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불과 신라

신라는 새로울 新자와 늘어서다, 그물을 치다, 깁다는 뜻인 라(羅)로써 표기되어진다. 羅라는 글자는 그물(  )과 이음(維)의 뜻으로 이루어 졌으니 " 물(水) " 과 관련되어지며 잇다, 이어져 내려 온다는 뜻이 있으며 우리말로 " 라 "는 강을 낀 땅이나 강물, 냇물을 뜻하였었다. 신라의 서울은 서라벌 / 서벌 이며 이 글자가 신라의 옛이름이자 서울의 어원인 것으로도 되어 있다. 그럼 서라벌(徐羅伐)이란 한자는 어떤 이유로 하여 만들어졌을까?

필자는 BC 전후에서 신라가 생겼다는 기존의 지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비록 " 알 " 의 신화를 빌려 창조사관 식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이는 새로운 왕 이나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이었을 뿐이리라 생각하다. 하여간 사람은 1억년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단지 별 생각없이 " 서라벌 " 이라는 한자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새불 / 새벌 / 새라불 / 새라벌 중에 그 바탕이 되는 원래의 음이 있을 것이다. " 새 " 는 말 그대로 " 새로운 것 ", " 날이 새다 " 할 때의 " 새 "이고 " 라 "는 강을 낀 지역이나 강을 뜻하며, " 불/벌 " 은 벌판, 들녁을 뜻하는 글자이다. 새라불/ 새라벌 / 새불등은 모두 물을 끼고 있는 곳에 새로 도시를 건설한 것임이 쉽게 이해된다. 이리되면 신라는 서라벌 보다 한문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글자라는 것도 알 수 있다. " 신라 " 는 새로운 터전, 국가라는 뜻이 된다. 이는 단군 조선이 개국한 " 아사달 " 과도 큰 차이는 없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문교부 출간 " 국사책 " 에 의하면 신라의 신조는 박혁거세이며 신라는 대략 BC 1세기 이후에 생겨난 국가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시절 사람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왜 " 새라불 " 이라고 하였을까? " 아사 ", " 새 " 는 모두 처음을 뜻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 아사 " 는 뜻 그대로의 처음이지만 " 새 " 는 다시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새벽 > 새박 ,새밝 은 다시 날이 밝는 것이고 무언가 하는 도중 다른 것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 할 때는 지금도 " 새로 하자 "는 표현을 쓰고 있다.

" 새라불 / 새라벌 . . . " 이 " 아사달 " 과 다른점은 아사달이 처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새라불 / 벌은 다른 지역에서 옮겨와서 " 새로다시 " 시작 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옮겨오기 전의 지역은 어디일까? 그 지역은 오늘날의 중국영토인 산동반도에서 깊숙히 들어간 지역일 것이며 옛시절 은나라의 지역까지도 포함되는 곳일 것이라 생각된다. 신라가 본거지를 지금의 경주 지역으로 옮기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진시황의 중국통일과 시작을 같이 할 것 같다. 그 후 순임금의 후예라고도 하는 " 항우 " 가 유방에게 패하고 한나라가 건국된 이후 " 경주지역 " 으로의 민족이동이 대량으로 이루어 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후에 동호(東湖)의 무리가 합류하게 된다.

신라나 백제가 처음 세력을 키워나갈때 이미 한반도에 살던 마한(馬韓)은 그들보다 더욱 강력했었다.

이들은 이미 한반도에 살던 桓族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민족은 비류백제가 아이누족을 멸망시키며 일본을 건설한 것처럼 한반도 땅의 토종원주민들을 멸망시키며 지금까지 이어온 것일까 ? 이렇기에 김부식이 큰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조선의 유민들이 모여 여섯 촌락을 이루고 있을 무렵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한다. 이들 조선(朝鮮)의 유민(流民)은 만주와 요동, 황하와 양자강 중간의 회대 지역과 북경지역 산동반도 지역에 살던 桓族이었으며 이들은 문화적, 정치적으로는 단군 조선에 속해 있었기에 조선의 유민이라 하였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진시황과 유방을 거치며 국력이 쇠퇴한 것에다가 탄압과 분열책에 의해 구심점을 잃고 쫓겨오게 된 것이다. 허지만 신라방이 의미하듯 그 지역은 당나라 시절까지만 해도 조선족계열의 사람들이많이 살고 있었다.

