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인간의 본성을 두고 문둥병에 걸린 부모가 밤에 호롱불을 비춰가며 자기자식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마음이라 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지,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지 논란이 있지만 필자는 모른다. 그것은 마치 자연을 두고 선하니 악하니 하는 것과 같다.인간의 마음의 구별일 뿐이다.

여하간 인간은 걱정, 긴장, 불안의 감정 속에서 무언가를 희망하며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배불러도, 걱정을 한다.

그리하여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갈등과 걱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물론 있는 자의 걱정은 없는 자의 그것과는 질과 양적으로 차이가 클 것이다.

유학에서는 타고난 인간의 성(性)은 선(善)하다 한다. 혹 악(惡)하다 해도 상관없다. 선(善)을 할 수 있다라는 바탕 위에 희,로,애,락으로 인간의 감정을 말한다. 이른바 칠정이다.

어떠한 다른 방법을 가져다가 인간의 성정을 분석하여 보아도 상관없다. 이제마는 희로애락의 성정으로 분석하였고 이책역시 그 체계를 따르고 있다. 사실 희로애락의 기호는 구름의 얼굴일 뿐이다. 희로애락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칠정을 가지고 한참 떠들다 보면 마음을 잊는 것이다. "정(情)이란 선(善)을 하는 것이다." 라는 단순한 명제의 실천이 책 수만권을 읽는것보다 더 나은 것이다. 물론 이는 본인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성경을 들들외도 불경을 달달외도 유학의 경전을 통달해도 선(善)을 못하면 혹 안하면 이데올로기나 자신의 신념의 노예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자 화 상 (自畵像)

윤 동 주 .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 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자기를 잘 모르기에 항상 자기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희노애락의 성정은 서로 복합적으로 한데 어우러져 작용한다. 즉 "희"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노와 애의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즐거움(즐김)의 욕구(낙;樂)가 충족되기 위해 끝없이 "기쁨(희;喜)"이 추구될 수 있기도 하고 슬픔(애;哀)과 노여움(노;怒)의 감정이 나올 수도 있다. 노(怒)가 지나쳐 애(哀)가 될 수도 노여움을 희(喜)와 락(樂)으로 풀어버림이 지나쳐 쾌락과 안락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슬픔(哀)이 지나쳐 노여움(怒)이 되어 울화가 되거나 애(哀)가 모자라 뭐든지 즐기려(낙;樂)하든가 기쁘려 하든지, 애(哀)를 없애려 "낙"이나 "희"가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만약 노의 감정이 없게 되면 그는 분노를 모르는 노예 같은 인간이 될 것이다. 애의 감정이 없으면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인간이 될 것이다. 낙의 감정이 없으면 그는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화신이 될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없으면 그는 사랑도 따뜻함도 없는 매양 공격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희, 노, 애, 락 중 어느 하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에픽테토스는 낙천주의 철학자이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였다. 그에 대한 이러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에픽테토스의 주인이 심심풀이로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비틀었다. 그러자 그대로 계속하시면 제 다리는 부러지고 말것이라고 에픽테토스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계속 비틀었고 결국 다리는 부러져 버렸다. 그러자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에픽테토스는 침착하게 말했다 한다. 지나친 낙천주의일까 노여움을 모르는 걸까 노여움에서 해탈된 것일까.

용맹무쌍하면서도 이전의 기분 나빴던 것을 금새 잊기도 하고 체념을 잘하는 모습을 가끔씩 보이던 항우는 진나라 군사 20만을 생매장하여 죽인 일이 있다. 항우는 함양을 점령하자 그곳 주민들을 무차별로 죽이기도 했다. 이를 범증은 매우 안타까워했다. 진나라 군사 20만을 생매장하여 죽인 일도 일이지만 그로 인해 민심이 유방 쪽으로 돌아설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유방이 대세를 조금씩 역전시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으리라 생각된다.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유방은 후덕하고 항우는 잔인하다는 몇마디 말은 바다위에 뜬 유방호와 항우호라는 배중 항우호를 받쳐주지 않은것이다.

소양인은 애(哀)의 감정이 많으면서도 이처럼 애(哀)의 감정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이는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항우를 소양인으로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희노애락의 감정은 부족함도 지나침도 문제가 된다.

노(怒)가 지나치면 무엇이든 싸움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모든 일에 공격적이고 양보를 모르며 모든 일의 잘못됨은 주변의 탓으로 돌아갈 것이다.

애(哀)가 지나치면 무슨 일이건 안될 것이라는 생각부터 하고 잘안되는 것 잘못되는 것만 보일 것이다. 모든 일에 의문부터 일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비관부터 하게 될 것이다.

낙(樂)이 지나치면 남이야 어떻건 세상이야 어떻건 자기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것이다.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지 그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바라는 바만 추구하려고만 할 것이다.

