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근친결혼의 금지

한웅시대 훨씬 이전에는 어떤 무리이건 같은 무리 내에서의 상당한 정도의 잡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한 무리에게도 지배집단, 지배층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배집단, 지배층에게는 당연히 권력이 있게 된다. 권력의 속성이 옛날이라고 지금과 달랐을리는 없다. 누구든 권력은 끝까지 가지고 있고 싶고 그러한 권력을 자손에게도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또한 최소한 지배층, 지배집단은 권력을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근친간의 혼인에 의한 결합은 당시로서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최상의 해결방법 이었을 것이다. 친족간의 강한 유대는 이해관계나 각종 역학 관계속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이러한 풍습은 곧 그 무리 전체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초나라 왕이 허리가 가는 여인을 좋아하게 되자 온나라의 여인들이 허리를 졸라매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한비자에 나온다. 전족의 풍습역시 송나라의 왕이 발이 작은 여인을 좋아하던것에서 생겨난 것이다. 고구려나 신라시대의 오가의 무리중에서 지도자를 뽑거나 골품제도 고려에서 행하던 ' 王 ' 이란 성씨를 나누어주던 일 역시 근친간의 혼인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내에서 국가의 통치자를 뽑는 풍습이 남아 있던 것이라 생각된다. 오히려 이러한 풍습은 점점 인구가 늘고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각 무리들간이 접촉이 빈번해지며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시경 소아편에 常疬(아가위꽃)이라는 시가 나온다.

울긋불긋 곱게핀 아가위꽃

이세상 누구보다 형제가 제일일세

죽을 고비에서도 형제는 생각하고

송장깔린 그곳에도 형제는 찾아가네

들판의 할미새 바쁘듯 형제는 어려울 때 돕네

좋은 친구 있다지만 그때는 우린 탄식만 하리

형제는 집안에선 싸워도 밖에선 깔보일까 걱정하네

아무리 좋은 벗이 있어도 그땐 우리 돕지 않네

세상의 어지러움 가라앉아 평화로우면

형제 있어도 친구를 더 좋아함은 인지상정이지만

잔치상 벌여놓고 마음껏 술을 마셔도

형제가 함께 있어야 어린애 같이 즐거운 법이네

하략

- 조 두 현 역해 -

  하긴 형제끼리도 권력을 놓고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 예로든 시 역시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이 형제를 잘못다스려 그가 죽은후 가족간의 권력다툼이 일어난 것을 가엾게 여겨 지은 노래라 한다. 그러나 확실히 근친간의 혼인에 의해 이루어진 집단의 인물중에서 다음 통치자를 뽑을 때 분란이 적을 수 있고 장자에 의해 통치자가 계승되는 것보다 권력의 누수를 방지하면서도 훨씬 더 유능한 인물을 왕위에 앉힐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 근친결혼의 금지 " 에 관해서이다. 레비-스트로쓰는 인간성 속에서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의 차이를 보편성과 규범으로써 구별한다. 여기서 보편성은 인간의 본능, 본성 등의 생물학적 유전에 의해 전해지는 선천적인 특징을 말한다. 규범은 각민족마다 특유의 형태로 다르게 나타나는 제도와 관행들을 말한다.

「 규범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문화의 단계에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보편적인 것 속에서 자연의 기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 레비 스트로쓰 -

  레비 스트로쓰가 관심을 둔 것은 어떻게 인간이 자연의 즉 보편성의 상태에서 규범을 가진 문화의 상태로 발전해 왔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과 문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연속성이 있고 그 연속성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쓰는 자연과 문화를 " 근친상간의 금지 " 라는 규범내지 규칙의 연구를 통해 해석을 시도하였다.

 " 근친상간의 금지 " 는 규범(즉 문화)을 가진 사회면 어떤 사회의 사람들에게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것과 문화적인 것을 " 근친상간의 금지 " 를 매개로 관계시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근친상간이 존재했던 신라나 고려가 문화와 규범이 없는 사회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근친간의 결혼이 허용되거나 " 근친간의 결혼 " 을 금기시 하는 사회에선 또 각기 그에 따른 규범이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레비스트로쓰는 근친상간의 금지가 우생학적 논리도 근친상간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의 결과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자연적이고 문화적이라 한다. - 이말은 스스로의 말에도 모순되어 있다.

레비스트로쓰는 근친상간의 금지가 자연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이유가 그것이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 한다. 만일 이런 규범이 없었다면 인간은 단지 암컷과 수컷에 다름아니라고 한다. 곧 자연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흡사 공자님의 말씀같다. 그런데 " 이런 규범 " 이 생겨나며 질서가 없던 곳에 질서가 생겨나며 결국 인간들은 규범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차라리 문화는 '규범', '규칙'에서 생겨난다고 하는 말이 더 좋을 것이다.

