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는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된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의 연구를 통해 반성하고 검토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리고 " 한웅이야기 " 속에는 위에 열거한 사항들이 모두 들어있다.

<삼성밀기>에서 말한다.

桓國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한웅께서는 나라를 위해 삼신으로서 가르침을 삼아 무리를 모아 서약을 만들어서 은밀하게 잘라서 없애버릴 뜻을 가졌다. (★) 그때는 종족의 이름이 서로 달랐으니 풍속도 차츰 달라져서 원래 살던 백성을 호랑이라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백성을 곰이라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애오라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생겨 조화되기를 거부하였으니 같은 굴에 살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서로 돕지도 않고 혼사도 트지 않았을뿐아니라 일마다 서로 따르지도 않고 아직 한 번도 뜻을 함께 한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웅녀(熊女)의 군(君)은 한웅에게 신덕(神德)이 있다함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가서 뵈옵고 말하기를 <바라옵건대 하나의 굴을 내리시어 신계(神戒)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비옵니다. > 라고 하니 한웅께서 마침내 이를 허락하여 맞아들이시고 아들을 낳게 하시었다. 호랑이는 종내 깨우칠 수 없는지라 이들을 사해로 쫓아 버렸다. 한족(桓族)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었다.

한국(桓國)은 한웅이 신시(神市)를 세우기전 한인에 의해 세워졌던 나라이다. 지위리(知爲利) 한인이 마지막 통치자 였을 것 같은데 통치 말년에 다른 어떤 강한 무리와의 접촉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를 해 놓은 까닭은 그 사이에도 어떤 내용이 이었을 것 같아서이다. (★)를 전후해 문장의 내용이 건너 뛴 것 같이 되어 있다. 그리고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은 어떤 종족이었을까?

위의 글로만 생각하여 볼 때 세 가지를 가정하여 볼 수 있다.

첫째 한웅이 속한 종족은 호족도 웅족도 아닌 별개의 다른 종족이다. 그 이유는 호족과 웅족을 완전히 객관적인 위치에 놓고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한웅이 이끄는 3000의 천손의 무리는 이동 중 다른 무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중 호족이라 부르게 된 무리와 먼저 접촉하게 된 듯하다. 이런 상태에서 또 하나의 강한 종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은 웅족의 무리가 될 것이다. 이 경우는 기독교식의 창조사관이나 진화론적사관, 양자의 복합적인 관점이 적용될 수 있다.

둘째는 한웅이 속한 종족은 호족이었다는 가정이다. 그 이유는 하늘의 자손은 있을 수 없다는 진화론적 관점에 의한다. 이런 관점에 의거, 한웅은 먼저살던 종족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강족은 웅족이 될 것이다. 한웅이 속한 종족은 한국의 말기 또는 북쪽에서 남하하다 웅족을 만나게 되고 잠시 혼란상태가 생기게 된다. 이때 한웅이 결단을 내려 웅족을 수용하며 이에 반대하는 호족의 일부를 내쫓고 새로운 나라를 개국한 것이 된다.

셋째는 한웅이 속한 종족은 웅족이라는 가정이다. 그 이유는 한웅이 슬그머니 토벌의 뜻을 품고 있다가 꼬투리 (소위 유교식의 명분)를 잡아 호족을 사해로 쫓아 낸것에 있다. 이 경우 강족은 호족이 된다. 한웅은 성공적으로 그의 생각을 관철시킨 것이 된다.

호족의 문화를 유목과 수렵이 주축인 문화로 웅족의 문화를 농경의 문화로 본다면 다른 해석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군데 오래 붙어있지 못하고 자꾸 움직이려 하는 양인은 기질 자체가 유목과 수렵에 맞기도 하다. 변화와 변동을 꺼리고 안정되어 있으려 하는 음인들은 농경의 기질에 맞기도 하다. 이런 견해들 역시 위의 세가지 관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밀기에 쓰인것과 비슷한 글의 내용을 두고 안원전 증산교 부종정은 두 문화 혹 두 종족간의 결합을 말하고 있다 한다.

