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인은 남과 교우하는 것을 삼간다. 때문에 항상 생소한 사람과 교우하기를 걱정하는 怒心이 있다. 이 마음은 떳떳하게 타고난 남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는 지극히 착한 자이다. 그러나 당여에 대해서는 경솔히 여기는 때문에 매양 자기와 가까운 당여인 때문에 모함을 받아, 치우친 노여움으로 해서 장부가 상한다. 이것은 그의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마음이 넓지 못한 때문이다. 」

- 원 문 -

怒心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怒性, 怒精에 이어 이제 怒心이 사용되어졌다. 이제 지루한 해설도 끝나가나 보다. 心은 性情을 총괄하는 말이다. 이제는 性情을 총괄하여 말하겠다는 것인 듯하다.

이는 心은 감정적인 면외에 이성적인(意) 면까지 합친 개념이라 하겠다. 아마 이제마도 心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물론 추측이다. (이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理性과 感情 ,감성(感性) 이라는 기호와 개념이 있었다면 이제마는 心性情이라는 단어대신 이성 감정 등이라는 기호를 사용했을것이다.) 인간은 다수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하고 확인하려하고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이루려한다. 그러는 중에 알게 모르게 스스로는 평가되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이나 다른 누군가를 비교하고 평가하게 되어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도 주변을 의식하고 자신을 의식하게도 될 것이다.

우리는 평가하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평가"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평가할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잘났느니 못났느니 선하니 악하니 올바르니 그르니 평가하는 것일까? 박헌영은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한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경에 잡혀 투옥되었던 적이 있다. 그는 꽤 중요한 인물로써 그를 고문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지 몰랐다.

요는 그가 진짜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냐는 것이었다. 박헌영은 감옥 속에서 똥까지 먹어가며 쇼를 한 결과 정신이상자로 판명 풀려났다. 하마터면 공산주의자들이지만 하여간 꽤 많은 독립운동을 하는 인물들이 굴비두루미처럼 줄줄이 꿰어 들어갔거나 본인 스스로는 고문 끝에 병신이 되거나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해방된 후 박헌영은 조국과 동지를 위해 똥까지 먹은 인물이라 추켜세워 졌었다. 그러나 얼마후 상황이 반공산주의 정책으로 돌아서자 제몸하나 살기 위해 똥까지 먹은 놈으로 매도되어졌다.

평가란 이렇게 뒤바뀌며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하기도 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초나라의 재상 자서는 명예심이 강한 것이 탈이라면서 능히 그를 교도할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자공이 나섰다. 자공이 자서를 만나 설득을 하자 자서는 자공의 말이 끝난 후 "나는 성질이 관대하여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청렴결백하여 이익에 흔들리지 않으며 백성을 대함에 있어 굽은 것은 굽었다 하고 곧은 것은 곧다고 한다" 말했다.

공자는 이 말을 전해듣고 "자서는 화를 면키 어려우리라" 예언했다. 과연 자서는 그 뒤 모함을 받고 죽었다 한다. 자서의 성품이 당여를 제대로 추슬렀을 리가 없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한참 각국을 떠돌며 고생할 때이다. 어느 마을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음식점 앞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데 돈은 없어 주저주저 하였나보다. 이에 음식점 주인이 眞자를 가리키며 그 유명한 공자의 제자들이라니 이 글자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뜻을 맞추면 음식을 주겠다 하였다. 이에 제자들은 참을 가리키는 眞자라 하자 주인은 直八이라 우겼다. 옥신각신 중에 공자에게 그 뜻을 묻자 공자왈 直八이 맞다 하였다. 물론 음식은 공짜로 먹었다. 아무때나 怒心을 나타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세조 때에 "남이"장군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남이가 여진족을 토벌하고 백두산에서 지은 시가 있다. 유명한 한 구절은 남아 나이 이십에 세상을 평정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냐는 것이다. 남이는 무용과 학문이 남달라 27세에 벌써 병조참판까지 올라 있었다. 성격 역시 꼿꼿하고 공사의 분별과 사리의 구별이 철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를 시기하는 무리도 많아 平天下는 得天下로 내용이 바뀐 채 뜻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모함을 받아 이른 나이에 죽었다.

남이가 태양인인지 다른 상인인지는 모른다. 대체로 양인은 좀 일찍 두각을 나타낼 것같다. 대체로 음인에 대기만성형의 인물이 양인에 비해 많다면 양인은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음인에 비해 많을 것같다. 재능이나 주변환경, 저마다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때 단순히 성격상의 이유 때문이다. 남이 장군이 태양인이 아니더라도 그의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마음이 너무 분명해 그의 운명을 재촉한 결과는 아닐까?

