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순 유우가 유주·영주 두주를 남국의 이웃에 두었기 때문에 단제께서 병사를 보내어 이를 정벌 그 왕들을 쫓아내고 」

- 단군세기 中 2세 단군 부루 -

남국은 소호금천씨가 세웠던 나라라고 생각된다.

요임금에 이어 임금이 된 순은 세력을 키워나갔고 단군왕검이 죽고 부루가 즉위하는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거나 독립하여 나가려 하였던 듯하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세력이 강해진 제후국이 혹 변방의 강한 통치자가 그 이전 자신의 통치를 인정해준 나라를 공격 넘어뜨리고 새로운 나라 혹 부족연합를 세우거나 독자적인 스스로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그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桓族에게는 ……. 오늘날도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남북한을 보라.

그 당시는 황하와 양자강 유역에는 매우 많은 종족과 부족국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경이나 중국고전들을 보면 순은 미천한 신분의 사람으로 나와있다. 그는 그리 좋지않은 성격을 가진 아버지와 양어머니 그리고 이복 동생과의 관계를 효로써 극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었다고 나라안에 소문이 나있던 터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요임금의 후계자가 되었다하는데 지극히 중국적인 픽션인듯하다. 중국에는 이런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많다. 증산도에선 순임금을 (한웅처럼 ) 부족통합을 주도하려한 인물로 , 아버지 고수를 순수하게 (桓족의) 혈통을 지키려한 인물로 보고 있다.

「옛 순임금에 대해 돌아보건대 요임금만큼 덕이 많고 슬기롭고 뚜렷하고 학문이 밝았으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성실하여 깊은 덕이 널리 알려져 요임금의 명으로써 재위에 올랐다. 」

- 서 경 -

순은 재임중 남쪽지방을 순시하다가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었다하며 요임금의 두딸이자 순의 왕비인 아황과 여영도 순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던도중 상수(湘水)라는 강에서 배가 뒤집혀 죽었다 한다. 서경에는 이러한 이야기는 없다. 서경에는 순임금은 10년 동안의 홍수를 잘다스린 공로를 인정 우(禹)에게 통치권을 물려주고 물러난 것으로 나와있다.

글이라고 말보다 더 나을것도 없지만 쓰여진 문헌이나, 더 이상의 전해지는 이야기나, 객관적이라 생각될 수 있는 다른 기록도 없으니 지금 현재 존재하는 글로써 당시를 미루어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순임금 이후의 글은 우(禹)에의해 각색되었음을 알고는 있어야 할 것이다.

「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고, 우리들은 누구이며, 우리들은 어디로 가는가? 」

철학자가 아닌 화가인 「고갱」의 말이다. 소피의 세계라는 책은 " 너는 누구니 " 라며 소피의 마음에 " 의문 " 을 품게 해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지금 우리와 그 이전 세대 또 그 이전 세대들은 곧 스스로의 뿌리는 " 어떻게 하자 " 고 결론지음으로써 해결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유학에서는 요순시대 요순시대 하며 요와 순의 통치시기를 본격적인 중국역사의 시작으로 보며 공자를 비롯 유학자마다 요순 요순하여 후광화 시키고 있다. 남의 나라 역사를 흠낼 생각은 없다. 다만 요순시대 할 때의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소위 제후국 - 겨레나라라고 한다 - 혹 변방지역을 통치하던 사람이었다. 현재 한국의 구성원은 남방민족계열과 북방민족 계열의 혼혈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민족 곧 한겨레의 언어구조와 인더스 문명을 이룩했다는 인도의 드라비다 족과의 언어구조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한 것과 여러 가지 형태학적 모습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몽고반점 등을 헤아려보면 생각할 수 있는 추론이다.