희(喜)가 지나치면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계속하여 기쁨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일을 꾸미고 일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웃음을 가지려 할 것이다. 남의 사정이야 어떻건 자신의 기쁨만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극단적인 경우만 말한 것이다. 우리 주위의 누구라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희로애락의 성정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서로 이루어지고 자극하고 그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령 온 가족이 모여 모두 TV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가끔 서너살짜리 어린애들은 TV를 가로막고 나선다. 소외되어있다고 느끼기도하고 심심하기도 하여 자신을 좀 봐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해서 일 것이다. 이런 행위를 야단을 쳐 억누르게 되면 그 아이는 노기를 띠게 되거나 애기는 느끼게 될것이다. 그리고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고자 했던 혹 슬픔을 느끼지 않고자 했던 행위는 다른 감정이나 생각, 행위로 나타날수도 있을것이다. 가령 혼자만의 "낙"을 찾거나 꽁꽁 마음과 생각을 닫는 자폐증이 될수도 혹은 가족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품게 될수도 있고 "의기소침"에 빠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잠자고나면 다 잊어버리고 있을수도 있다. 하긴 이런것이 어린애들일것이다. 아무런 자극도 충격도 상처도 받지 않고 자란아이는 온실속의 화초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로애락의 성정은 하나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하나이지만 넷으로 구분지었다. 그리하여 희로애락이라는 단어에 억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희노애락의 성정은 복합적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이다. 확충론을 마치며 다시한번 강조한다.

죽어있는 사람이야기만 하는것 같아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도 하여 볼까한다.

C, J, N 전직대통령을 말해 보겠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난후 근 1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인물이 있다. 최규하씨이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태음인으로 생각된다. 우유부단 했다느니 증언에 나오지 않는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하여간 고집은 대단한 사람이다. 아마 현직에 있을때도 매사에 있어 의사표현은 단정적인편은 아니었겠지만 확실한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일에 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원칙과 대의를 중요시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12.12 밤의 일이야 어찌 알랴마는 일단은 설사 총을 가지고 협박한다고 흔들릴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물론 태음인 나름대로의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고 필자의 이러한 글은 추측이고 바램일 뿐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는 그 고집스런 생각과 뚝심은 대체적으로 태음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설쳐댄다고 나올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규하씨가 태양인 이었다면 10.26 이후의 상황은 달라졌을수도 있다. 태양인이었다면 그러한 혼란의 와중에 상황을 압도하며 등장해 대세를 장악하려 하였을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태양인으로 생각되는데 소양인 일수도 있다. 하여간 음인은 아니다. 태양인의 특성중 하나가 교우(交友)에 뛰어나다는 점이다. 전두환씨는 교우가 뛰어난 사람이다. 전두환씨는 취임전 말도 많았었다. 머리가 모자라느니 육사에 운동선수 특기생으로 들어갔다느니 무식하다느니 여러가지 흉들이 난무했었다. 어쨌건 머리는 잘 빌리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산속의 은자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며 실력 발휘할 날만 학수고대 하고 있으니 거저 끌어다 쓰기만 하면 될 것이다. 전두환씨는 10.26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권력의 "축"이 되었고 과감한 행동으로 정권을 거머쥐었다. 전두환씨의 성격은 현직 때보다 근래 재판과정에서 면면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강하다는 것이다. 침체되는 면도 부드러운면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점으로 보아선 소양인은 아닌듯도 하다.) 또 그처럼 강하기에 혼란스러움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끌어들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두환씨의 사람을 쓰는 법도 보면 주로 행동형의 인물들이 많고 좀 개성이 두드러진 인물들이 많다.

전두환씨는 뒤늦게 한학에 열중하였다고도 한다. 전두환씨가 좋아하는 글은 논어 학이(學而)편에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선의인(鮮矣仁)이라는 구절이라 한다. "재치있게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드물다라는 뜻이다. 아마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와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 같기도 하다. 전씨의 솎생의 태도이자 성격도 짐작하여주게 하는 글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성격적인 측면외에 다른 모든 평가는 쓰지 않으려 한다.

이에반해 노태우 전대통령은 성격적인 면으로는 이와 반대이다. 가끔 강하고 독한면이 있지만 대체로 거친 면이 적다는 것이다. 앞에 나서서 휘젓지 않고 되도록 원만히 해결하려하거나 ,뒤에서 조종하는 편이거나 상황이 그리되도록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전두환씨 주변에 노태우씨 스타일의 사람은 많지 않았던것 같은데 하여간 노태우씨와 전두환씨는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여 줄 수 있는 성격이기도 하다. 노태우씨는 재임시 물대통령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였었다. 이것 저것 너무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전두환씨를 백담사로 보내거나 , 중국과 국교를 맺는 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끊을땐 매섭게 끊는다. 노태우씨는 음인으로 생각된다. 아마 재직시 사려가 깊으며 세심하게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식도 꽤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태음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음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두환씨는 끌려가면서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강경했다. 사실 또 그런 줏대도 없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자신 또한 우스운 꼴이 될것이다.

반면 노태우씨는 초라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러한 행동이 유비의 아들 유선이 나라를 잃고 사마염 앞에서 보인 자세일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이제는 고분고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많은 돈을 쓸데 없이 갖고 있었고 사실 12.12 이후의 일들이 진실로 죄스럽기도 해서 일까? 1987년 6.29일날 아침의 멋진 모습은 어디에 가 버렸을까?

