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론의 역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이래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연구하여 왔다. 인간은 매초 매분 무에서 유를 만들고, 죽음에서 생명을 이끌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아주 오랜 과거에도 동서양의 많은 의학자와 철학자들은 아마 경험등을 통해 인간에게 몇가지 형태의 체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듯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단지 인간에게 몇종류의 체질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논리체계를 세워줄 본체가 없었다. 즉 체질분류의 대상인 인간을 구분지을수 있는 실증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구체적으로 " ∼∼한 사람이 ∼∼한 체질이다 " 하고 말은 못하고 ∼∼한 체질이 있다고만 하였었다. 그러던 것을 이제마는 체질에 대해 완벽하게 밝혀놓은 것이다. 근세에서 현대로 접어들 시기의 인물인 이제마는 심리적 특성뿐 아니라 신체, 재능,사고행위의 방식과 행동적 특성 등에 대해서도 밝혀 놓았다.

사상의학에 따르면 체질은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유전되며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다. 이 체질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각 체질의 사람은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생리적 특성과 심성적 특징도 다르고, 사고행위나 재간, 욕심 등에 있어서도 서로간에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체질이 다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또 서로 체질이 다르고 재주가 다르기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 동서양의 학자들이 체질분류를 시도하기 이전 고대 한국에서 이미 인종의 분류를 시도한 글이 있다.

태백일사 삼신오제 본기에 보면 오행사상에서 영향받은 글이 보인다.

「 대저 구한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그 풍속은 모두 다 실제에 임하여 이치를 찾고 일을 계획하여 그것이 옳음을 구함이 같았다. 부여는 풍속에 가뭄과 병란 및 질병은 국왕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충성됨과 사악함과 살고 죽음은 필부에게도 같이 돌아오는 법이라 하니, 이것이야말로 그 한 증거가 된다.

색족(色族)은 어떠한 것일까? 황부인(黃部人)은 피부가 좀 누렇고 코는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요, 백부인(白部人)의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인(赤部人)은 피부가 녹 쓴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인(藍部人)은 풍족(風族)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색깔의 인종이라고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 」

마치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몽고만한 대제국이었을 때 쓴것 같다.

삼신오제 본기는 한웅이 신시(神市)- 혹 배달국이라고도 함 - 를 건국하기 전(BC 3898)인 한국(桓國)시대의 기록으로 생각된다.

삼신오제 본기가 쓰여있는 태백일사는 고려말의 인물인 이맥(李陌)이란 인물이 (14세기) 쓴 책으로써 뒤에 20세기 들어 계연수 선생에 의해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와 함께묶여 한단고기라는 이름으로 편찬되었으나 많은 국내 사학자들에 의해 사료로서의 가치를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한단고기의 내용을 많이 인용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가 우리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고 지나치게 폐쇄적,구별적이고 축소지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와같은 삼신오제 본기의 글은 과거 이러한 분류가 시도되었다는 기록이 있기에 적어본 것이다.

이하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을 쓰기전까지의 동서양의 체질론에 대해 적어보겠다.

①서양의 체질론

서양에서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갈레누스를 거쳐 철학자 칸트를 비롯,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을 비롯, 크레치머 등의 사람들이 체질이나 사고행위, 심리상태 등에 의거, 인간을 연구하였다.

단기고사에 보면 구물단제(BC 425∼396) 때에 서백원이라는 이가 ' 사상의학 ' 을 지었다고 한다. 서백원이 ' 사상의학 ' 을 지었다고 하는 시기보다 조금 앞서 서양에서는 히포크라테스(BC 460∼377)가 인간의 체질을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4체액설로 분류하였고, 후에 갈레누스(BC 179∼129)가 이를 발전시켜 다혈질, 우울질, 담즙질, 점액질의 4기질설을 만들었다.

다혈질은 사교적이고 흥분이 빠르며 쾌활하고 성격이 잘 변하고, 우울질은 인내력이 많고 고독하며 의심과 시기심이 많고 주관적이고 보수적이며, 담즙질은 용감하고 정열적이며 외향적이고 솔직하며 매우 객관적이고 인내심이 적으며, 점액질은 안정되고 인내심이 많으며 성격이 느긋하다고 하였다. 갈레누스의 4기질설이 이후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당시에 이미 갈레누스는 상당한 정도의 분석적인 관찰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누스의 체질분류는 엠페토클레스의 4원소설에 영향 받은 듯하다. 그리스 시대 도리아의 식민지인 시실리 섬에서 태어난 엠테토클레스(BC 490∼430)는 만물의 본질에는 지,수,화,풍의 4원소가 있으며 이 4가지가 만물의 뿌리라고 하였다. "지"를 땅 혹은 흙, "수"를 물 "화"를 불 , 風을 공기·공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天이라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하게 되면 엠페토클레스가 말하는 만물의 뿌리는 천·지·화·수가 되며 동양의 易의 사상과도 통하는 면이 있게 된다. 천지화수는 주역에서 말하는 건·곤·감·리와 관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태극기에도 건·곤·감·리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흥미롭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계를 보는 눈은 과거에 오히려 일치되는 면이 많았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독일로 이민온 대철학자 칸트도 도대체 인간이란 어찌된 동물들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는 인간의 기질을 감성적 기질과 활성적 기질로 나누었다. 이른바 햄릿 기질과 돈키호테형 기질일 수 있다. 그리하여 다혈질·우울질을 감성적 기질에, 담즙질·점액질을 활성적 기질에 분속시켜 놓고 다시 다혈질과 담즙질은 적극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우울질과 점액질은 소극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였다.

