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양인은 사무를 소중히 여기는 때문에 항상 밖으로 나가서 사무를 일으키는 슬퍼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떳떳하게 타고난 남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는 지극히 착한 자이다. 그러나 그 거처에 삼가지 않기 때문에 매양 안의 일을 주장하여 거처를 마련해 주는 사람의 모함에 빠져서 치우친 슬픔으로 해서 장부가 상한다. 이것은 그가 밖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안의 일을 경솔히 여기는 때문이다. 」

- 원 문 -

소양인들은 대체로 꾸준하게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꾸 움직이려하고 들썩거리고 괜히 식식거리기도 하고 할 일도 없으면서 꿈틀대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다. 남자나 여자나 집에 틀어 박혀있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대체적이다. 군인처럼 절도 있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다. 날카롭고 판단력이 뛰어나고 행동이 빠르고 거친 성격을 가진 소양인도 많다는 것이다. 선, 후천적으로 형성된 기(氣)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또 스스로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있다.

"관념의 방향"이 무엇이냐에 따라 또 분화와 풍습 성장환경등에 따라 소양인은 가정적인 면을 많이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정에서의 기쁨이나 안락 보다는 온통 외부에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부로 생각이 향할수록 불안정한 가정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그리하여 더욱 그의 관심은 외부로 향할 것이다. 소양인들 중에는 위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다른 상인(象人)에 비해 많은 편이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인간의 파멸도 또는 성공이라는 것도 더 극명하게 나타날 것 같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와이프 크산티페의 부실한 내조가 소크라테스를 더욱 밖으로 내몰았듯이 말이다. "의처증"이라는 정신적인 병은 소양인들에게 많다고 한다. 이것 역시 "거처"에 대한 무신경이나 불안에서 생길 것이다. 항우는 소양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다. 힘은 산을 뽑아낼만하고 기세는 세상을 뒤덮을만 했다던 항우. 항우는 잔인한 면도 있지만 의외로 비관을 잘하고 마음이 여린 면을 자주 보이기도 했다.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항우의 마지막은 정말로 애처롭다.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는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우美人)은 자살을 하고 항우 자신은 도망쳐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진 것이 아니고 하늘이 버리신 거라며 얄궂은 운명 앞에 무릎을 꺾고 만다. 그리곤 비장한 죽음을 한다. 항우는 용맹무쌍한 장수에다 전략가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결점이 있었다. 유방과의 대결에서 보면 항상 후방이 불안했고 특히 식량보급이 자주 끊기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성미가 급하고 호기가 지나치고 일을 이루려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유방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노성의 넓음은 호탕하게 지나가곤 하였다.

결국 항우는 한신과 팽월이 측면과 후방을 교란함에 말려들어 그리고 유방측의 이간작전에 속아넘어가 스스로는 이렇다할 큰 패배조차 없이 전세를 유방에게 역전 당한다. 범증을 내쫓은 것과 식량보급을 확보하려고 군(軍)을 이분시킨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것 역시 거처(居處)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성장하고 세상을 겪으며 스스로의 결점을 보완하기도 하려는 과정이나 다른 이들의 모방을 통하여 선천적인 성정(性情)과 반대의 성격을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음인인데도 양적인 특징이 더욱 많이 나타나고 양인의 경우 음적인 특징이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그 사람 특유의 희로애락의 스스로의 특징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양인의 성격이 음인처럼 음인의 성격이 양인처럼 나타내는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결점,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지나칠 수도 있고 문화적 특성이 강하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성장과정에서 그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양인이라 해서 항상 책에 나와있는 소양인적 특성대로만 행동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굳이 말하면 최소 51 : 49 정도로 소양인적 특징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상인도 그러하다. 단지 하나만 다르고 나머지 마흔아홉은 어떨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선 단지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태음인은 거처를 소중히 여기는 때문에 항상 안의 일을 주장으로 하여 거처를 마련하는 즐거운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떳떳하게 타고난 남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는 지극히 착한 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사무에 삼가지 않기 때문에 매양 밖으로 나가서 사무를 일으키는 사람의 속임을 받아서 치우치게 즐거운 마음으로 해서 장부가 상한다. 이것은 그가 안을 소중히 여기고 밖을 경솔히 여기는 때문이다. 」

- 원 문 -

태음인은 천리 길을 한 걸음부터임을 선천적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소양인들처럼 시작이 반이거나 쇠뿔도 단김에 빼려거나 용두사미격의 일은 태음인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상인의 성격이나 그 성격상의 장점은 곧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능력은 무언가에 집중할수록 무언가가 아닌 것은 생각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처와 사무는 안의 일과 밖의 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거처를 중시할수록 사무는 그만큼 신경이 덜 쓰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처와 사무는 이론과 경험, 원칙과 실제의 관계이기도 하다. 사무에 뛰어난 소양인들은 대체로 이론이나 원칙에 얽매이는 편이 아니다. 임기응변이나 신축성이 있는 것이 소양인의 특성이지만 소양인이 원칙이나 이론에 얽매여 있는 경우도 많다.

