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인의 성기(性氣)는 항상 앞으로 나가려 하고 물러서려 하지 않으며 소양인의 성기는 항상 움직이려하고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 태음인의 성기(性氣)는 항상 고요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소음인의 성기(性氣)는 항상 거처에 있으려하고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

- 원 문 -

이글은 원문만 보아도 더 이상 해설이 필요없을 것이다.

이것은 특수적인 것이다. 인간의 본능에서 특수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성욕을 느끼고 利를 좋아하며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하며 어떤 이는 권력에의 의지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 필자가 이렇게 말해도 별무리가 없을 것같다. 인간은 이기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쁨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이기려 한다는 것은 확실히 살려는 의지만큼이나 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상극의 힘을 이겨내며 삶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무조건 이기려고 까지는 안하더라도 지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다고 본다.

남에게 괴롭힘을 주는 것을 차마 못해도 빼앗기고 얻어맞고 억눌려 사는 것을 바라는 인간은 정신에 이상이 없는 한 없으리라 본다. 물론 먼 옛날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은 없거나 약하거나 모르거나 했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주종관계 사이일 뿐 같은 노예끼리는 또 그들대로의 생활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때로 져주기도 져주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거나 사소한 일이어서거나 위대한 성인이나 종교가이거나 어떤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대가가 있을 때일 것이다.

노자의 철학을 무위니 부드러움이니 여성적이니 하고 말들 한다. 그러나 노자의 철학도 궁극적으로는 이기는데 있다. 물로써 불을 무로써 유를 꺾고 약함으로써 강한 것을 물리치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지 않는가. 두세살짜리 어린아이들도 서로를 비교할 줄 알고 나은 대접을 받고자하며 지는 것을 싫어한다. 어른들은 자제하기도 절제하기도 숨기기도 하고 있을 뿐 더 생각이 깊고 많을 것이다.

「 태양인이 앞으로 나가는 것은 그 역량이 앞으로 나갈 만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재주를 돌이켜 보아서 그 재주가 씩씩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소양인의 행동은 그 역량이 행동할 만 하지만 스스로 힘을 돌이켜 보아서 그 힘이 확실하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태음인의 고요함은 그 역량이 고요할 만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아는 것을 돌이켜 보아서 그 아는 것이 주밀 하지 못하면 고요할 수 없는 것이다. 소음인의 거처해 있는 것은 그 역량이 거처해 있을만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계책을 돌이켜 보아서 그 계책(꾀)이 넓지 못하면 거처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 원 문 -

◎ 力, 材, 謨, 知

태양의 性氣는 앞으로 나가고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것을 말하며 소양이라 이름된 性氣는 움직이려하고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하는 것이며 태음이라 이름된 性氣는 고요하려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며 소음이라 이름된 性氣는 거처에 있으려하고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꺾이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 불굴의 의지, 투쟁은 노여움의 마음이다. 力은 여기서 나온다. 움직이려 한다는 것은 생동감 있게 피어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이런저런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재(材)는 여기서 나온다. 다름을 생각하고 발빠른 행위, 저항, 변화, 탈바꿈의 마음이다. 고요하려 한다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몸을 안정시키고, 용서하고, 그대로 두고, 지족(至足)하고, 만족하고, 받아들여 ,중화시키고 용해시키고 ,서로 다른 것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 보는 마음이다. 모(謨)도 여기서 나온다. 밖으려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준비하고 계획하고 설계하고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만 폐쇄되어 들어가는 마음이다. 知를 구하려 함도 여기서 나온다.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최소한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을 해야한다. 이제 다 큰 성인은 혼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도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도구들과 지식이 없었다면 먹을 것이 풍부한 열대 우림이 아닌 한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혼자서 밭갈고 논농사 짓고 옷 해입고 살 수 있다고 치자. 이런 사람이 있다해도 전세계 수십억 인구 중에 몇 명에 불과 할 것이다. 나머지 인간들은 인간과 접촉하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이른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고 그도 저도 아닌 채 서로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한 관계만을 가지고도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의 한 인간의 생존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면 인간은 활동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환경 구조, 성격, 생각하는 바, 욕망 등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힘(力), 재간, 재주(材), 꾀, 지혜, 계책(謨), 경험, 지식(知) 등은 각 인간들이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며 저절로 습득하고 활용하게 되는 능력이다.

이 능력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있다. 바로 태양인은 力이 좋고 소양인은 材가 좋고 태음인은 謨가 좋고 소음인은 知가 좋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행동하려할 때는 항상 해결해야할 문제, 벽들이 생기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관념, 생활의 틀, 구조도 형성될 것이다. 이제 당신이 생각하여낸 것을 행위 하여야할 때 당신은 많은 방법을 동원해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 행동의 특징에는 그야말로 수십, 수백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상학은 그것을 넷으로 분류한다. 그 넷은 力, 材, 謨, 知이다. 당신은 "이렇게 하여야 한다"를 행동에 옮기며 力, 材, 謨, 知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당신들이 수없이 있다. 당신은 수많은 상대들 속에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당신이 생각한 바대로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 力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늦췄다 댕겼다 이리 찔렀다 저리 찔렀다 이렇게 바꿨다 저렇게 바꿨다 하는 것이 材다. 당신이 생각한 것은 항상 당신 뜻대로만,책에 씬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항상 수많은 상대들이 있기 때문이고 수많은 갈등과, 사회현상, 구조적 문제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태,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갈등, 사태, 이해관계의 복잡성 속에서 타개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로 모(謨)이다. 당신이 생각한 것은 그 토대, 바탕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살아가며 겪은 경험,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 등은 바로 그 토대 바탕이 될 것이다. 바로 知이다.

