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웅이야기 재조명 ◈

1) 의문

이 책은 사상(四象)에 관한 글이지만 크게 요약하면 음인과 양인에 관한 글도 많이 있다. 음인(陰人)과 양인(陽人)은 물론 여자와 남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무엇인가를 계속적으로 의심하여 가다보면 종국에는 거기에 무엇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그 생각이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이기에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는 명제를 남겼다. 감정이나 행동에 대해 ' 사고 ' 와 ' 이성 '의 우위를 선언한 것이다. 존듀이는 위의 명제를 " 나는 소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로 바꾸어 말한다. 듀이 역시 무엇인가를 계속 의심하다 보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 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고나 이성보다 ' 행위 ' , ' 행동 ' 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마치 데카르트가 주리적이라면 존듀이는 주기적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종합하여 결론을 내려보았다. 즉 소유인지 존재인지의 화두는 계속 의문을 느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세상에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자, 남자, 흑인, 백인, 황인종 등이 있다. 지구가 있고, 태양이 있고, 달이 있고,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눈에 그렇게 보인다고 이것이 사실일까? 은하계가 나선형의 모양으로 확대 되고 있다면 지구와 태양은 서로 마주보며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는 혹시 태양의 인력에 따라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북극성이 시계추처럼 지구를 매달아 빙빙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쩜 은하계는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아래 은하계를 잡아 당기는 거대한 중력이 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은하계는 허공중에 둥둥 매달려 있는 걸까? 과연 우주의 끝은 있을까? 끝이 있다면 그 끝은 벽처럼 꽉 막혀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벽뒤에는 무엇일까 그런벽이 없다면 우주의 끝은 다시 없는 것이 된다. 그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신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신은 장막의 저쪽에서 죽음이라는 한계를 담보로 인간들의 생존의 게임을 즐기고 있는 걸까? 좀더 작게 작게 생각하여 보자. 나의 마음은 왜이리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까? 나의 마음은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슬픈것일까? 나는 무엇이 괴롭고 무엇이 즐거운지 아는 걸까? 모르고 있는 걸까? 나의 마음은 왜 밤을 설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는 돌처럼 무뎌져 있을까?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을까? 나는 모른다. 사람들이 자신들도 그렇다고 말해도 결국 나는 모른다. 아니 그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럼 나는 어느 정도라도 아는 것이 될까?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음인과 양인(곰과 호랑이)

서양사람들은 사람을 판단할 때 돈키호테형과 햄릿형으로 구분지어 본다고 한다. 행동형과 사색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음인과 양인으로 분류한다. 음인은 사색적인 면이 많고 양인은 행동이 앞서지만 음인, 양인을 사색형과 행동형으로 일률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음인이더라도 행동적이고, 양인이더라도 사색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사람을 아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음인은 생각이 깊고, 양인은 행동이 앞선다고 생각해도 된다. 앞글에서 중점을 두고 보아야 했을 단어는 " 대체 " 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은 " 일단은 근거를 두고 생각해도 되지만 크게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 말이다. " 대체 " 란 먼저 테두리를 그려보는 것일 뿐이다. %의 개념으로 말하면 50% 보다는 많고, 100%보다는 많이 모 미친다는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 했으면 한다. 음인과 양인은 여자와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앞에서도 밝혔지만 대체로 여자는 남자보다 ' 음 ' 적인 면이 많다. 이는 보봐르가 말했듯 여자로써 키워지고 문화환경이 그런게 요구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면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을 것이다. 사상의학적으로 보면 여자와 남자는 신체적구조만 다를 뿐 음기와 양기의 운동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선 같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서로 다른 체질이 있음은 동서양을 통해 고대로부터 연구되어져 왔다.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윤곽만 대충 그려질 뿐 확실한 기준이 없었었다. 20C 들어 크레지머가 육체적으로 체질을 구분하여 보았지만 사상의학에 비하면 논리체계도 사상체계도 학문적 수준도 조악한 편이다. 사상의학의 뛰어난 점은 단순히 의학적인 체질론만이 아니라 생리, 심리, 신체적 특성외에 철학적 윤리적인 내용까지 총괄한 점이 될 것이다. 필자가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 될까? 그런 분들은 100년전을 생각하여 주기 바란다. 사상의학이 세상에 나온지는 100년 정도 된다. 100년전에도 서구의 의학이 지금의 수준과 같았을까? 단지 현대의 시각만으로 " 결과 "의 측면만을 보는 것은 너무 편협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음인과 양인에 관한 생각은 이미 6000년 전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음인과 양인에 대한 이야기는 ' 단군신화 ' 아니 ' 한웅이야기 '에서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中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에 관한 글에 바로 음인과 양인의 특징적인 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호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내용은 본문에서 다루고 일단은 ' 한웅이야기 '에 관한 시비부터 문제삼아 보겠다.

3) 한웅이야기

' 한웅이야기 ' 일명 ' 단군신화 '는 단군의 탄생과 새로 나라를 개국하는 과정에 얽힌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은 천제(하느님)의 아들 환인과 곰이 시험을 거쳐 인간으로 변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나와있다. 이 신화를 두고 후손들은 두고두고 자신들을 둔하고 미련한 곰의 자식들이라 하였다고 부끄러워하든가, 그리스 신화와 같은 상상적인 이야기로 돌려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로써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단고기에 보면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외에 웅족과 호족에 관한 글이 많이 나온다. 왜 웅족과 호족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을까? 누가 이리 명칭을 붙였을까?