지금까지의 필자의 논리대로라면 한겨레 중의 한 계열인 수밀이국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계가 있고 순이 통치하던 지역과 은나라 그리고 단군조선이 통치하던 황하 하류지역이 황하문명과 그리고 비슷한 글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인도의 드라비다족이 이룩했던 인더스 문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된다. 桓족이 고대의 4대 문명 중 3개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일부 학자들은 桓족이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극동아시아 지역의 인종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넘어 들어갔으며 이들에 의해 마야,아즈텍, 잉카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한다.얼마전 TV에서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섬에 몇 명 살아남아 있는 원주민의 유전자가 소위 몽골 계통의 유전자와 98%이상 거의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 ) 한 번 쯤 연구해 볼만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말로 가요, 와요가 드라비다 어로는 자요, " 와요 " 라 한다. 이밖에ㄴㄷㅌㅇㅁㅂㄹㅓㅗㅣ 등의 글자가 드라비다어에 있다.

성종때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의 모양은 고대인도어(산스크리트어)를 본으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아리아인이 드라비다를 멸망시키고 사용한 언어이다. 그런데 아리아란 발음 역시 " 아리 ", " 라 "로 읽으면 고대 한국의 문명과 관계가 있다. 훈민정음은 고대인도의 글자를 가져다 개량하고 발전 시겼다는 말도 거꾸로 단군 가륵때의 기호들이 그 쪽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하는 가정하에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종실록 계해 25년 조에는 10월 초 친히 말글 28자를 정하였는데 그 글자는 古篆(옛전)자를 모방하였다고 나와있다.

모방했다는 古篆자는 무엇일까.

3세 단군 가륵(재위기간 BC 2182∼2137) 당시 을보륵에게 명해 가림문자를 만들게 했다는 글이 단군세기에 나온다. 그 글자는 이러하다.







 

 

훈민정음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리고 영어 알파벳과 같은 글도 있다. 그럼 이 글자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혹 북부여의 사고가 불탈 때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일까? 글자가 단지 당시의 역사가나 왕족만의 전유물이었으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훈민정음 창제시 단군 가륵 때에 만들어 졌다는 위의 글자를 모방한 것은 아닐까? 가는 길이 다르기에 이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누군가는 쓸데없는 논리 따지기에 세월을 보내느니 어딘가 푹 처박혀 이런분야를 시일을 두고 연구해 봄직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구조, 즉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일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고대의 어느 시기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문물이 넘어가고 넘어 왔을수도 있을 것이다.

토인비의 역사는 따뜻한 남쪽에 살던 사람들이 북쪽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북으로 올라가며 추위와 만나게 되고 불을 발견하고 도구를 발명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거다. 토인비는 아주 오랜 옛날에는 아마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는것 같다. 그러나 한단고기의 역사는 지금의 중앙아시아나 바이칼 호 근처에 살던 종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아마 인구가 늘어나며 식량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이미 남쪽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때 남하한 종족만이 현 우리민족의 원형은 아닐 것이다.

「 우리 桓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다. 한 신이 있었는데 斯白力의 하늘에서 홀로 신으로 化하였다. 밝은 빛은 우주를 비치고 큰힘은만물을 생하였다. 」 -

- 안함로 삼성기 임승국 注 -

위의 글은 원문은 한자이다. 알다시피 한자는 코카콜라를 가구가약이라 발음하는 식이다. 사백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면 한자(漢字)의 뜻 외에 한자의 발음과 우리말의 발음 그리고 이두에 대한 지식까지 요구된다. 임승국 교수는 사백력을 시베리아 라고 하였다. 삼성기의 이 기록은 그 이전의 어떤 책에서 인용해 왔을 터이고 그책은 그 이전의 어떤 책이나 이야기를 적었었을 것이다. 斯白力은 어디를 지칭하는 말일까? 실제 시베리아 일까? 그럼 시베리아란 말은 원래 우리 민족의 말이었을까? ( 필자는 사백력을 새벽녘을 뜻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옛글에 말한다.

「 파나류 산밑에 한인, 혹 환인(桓人)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

뒤에 한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서 내려왔다. 」

- 삼성기 -

파나류산은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을 말하고 천해는 바이칼호를 가리킨다고 한다. 필자는 "바이칼"이란 소리도 현대어로 말해 "밝을 또는 밝알 ,빨갈"과 연관시켜 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승국 교수는 흑수는 흑룡강을, 백산은 백두산을 말한다 하고 있다. 랑케류의 실증사학적 관점으로 보면 필자가 인용하는 글들은 뜬구름 잡기 밖에 안된다. 아무런 역사적 자료도 유적도 발견되어있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번 계속 읽어가 보자. 지금의 한국인들도 기록과 보존에는 재주가 손방이지 않는가?

