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융의 성격구분에 보면 직관형,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의 타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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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에 의하면 직관형과 감각형은 서로 상대적인 특징이 있고 사고형과 감정형도 서로 상대적인 특징이 있다. 사고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적인 면이 부족하고 직관이 발달한 사람은 감각이 부족하다는 것이 융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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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고형의 사람들은 직관이나 감각을 보조적인 기능으로 사용하고 직관, 감각형의 사람들은 사고와 감정을 보조적인 기능으로 사용한다 하였다. 필자가 말하는 시청후각적 인식기능은 융이 말한 성격구분과 다르기는 하지만 형식상 상당부분 비슷하다. 같은 점은 사고와 감정이 상대적이고 직관과 감각이 상대적인 것처럼 시각과 미각도 청각과 후각에 의한 인식 행위도 상대적으로 행위 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시청후미각적 인식행위는 모두 감각기관이라는 것이며 그 네 가지 감각기능의 버릇, 특징이 사고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과 시청(視聽)후미(厚味)각에 의한 종합적인 인식행위는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융의 성격구분에 대한 사항도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된다. 궁금한 사람은 책을 별도로 구입 참고하여 보아도 별로 상관없다. 다시 말하지만 태, 소음양인을 융의 성격적 구분에 의한 분류와 일치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식태도와 그 원리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같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여러 사람이 같은 "달"의 모습을 볼 때처럼 엄밀히 말하면 설명의 결과만 비슷할 뿐 그 뿌리는 완전히 다르다. 가령 소음인인 경우 미각적 인식태도가 많고 시각적 인식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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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며 미각적 인식태도가 청각, 후각적 인식태도를 보조적인 기능으로 사용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이것은 사고도 감정도 직관도 아니다. 모두 생각하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버릇이다. 현상을 감각할 때부터 인식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소음인은 미각적으로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있다. 물론 이것이 성격 탓이기도 하고 감각기관의 기능적 특성이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버릇은 문화에 따라 개인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될 수도 있고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다른 모든 기능중 소음인의 경우 시각적 인식능력이 강할 수가 있다. 이럴 경우는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인 측면에서 그의 인생에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후각적 인식태도가 버릇인 태음인들이 의심이 많다는 안 좋은 인상을 줄 때가 있을 수 있다하면 바로 맛보려는 미각적 인식태도는 아는 것에 관해서는 줄줄이 아는 만큼 깔끔하게 정리하여 놓지마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누구는 뭐라 하고 누구는 뭐라 하고 하는 식으로 지식의 나열이 될 수도 있다. 당연히 많이 알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주장이 없다는 인상을 남길 우려가 있다.

그러나 소음인은 志와 矜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말 저말종잡을수 없는 것 같지만 뚜렷한 자기의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사상인중 가장 깔끔하고 차분하며 논리가 정연 - 자기 생각뿐인 주관적이지만 -한 사람들은 소음인이다. 아마 미각적 나반 때문에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지(志)와 긍(矜)이 강할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은 대체적인 태음인과 소양인들이다. 소양인은 직감이 빠르고 그에 따라 생각이 성급하게 비약하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많고 아직 결정을 못하겠기에 논리가 정연치 못한 사람들이 태음인들이다. 그러나 논리가 정연치 못한 사람에게도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논리가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태음인과 소양인이 다 논리가 정연치 못한 것은 아니다.

성격탓도 있고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여 아직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성격만 성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애정만 잘 추스릴수 있다면 소양인들은 직감이 빠른 만큼 좋은 논리도 빨리 생길 것이다. 대체적으로 소양인들은 충동적인 면이 강하다. 소위 잘 "욱"하고 잘 거두기도 한다. 또한 소양인은 자신의 직감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경우가 타상인에 비해 많고 그만두기도 잘한다.

소음인의 강한 지(志)와 긍(矜)은 한 번 준 또는 마음먹은 바를 잘 안 바꾸는 것이지만 어떤 경우에 처해 생각이 바뀌면 또 이번엔 그쪽으로 쉽게 志와 矜이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잘 안그러지만)

대체적인 소음인들의 논리 정연함은 현상을 잘 구별하여 놓는 버릇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는 것 같지만 매우 달변가가 될 소질이 많은 셈이다. 논리가 정연함이 화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무리를 확 휘어잡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인 설득과 화해 타협에 능한 사람들이 소음인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을 보면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경우보다 한두 사람이나 몇 명을 또는 소규모의 group을 상대로 대화를 할 때 TV를 통해 차분한 설득조의 연설을 할 때 소음인의 장점이 발휘될 것이라 생각된다.

드물게 사자후를 토하는 열변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는 그리 보일 뿐일 것이다. 소음인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는 것이다. 성격적으로 볼 때 무리 앞에 나서서 그 무리를 이끌며 열변을 토할 수 있는 사람은 태양인에 많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성격에 기인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논리의 정연함보다는 좌중을 압도하는 격정적인 행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가령 전쟁터에서 포위망을 뚫으려 돌격하기전 그 돌격의 타당성 등을 일일이 논리적으로 예증해가며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앞에 나서서 강력하게 무리를 이끌 용기와 힘일 것이다.

성격적으로 이럴 경우에는 태양인이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음인들의 미각적 나반에 의한 구별의 버릇은 밥을 먹는 일 차를 타는 일 옷을 입는 것에서부터 가정을 꾸미는 일 사회생활을 하는 일 등 모든 부분에 걸쳐 나타난다. 설사 지금은 이러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그러한 생활을 접해보면 쉽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소음인들은 대체로 이렇고 저렇고에 관해서는 시비를 별로 말하지 않는 편이다. 아마 스스로가 그런 것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것 저것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 성격적으로도 전투적인 것을 별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음인이 시비를 가리려들면 그것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잘 구별도 못하면서 시시비비를 잘 따지는 사람들은 소양인들이다. 직감이 빠른 소양인들은 구별하기전 처음의 빠른 판단을 가지고 말이나 행동이 튀어나오기 쉬운 사람들이다. 물론 소음인도 직감이 있고 판단이 빠르다. 그러나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소양인에는 뒤진다. 이러한 소양인들은 시시비비를 자주 가리면서도 대충 훌쩍 넘어 버리기도 잘한다. 성격 탓이며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런 면에서 소음인들은 잘 따지지 않지만 일단 문제가 일어나면 매우 정밀하게 논리를 제시하며 보기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귀찮을 정도로 꼼꼼하다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