「 당시 신시에는 웅토템족과 호토템족이 서로 이웃해서 살고 있었는데 신단수에 나아가 서로 빌어 신시의 계율을 받는 백성이 되기를 몹시 원했다. 환웅이 그것을 보고 3·7(21)일 동안 수도를 시켜 테스트를 했다. 호족은 성격이 사납고 호전적이며 참을성이 없어 탈락했고 웅족은 덕이 있고 참을성이 있어 능히 견뎌내 테스트에 합격했다. 환웅은 마침내 그곳 토착민인 웅족의 여인과 결혼하여 자손을 이어갔다. 」

- 안원전 -

앞에든 가정중 첫 번째의 가정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예쁜 강아지일까? 앙증맞은 동물들일까? 글쎄지만 호랑이라 하면 어떨까 한다.

민족의 특성을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도 호랑이라는 동물로 표현하려 하고 싶어 한다해도 별반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마침 88올림픽의 마스코트도 호랑이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웅이 속해있던 종족은 호(虎)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 한웅은 왜 먼저 살던 종족대신 새로 들어와 살던 웅(熊)족의 여인과 혼인을 맺게 되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두 번째의 가정이 된다.

두 번째의 가정에서는 교훈의 동기를 찾아내어 볼수도 있다. 이 글은 웅(熊)족과의 혼인에 의한 범, 곰무리 지배층간의 통합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이후 두 문화의 융합과정을 나타내며 그 과정에서 일부의 호족은 분리되어 나가게 된 것을 쓰고 있는 글 일수있다. 그리하여 남아있거나 혹 분리되어 나간 호족의 무리에게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으로 호족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참을

성 없고 규칙을 제대로 지키기 못하는 호족의 구성원들에게 교훈을 말하고 있는 것이 된다.