태양인은 스스로 자신의 材를 돌아보아 그 材가 不莊하면 행동할 수 없다 하였다. 材는 재주, 재능을 뜻한다. 태양인은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태양인은 사고력도 깊고 일에 대해서도 깊숙이 파고들지만 현실에서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뜻하지 않던 어려움도 있는 것이다. 이럴 땐 아무리 방략이 좋다해도 원래의 계획대로만 한다거나 무리하게 사람들을 휘몰아 갈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안되면 저렇게 해서도 안되면 또 다르게 할 수 있는 재(材)가 없으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소양인은 임기응변의 材가 있는 사람들이다. 상당히 신축성이 있다. 그러나 잘 낙담하고 ( 여기서 材가 나올 수도 있다. ) 싫증을 잘 느끼거나, 스스로도 자신이 정한 규칙을 끝까지 잘 지키지 못함이 문제이다. 뒷감당을 못하게 벌려놓고 마무리를 못하거나 계속 밀고 나가거나 단지 기다리기만 해도 될 일을 괜히 이리저리 방법을 바꾸거나 낙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소양인은 스스로 그 힘(力)을 돌아보아 그 力이 확고하거나 굳건하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다 하였을 것이다. 소양인은 때론 지나친 힘(力)이 나오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力은 힘 (근육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의지, 材는 재주, 기술이라 생각하여도 될 것 같다. 힘(力)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람들의 뜻을 모으거나 이끄는 것이기도 하다. 힘(力)이 잘되면 어떠한 경우에도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하거나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용기 있게 대변하거나 흔들리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굳게 붙들어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되면 의지의 과잉이나 무모하게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키려 하거나 독단적이고 독재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재(材)는 목표만 바라보고 무조건 뛰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적절한 신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밀었다가 댕겼다가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늘였다가 조였다가 하는 것이다. 재(材)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용의 묘를 구사하는 것이다. 잘되면 신출귀몰, 기상천외하게 능수 능란하게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겠지만 잘못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거나 잔재주만 믿고 날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옛말에 한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열 명을 먹여 살리지만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은 한사람 먹여 살리기도 힘들다라는 속담이 있다. 材가 너무 많으면 다재박덕이 되거나 자신의 만들어 놓은 재주의 틀 속에서 홀로 허우적거릴 것이다.

태음인은 스스로 知(앎)를 돌이켜보아 그 知(앎)가 주밀 하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다 하였다. 태음인은 추상 속에서 구체적인 개념이나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좋다. 그러나 이때 이끌어낸 결론은 마치 입으로 직접 맛보는 것처럼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얻은 기호들 역시 추상적이다. 그것은 후각이 시각처럼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청각처럼 귀로 듣는 것도 아니고, 미각처럼 입으로 맛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음인처럼 직접 맛본 지식이 아니라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하여 결론지은 것을 주밀 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을 많이 쌓아 놓으면 그 지혜를 활용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음인은 스스로 자신의 모(謀)를 돌이켜보아 그 謨가 넓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다 하였다. 모(謀)는 꾀, 계책이다. 후각적 나반은 끝이 없지만 미각적 능력은 한계가 있고 정해져 있다. 그러나 소음인은 직접 확인하여야 편해하고 또 직접 맛보는 능력이 좋기도 하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지식 ,정보, 데이터등을 위주로 할수록 모(謨)는 한정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꾀나 계책이 나오게 된다. 자신이 구별시켜 놓지 않았더라도 아는 것에만 의지하지 않는 것이 謨를 넓히는 상책중 하나일 것이다.

수박의 속이 익었는지 알아보는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칼로 잘라보거나 삼각 꼴로 도려내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모양을 보거나 두드려 보거나,향기를 맡아 보거나, 색깔을 보아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전자가 미각적이라면 후자는 후각적이라 할 수 있다.

知란 아는 것이고 謀란 꾀, 계책이다. 知란 꾀가 많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꾀 역시 아는 것이 많다고 더 뛰어나게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꾀, 계책, 지혜 등이 많으면 知 또한 풍부해질 수 있고 지식, 경험 등을 잘 축적하고 기억하고 있으면 꾀, 지혜, 계책 또한 수월하고 뛰어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知와 謨 역시 材와 力 처럼 다재박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주 있는 사람은 제 재주만 믿고있기 쉬우며 힘이 있는 사람은 또 제 힘만 믿고 덤벼들 것이다. 제 스스로의 장점이 만든 틀 속에서 제 스스로에게 막히기 쉽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제 아는 것대로만 행동하기 쉽고 꾀, 지혜, 계책 등이 많은 사람은 또 제 꾀대로만 행동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하여도 자기 앞의 生에서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거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태양인은 材도 좀 가지려 하고 소양인은 力을 좀 가지려하고 태음인도 知를 열심히 습득하려 노력하고 소음인도 제 아는 것만 믿지 말고 제 아는 것대로만 하려하지말고 유두리 있게 현실을 대해야 할 것이다.