요약하면

다혈질 : 감성적, 적극적

우울질 : 감성적, 소극적

담즙질 : 활성적, 적극적

점액질 : 활성적, 소극적

감성적 기질 : 다혈질, 우울질

활성적 기질 : 담즙질, 점액질

적극적 성격 : 다혈질, 담즙질

소극적 성격 : 우울질, 점액질

복잡하지만 사상의학의 분류와도 상당히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사상의학으로 분류하는 체질은 외향성,내향성, 적극적, 소극적, 우울질,다혈질 등과는 그 분석의 뿌리가 다르다.

BC 170년경 겔렌이라는 학자는 인간의 성격은 내분비액에 의해 형성된다 하였다. 비만체질이니 허약체질, 산성체질, 알칼리체질, 알레르기체질이니 하는 말들은 이와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여기서 말하는 체질은 치료나 보완에 의해 개선되거나 바뀔 수도 있으니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과는 그 근본 개념이 다른 것들이다.

체질분류에 있어 생리적인 면을 연구한 사람 중에는 알프레드 듀러(16세기)가 있다. 그는 인류에는 육체적으로 갖가지 유형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의 유형은 개인의 피부색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외부의 균형을 생각해서 인간의 성질을 짐작할 수 있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 역시 그리 큰 발전을 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석의 대상이 되어 기준을 이끌어내야만 할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가변적이니 말이다.

철학자 헤겔은 골상학에서 인간의 뼈를 놓고 이 뼈의 형태는 어떠하니,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 될 사람이며, 저런 뼈는 또 저렇게 생겼으니 어떠어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하였다. 대철학자가 이렇게 말한 때문인지 서구에서는 주로 심리학 방면으로 발전이 이루어졌고 20C 에 들어서야 , 독일의 크레치머에 의해 인간의 체형과 연관된 체질 연구를 하게 되었다.

얼마전 신문에서 보니 미국의 모유명대학에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신체사진을 찍어 놓는다고 한 보도를 본 일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몇십년 후에 어떤 인물이 되나를 분석한 후 체형과의 관계를 연구하려함이 목적이라는 외신을 보았다.

미국의 모유명대학의 연구방법은 다분히 현상론적인 것으로써 이의 문제점은 각 현상들을 모두 각개 분석한 후 보편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개별적 현상에 따라 수많은 이론들이 난립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내 그 대학의 그러한 시도가 본체론적인 개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만 집착한 이론은 끝도 수도 없는 주장들이 저마다 옳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하는 바는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 모두가 옳다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그리하여 보통사람들은 그네들이 주장하는 개별적인 현상들속에서 헤메게 될것이다. 그러기에 칸트는 개념없는 지각은 맹목이라고 순수이성 비판에서 말하였을것이다.

본체론 역시 문제가 있다. 그릇된 본체론의 채택시는 마치 옷의 첫단추를 잘못 끼운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본체론이 올바르다하더라도 그 본체론 역시 아마 상대적인 것이 있을것이고, 올바르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험과 주관과 부딪쳐야 한다. 본체론과 현상론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판가름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사람인(人)자 처럼 서로에 의해 서로가 발전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생각한다.

필자가 말하는 인간에 있어서의 본체론은 사상의학이다. 몇만 명의 학자들이 수십 수백 아니 수천만 가지의 현상을 분석,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사람이지만 그 한사람의 천재적 착상과 영감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임상경험에서 인간에 대해 종합한 결론이 본질, 즉 진리라 할 수 있다면 일단은 수많은 현상론의 홍수속에 갇혀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알기 위해 온 세상 바닷물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과 비교하여 볼 때 크레치머의 연구 결과는 매우 조잡한 수준이다. 그가 연구한 인간의 체형과 심리적 특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키가 작고 단단한 체구의 왜장형(矮壯型)은 손발이 짧달막하고 두터우며 외향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흥분을 잘한다 하였고 기육형(肌肉型 : 살과 근육형)은 기육이 발달하여 있고 균형이 잡혀있으며 추진력은 좋지만 내향적이며 수장형(瘦長型 : 마르고 키가 큰)은 키가 크고 몸이 여리며 계란형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생각이 깊고 내성적이라 하여 놓았다. 이 연구 결과는 많은 관심을 끌긴 했으나 심리학자들에 밀려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었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인간에 대한 분석은 심리학적인 방면으로 큰 발전을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프로이드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글을 발표한후 주로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 심리 ' 라는 분야로 큰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이드 이전에도 심리현상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들이 있었다. 프로이드와 동시대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구스타프 융도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유형을 구분하였었다. 융은 그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임상경험 뒤에 인간이 유형을 구분 지어 놓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유형을 감각, 직관, 감정, 사고의 4가지로 구별지어 놓았다. (하여간 인간에게 4가지 체질은 있긴 있나보다.)

그리고 이들을 각각 내향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하여 내향성의 감각, 직관, 감정, 사고형의 인물과 외향성의 감각, 직관, 감정, 사고형의 8가지의 사람들이 있다 하였다. 이는 많은 심리학자들로부터 반론을 받았었다. 이상이 필자가 알고 있는 서구에서의 인간에 대한 분석의 요약이다. 엄밀히 말하면 근대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연구는 체질론이 아니고 심리학의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