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확충론

「 태양인은 슬퍼하는 성(性)이 멀리 흩어지지만 노여워하는 정(情)은 몹시 급하다. 슬퍼하는 性이 멀리 흩어진다는 것은 태양의 귀가 천시(天時)를 살펴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기는 것이니 슬퍼하는 性이란 다름아니라 바로 듣는 것이다. 노여워하는 情이 몹시 급하다는 것은 태양의 지라가 교우(交遇)를 행하여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있는 것을 노여워하는 것이니 노여워하는 情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노여워하는 것이다. 소양인은 노여워하는 性은 널리 포용하지만 슬퍼하는 情은 몹시 급하다. 怒性을 널리 포용한다는 것은 소양의 눈이 세회를 살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깔보고 있는 것을 노여워하는 것이니 노여워하는 性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보는 것이다. 哀情이 몹시 급하다는 것은 소양의 폐가 사무(事務)를 행할 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니 슬퍼하는 情이란 다름아니라 바로 슬퍼하는 것이다. 」

- 원 문 -

이 두 글에서 애성(哀性)이란 바로 듣는 것이고 노성(怒性)이란 바로 보는 것이란 말을 생각하여보자. 어째서 애성(哀性)을 두고 바로 듣는 것 노성(怒性)을 두고 바로 보는 것이라 하였을까? 보다 상세한 설명은 태, 소음인과 함께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약간의 사항만 생각하여 보겠다.

태양인은 여러 사람이 (衆人) 서로 속이는 것(欺)을 슬프게 여기며 別人이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侮)을 노여워한다 하였다. 반면 소양인은 여러 사람이 (衆人) 서로 깔보고 업신여김 (侮)을 노여워하고 別人이 자기를 속이는 것(欺)을 슬퍼한다 하였다. ( 別人 : 다른 사람. 특정한 사람 )

衆人과 別人. (속임)欺과 업신여김 (侮)의 관계와 의미가 태, 소양인이 서로 상대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관계없는 혹 자신을 관계시키지 않을 때 태양인은 여러사람이 서로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양인은 사람들이 서로 업신여긴다고 생각하며 또 그것을 두고 천시를 바로 듣는 것이고 세회를 바로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인식에 있어서의 이러한 자세를 "솎생" ( 솎다 + 생각 : 생각을 잘 솎는다는 뜻 )이라 하겠다. 솎생이란 일단은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자세이다. 반면 자신이 관계되어있는, 자신을 결부시킨 경우에는 태양인은 지라가 교우를 행하며 別人이 자기를 업신여긴다 생각하고 소양인은 폐가 사무를 행하며 別人이 자신을 속인다 생각하며 또한 그것을 바로 노여워하고 바로 슬퍼한다 하였다.

- 직관적인 어구( 지라가 교우를 행한다느니 하는 것 )에 혼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 필자는 인식에 있어서의 이러한 자세를 섞생 ( 자신을 섞어서 생각하는 것. 섞다 + 생각 )이라 하겠다. 사회, 정치,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하며 우리는 얼마든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사리를 따져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솎생이다. 그것이 맞을지 안맞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과 이해, 감정 등이 관계되어 있을 때는 그의 행위, 생각, 언행, 등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될 것이다. 이것을 섞생이라 하겠다는 것이다. 솎생은 현상, 현실, 세계에 대한 생각과 태도 섞생은 자신을 그 현실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 태음인은 기뻐하는 性은 넓게 퍼지지만 즐거워하는 情은 급하다. 기뻐하는 性이 널리 퍼진다는 것은 태음의 코가 인륜을 살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니 기뻐하는 性이란 다름아니라 바로 냄새를 맡는 것이다. 즐거워하는 情이 몹시 급하다는 것은 태음의 콩팥이 거처(居處)를 보살필 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해 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니 즐거워 하는 정이란 다름아니라 바로 즐거워 하는 것이다. 소음인은 즐거워하는 性은 깊고 확실하지만 기뻐하는 情은 몹시 급하다. 樂性이 깊고 확실하다는 것은 소음의 입이 지방을 살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보호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니 즐거워(즐기는) 性이란 다름아니라 바로 맛보는 것이다. 기뻐하는 情이 몹시 급하다는 것은 소음의 간(肝)이 당여에 관여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돕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니 기뻐하는 情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기뻐하는 것이다. 」

- 원 문 -

태음인은 모든 사람이 서로 돕고 있다고 (助) 솎생하고 別人이 자신을 (保) 보호해준다 섞생한다 하였다. 소음인의 경우는 모든 사람이 서로 보호하고 있다고 솎생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돕고있다고 섞생한다 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내용중 몇 가지를 요약하여 간추려 보겠다.