「 태양인의 精氣는 항상 수컷이 되고자 하고 암컷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음인의 정기는 항상 암컷이 되고자 하고 수컷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소양인의 정기는 항상 밖에서 이기고자 하고 안에서 지키려 하지 않으며 태음인의 정기는 항상 안에서 지키려하고 밖에서 이기려 하지 않는다. 」

- 원 문 -

이 앞에선 성기(性氣)에 대해 나왔고 여기에선 정기(精氣)에 대해 나왔다. 性과 精. 性이 나타난 것이 精이니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이고 그러면서도 性과 精은 논리적 필요에 의해 구분 짓지 않을 수 없다.

 < 그림 000 >

그림 000처럼 태, 소음양의 氣와 희로애락의 氣를 그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림은 직관을 이끌어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혹 태양과 애기, 소양과 노기, 태음과 희기, 소음과 낙기를 함께 생각하여도 된다. 태양인은 애기에 의한 애성은 잘 아만 시키나 노기는 잘 아만 시키지 못함에 따라 노정이 일어난다 하였다.

애성이 잘 아만됨에따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성기(性氣)를 이루고 잘 아만 되지 못하는 노기에 의한 노정은 수컷이 되고자 하는 정기를 이룬다 할 것이다. 직선적으로 내닫는 폭팔하여 흩어지며 발산하는 쭉 뻗어나가는 氣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기(性氣)를 만들고 툭툭 불거져 나오려 하고 심하게 때론 약하게 운동하며 폭팔 하려 꿈틀거리는 기운이 수컷이 되려는 즉 공격적이 되려는 정기를 만든다 하겠다.

소양인은 노기에 의한 노성은 잘 아만 시키나 애기는 잘 아만 시키지 못함에 따라 애정이 일어난다 하였다. 그리하여 소양인의 노기에 의한 노성은 자꾸 움직이게 하려하고 애기에 의한 애정은 애기가 단속적으로 발산하며 밖에서 이기고자 하는 정기를 만든다 할 수 있다. 이때 애기의 발산은 매우 강하다.

대체로 소양인들이 극렬하게 이기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음인은 희기에 의한 희성은 잘 아만 시키나 낙기는 잘 아만 시키지 못한다. 이에 따라 낙정의 급함이 나타난다. 태음인의 희성은 유지시키고 복원시키고 받아들이고 억제하고 누르는 희기의 특성상 고요히 있고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성기를 만들고 잡아당기고 차곡차곡 쌓고 움츠리고 끌어안는 특성을 가진 낙기에 의한 낙정은 안에서 지키려하고 밖에서 이기려 하지 않게 만든다.

소음인은 낙기는 잘 아만 시켜 낙성을 이루나 희기에 의한 희정은 잘 아만 되지 못한다. ( 또는 희기가 잘 아만 되지 못함에 따라 희정이 급해진다. ) 소음인 역시 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성기는 거처에 있으려 하고 밖에 나가려 하지 않으며 희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기는 암컷이 되려하고 수컷이 되려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희, 노, 애, 락의 氣가 일으키는 성정의 특징과 성기, 정기의 특징을 대략 설명했을 줄 믿는다.

어린 생명체는 애기와 노기가 강하고 늙어질수록 낙기와 희기가 많아지며 애, 노의 기를 더욱 가지려 한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체는 어려서, 젊어서는 양의 기가 많고 늙어 가면서는 음의 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신체적으로도 나타난다. 신체적으로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슴(명치) 아래쪽이 굵어져 간다. 그리고 그 마음 또한 덜 충동적이고 공격성도 자제되며 조심성도 많아지고 편안하려하고 겁도 많아진다.

대체적인 음인은 양인에 비해 희정과 낙정이 많다. 왜 그럴까? 앞서 말한 적이 있지만 양인들이 항상 약간의 흥분상태에 있다하면 음인들은 약간의 긴장상태에 있다. 이 약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이유를 따질 수 없다. 바로 세포단위에서의 살아있으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양이 많은 태양인은 그 양을 누르느라 대체적으로 써늘함을 가지고 있다. 양이 강한 소양인은 그 양을 주체치 못하고 잘 침체된 기분에 빠진다. 음이 많은 태음인은 가만히 있으려는 氣가 계속 낙정에 의해 자극되고 있다. 음이 강한 소음인은 그음을 떨치려 자주 희정을 느끼려 한다. 태음인이 이완상태에서 늘 가늘게 긴장하고 있다면 소음인은 긴장상태에서 불안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