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인들은 현상에 임해 빠르게 판단하고 하나의 결론까지 빠르게 도달한다. 눈썰미가 좋고 -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아님 -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적인 신축성이 있는 사람들이 소양인들이다. 단 그것의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 관념이나 결과, 문화 등에서 결정될 일이다. 소양인은 꾸준하고 끈기가 없어서 그렇지 영감과 착상이 많은 사람들이다. 대체로 이런 특징이 빠른 행동도 이끌어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우수하고 뛰어난 것인지는 나는 모른다. 직감을 잘 - Good이 아니라 빨리의 - 하는 능력은 감을 빨리 잡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인식태도 즉 일단은 끝까지 집중하고 파고들어 요모조모 검토하고 추리하고 추론하는 것과 구별되며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또 요런 것도 있고 하는 식으로 별(別)하는 것과도 상대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문화 형태에 따라 어떤 국가, 사회의 -소양문화- 소양인들이 다른 문화권 - 태음소음문화 -의 소양인보다 직감하는 버릇이 더 많고 다른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구조적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2권에서 쓸 예정) 즉 소양형의 문화에서는 소양형의 성격이 그 나라에 가장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이는 그 나라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세계관에 대한 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고대 이래의 천재, 영웅, 성인 등의 뛰어난 사람들도 어렵게 여겼던 일이다. 하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아는 척을 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저 책의 내용을 여러모로 해석해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방어운전을 하듯이 평범한 사람들도 하나의 무기(?)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속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홀로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화도 잘 내고 성격도 불같고 열정적인 면이 많은 태양인들이 냉정하고 찬바람이 휭휭 부는 행동도 잘한다. 그러면서도 대체로 서글서글하고 사교성도 가장 뛰어난 편이다.

잘 비관하고 침체되는 소양인이 친구도 많고 평소에는 가장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친구가 많다는 것이 사교성이 즉 교우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소양인은 쉽게 흥분하고 - 怒로 착각하지 말 것 - 쉽게 다른 이에게도 동조한다.

성급하고 가볍다는 느낌도 주고 자기감정에 솔직하다는 느낌도 주고 뒤끝이 없다는 인상도 준다. 그렇다고 마지막 구절을 단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기 바란다. 이 모든 것은 대체적인 그저 윤곽을 잡는 것일 뿐이다.

고집스레 자신이 주관을 밀고 나가는 태음인이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포용하여 준다는 느낌을 준다.

태음인은 음흉하고 주관이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도 주고 푸근하고 속이 깊다는 느낌도 줄 것이다. 아마 그 태음인 자체의 인간성과 persona, 독자의 경험과 환경, 지식 등이 어떤 느낌에 대한 좋고 나쁨을 결정할 것이다. 희정이 급하다는 소음인이 일상적으로는 가장 조용한 느낌을 준다. 물론 소음인만 이런 것은 아니다. 소양인도 이런 사람이 많다.

소음인은 때론 의기소침해 있거나 어딘가 기분이나 몸이 안좋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그러나 일단 말이 왔다갔다하면 사근사근하고 싹싹한 반응이 오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약해 보이고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섬뜩할 정도로 강인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경쾌하고 때론 거친 소양인들이 한꺼풀 벗겨보면 게으르고 약한 모습을 갖고 있고 소음인들은 그 반대이다. -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다. - 소음인들은 차분하지만 태음인과 다른 점은 희정이 금방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희로애락의 즉 칠정의 성정을 고루 가지고 있다. 상인에 따라 어떤 하나의 성격이 특징적으로 자주 나타나기도 하지만 칠정은 성장환경, 문화구조 등에 따라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희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의 어머니가 어렸던 시절에 그 동네에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있었다 한다. 이 이야기가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먼저 말하며 행여 마음에 상처라도 받지 말기를 바라며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용서해 주었으면 한다.

어느 겨울 하루는 동네 청년들이 골방에서 잡담을 하다가 무슨 일에도 빠지지 않고 끼어 들어오는 이 귀머거리를 약올려 주기로 했다고 했다. 사연을 모르는 귀머거리가 방으로 들어오자 얼마 있다가 동네청년들은 막 웃기 시작한다. 그러자 자신의 신체적 결함 탓에 주변상황에 매우 민감한 이 귀머거리는 이쪽저쪽 눈길을 핑핑 돌리다가는 자기도 막 웃기 시작했다. 귀머거리의 이런 모습에 청년들은 더더욱 웃기 시작했고 이를 본 귀머거리는 배꼽을 잡아가며 웃어대고 청년들은 그 모습이 우스워 더더욱 웃어대고 뭐 그랬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어디 그 귀머거리일 뿐일까이다. 그는 신체적 기능이 불구일 뿐이지만 마음에 있어선 청년들이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예가 환경과 인간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구조를 만들고 그 인간은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이리 써 보았다. 인간은 누구든 기쁨을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를 가지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은 마음의 "시도"이기도 하다.

승부, 대결, 스포츠에서의 승리, 사업에서의 성공, 명예, 시험보고 난후 답을 맞힐 때 답이 맞아 가는 기쁨, 전자오락에서의 기쁨, 성교에서의 기쁨, 도박에서 자기 뜻대로 잘 풀려갈때의 기쁨,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 하다못해 도를 깨닫겠다는 것도 해탈을 하겠다는 것도 기쁨의 한 종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고 또 성장하며 자극되고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누구든 어린 시절을 거쳤다. 이 기쁨의 성정은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받고 일생을 두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 기쁨의 감정은 위와 같은 것 외에 화해와 조화, 용서, 이상의 추구 목적 실현에의 의지 등의 행위도 이끌어 내는 것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쁨이라고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려는 무의식적인 행위는 주변사람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자신의 성격을 파탄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몇몇 뛰어난 인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이따위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틀"은 생각할수록 "틀"을 벗어나려 할수록 그는 틀 속에 있게 된다.

틀은 바로 한 사람의 개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떠한 "틀"속에 있느냐 일 것이다. 이러한 "틀"은 태어났을 때 이미 만들어져 있고 또 스스로가 만들어간다. 가령 어린 시절을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있다하자. 그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귀여움은 지나쳐 과보호가 되었다하자. 그는 또 독자 또는 무남독녀 외동딸로써 그 부모가 아이시절의 그 아이의 응석을 다 만족시켜 주었다 하자.

그 아이는 애교 있고 깜찍하게 자랄 것이다. 어쩜 그는 사회 속에서도 사랑스럽게 행동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는 체홉의 귀여운 여인 올렌카처럼 늙어 죽을 때까지도 "사랑을 받는 기쁨"을 만족시켜야 할 버릇을 갖고 그 "틀"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그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괴로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이는 지나친 "희정"의 한 종류였을 뿐임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분명 사람은 딱딱한 윤리적 교육이나 스파르타식 교육보다는 "사랑"을 받고 자라나야 "사랑"할 수 있는 행위도 잘 할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더더욱 많은 갈등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진정한 기쁨을 모르는 인간은 사랑의 마음도 모를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