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인의 교우는 노여움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당여를 노여움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만일 노여움을 당여에 옮기고 보면 당여에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간이 상하게 된다. 소음인의 당여는 기쁨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교우를 기쁨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만일 기쁨을 교우에 옮기고 보면 교우에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지라가 상하게 된다. 소양인의 사무는 슬픔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거처는 슬픔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만일 슬픔을 거처에 옮기고 보면 거처에 유익함이 없을 뿐이 아니라 콩팥이 상하게 된다. 태음인의 거처는 즐거움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사무는 즐거움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만일 즐거움을 사무에 옮기고 보면 사무에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폐가 상하게 된다. 」

- 원 문 -

교우는 怒로 당여는 喜로 사무는 哀로 거처는 樂으로 하여야 된다는 말일까?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능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태양인은 항상 당여에 문제가 있고 그 당여는 태양인의 喜가 당여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태양인의 喜가 당여에 바르게 서지 못하는 것은 당여에 있어서도 怒의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한 怒의 자세의 분별없음과 유별남은 당여에도 간에도 좋지 않다는 말이다.

삼국지의 관우는 태양인이라 생각되는 사람이다. 장비 역시 잘 怒하는 인물로 씌어져 있지만 장비의 怒는 성급함과 흥분, 울분일 경우가 많다. 관우는 성급하지도 울화를 터뜨리지도 잘 낙담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관우. 의리의 사나이 관우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modeling되는 가슴속의 영웅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도꾸가와 이에야스나 도요또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 나라는 누구일까. 일전의 여론조사로는 1위가 광개토대왕 2위가 세종 대왕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입쟁이들에 오르내려서인지 밀려나갔다. 그럼 광개토대왕이 왜 1위로 올라섰을까? 리바이스 청바지에 리복운동화에 마이클조던 셔츠를 입고 소니 워크맨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한 가닥 애국심일까. 아마 광개토대왕 시절 한국의 국력이 중국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가장 강했던 때문에 1위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럼 광개토대왕의 업적이야 그렇다 치고 광개토대왕의 성품이나 전성기의 활동상황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말로는 그리해놓고 실제로는 tv 속의 주인공일수도 있다.

쇼비니즘은 이런 문외에서 시작될 것이다. 관우는 怒를 당여에도 심하게 적용하였기에 죽음을 맞았다. 평소 노엽게 보던 두사람의 장수를 지나치게 모질게 다룬 데서 이미 배반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우가 그들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우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형주성을 맡겼었다. 너그러움의 부족 조조를 화룡도에서 그냥 가게 해준 때의 너그러움 - 어쨋건 유비가 이것은 많았다. - 이 관우에게는 부족했던 것이고 결국 관우는 육손의 지혜와 "여몽"의 계략에 의해 패배를 당해 쫓기다 본거지인 형주성에도 못 들어가고 결국 사로잡혀 죽게 된다. 전쟁에 임하는 마당에 다독거려도 시원찮을 판에 모욕을 가할 정도였으니 당여에 대해서 怒를 너무 심하게 하였었다.

소음인은 항상 교우에 문제가 있고 그 교우는 소음인의 怒가 교우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소음인의 喜가 교우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는 것은 怒의 자세가 필요한 교우에 있어서도 喜의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喜의 자세로 교우에 임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점은 태양인이 당여에 怒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아닌 것과도 같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이며 행동 역시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특성을 버리고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갖추려하면 성격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장점도 잃게 될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 같은 사람은 자신의 장점이라도 잘 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persona는 어느 정도 필요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하건 모르고 하건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주변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아니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정도냐일 것이다.

위나라 혜왕이 복피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에 대한 평을 들었을 텐데 대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던가? 복피는 "신은 왕께서 자혜롭다고 들었습니다." 혜왕은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자혜의 효과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가?" "그 효과는 망국에 이를 것입니다." 자혜는 선한 일인데 이것을 망국에 이른다니 무슨 뜻인가? "대체로 慈라는 것은 사람의 고통을 그냥 두지 못하는 마음이며 惠라는 것은 베풀기를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고통을 방관하지 못하면 과실이 있어도 벌할 수가 없고 사람에게 주는 것을 즐기면 공이 없어도 상을 주게 됩니다. 과실이 있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어도 상을 준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 희"의 마음이 지나쳐도 이런사태가 올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에는 이외에도 왕에게는 상을 주라 하고 스스로는 벌을 주는 권한을 위임받아 왕은 칭송을 듣고 스스로는 원망을 받겠다는 송나라 가한의 이야기가 나온다(二柄편). 그리하여 송나라 임금에게 돌아온 것은 왕권에 대한 위협이었다 한다. 위나라 혜왕이나 송나라 왕을 소음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喜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아두었으면 한다. 비단 소음인 뿐아니라 누구든 이리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쁜 자세도 아니다. 그 것이 어떻게 되리라고는 신도 모른다. 결과만이 안다.

소양인은 항상 거처에 문제가 있고 그 거처는 소양인의 哀가 거처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소양인의 哀가 거처에 바르게 서지 못하는 것은 거처에 있어서도 哀의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한 哀의 분별없음과 지나침은 거처에도 신상에도 좋지가 않다.