「 - 중략 - 이때에 무리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풍속도 오히려 점점 달라졌다. 원래 살던 우리는 범무리 였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무리였다. 범무리의 성질은 잔인한 짓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무리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

- 한 단 고 기 -

이 글만 보고 범무리는 어떻고, 곰무리는 어떻다고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여하간에 서로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두 개의 종족이 서로 같이 살게 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위에 인용된 글은 단군신화가 아닌 BC 3898년 신시시대(배달시대)를 연 한웅시대 때의 이야기이다. 기존의 BC 2333년의 단군을 우리민족의 시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기존의 지식을 수정하기 바란다.

인용된 글은 이른바 ' 신화시대 '의 이야기이다. 위의 글이 허구일지 실제 역사일지는 이제 함께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위의 글에서 이런 추정을 하여 볼 수 있다 원래의 무리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호족이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원래의 무리가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무리와 접촉이 이루어지며 스스로를 ' 호족 '이라 부르게 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다른 무리를 ' 웅족 '이라 하였다는 추리를 하여볼 수 있다. 서로 숭배하는 동물이 범과 곰이어서 인지 , 아니면 종족의 특징이 범과 곰과 비슷해서인지, 범무리와 곰무리라는 명칭이 지어졌고 서로 같이 살게 되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무리의 이름을 하나로 통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듯 하다. 이 글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이 제 3자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있음도 눈여겨 봐 두어야 할 것이다.

한단고기의 내용을 놓고는 아직 위작의 시비가 있음을 말하였었다. 실제 앞에 인용된 글의 내용은 허구일수도 ,혹 BC 3898년전의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더 오래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져 왔고, 그것이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설화 또는 ' 신화 ' 라고 글자를 붙여 말 되어졌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지식을 받아들이면 곧 그에 고정된 관념이 생긴다. 누가 ' 신화 ' 라고 이름 붙였는지 그 이후 이야기를 습득하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있는 ' 신화 ' 를 통해 앞에든 이야기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럼 신화란 무엇일까? 신화는 단지 작위적이고 상상적인 옛날 이야기일까 ? 우리에게 ' 신화 '로써 이야기되고 있는 ' 한웅신화 ' 는 하여간 지금이야기 되고 있고 아마 수백년·수천년 어느 때인가에 누군가에 의해 그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하나 정의를 하겠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신화는 그리스 신화식의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날부터 책에서 책으로 입에서 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옛날 이야기들은 매우 종류가 많고 " 전설따라 삼천리 " 식의 이야기가 많지만 개중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내용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이런 의미를 가진 이야기를 이 논의에서의 ' 신화 ' 라 정의하겠다.

역사학자 아그네스 헬러는 신화에는 "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 의 이야기가 즉 발생기원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한다. 세계의 많은 민족은 거의가 그들 자체의 발생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 신화는 말에서 말로 그리고 글에서 글로 전해져 왔을 것이다. 이점에서 한단고기에 담겨있는 삼성기는 오늘날의 한국인의 선조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 왔음을 말하고 있다.

「 어느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백산(黑水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인(桓因)은 또한 감군(監君)으로써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불을 일으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

- 삼성기 中 안함로 -

이것이 조작일까? 기록일까? 조작이라면 언제? 누가? 무슨 의도로 조작을 감행하였을까? 한 번 조작이 아니라 그저 옛날부터 말에서 말로 글에서 글로 전해 온 것이라 하여보자. 흑수와 백산은 어디를 가리킬까? 흑수는 바이칼 호를 말하는 것 같은데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씨는 흑룡강을 말한다고 한다. 白山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임승국씨는 백두산을 말한다고 한다. 白山은 말 그대로 하얀산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항상 눈이 쌓여 있는 하얀산을 말할 것이라 생각된다. 고대의 우리말로는 희, 히, 해 중의 어느 한 발음과 메, 뫼의 발음이 합쳐져 발음되었을 듯하다. 감군이라는 명칭 역시 원래의 글에는 다른 명칭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안함로가 혹 그 이전의 누군가가 옮겨 적으며 적당한 한자로써 대치했을 것이다. 監자는 " 감독하다 " 란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의 뜻은 " 내려다보는 " " 비추어보는 " 의 뜻이었다. 감군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 감 ' 은 우리 옛글로는 누런색을 혹은 금을 말하기도 한다. 토인비의 역사는 어떤 무리가 남에서 북으로 북상하며 시작되는데 비해 한단고기는 먼 북쪽에서 남으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하겠다. 그러나 이 글만 가지고 오늘날의 한국인들의 선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을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한웅천왕이라 한다. 」

- 삼전기전 下편 -

태백산은 오늘날의 강원도 태백산이 아니다. " 신단수 " 에서 신이란 오늘날의 신의 개념으로 보아도 된다. 단이란 밝은 땅을 말하고, 수란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신단수란 : 신이 내린 새로운 거주지를 세울 만한 밝은 땅을 말하는 것 같다.

태백산은 白山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매우 큰 白山을 의미하리라 오늘날 한국인의 선조가 먼 북쪽에서 남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해도 좋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과거 어느땐가 그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사건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후세로 전해지고 전해지며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은 이를 누군가가 창작해서 퍼뜨렸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