귀 : 천시를 듣는다.

눈 : 세회를 본다.

코 : 인륜을 맡는다.

입 : 지방을 맛본다.

애성 : 바로 듣는 것 애정 : 슬픔

노성 : 바로 보는 것 노정 : 노여움

희성 : 바로 맡는 것 희정 : 기쁨

낙성 : 바로 맛보는 것 낙정 : 즐김 ( 즐거움 )

태양인의 귀 : 천시를 들으며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있음을 바로 듣는다.

태양인의 지라 : 교우를 행하며 別人이 자신을 깔봄을 노여워한다.

소양인의 눈 : 세회를 보며 사람들이 서로 깔보고 있음을 바로 본다.

소양인의 폐 : 사무를 행하며 別人이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슬퍼한다.

태음인의 코 : 인륜을 살피며 사람들이 서로 돕고 있음을 바로 냄새 맡는다.

태음인의 콩팥 : 거처를 보살피며 別人이 자신을 보호함을 즐거워한다.

소음인의 입 : 지방을 살펴서 사람들이 서로 보호하고 있음을 바로 맛본다.

소음인의 간 : 당여와 관여할 때 別人이 자기를 돕고 있음을 기뻐한다.

섞생, 솎생의 자세가 각 상인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태양인의 솎생은 바로 듣는 것 섞생은 자기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태양인의 직선적 인식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 어느 하나의 주된 인식태도를 "나반"이라 하였었다. 가령 소양인의 인식태도에 있어서의 나반은 "시각적"이다. )

기모보조(欺侮保助)라는 단어는 속이고, 깔보고, 보호하고, 도와준다는 뜻이다. 이중 보(保)라는 단어는 아기를 업고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뜻을 만들어낸 글자이다. 키우고, 지키고, 보전하고, 보증하고 하는 뜻에 保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모(侮)는 모욕, 모멸 등에 쓰이듯 깔보고 업신여기고 깔아뭉개는 뜻을 가질 때 쓰인다. 이제마는 말은 안하였지만 欺, 侮, 保, 助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습일 것이다.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빼앗고 빼앗기고 속이고 속고 깔보고 업신여겨지고 자긍심을 가지려 하고 지식을 가지려하고 힘을 가지려 하고 집단을 만들려 하고 조직을 만들려 하고 무리를 지으려 하고 그래서 또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 이것이 인간들이 사는 세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기에 제도, 법, 규칙, 등도 생겨났을 것이다. 코와 입의 性情이 사람들이 서로 돕고 보호하고, 맡고, 맛보고 있다해서 좋게 생각할 수는 없다. 기모보조(欺侮保助)는 한데 어우러져 일어난다. 조직을 이루고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상부상조하고 서로 협력한다는 뜻도 있지만 편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고 파당을 조성하는 것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인은 폐가 강하다. 이러한 폐의 강함은 "애"의 감정을 일단은 잘 표현되어 나오지 않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상태가 체념이나 자기 비판적 행위대신 집중적이고 매우 깊은 곳까지 그의 생각을 이끌어갈 것이다.

태양인은 집중력과 현상에 대한 분석적인 이해력이 좋은 사람들이다. 아마 이들의 이러한 특징이 세상은 서로 속이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게 하였을 것도 같다. 그리고 현실을 보면 실제 현실은 서로 속이고 있다.

소양인은 "노여움"의 상태는 잘 풀어져 나간다. 아니 하여간 잘 억누른다 할 수도 있고 터지지 못한다 할 수도 있다. 이는 소양인의 "비"기가 가로퍼져 오르는 툭툭 불거져 나오는 "노기"를 잘 수렴하고 발산시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감정의 앙금이나 응어리는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소양인은 판단, 직감이 빠르고 - 그것이 좋고 나쁨은 말하기 힘들다 - 꾀, 영감, 착상, 등이 잘 일어난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소양인은 끝까지 듣기전에 벌써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쉬운 사람들이다.

태양인은 끝까지 들어 이해를 하고 깊게 생각하며 쉽게 비관하거나 함부로의 결론을 빠르게 속단하지 않으며 쉽게 인간관계에 흔들리지 않지만 그 이후는 독불장군식이 되기 쉬운 반면 소양인은 경쟁적이고 성급하며 인정에 잘 얽매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쌀쌀맞기도 하고 쉽게 호오(好惡)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성격적인 장점도 되고 약점이 되어 이용되기도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점이 솎생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서로 깔보고 있으며 섞생에 있어서는 別人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게도 만드는 것같다.