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하지만 세상에는 딱히 악하고 선하고를 구별할 수 없는 가치 중립적인 일들이 매우 많다. 더구나 호오(好惡)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그러한 好惡가 지나치다면 경우에 따라 뜻하지 못한 봉변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중국인들은 매우 경계하고 있다.

제나라에 이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왕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너무 취해 잠시 물러 나와 낭하(복도)의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때 월형을 당해 한쪽 발꿈치가 없는 문지기가 다가와서 "남은 술이 있으면 주실 수 없겠는가" 하고 청했다. 이에 이사는 "저리 물러가거라. 전과자인 주제에 어찌 감히 손윗사람에게 술을 달라고 한단 말이냐."하고 호통을 쳐서 쫓아 버렸다. 발꿈치를 베인 문지기는 앙심을 품고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그리고 이사가 궁 밖으로 나가자 낭문의 숫물받이에 물을 뿌려 마치 오줌을 싸둔 것 같이 해두었다. 이튿날 왕은 밖에 나갔다가 이것을 보고 문지기를 꾸짖었다. "대체 누가 이곳에다 오줌을 쌌느냐?" 이에 문지기는 "누가 그랬는지는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어제 중대부 이사가 여기에 서 계셨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에 왕은 이사를 사형에 처해버렸다.

- 한비자 中 -

성질도 어지간히 급한 왕이었나 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법이다. 무심히 나타낸 노여움의 자세가 죽음까지 부른 경우이다.

「 소음인은 당여를 삼가는 때문에 항상 자기와 친숙한 당여인을 가려서 사귀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떳떳하게 타고난 남을 존경하는 것에서 나오므로 지극히 착한 자이다. 그러나 교우에 대하여 경솔하기 때문에 매양 생소한 교우인의 속임을 받아 치우친 기쁨으로 해서 장부(비)가 상한다. 이것은 그의 걱정을 근심하는 마음이 주밀 하지 못한 때문이다. 」

- 원 문 -

치우친 기쁨으로 장부가 상한다니 어딘가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런 말인 듯 하다. 바램과 조바심이 지나쳐 "희정"의 상태를 얻으려함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도취"나 "자기 기대감에의 환상"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행동에도 주위와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그럴수록 "자기 생각"에 맞춰 생각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다. 당연히 "속임"을 받기 쉬운 상태로 있게 된다.

육도삼략이나 한비자에 보면 자국보다 강한 적국을 혹은 침략하려는 국가를 혼란시키고 약화시키는 전략이 나온다. 그 중 하나는 적국의 군주에게 알랑거려 왕 스스로가 교만에 빠지게 하거나 왕 주위의 측근을 매수 왕의 눈과 귀를 가리워버리는 것이다. 또 적국의 신하들에게 도움을 주되 서로 경쟁시키게 만드는 전략도 있다. 조선말기 일본이 조선에게 써먹어 톡톡히 재미를 본 전략이다.

한비자에는 신하로 하여금 외국의 세력을 빌려 자국을 제어하려하면 이러한 임금은 멸망하게 된다 나와있다. 책이 곧 현실일 수 는 없지만 어쨌든 나름대로의 명분으로는 일본 미국 러시아 청나라 등을 끌어들여서로를 견제시키어 했던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그들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대원군은 태양인이나 소양인으로 생각되지만 고종은 소양인이나 소음인으로 생각된다. 소음인도 내유외강형이 의미하듯 상당히 강인한 행동과 결단을 내릴 수 있지만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의 강한 성품에 소위 기(氣)가 죽어 자랐는지 아니면 그저 한량없이 착하기만 했는지 그리 강한 기질은 아니었던 것같다. 그러나 태양인이나 소양인, 태음인도 이러할 수 있다. 특히 소양인도 이러할 가능성이 많다. 어쨌건 소음인이 아니더라도 소음형의 행태를 보인 인물이다. 그리고 소음인의 특성 중에서도 난세에서의 왕으로써는 좋지 않은 나약함과 수동성 이 많았었다. 모든 소음인이 이런 경우 나약하거나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강한 사람은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제갈공명 같은 소음인이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고종은 오직 앞날이 밝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마음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희정"에 분별이 흐려질 수도 있다. 아마 그 당시의 상황이라면 어떤 상인이라도 "희정"에 깊게 빠질 것이다. 고종은 혼란의 와중에 "교우" - 교우는 단순히 교제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휘어잡는가 하는 것도 교우이다 - 를 잘 제어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선 민비가 오히려 양인의 기질이 있었고 태양인이라 생각된다.