@ 사상인론

인간의 마음 ! 그것을 어찌 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호가 각기 고립된 하나로써 존재하며 수많은 기호의 체계를 만들어내듯 한 개인은 각기 고립된 하나로써 존재하며 그들이 모여 세계가 인류가 구성된다.

세계, 좁게는 국가, 다른 각도에서 사회는, 군중은 인간들이고 인간들이 모여 구조를 이루게 된다. 때문에 사회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상, 법, 제도, 규칙등등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인간 또한 무시 못한다. 바로 인간. 그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이렇다, 저렇다고 단정을 내리기 곤란하게 만든다. 아무리 맛 좋은 음식도 계속 먹거나 하면 물리게 된다.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못잊는다 한다. 그것이 평범한 우리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피그말리온(Pygmalion Effect)효과라는 심리학의 용어가 있다. 자신이나 상대(특히 존경하거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여 노력을 배가 하는 것을 말한다.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라는 것도 있다. 비슷한데 나쁜 사람으로 낙인 받으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리 행동한다는 것이다. 첫사랑은 못잊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이가르니크 효과(Zeiganik effect)라 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뒷축이 달걀같다고 나무란다 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악마효과(Devil Effect) 며느리와 만나는 사람까지 미워보이면 감정전이(Transfer of affect)라 한다. 목격자가 많으면 신고가 늦어진다 한다. 이것도 이름을 짓자면 책임분산 효과니 책임전가 효과니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일을 할때보다는 경쟁자가 있을때 더 악에 받쳐 할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이라 한다. 이외에,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달라진다. 노래도 멍석 깔아 놓으면 안한다. 가던날이 장날이다. 와이프패자 장모온다. 차닦아 놓으니 비온다. 구박 받은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 된다. 등등 이름을 붙이자면 끝도 없을 심리현상과 심리학적 용어들이 있다. 이 모든것들을 모두 암기하거나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여 볼수도 있다. 그리고 음양에 대한 개념을 갖춰놓으면 한결 그 본질에 대한 이해도 쉬워진다. 때문에 끝없이 기호들 속에 방황하는 혼란을 덜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

그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고 불변적인 부분이 있고 가변적인 요소도 있다. 이 복잡한 마음의 움직임에는 교, 긍, 벌, 과라 이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외에도 희노애락의 성정도 마음이고 탈, 치, 라, 절도 마음이다. 그외 기호로써 이름 지을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있다. 이 단원에선 그중에서 단지 교, 긍, 벌, 과만 본다. 사회속에서 어느 인간이든지 자기 생각에따라 자기 생각 속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여야 하며 그런 자신의 행위에 자신감을 갖고 신념을 갖고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기도 해야하며 자신의 행위에대해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고 자랑도 하고 싶고 자신의 행위를 좀 부풀리기도 하고 그럴듯하게 꾸미기도 보태기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마음의 움직임은 어떤 사람이든지 통제되고 절제되어 나오거나 교묘하게 포장되어 나올 것이다.

이때 사람에따라 어느 하나가 제대로 절제가 되어있지 못할 경우가 가끔 혹 자주 있다. 태음인은" 교"의 태도가 소음인은" 긍"의 태도가 태양인은" 벌"의 태도가 소양인은" 과"의 태도가 그러하다. 이또한 그러한 태도가 나타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의 마음은 태소음양의 운동을 하고 있다. 마음은 발산하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해소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상태에 있다. 사상인은 이중 한가지가 약하다. 태양인의 경우 꽉잡고 있으면서 풀어주는 간기가 약한 까닭에 발산하는 마음을 제대로 잡아 주지를 못한다. 여기서 벌심(伐心)이 나오기 쉽게 된다. 소양인의 경우 끌어당기고 수축시키는 "신기"가 약한 까닭에 과심(과心)이 나오기 쉽다. 태음인의 경우 퍼져나가고 발산하고 활활타오르는 폐기가 부족한 까닭에 교심이 나오기 쉽게 된다. 소음인의 경우 마구 움직이고 툭툭불거져 나오는 비기가 부족한 탓에 긍심(矜心)이 나오기 쉽게 된다. 마음이란 발산하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해소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상태에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볼수록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됨으로써 서로를 이해할수 있기도 하고 혹 잘못 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방어할수도 있게 써 놓은 것이다. 이책을 알면 어떤 경우라도 큰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사상을 단지 사람을 변별하는 것만 말하였지만 2부에서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사상"을 이용할것이다.

국가, 사회, 문화, 역사적인 측면에서 책을 쓰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그것을 어느누가 안다고 할수있을까

구르는 세계의 축은

과녁을 찾아 헤멘다

<디오니소스 찬가> 中 - 니체

생명을 가지고 있는한 그 마음은 끝없이 움직인다.

무엇인가에 대해, 무엇인가를 향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끝없이 움직인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해보면,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말하고 싶다. 인간은 끝도 없는 시간의 내리막길 위에 있는 것이다.

눈을 뜨고 있는 한 무언가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