한반도와 일본, 만주지역에는 예로부터 곰토테미즘이 있었다. 과거 한국의 지명에 많이 쓰여있는 熊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웅진(熊津), 웅현(선산), 웅촌(울산), 웅천(개성) 등 무수히 많다. 일본에도 熊本(구마모토), 熊山(구마야마) 등 웅자가 들어가는 땅이름이 여럿있다. 웅의 발음은 훈몽자회에 " 곰(熊) " 이라 한 이후 한반도 지역에서는 " 곰 " 이라고 거의 통일 되었지만 이전에는 감, 검, 굼등으로 쓰였으며 일본어 가미(神), 구마(熊)등도 모두 " 곰 " 이라는 ' 음 ' 에서 건너갔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관점은 세 번째 가정에 속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세 가지 경우는 딱히 구별하여 놓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각기 첫 번째와 관련을 가지고 연역될 수 있다. 이 경우는 세 가지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즉 곰토테미즘이나 " 곰 "에서 구별되거나 여러가지로 달리 쓰이던 지신, 땅을 뜻하던 " 곰 "이란 발음이 후대에 " 곰 "이란 한자음이 없기에 마침 한자로 熊을 곰이라 하였기에 가져다 쓴 것이 곰으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또는 " 웅 " 이란 발음이 있었는데 - 그것은 아마 바람소리 등의 의성어 였을 것이며 고귀한 발음이었을 것임. 마치 산스크리트어의 암이나 옴(om)이나 훔(hum)처럼-이음은 원래 웅(雄)이라 발음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 웅 " 의 발음을 적은 글자가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연유로 인해 웅(熊)이란 글자를 적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 웅 " 이라는 발음하나로 고귀한 신분의 남성과 여성을 모두 표현하기 위해 이런 쓰임새가 나타났을 것도 같다. 이 경우 " 곰 " 이란 발음이 신격화된 것은 후대로 내려가며 熊과 곰이 혼용되어지며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 나오는 곰과 범의 성격적 특징을 주목하였었다. 그 특징을 직선적으로 확대시키면 바로 양인과 음인의 성격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때에 한 곰과 한 호랑이 있었는데 이웃하여서 같이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기도하며 또 한웅에게 청하기를 <원컨데 변화하여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한웅은 이에 신비한 주문을 외어 환골이신 하도록 하면서 신이 내리신 물건으로서 신령스러운 삶을 얻게 하였으니 바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다. 이에 경계할 바를 말하니 <너희들 이를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참된 평등을 이루어 만물을 구제하고 쉽사리 사람까지 교화하는 도리를 아는 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곰과 호랑이의 양가는 모두 이를 얻어 이를 먹고 조심하기 3·7(21)일에 스스로 수련에 힘쓰니 곰은 굶주림, 추위, 아픔, 고통에 견디어 경계함에 순종하고 한웅의 약속을 지켜 건강한 모습의 여자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태만하고 조심하여 경계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끝내 천업(天業)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둘의 성질이 서로 닮지 않은 모양이다. 웅씨의 여러 여인들은 고집세고 어리석고 강정하여 저들과 더불어 혼인하는 자가 없었고 항상 신단수 밑에 여럿이 모여 아기를 가져 나을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이에 한웅은 임시로 화하여 한(桓)이 되어 장소를 구하여 그와 혼인하여 자식을 잉태케 하였다. 이로부터 여자와 남자들은 차츰 倫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 한단고기 中 -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의 의미는 아직 추측이 되지 않고 있다. 「 」안의 말들은 마치 도가나 불가에서 행하는 선(仙, 禪)의 수행방법인듯하다. 3·7(21)일은 석달하고 (오늘날의 달의 단위와 개념이 아님) 7일을 말하는 것 같다. 즉 대략 백일을 말한다는 것이다. (고대에 100은 상당히 신성한 수(數) 였다) 이것은 당시 이미 십진법과 100의 단위가 쓰이고 있었으며, 1년을 대략 31일단위로 하여 여러개로 지금과 비슷하게 나누고 있었다는 가정에서이다. 倫 이라는 말은 유교적인 냄새가 난다.

이 글에 나오는 곰의 특징은 바로 음인의 성격적 특징중 잘 나올 수 있는 장점에 해당된다. 음인은 좋게 말하면 이 글과 같고, 나쁘게 말하면 따라주면서 뒤로는 딴 궁리를 기도하거나 자부심과 긍지가 지나쳐 조금 튄다는 식이면 안하무인이고 앞 뒤 꽉꽉 막힌채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호랑이는 단점만 말했는데 양인은 나태하고 어느 한가지 일이나 과거의 잘잘못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성이 없다 했는데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며 창의적이고 툭툭털고 일어서는 허심탄회 하면서도 사심없이 동조해주고 하는 성격이 양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로 위의글처럼 참을성 없고 뒷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고 끈덕지지도 못하고 변덕이 심하기도 하였다.

l「 오호라 신시는 천왕께서 세우신 이름으로 이제 이미 삼신상제 께서 열으신 끝없는 큰 은혜를 받아 웅호를 잘 다스려서 이로써 세상을 안정시켰다. 」

- 태백일사 -

천왕(天王)이란 호칭은 일본냄새가 나지만 채옹의 독단에도 쓰인대로 桓족에게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쓰이는 천황이라는 용어는 비류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웅호를 잘 다스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아마 통합된 웅족과 호족을 잘 다스렸다는 말일 것 같다. 호족은 다 쫓겨난 것이 아니라 일부를 쫓아낸 것일 수도 일부가 이탈해 나간 것 일 수도 있다.

l「 너희들 호랑이 무리를 보아라 힘만세고 난폭하여 신령스럽지 못하더니 비천하게 되어 버렸다.