「 이에 한웅은 임시로 化하여 桓이되어 장소를 구하여 그와(웅씨의 여인) 결혼하여 자식을 잉태케 하였다. 이로부터 여러여자와 남자들은 차츰 윤리(倫)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 신시본기 中-

 글의 자구나 줄거리보다는 줄밖에 담긴 의미를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주기 바란다. 이 글속에는 <근친 결혼의 금지 >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 이로부터 윤리가(倫)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는 내용을 보면 무엇인가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윤리라고 해석한 원문 속의 글자는 윤(倫)자이다. 倫자는 인륜, 윤리라는 의미외에 " 우리 " 의 의미도 갖고 있다. 한단고기의 여러내용들은 계연수 선생이 옛책을 모아 다시 옮겨 적은 글이다. 그 옛책 역시 그 이전 누군가에 의해 옮겨 적었을 테고 그 이전에도 했을 것이다. 이 과정중 그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옮기는 이들의 사상적 편견(불교, 유교, 도교 . . . )에 따라 그 사람의 평가나 생각에 맞는 글들이 선택되어져 사용되었을 수 있다.

" 倫 "자 역시 그러하다 후세 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에 의해 새로 혹 먼저 있던 어떤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원래의 책에도 倫자의 의미였을 수도 있고 비슷한 의미의 다른 글자였을 수도 있다. 애초에는 비슷하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른뒤에 따라 다른의미를 띌수도 있다. 그리고 그 뜻이 여러 가지라면 해석하는 사람의 자의에 따라 해석될 수도 있다. 倫자를 윤리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면 < 한웅신화 >는 근친결혼의 금지도 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벌써 6000년전에 근친결혼을 좋지 않은 것으로 규정지었냐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倫자를 " 우리 " 의 의미로 해석하면 서로간의 구별을 명확히 규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별 상관없다. 구별이 될 때 근친간의 혼인의 금지니 타무리와 혼인하라느니 하는 규범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근친상간의 금지는 그것이 금지로 간주될 때 그룹의 생존에 필요한 영역에서 자연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우위를 개인적인 것에 대한 집단적인 것의 우위를, 자의적인 것에 대한 조직의 우위를 확인하는데 국한된다. 」

- 레비스트로쓰 -

자연상태와 문화상태의 구별이 " 무엇인가의 금지 " 를 통한 규칙, 규범이라면 서로 상이한 문화를 가진 두 집단간의 접촉과정에서 이러한 규칙, 규범은 확연히 그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위기 의식속에서 각 무리는 구체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는 말이다. " 위기 의식 " 은 이를테면 적의 출현일 수도 있고, 단지 " 상이한 집단 " 과의 접촉과정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보기도 하고 자신의 무리를 결속하기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두 무리가 접촉하고 서로 갈등을 빚기도 , 충돌을 하기도 어울려 함께 살기도 하며 각자의 무리의 " 공동체 의식 " 이나 " 가치관 " 등이 혼돈을 겪게 되다 탈출구 즉 구심점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일수도 있다. 근친간의 혼인의 금지는 이때의 탈출구 일수 있는 것이다.

한편 범무리는 그 이전에는 난혼이나 잡혼의 약탈혼의 시기를 거쳤을 것 같다. 그러한 시기를 거치며 근친들간의 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다시 몇 시대가 지나간 뒤에는 이번엔 근친들의 결혼이 씨와 피의 보존과 확인으로 많은 부족에게 보편화 되어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엔 근친들간의 혼인으로 인한 문제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시기에 상이한 문화를 가진 곰무리와 조우하게 된 것 같다. 정착생활을 하는 곰무리는 잡혼이나 난혼 약탈혼이 적었을 것이다. 이 혼란에 질서를 두려한 사람이 " 한웅 " 이며 그를 구심점으로 한웅은 " 규칙 ", " 규범 " 등의 " 강제적인 조치" 를 통해 혼란을 극복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는 곰무리와 대결보다는 통합을 택했으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 " 근친간의 혼인 "에 대해서도 어떤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한웅이 구상한 것은 " 근친결혼의 금지 "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제도로써 정착되어져야 했을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라는 방법과 모범적인 행동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 한웅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그대로 일 것이다.

한웅의 이러한 행위를 매우넓게 흩어져 있던 한국(桓國)의 여러나라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한웅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이들에게도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 혹 정당성까지 안가더라도 " 소식 " 을 알려주긴 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아랫사람들과 후에 태어날 사람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할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한국(桓國)의 맹주이었던 까닭이다.

桓國은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라 연방형태의 국가였으리라 생각된다. 말을 통해서건 글자를 이용해서건 " 이야기 " 는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한웅신화 속의 이야기는 바로 그 " 이야기 "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까지 필자는 네가지 관점에서 한웅신화를 이야기 하였다.

첫째, 한웅신화는 무리대 무리, 종족대 종족의 통합을 말하고 있다는 것

둘째, 교훈을 말하고 있다는 것

셋째, 통합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

넷째, 타무리와의 결합의 장려와 근친간의 혼인금지의 측면에서 살펴 보았다.

이렇게 넷으로 구분지었지만 한웅이야기 속에는 네가지 관점에서 살펴본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네 가지 요소 모두에 공통된 것은 '규범'이다.

전설이나 옛이야기 속에는 범에 대한 글은 많이 나오지만 곰에 대한 글은 별로없다. 그러나 지명에는 熊이라는 이름이 들어간곳이 꽤있다. 범은 무속이나 이야기속에 곰은 지명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