「 한웅은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가지일(五事)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 익하게 하였다. 또 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 삼성기전 상편 -

후에 계속 옮겨 적으며 옮겨 적는 이의 시대의 문자와 발음현상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청구는 뜻빌리기를 한듯하다. 푸른 언덕, 초원을 가리킨다. 중앙아시아나 동북아시아에는 어디에 초원이 넓게 분포되어 있을까? (아시아는 앗시리아 말로써 해가 솟는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아침이지 않는가. 아시아를 짧게 발음해 보라 . "아사"이다 . "아사"는 우리 옛 글로 아침이란 뜻도 있다. 슈메르 문명은 악카드족과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되었다. "아시아"는슈메르의 말이었던 것이다 . 슈메르는 한단고기에 나오는 "수밀이"국이며 문정창씨에 의하면 소호금천씨의 계열의 종족이다. 소호금천씨는 신라를 세웠기도 하다) 홍익인간은 그 단서가 사상적으로는 한웅시대(BC 3898)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보통사람이 이제까지 배운 국사책의 내용에도 손질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홍익인간은 단군왕검이 아닌 한웅의 건국이념인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한자로 되어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웅이 나라를 세운 神市(배달: 박달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발음상의 차이일뿐이다 )의 정확한 위치와 유적은 아직 발견된바 없다. 그렇다고 없다고 단정지을 이유도 아직 없다. 유적이 발견되면 그날 이후는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혹 있는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실증사학의 약점을 알고 유적이 아직 없더라도 비록 옛 노래나 전설, 고서에만 나오더라도 옛 기록 등을 추적 그 진위여부를 가리려 노력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진보된 상대론적 사고에 익숙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은 관념론자도 유물론자도 아니고 그저 종교나 자신이 배워온 지식에의 맹신과 인간관계, 자신의 신념과 때에 따른 편리한 방법과 기존의 지식의 비평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고정관념, 감정적 편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기독교를 맹신적으로 믿는 일부신자들은 아무러면 어떠냐 식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로 인류의 역사이니 더 할말이 없을 것이다. 하긴 관계가 전혀 없지만은 않지만........

어떻게 판가름을 내릴 것인가? 단군의 역사를 상상이 지어낸 신화나 전설로 치부해 버릴 것인가? 기독교를 믿지않는 사람의 단견이지만 기독교를 단지 기독교로써 믿으면 안될까?

" 너는 누구인가 " 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 신념 " 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 이것이다 " , " 저것이다 " 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새로운 고정관념과 가슴속에 신화만 창조될 뿐이다.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문화가 성숙하면 새로운 신화나 신념을 가슴에 품을 때도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은 기독교도, 불교도, 유교도 될 수 있고 그 모두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나라든지 자기 제나라의 역사공부가 가장 먼저 일 것이다. 일단은 자기나라 역사에 일어났던 일들의 과실과 잘한 점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놓는 것이 일차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후에 통일도 세계화도 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한웅이 홍익인간을 내세울 당시는 지금으로 부터 약 6000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에 글이 있었는지 여부도 알 수 없고 말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없다. 불과 수십년 전의 기록도 외국에 가서 찾아보아야 하고 지금 이시간에도 기록의 보존이나 자료의 보관이나, 만들기 등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한국민족의 특징을 볼 때 그나마 몇 권의 책이라도 전해지는 것이 대단하다 하겠다. 얼마전 J일보 독자투고란을 보니 고서를 찢어 공예품을 만드는데 그래야 그 빛깔이 고풍스러워서라고 한다. 옛날에도 - 조선시대는 그래도 제외할 수 있지만 -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이런 행위가 일으키는 문제는 古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고서가 무엇인가 어쩌면 그중에는 고려청자만큼 아니 그 이상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고서가 없다면 지금 서울이 왜 서울인지 고구려가 언제 존재 했는지 세종대왕이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이러한 한국인들이 그간 국가의 이름을 지어온 것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