태음인의 나반은 후각 적인 인식능력이 좋다는데 있다 하였었다. 태음인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쉽게 노(怒)와 애(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후각적인 인식태도는 여러 가지 관계가 복잡하게 혼재된 속에서 하나하나의 가닥가닥을 분류, 비교, 검토하여 하나의 - 혹 몇 개라도 상관없다. - 구상 내지 결론 등을 이끌어 내게 하여준다. 태음인은 이러한 능력이 대체적으로 좋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법이고 나 혼자 똑똑하고 잘났어도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고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조직하는 능력은 소음인이 더 잘한다 할 수 있다. 소음인은 잘 모으고 태음인은 잘 모이게 한다 할 수 있다. 이것이 태음인 솎생에 있어서의 조(助)와 섞생에 있어서의 보(保), 소음인의 솎생에 있어서의 保와 섞생에 있어서의 助의 차이일 것이다.

태음인은 일단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거나 주장하기 이전에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 조합하는 스타일이다. 극단적인 양(陽)적 기질이 자신의 생각한 바대로 하려는 스타일이라면 극단적인 음(陰)적 기질은 여러 사람의 의견중 서로가 동의한 의견이나 가장 좋은 의견을 쫓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음인은 다면적인 인식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였었다. 소양인의 시각적 나반이 확대된 평면이라면 소음인의 미각적 나반은 여러 가지 정리된 평면들이다. 소음인의 성격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다. - 그러나 다른 상인도 이런 사람이 많다. - 잘 나서지 않고 혹 못하고 - 항상 자신의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하여 놓는다. .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그러한 연후에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소음인이다. 태음인은 소음인만큼 깔끔하지는 못하다. 물론 평균적이다. 소음인은 태양인처럼 독선적으로 앞질러 나가거나 소양인처럼 성급하게 일부터 벌려놓고 마무리가 나쁘거나 태음인처럼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으면서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면을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분명하고 계획적이지만 한계가 되는 선이 그어져 있고 성격의 특징 때문인지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없거나 계획적이면서도 소극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미각"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고는 분명하지만 종합적인 면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화가 나더라도 양인들처럼 표정과 억양, 말투를 통해 쉽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잘 참고 잘 따라준다. 아마 전투적인 상황을 싫어하고 개인적인 면이 강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배경이나 살아온 과정, 환경, 특히 문화 등에 따라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책대로의 소음인의 성격과 반대되는 측면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구별(別)하여 놓는 능력이 좋은 만큼 말을 잘 안해서 그렇지 소음인만큼 이것저것 확실히 구별하여 놓은 사람은 타상인(他象人)에선 대체로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음인(少陰人)이 한 번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그 사리 분명함이 -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 - 매우 정밀할 것이다. 잘 물러서 주고 잘 따라주는 소음인이지만 때론 일본에서 일어난 "사린"가스 사건처럼 엽기적인 큰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음인의 솎생은 사람들이 서로 보호하고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무리를 지으려거나 집단 속에 있으려는 행위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고 소음인의 섞생은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일단은 잘 따라주기도 협력하여 주기도 하게 할 것이다.

양인들이라고 서로 돕고 서로 보호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솎생과 섞생에 대한 자세는 누구든 그런 인식 능력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네 가지 - 서로 속이고 깔보고 보호하고 돕는 것 - 중 어느 하나가 좀더 특징 있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아두자.

태음인은 "희"의 情은 급하지 않는 대신 "낙정(樂情)"이 급하다 하였다. 대체적인 태음인 - 특히 남자 -들은 기쁨이나, 슬픔, 노여움 등의 감정의 표현이 드물다. 흔한 말로 점잖거나 의젓하다 무게가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다.

대체적으로 태음인(太陰人)들은 뚝심이 좋고 끈기가 있고 체력적으로도 지구력이 좋다.

물론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태음인(太陰人)은 순발력이나 기민함도 좋다. 태음인은 무슨 일을 하건 대체로 서둘지 않는다. 이는 어떻게 보면 게을러 보이기도 무관심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특히 양인들에게서 쉽게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태음인은 덩치와 겉모습에 걸맞지 않게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매우 많다. 소음인들도 늘 긴장상태에 있고 조심성이 많아 불안정한 마음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소음인들은 내실은 딱 부러질 정도로 분명하고 때론 당돌하다 할 정도로 겁이 없다.