삼국지의 장비를 예로 들겠다.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비에게 선봉을 맡겼다. 장비는 예의 그 성급한 기질로 빠르게 준비를 완료할 것을 재촉하고 다그쳤다. 결국 물자의 부족으로 몇 일 기한을 달라는 부하장수에게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으로 하루 빨리 일을 처리 못하면 목을 자르겠다 하여 놓고는 스스로는 관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연일 술에 절어 있었다. 결국 기한내 일을 완수 못하게 된 두 부하 장수는 장비가 잠든 틈을 타서 그의 목을 베어들고 동오로 가게 된다. 이로써 관우, 장비, 그리고 후에 유비의 순서로 정작 공격해야할 조조가 아닌 동오와의 싸움에서 유비 3형제는 죽게 된다.

장비는 관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빨리 복수하여야겠다는 일념 하에 너무나 서둘렀다. 결국 그것이 원수갚기는커녕 스스로도 허망한 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다. 이것도 빠르게 사무를 하려한 것과 슬픔을 거처에 옮겼기 때문이리라.

태음인은 항상 사무에 문제가 있고 그 사무는 태음인의 樂이 사무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음인의 樂이 사무에 대해 바르게 서지 못하는 것은 사무에 있어서도 樂의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초대 이승만대통령(이하L)은 태음인이라 생각된다. 처음엔 이분을 태양인이라 생각하였었다. 큰 이유는 없고 카리스마가 대단히 강하고 성격이 강인하다고 보았고 독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부모중 한 사람이 태양인 일수도 있고 또 그러한 이유에서 태양인의 특징이 어느 정도 유전될 수 있고 또 그 가족이나 가문에 공통적으로 내려오거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격의 원형으로도 태양인 성품이 형성될 수 있다.

마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비릇처럼 부엔디아 가문사람들의 "고독" 빠지는 비릇처럼 부모나 가족 혹 가문적인 성격의 원형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L대통령은 해방정국의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에도 의혹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나서서 더군다나 살해까지의 행동을 지시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유비"가 잘하는 식으로 운을 뛰워놓고 알면서도 방임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상인 누구든 이럴 수 있다. L대통령은 그 외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사건 등도 직접적으로 나서 주도적으로 이끈 흔적이 별로 없다. 그는 항상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각자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영달을 위해 알아서 다 했을 것이다.

그는 굵고 크게 핵심을 짚어 나갔지만 사무적으로 직접 발로 뛰지는 않았다. L 대통령의 방임형의 방관자적인 자세는 백범 김구선생의 저격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L 대통령이 백범을 죽이라고 직접 명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공산주의를 배척하여야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소신을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물론 매번 모든 행위에서 이런 것은 아니다. 51 : 49 식으로 나오는 음인의 특성이다. 그러기에 양인도 역시 51 : 49에서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 하나만 다르지 49는 음인이나 양인이나 같다.

L 대통령 주위의 충성파들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죄를 떠맡을 브르터스를 찾고 있던 터에 성급하고 직선적기질 이었을 안두희가 재수 없게도 그 덫에 걸렸을 것이다. 안두희는 소양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안두희도 꽤나 방황하였던 것같다. 백범같은 민족적 거목을 죽여야 했으니 말이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그의 증언에 의하면 주저하는 그를 장은산 당시 포병사령관은 협박하고 윽박지르다 결국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나게 하여주었다 한다. 안두희가 하는 말은 수없이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통에 믿을 수 없지만 이승만은 안두희를 만난 자리에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L 대통령이 한 말은 으레 하는 말이지만 군인은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란 상투적인 말이었다한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안두희의 입장에선 김구를 저격하라는 말로 들렸을 법도 하다. 그것이 안두희의 흔들리는 志를 잡아주고 안두희는 곧 소양인의 특성인 빠르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이런 그의 말들은 재간을 발휘 말을 이리저리 바꾸며 주변을 농락하였을 수도 있다.

얼마전 안두희는 결국 피살되었다. 차후에라도 안두희같은 상황에 처할 인물은 안두희가 어떻게 비참하게 살다 죽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안두희의 업보도 이젠 끝났다. 그러나 그의 죄는 없어질 수가 없다.

L 대통령의 사람을 쓰는 법도 보면 낙정을 위주로 하는 "측근정치" 위주였다. 가깝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위주로 맡겨놓는 정치를 해 나갔었다. 이러한 정치의 단점에는 측근의 사람들이 담합하여 "그 지도자"를 따돌릴 때는 그 지도자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측근의 허물을 알게되더라도 처벌하기가 힘이든다. 이러한 구조에서 소위 편 짓기와 줄서기가 심하게 나타나고 겉으로 드러난 실세와 실제적인 실세가 있게 된다. 자기 측근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상대에게는 가혹하며 자신의 수하에 대한 의심보다는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하게도 된다.

그는 마치 거처의 안정을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측근을 다루었을 것이다. 이른바 그가 쓰는 사람은 그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L 대통령은 결국 물러나기 몇 일 전에야 "낙"의 심리에서 벗어나 눈을 바로 뜨고 천시를 보게 되었지만 이미 국민의 마음은 떠나가 버린 뒤였다.

빼어난 청백리 정신도 독립운동의 행적도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될만한 주관과 근검절약의 태도가 있었음에도 국민들이 model로 삼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을 하여 볼 수는 있다. 그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말이다. 만약 6.25가 끝난 뒤 멋지게 대통령직을 마무리하고 물러났으면 어떠했을까 길이 남을 인물이건만 그렇지가 못한 것이 본인에게도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그가 만들어 놓은 측근 위주의 정치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반해 백범 김구선생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