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헬러는 이러한 신화에는 교훈의 동기가 있다고 한다.

「 교훈의 동기가 신화들 속에 편재해 있다. 발생이 현존하는 질서를 존재의 질서로 정당화 시켜주기 때문에 신화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만 하며, 그리고 무엇을 피해야만 하는가를 즉 우리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신화상의 인물들이 범한 죄는 신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

- 아그네스 헬러 역사의 이론 -

◎교훈의 동기

한웅신화는 한국인들의 뿌리를 말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한국인은 그 존재가 한웅 신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굳이 내 생각에만 맞는 사람의 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흔한 옛날이야기 속에조차 교훈의 동기는 들어있다. " 한웅이야기 " 속에 나오는 범과 곰에 관한 글 역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교훈뿐 아니라 경고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

「 그런데 우리의 조상 단군할아버지는 천제의 아들인 한웅과 곰의 딸 사이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이건 좀 곤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조상의 피를 덮어주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는 하지만 단군 성조의 아버님 되시는 어른께서 곰의 따님을 끼고 주무셨다는 것은 우리들 같은 속인들에게도 용납이 안되는 성적타락이다. 그뿐 아니라 그 두분의 결합으로 단군 할아버지가 잉태되지는 못했으리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사람과 동물의 염색체의 수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곰과 아무리 깊은 사랑에 빠져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생물학의 결론이다. 」

- 김 동 길 교수 -

이런 생각은 반론이 될까? 성조는 뭐고 진짜 후손의 도리는 뭘까? 그 분 특유의 풍자적 표현으로 굳이 성스러운 조상으로 까지 추켜세웠다가 거꾸로 메다 꽂으면 그 논리가 명쾌해질까? 무엇보다도 삼국유사의 웅녀(熊女)는 암콤이 아니다. 곰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의 과학과 생물학으로의 결론이기도 하다. 아마 신화와 과학을 혼동하고 있거나 자신이 믿는 신앙에 의한 편견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믿는바 는 갖은 수사로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자 다른 사람의 믿는 것을 비평하고 비판할 수도 있다. 자기민족의 역사기록을 비아냥거리는 식의 모욕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소위 그 분이 배운 영,미식 민주적인 토론의 기본이다. 신화속에서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비약할 수 있다. 현대인의 시각만으로 수천년전 과거의 이야기를 따지는 것도 너무 시비가 지나친 것이 될 것이다.

신화속에선 여우가 사람으로도 되고 하루낮에 울산바위가 울산에서 속초까지 갈 수도 있다. 성경에서도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수백년씩 살아가고, 딸이 아비의 자식을 가지지도 하지 않는가. 한웅이야기는 덮어주고 할 것도 없고 수치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 역사가는 실제에 있어서의 가정적 선택과 해석에서 출발할 것이다. 」

- E H.카 -

보기에 따라 필자 역시 아전인수격으로 논리를 끌어다 맞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실제라는 가정하에 " 한웅 이야기 " 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사실이 없는 역사가는 뿌리역시 없으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실제는 생명도 의미도 없다. 」

- E H.카 -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허구의 틀 속에서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말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말하는 이가 없다면 실제는 전달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 실제의 사실이 전해져 왔는냐 " 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필자는 " 한웅이야기 "를 실제했던 사실을 과거 어느 시대의 한 역사가가 각색하여 서술하여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랑케류의 " 실증 " 이 없는 한 필자는 이렇게 추측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대신 가능한 한 여러자료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검토하며 신화의 내용을 분석, 한웅신화가 실제 있었던 옛날 어떤 시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그 이야기의 타당성을 여러사람에게 납득시키는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없던일이 있고 있던일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 말하는 이 " 가 없었다면 한웅이야기는 전해져 오지 않았을 것이며 혹 " 다른사람 "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 서술하였을 것이다. " 과거의 어느 사건 "에 대해 어떻게 변형시키는가는 전적으로 과거 그 시대의 문화를 살았던 그 " 말하는 이 " 에게 달려있다 . 그가 곰 대신 해를 쓰건 달을 쓰던 개를 쓰건 상관없는 일이다. 단 그가 하는 이야기는 그 시대의 절대권자나 백성들에게 타당하다고 받아 들여져야 했을 것이다. 실제의 사건의 전달에 있어 아무리 객관적인 사람이더라도 원래의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주관적이고 예나 지금이나 고립된 한편에서 기록,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웅이야기 " 의 내용역시 비슷비슷하면서도 내용의 더하고 덜함을 가지고 여러 기록들 속에 산재하여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인용된 古記의 내용도 여러 기록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문제삼아 다른 내용들을 무시하지는 않아야 할 줄로 생각한다. 한웅이야기는 만들어진 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져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는 오랜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이야기는 말하는 이의 주관적 관념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편견이 없는 가장 객관적인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 한웅이야기 " 속에는 주관적인 편견이 들어 있다. 실제 있었던 사실에 대하여 " 인과응보 "나 길흉화복, 권선징악적인 내용을 곁들이는 것은 주관적 편견을 말하는 사람의 논리를 정당화 시켜 주기 때문이다. 인간들속에서 무엇인가 근거하여 ,가치를 생각하고 판단을 하려는 한 그 근거를 합리화 시켜주기 위한 정당성을 찾는 노력은 오늘이나 옛날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과거에 비해 주술적이거나 신비적인 일들에 대해 그리도 가장 생각이 덜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도 그 논리체계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바 없다. 단지 관점이 바뀌었거나 기술적으로 좀더 교묘해 졌을 뿐이다.