아마 생각이 많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거나 더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화술이 뛰어나지 못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 "주관" 등을 지키는 것은 사상인중 가장 확고한 사람들이다. 아니 잘 바꾸지 못한다는 말이 어울릴 것같다. 사상인(四象人)에 따른 섞생, 솎생의 구분으로 어떤 상인(象人)은 속임의 자세가 강하고 어떤 상인은 깔봄의 자세가 강하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기, 모, 보, 조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주관적, 객관적 자세이다. 소음인의 귀도 태음인의 귀도 천시를 살펴 세상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기고 태양인(太陽人)의 코도 소양인(少陽人)의 코도 세상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을 기뻐한다.

독자들은 다음과 같이 알아두면 되겠다.

어떤 사람의 귀, 눈, 입, 코든지 간에 귀는 천시를 들어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눈은 세회(世會)를 보아 사람들이 서로 깔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코는 인륜(人倫)을 맡아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입은 지방(地方)을 맛보아 사람들이 서로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의 폐, 비, 간, 신이든지 간에 폐는 사무를 하며 자기를 속이는 것을 슬퍼하고, 비는 교우를 하며 자기를 깔보는 것을 노여워하고, 간은 당여(黨與)를 하며 자기를 돕는 것을 기뻐하고, 신(腎)은 거처(居處)를 하며 자기를 보호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여 두자. 그리고 귀, 눈, 입, 코는 성(性)과 인식태도와 폐, 비, 간, 신은 정(情)과 주관적인 사고 행위와 관련이 깊다고 알아두자. 아마 이런 요약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반드시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자.

"실제와 실용"

실제적이고 실용적이기는 모든 상인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양인보다는 음인들이 실용적이고 양인들은 음인들에 비해 실제적이다. 그럼 실제와 실용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뒤적거릴 필요는 없다. 아래의 글에서 그 개념을 형성하기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홍콩 무협영화 한두 편은 본 것으로 가정해 보았다. 혹 본적이 없다면 성룡이나 "이연걸"이 나오는 무협영화를 몇 편 보면 된다.

영화 속에서의 액션 장면을 보자. 실용의 특징은 상태, 조건을 철저히 이용하는 데 있다. 의자를 탁자를 기둥을 난간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술취한 동작을 이용하고 뱀이 공격하는 모양을 이용하고 사마귀가 공격하는 모양을 이용한다. 물건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를 이용한다. 이번엔 아놀드 슈왈츠네거나 실베스터 스텔론이 나오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자. 장애물 뒤에 숨은 적을 잡거나 죽이기 위해 갖은 묘수를 짜내는 일은 별로 없다. 차뒤에 숨었으면 화력이 폭탄 같은 총 등으로 꽝하면 된다.

"건물 안에 있는 적을 잡기 위해 주위를 흐뜨러 뜨리거나 계략을 짜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커다란 차로 밀고 들어가거나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는 로보캅을 투입하면 된다. 상대가 든든한 방패를 들고 있다면 그 방패를 피해 창을 찌르는 방법을 - 실용적 사고 - 알아내거나 그 방패를 뚫고 상대를 찌를 수 있는 단단한 쇠를 만들거나 힘을 - 실제적 사고 - 기르면 될 것이다. 상대가 나무로 내려치면 그 나무를 피한 후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팔을 단단하게 단련시켜 그 나무를 팔로 막으면 되는 것이다. 전자가 실용이라면 후자는 실제적 사고이다. 이상은 실제와 실용에 대해 극단적으로 말해 본 것이다.

어떤 경우든 "실제"와 "실용"은 단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와 실용은 어우러져 있다. 단지 "같이 또 따로" 말해 본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양인은 실제적인 면이 많다. 그리고 음인은 실용적인 면이 더 많다. 실제가 일단은 일을 벌리는 것이라면 실용은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웅신화"에 보면 곰은 한웅의 지시를 잘 따랐고 범은 그러하지 못했다. 한웅이 어떤 지시를 내렸을 때 혹 규칙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가장 잘 따라줄 혹 따르게 될 사람들은 사상인에서 말해보면 소음형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일단은 따라 하여줄 것이다. 다음으로 태음인들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도 일단 군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양인들은 왈가왈부 말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못 참겠다면 뛰쳐나가는 사람은 태양인이 첫 빠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의기투합만 되면 양인들이 더 잘 따라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은 진리가 아니다. 얼마든지 예외가 있고 그렇기에 말도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 단지 "감"을 잡기 위한 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