이후 한반도로 새로 이주하지 않은 조선족들은 (桓族이라면 몽골, 흉노, 거란 등을 모두 가리키기에 구별해 보았다.) 생활, 문화, 사회 공동체가 한족과 더 깊은 관계가 맺어지고 수천, 수백년이 지나며 점차 오늘날의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갔을 것이다. 한반도로 옮겨오기 전의 신라인들의 다수는 (신라는 이들과 동호족의 연합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서국(徐國)이었을 것 같다( 藍國 포함 ). 23세 단군 아흘 재위시 회대땅 깊숙히 들어가 영고씨(寧古氏)를 徐땅에 임명했다는 글이 보인다. 필자가 이들을 신라와 관련지으려는 것은 단지 서(徐)라는 글자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다.

서라벌(徐羅伐)이란 신라최초의 국호 徐가 회대지방에 있다가 진나라에서 한나라로 접어드는 대 혼란기에 지금의 경주지역에 새로 자리를 잡으며 서벌(徐伐. 새로운 땅의 뜻)이란 글자를 사용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락과 가야

" 가야 " " 가락국 " 역시 신라보다는 조금 늦게 아니면 빠르게 지금의 " 김해 "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의 어떤 지역에서 이주해 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때 " 경주 " 나 " 김해 " 지역이라고 사람들이 살고있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伽倻(가야)나 駕洛國의 " 가 " 라는 발음역시 한, 칸, 큰, 카, 가, 커 라는 발음에서 나왔으며 駕洛은 그 뜻을 봐도 駕(가)는 타다, 뜨다 는 뜻을 가지고 있고 洛은 떨어질 락이 아니라 "어디어디에서 그러니까 가(駕)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뜻이리라 생각된다. 가락은 커라 즉 큰땅, 큰나라에서 떨어져 나왓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마치 말갈이 머리엣 갈라져 나왓다는 뜻이듯이). 駕洛에서의 駕는 말위에 탄 " 가 " 이다. 가락국 사람들이 그들의 " 기마민족 " 적인 모습을 국가이름에 나마 남기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은 아닐까? 우리가 먹는 음식중에 " 가락국수 " 가 있다. 가락국 사람들이 먹던 국수 음식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 국수 " 는 남방지역 계열이 음식이 아니라 북방민족계열의 음식이다. 임어당에 의하면 현 중국인들은 주로 밀을 먹는 북방 기마민족과 쌀을 먹는 남방 농경민족의 혼혈로 이루어져 왔다고 한다. 가락국수는 밀을 " 가루 " 내어 물에 반죽, 두껍고 길게 뽑아낸 국수를 말한다. 가락국 사람들이 먹던 국수가 " 가락국수 "는 아닐까 " 한가락 " 노래를 뽑다 할 때의 " 가락 " 도 가락국 사람들이 놀이문화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한다. . . . 지나친 추측일까?

「 한편 6가야의 건설자는 「 삼국유사 」에 6개의 알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신라 남해왕(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소생 ) 4년 (AD 7)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17년 역년을 지닌 신 나라를 건설한 왕망의 일족이다. 」

- 문정창저 가야사 -

왕망은 공산주의식 경제를 실시하려 했던 매우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왕망은 소호금천씨 계열의 인물로써 한무제당시 투후장군으로 발탁되엇던 김일제의 후손이다. 김일제는 흉노계열의 부족장이었던 휴도왕의 아들로서 휴도왕은 한무제가 곽거병으로 하여금 흉노를 토벌하게 할 때 사로 잡혔었다. 이러한 주장외에 단지 김수로 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과 그녀와 같이 온 사람들만이 왕망의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인도 아유타 지역의 가야라는 작은 지방에서 불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다가 실패한 무리들이 중국까지 도망쳐 갔다가 황제까지 배출시킨후 왕망이 죽자 다시 그곳을 떠나 도착한 곳이 ' 김해 '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이미 터를 닦고 있던 김수로왕과 연합 가야, 가라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김수로(金首露: 새겨쓰기이다 이슬 로(露)자는 아침에 내리는 이슬이 아니라 "잇다"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이었다" 곧 우두머리란 뜻이리라)왕의 단국조선 와해시 한반도로 이주해온 불조선계열의 왕족으로 이비가(夷비訶)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비가는 추종세력과 함께 한반도로 들어와 그 당시 말조선(마한)땅이었던 한반도지역의 여러부족들을 피해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당시 미오야마(彌烏야馬)라 불리던 지역에서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여인(당굴내였음)과 혼인 아들 둘을 낳았다. 그 중 둘째아들의 이름이" 뇌실청예"인데 이 사람이 김수로왕 이라는 것이다.-김산호

어째! 헷갈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