태음인이나 소음인은 대체로 원칙이나 이론에 의거해 현실에 대처해 나간다. 이것이 음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태음인은 모(謨)를 소음인은 知를 주로 할 것이다. 능력 있는 태음인들이 공명정대해 보이는 것은 체구와 말씨 등에서 풍기는 이미지나 문화 속에서 형성된 선입관 탓도 있다. 그리고 대의나 명분 등의 커다란 윤곽을 중시하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물론 그 커다란 윤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필자는 모른다. 주목할 것은 대의나 명분이라는 단어나 커다란 윤곽에 대해 우리가 "그렇다"고 알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무언가를 생각의 "기준", 판단의 "기준"으로 확고히 잡고 그것에 의거 현실, 현상에 대처해 나가는 태도, 자세이다. 태음인이 이런 성향이 많은 것은 무언가를 하나 잡으면 잘 놓지 않는 성격도 한몫 할 것이다. 때문에 허황되거나 앞뒤가 꽉 막혀있거나 일이 지금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같기도 할 때가 있고 자기 혼자만 다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하니 불의의 상황에는 허둥거리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두손을 놓고있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자신의 정해둔 어떤 "테두리" 내에서는 지극히 실용적인 재능이 잘 발휘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초, 제, 한, 위, 조, 연의 여섯 나라는 상앙의 등용이후 부쩍 강성해진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소진에 의해 만들어진 합종(合縱)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로로 놓인 동쪽의 여섯 나라가 뭉쳐 그 서쪽의 진나라에 대항하는 구도였다. 그리고 이 합종의 맹주는 초(楚)나라 회왕이었다.

이 합종을 분열시키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장의이다. 소진에 의해 진나라에 등용되다시피한 장의는 소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소진이 죽자 활동을 시작하였다. 장의는 장광설로 회왕 앞에서 유세를 편 뒤 초나라 태자를 인질로 진에 두고 진나라는 600리의 땅을 초나라에 주겠노라는 제의로 연횡(連橫)책을 내놓는다.

연횡이란 가로로써 진(秦)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연합 북쪽의 다섯 나라에 대항하자는 계책이다. 초나라에서도 반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땅이 무엇인지 회왕은 태자를 인질로 보내고 얼마후 제(齊)나라와의 동맹관계도 깨어지게 되었다. 그후 제는 진나라에 붙어 버렸다. 일이 이리된 후 장의는 땅을 가지러간 초나라의 장군에게 6리의 땅을 가져가라고 망신을 주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회왕은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대패하고 말았다. 이를 갈고 있는 회왕에게 장의는 다시 나타났다. 회왕은 장의를 감금하고 죽이려 하였으나 장의는 몰래 회왕의 심복과 왕비에게 손을 썼다. 왕비의 심복에게 뇌물을 주고 진나라에서 장의를 구하려고 땅과 여자들을 보내려고 하는데 진나라의 미녀들이 오면 왕비에게도 이롭지 못할 것이라 왕비에게 말하게 하였다. 왕비에겐 왕의 총애를 잃는 것보다 두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왕비가 회왕에게 졸라댄 끝에 장의는 풀려났다. 마침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초사"의 작가 굴원(屈原)이 돌아와 두 번이나 장의에게 속을 수 있냐며 장의를 추적해 갔지만 장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후 진나라는 육국을 침략할 시간을 벌기 위해 초에게 화해를 요청해 왔다. 회왕은 장의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며 화해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에 장의는 자신 한사람이 가서 해결될 일이라면 초나라에 가겠다면서 다시 초나라를 찾아갔다. 그리고 역시 왕의 측근과 왕비에게 뇌물을 썼다. 그래서 장의는 회왕을 만나게 되고 죽임을 당하기는커녕 회왕의 딸을 진나라 소왕과 결혼시키겠다며 회왕을 설득했다. 그리되면 진나라 왕은 초나라 왕의 사위가 되는 셈이다. 아! 아! 회왕은 장의를 죽여 육포를 만들어도 시원찮을 텐데 또 속는다. 장의에게 매수 당한 중신들의 성화에 회왕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굴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나라로 떠났다.

회왕이 진나라와의 국경인 무관에 나갔을 때 매복해있던 진의 복병에 의해 퇴로가 끊기게 되고 회왕은 사로잡혀 진의 수도로 끌려갔다. 회왕은 진의 수도를 탈출하여 조나라로 가기도 하였으나 조나라에서는 후환을 걱정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회왕은 다시 진으로 되돌아가 3년 뒤 울화병으로 죽었다. 여기 말한 초나라 회왕이 태음인이라는게 아니다. 그건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어찌하여 회왕은 번번히 세 번이나 속았을까? 희정이나 낙정의 자세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건 이후 초나라는 각국에서 조롱을 받게 되었고 진나라에 대한 초나라의 원한은 매우 컷을 것이다. 이후 진나라를 잔혹하게 초토화시킨 것은 초나라 사람인 항우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