∼ 중 략 ∼

경자 93년(BC 2241) 단군께서 버들 궁궐에 계셨는데 흙, 계단이 절로 생겼고 풀숲은 없어지지 않으니 단목이 무성한 그늘에서 곰·호랑이와 더불어 노닐며 소와양이 크는 것을 보셨다. 」

- 단 군 세 기 -

호랑이의 무리는 단군시대에도 말썽이었던 것 같다. 왜 그 시대에는 역사를 " 말하는 이 " 들은 현대에도 용맹스럽고 신령스런 동물로써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 호랑이 " 를 계속 깍아내리고 힘만 세고 난폭하다 하였을까? 그리고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곰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는 것일까 - 곰도 항상 좋게만 평가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그 당시는 곰을 호랑이보다 더 영물로 생각해서 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추정도 가능하다. 즉 위의 글들은 " 호족이라 부르는 무리 " 에게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무엇인가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또는 주의를 주기 위해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빌미로 작위적으로 쓰여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오랜옜날 웅, 호가 같이 살고 있었었다. 모종의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두 종족간에 혼인을 통한 통합이었는데(②의 가정에 근거) 이 사건에서 같은 종족의 여인과 혼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정당성과 종족통합의 정당성을 곰과 범의 이야기를 통해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끝까지 종족 통합에 반대해서 사해로 쫓아냈다는 무리는 퉁구스(통고사), 글안, 선비, 흉노, 말갈, 여진족 등일 수 있다. 이때 쫓아낸 무리의 특징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말하듯 「천성이 침략을 즐겨 자주 중국의 북부를 짓밟고 "신조선(晨朝鮮)"에 대해서도 배반과 스스로 복종함이 많았는데」이듯 호(虎)족의 특성과 연관이 쉽게 된다.

" 한웅이야기 " 를 " 말하는 사람 " 들은 이야기를 통해 호족의 단점과 웅족의 장점을 예로 들며 자연스런 통합을 유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호족에게는 스스로의 단점을 고칠 것을 깨우쳐 주고 있기도 하려는 것은 아닐까?

" 어떤 기질에든 독특한 악덕이 있게 마련이지요. 천부적인 결점 말예요. 그것은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는다 해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습니다. "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中 -

사상의학을 공부하여 보면 어떤 사람이든 독특한 기질로 인한 장, 단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을 사상의학을 통해 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장단점이란 인간이 정한 관념일뿐 그냥 나름대로의 성격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특징이 문화에 따라 또는 도가 지나쳐 장단점으로 평가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성격적 특징이 지나치거나 모자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한웅이야기 " 는 그저 그리스 신화식의 신화일까? 아니면 한민족의 발생 기원에 관한 글일까? 아니면 민족의 발생과 교훈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글일까? 필자는 ①,②의 가정에 의거 이제껏 " 한웅이야기" 속에 있는 교훈의 의미에 대해 글을 써 보았다.

- 한웅이야기에 대해서는 본문중에 더욱 자세히 썼다. -

필자는 음인과 양인에 대한 글이 단군신화로 잘못 알려진 " 한웅이야기 " 속에 담겨 있음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랍고 매우 호기심이 끓어 올랐다. 내친김에 무릎에 꾸덕살이 배겨야 한다는 역사서적까지 들춰 보게되었다.

근래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라는 책이 시중에 나와있다. 체질을 알면 건강만 보이지 않는다. 전직 두 대통령이 재판을 받았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체질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한국 10대 그룹 회장들의 체질은 무엇일까? 주역에도 나와있듯 인간은 같은 성품끼리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은 자기에게 부족한 면은 항상 메우려고 한다. 이런점은 대통령이건 대 그룹의 화장이건 평범한 시민이건 마찬가지이다.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나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많다 나는 아직도 계속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을 흉내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고 있을 때는 모르고도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도 모른다. 노신은 글을 알고 난 후에 속임수가 시작된다고 하였었다. 기호를 통해 무언가 깨달았을 때 의문이라는 벽이 가로막는다. 무언가를 알아서 어떻게 하여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끝없는 의문과 무정체성과 무질서와 혼돈이 내 그림자 속에 숨어 들어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