소음인은 대체로 대인관계가 잔잔하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대놓고 깔아뭉개지 않으며 설사 이쪽의 생각이 틀리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반론이 격하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든 소음인은 자기 혼자서 다 헤아리고 조목조목 따져 가려내기 자기 뜻대로 하기 잘하며 시시콜콜히 지시하며 잔걱정과 잔소리가 많기도 하다. 아마 살아가며 생긴 피해의식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 소음인은 대체로 잘 물러서 주고 자기 주장을 확고히 밀고 나가지 않기에 ) 남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놓고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되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양인이 주먹왕 시라소니처럼 혼자라도 쉽게 행동하는데 비해 소음인은 무리를 지어 행동하려한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깐깐해지고 자기의견을 고집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려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소음인은 집단, 조직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기쁨"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아는 사람만 만날수록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서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인관계도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꾸만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사람과 대화하는 기술도 발달할 것이다. TV나 라디오 등의 진행자가 새로 데뷔한 사람을 보면 처음에는 좀 어수룩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져 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다하겠다.

진시황은 태양인으로 생각되지만 그가 총애하는 후궁에게서 난 胡亥(호해)는 소음인으로 생각이 된다. 아니 소음인이 아니라도 좋다. 위의 구절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행동을 하였을 뿐이다. 때문에 그냥 소음적인 행위를 하였다고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건 호해의 경우를 당해선 호해 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여홍성에게 저격을 받고 간신히 살아난 적이있다. 얼마 후 저격 때 받은 상처가 악화되어 갑자기 죽자 환관 조고가 이사와 결탁 속임수를 써서 진시황의 적자 부소를 자결케 하고 실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후 조고는 이사마저 모함을 하여 죽였다. 이제 조고 앞에는 어린 호해만 남은 것이다. 조고는 호해의 주위에서 그의 눈과 귀를 조종 자기 뜻대로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중신들과 친척들이 체포당해 죽기 시작했으며 조고는 연소한 황제가 중신들 앞에서 실수라도 해서는 안된다며 내전에 틀어 박혀 있게 하였다.

호해는 황제가 되자 나이도 몇 살 안먹은게 인생은 문틈사이 빠르게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잠깐 이라 하는데 이제 천하가 자기 것이 되었으니 만사를 즐기며 천수를 다하고 싶다할 정도 였었다. 비록 생소한 교우인에게 속임을 당한 것은 아니나 교우 즉 사람을 대하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결국 정권은 사슴을 두고 황제가 사슴이라 해도 조고가 말이라 하자 모두 사슴을 말이라 할 정도였다. 호해는 결국 날개 없는 새처럼 발버둥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 사회속에서의 태극

「 사회 속에서 군중 속에서 인간관계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는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도중 누군가 한 사람이 갑자기 끼여들면 잠깐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지는 경험을 하여 보았을 것이다.

두사람의 대화하는 도중 생긴 두사람만의 태극이 잠시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인체 내에 이 물질이 들어온 것과 같은 반응을 잠시 일으킬 것이다. ( 심리학적 용어로는 field theory가 이와 비슷하다 ) 내가 혼자 무언가 한참 궁리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붙이면 잠깐이겠지만 잠시 어리둥절해지거나 벌컥 화가 날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마음의 태극이 잠시 흐트러져서이다. 그러나 태극은 곧 다시 형성될 것이다.

태극은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있다. 택시기사에게는 택시기사들만의 독특한 태극이 있다. 이것은 직접 택시기사가 되기 전에는 모른다. 그들은 그 태극 속에서 쉽게 한 묶음의 집단적인 관념을 형성시켜 공유할 수 있다.

남자, 여자, 정치인들에게도 의사에게도 법관, 검사, 장사하는 사람 직장인, 친구들, 저널리스트, 등등 모든 집단이나 부류에는 그네들만의 독특한 태극이 있다. 이것은 각 태극내의 이야기, 관습, 통념, 관행, 비밀, 관례 등은 그 태극 속에 있어야 알 수 있으며 설사 그 태극 속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태극 속의 진짜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함부로 누설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잡다한 태극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태극을 형성한다. 또한 한 개인은 몇 개의 태극에 겹쳐있다. 부모로써 아들로써 학교에서 동네에서 직장에서 친구끼리 등등. 때문에 태극은 미시적으로 계속 분석해 들어가도 태극이고 거시적으로 계속 확대해나가도 태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