「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과거는 단순한 과거 자체가 아니라 현재와의 밀접한 관련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조망해 주는 것이다. 」

- 크로체 -

「 역사책을 읽으려 한다면 그 역사가의 머리속 생각에 귀를 기울인는 것이 좋다. 거기서 전해 듣지 못할 경우 당신이 귀머거리든가 아니면 그 역사가가 바보임이 분명하다. 」

- E. H 카 -

" 한웅이야기 "를 전하여 준 사람 또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각에서 " 한웅이야기 " 속의 내용을 만들었을까 그냥 대충 창작된 내용을 필자가 너무 의미를 두려하는 것은 아닐까? 왜 그 역사가는 하필 " 곰 " 이라는 동물을 등장시켜 후손들이 두고두고 수치심을 품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만약 곰토테니즘이 과거에 우리민족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것이 있었다면 지금도 곰을 숭배하는 풍습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우리 나라에서 그런곳은 없는 것 같다. 일본 아이누족이나 북만주 일대의 퉁구스족 에게는 남아 있다고도 한다. 임승국 교수의 말대로 라면 곰은 " 감 "으로도 쓰였으며 " 감 " 은 땅을 뜻한다고 하는데 그럼 " 곰 " 이란 단어는 동물인 " 곰 "과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과거가 있듯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시시각각 과거로 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그 미래는 항상 미리 알 수가 없는 점이다. 그러나 어렴풋이나마 그 방향과 결말정도는 추론하여 볼 수 있다. 그 기준은 물론 과거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통해 미래를 유추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E. H 카는 역사가와 과거와의 대화라 했다. 과거는 역사가의 펜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로 말되어질수 있고 그에따라 미래가 영향받을수 있다는 것이리라. 신채호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 상태의 기록이라 했다. 我는 무엇이고 심적 상태에 기록이란 무엇일까? 주관적 위치에 서 있는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을 <비아>이다. 그 <아>의 심적 상태의 기록이 역사라고 신채호는 말한다. - <조선 상고사> - 일제하 식민지 시대의 울분에 찬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독단적인 글을 쓰게 되었을까? 중국학자 공인화는 " 남의 나라를 무찌르고, 남의 터전을 흔들며, 남의 인재를 끊기도록 하고, 남의 교화를 없애버리며, 기강을 무너뜨리며, 남의 祖宗을 짓밟아 버리려면 먼저 그 역사를 없애야 한다 " 고 말한다. 필자가 너무 국수적인 주장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든 좋다. 그러나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결코 못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럴 필요가 없다. 스스로 무너뜨리고, 스스로 끊고, 스스로 잊으려 하니 말이다. 불교는 불교대로 유교는 유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그러하다. 어떤이들은 "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 이라든가 크고작은 수백번의 외침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오늘에 이른 끈기와 한과 고난의 민족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자위하면 좀 기분이 나아서 그럴까? 힘이 없어서 남의 나라를 침략 못했지 평화를 사랑해서일까? 실제론 항상 내부균열 상태였으니 그럴 기력도 없었다. 6·25 때에 중공군은 국군과 미군은 북한군과의 교전을 꺼려했다 한다. 국군이나 북한군이 너무 지독하고 잔인해서였다 한다. 왜 풍류를 좋아하는 민족이 이리 되었을까? 우리는 무엇인가 큰 것을 잊고 있고 이 순간에도 계속 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 그것은 건망증이다. 우리사회의 " 건망증 "이 오늘날의 일일까?

「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무언가를 깨닫기는커녕 계속 지워버리려 하고 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일까, 내세울게 별로 없어서일까? 아아! 한국인의 건망증이여! 몸소 그 해와 독을 당하고서도 지나고난 다음 환경이 바뀌면 막연히 대처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수치의 역사를 읽는 사람은 모두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며 긴 한숨으로 원통히 여기면서도 그 순간만 지나면 깨끗이 잊고 마니 그 건망증이 너무 심하구나. . . . 화친을 꾀하는 사절단을 만나면 잊어 버리고, 선물을 받으면 잊어버리고, 대낮에 칼을 거머쥐면 잊어버리고, 밤중에 돈을 주면 잊어버리고. 」

- 신규식 -

이 시대 사람이 쓴 글이 아니다. 일제시대 1922년 임시정부내에 내분이 일어나자 25일간 단식 끝에 서거한 신규식선생의 글이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다. 역사적으로 적전분열은 한민족에게는 전매특허였다. 중요한 시기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들은 거의가 우리민족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왜 그럴까? 이 나라의 국민성이 시기심이 많고 뽐내기를 좋아해서 일까? 필자 나름대로의 생각은 국민적인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 어느때건 모든 사람들이 믿고 뭉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공통분모는 이제는 왕도 유교도, 기독교도 불교도,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될 수 없다. 내 생각엔 문화와 역사가 공통분모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어느나라도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문화와 역사란 ' 역사적 사실 '에서 이끌어 낸 ' 의미나 교훈 ' 외에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다. 과거의 " 역사적 사실 "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생활공동체로서 우리의 문화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했다면 오늘날의 분단된 상태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가 해방이후 서로 갈라선 남북한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줄수 있었을까? 불교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가 하여줄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중·고교 시절 국사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심하다. 역사는 ' 기능 '이 아니라 ' 사고 ' 이어야 한다. 조선시대때 베 몇 필을 세금으로 받고, 천몇백몇십몇년에 무슨일이 있었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는 그 민족의 흥망과 부침 속에서 좀더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비젼을 계속 찾아내고 만들고 검토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바탕위에 대종교이든, 천도교든, 증산교든 유학을 믿든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과거의 수치와 고난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길이 후손에 물려줄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너무 흘러들어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