(反切)이라 할수 있는데 이미 2000년 전에도 이러한 방법이 있었을까하는 많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東(동)이란 한자의 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옛사람들은 德紅切이라 하였다. (물론 이런 방법은 삼국시대 이후에 이루어졌다.허지만 이런건 그 이전에도 있던걸 설총이 종합하여 체계화 시켰을 수도 있다) 덕과 홍의 발음에서 ' 동 ' 이란 발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글자가 없이 덕의 처음 음인 ' 더 ', "ㄷ"음을 가져오고 홍의 마지막 음인(종성)(그러니까 "ㅎ "음을 뺀음 ,' 옹 ' 에서 ' 동 ' 을 만들어 내려면 ' 더 ' 에서 ' ㅓ' 발음을 발음으로 없애고 ' 옹 ' 발음을 ' 드 ' 에 붙이면 된다. 그럼 드옹>동 식으로 될 것이다. 카오>가오가 ' 고 ' 가되는 것도 후앙이 황이 되는 것도 이런 식이 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고려이전 옜날에도 그냥 "고려"인 것이다

 

  • 단군은 한문으로 檀君이라 쓴다. 왜 우리 선조들은 檀君이라는 한자를 통치자를 지칭하는데 사용하였을까? 檀자는 박달나무 단 자이다. 그럼 단군은 박달나무 임금인 것일까?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사람이어서 박달임금이라 하였을까? 결론을 먼저 말하면 檀君이란 밝땅의 임금을 뜻하는 글자라 생각된다. - 최남선은 단군의 어원을 몽고어 텐그리(tengri, 하늘)에서 나온 단굴, 단골, 당굴이라는 글자에서 나왔다 한다. - ' 박 ' 은 ' 밝다 ' 라는 음에서 가져왔으며 땅을 달로 말하는 것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양달, 응달, 빗달(비탈), 울타리(울달이), 달구질(땅을 굳게 하는 것) 등의 단어를 볼 때 땅을 뜻하는 말이 달로 쓰이고 있음을 알수 있다. 박달은 밝땅 곧 밝은 땅의 뜻인 것이다. 檀 ' 박달나무 단 ' 은 읽어내기를 하면 밝땅인 것이다. 단군(檀君)은 밝은 땅의 임금이고, 단목(檀木)은 박달나무가 아니라 밝은 땅의 나무인 것이다 . 아참 ! 박달은 발음하기에 따라 "배달"로도 소리되어졌을 것이다. 참고로 조금 더 이야기 할 것이 있다. 지금 한자는 중국의 글이 되어 있지만 한자의 생성과정이나 현재의 글 모양을 보면 동이족 곧 한(桓)족 들도 관계되어 진다. 은나라가 있던 지역에서 출토되는 갑골문자들은 지금의 한자 이전단계의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민족과 관계가 있는 것도 있다. 집 가(家)는 집()안에 돼지(豕)가 있는 모양인데 지금도 남도 일부나 제주도에 남아있듯 집안에 돼지를 기르는 풍습은우리에게만 있다고 한다. 여름 하(夏)자는 정장을 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글이라 한다. 때문에 여름 하(夏)자는 여름외에 크다는 뜻도 갖고 있는데 "하"는 "한"으로도 발음되었다고 한다. 한이 크다는 뜻을 가진 경우는 중국에는 없고 한터 한밭 이 의미하듯 한국에는 그 의미가 남아 있다.(진태하:한국 국어교육회장) 이제까지의 필자의 글을 이해 하였다면 이 "여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름은 열음일수 있다. 곧 열었다는 뜻인 것이다. 하(夏)나라는 여름(summer)나라가 아니라 나라를 열었다 곧 개국 했다는 뜻인 것이다. 중국사서에 나오는 주나라 이전은 한국조상들의 역사인 셈이다. 그러기에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이때의 일들을 제외시켰을 것이다. 지금 사기의 삼황오제 부분은 당나라때 덧붙여진 것이다. 너무 상상이 지나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