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론을 쓰게 되기까지

「 태·소·음·양인은 식견과 재국( 才國 : 재주와 도량)에 있어 각각 장점이 있고 또 문필, 신체적 재능, 가무(歌舞), 읍양( 揖讓 : 예를 취하는 동작, 사양하는 태도 등)으로부터 박혁( 博奕 : 장기와 바둑 )의 잔재주와 작은 동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면면히 서로 같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의 넓고도 다양한 재능이 조화 속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

- 동의수세보원 中 -

평범한 글같지만 이 말에 홀려 필자는 몇 년을 보냈다.

동의수세보원이라는 책과 접하기전 필자는 직장은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의 영향으로 침술에 대해 처음으로 대하게 되었었다. 그 당시는 그럭저럭 지내다가 얼마후 하도 심심하여 책을 한 권 사보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양의학과 나아가서는 동양의 사상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저 의학적인 쪽만 관심이 있었다. 침술에 달인(?)이 되면 뭔가 정신이 확 깨이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었다. 과학적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둘째치고 공부하면 할수록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침술에도 어떤 원리가 숨어있지 않을까하여 몇 권의 책을 더 사보며 조금씩 깊게 빠져들어 갔었다.

음양오행사상을 읽으면서도 몇 가지 의문사항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의학을 하시는 분들이 보면 필자가 잘 모르거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공학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음양오행의 내용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어딘지 무속적이고 신비적인 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대로의 시술방법이 적용되어 보편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지도 의문이었다. 거의 같은 증상에 같은 침술 처방에도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는다면, 그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터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었다. 선천적으로 다른 체질을 갖고 있다면 위와 같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는 왜 한의학이 서양의학에 밀려있게 되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또한 필자같이 서구식 교육을 받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도 없는 것 같았다. 늘 하던 버릇대로 벌려만 놓고는 좀 껄적거리다가 흥미를 잃어버릴 쯤이었다. 언젠가 고등학교시절에 배운 사상의학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떠올랐다. 잘 기억하진 못하지만 뭔가 대단한 내용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다시 희망을 갖고 가장 쉽게 쓴 듯한 - 알기 쉽다고 겉장에 쓰여있기에 - 책을 한 권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읽어보았다. 의원론편이 가장 내용이 많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을 건성으로 읽었었다. 책처음에 나오는 성명론·사단론 등은 그런대로 읽어주겠는데 의원론은 무슨 말인지 더욱 모르고 침술에 관한 것도 음양오행사상에 대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더 보았다.의원론편은 여전히 모르겠고 처음엔 알 것같던 성명론 등은 더욱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더 쉽게 씌여진 책은 없나하고 몇 권 더 사보게 되었고 그 중에는 원문이 들어있는 것도 있었다. 해석된 글은 혹 역자가 자기 생각대로만 썼을것 같아 뜻하지 않게도 나중에는 천자문을 사게까지 되었다. 천자문을 사게 된 것은 유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나마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였다. 이러한 도중 어렴풋하게나마 가닥이 잡혀오는 것은 모든 인간은 4종류의 체질로 구분되어져 있으며 , 그 네 종류로 구분된 인간은 각기 다른 신체적 특성과 성정과 행동상의 특징이 다르고 그에 따라 약의 처방과 치료의 방법도 달리해야 하며 특히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사상의학대로라면 침술의 처방법도 당연히 4종류로 구분되어져야 할 것이었다. 체질에 따라 침술의 처방이나 보약의 처방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락을 찾는 것과 증세를 판단하는 것 등 너무 어려웠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사상인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성격과 외모상의 특징 외에 좀더 쉽게 체질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일차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의수세보원의 처음에 나와 무언가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성명론·사단론·확충론·장부론 등은 볼때마다 모르는 것이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흥미를 끄는 요소가 한 두개씩 발견되었다. 이때쯤에서 필자는 이 단원 첫부분에 쓰여있는 글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심코 넘어갔던 그 내용도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방향도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성명론 등은 내 가슴 어딘가에 앙금이 되어 내려앉아 무슨 생각을 하려해도 개운치가 않았다. 음양오행도 중요하지만 유학에 대해 알지 않고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난 후에는 사서삼경 뿐아니라 노자, 장자, 한비자 등의 책들과 게다가 균형 잡힌 사고를 - 아무래도 서구의 학문이 더 발전적인 것 같기에 - 하여야 겠다는 생각으로 서양철학책까지 뒤적거리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보태지며 유학과 철학뿐 아니라 역사, 심리학, 의학, 물리학, 각종 문학 서적까지 마구 사들여다 쌓아두고 보다 보니 거기다가 회사생활과 집안일도 있고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겹치며 잡다하고 거대하게 벌려만 놓고 하나도 수습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것도 확실히 모르고 저것도 확실히 모르고, 무엇하나 제대로 아는 것 없이 이런저런 공상만 떠오르고, 그저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는 식의 상식만 잡다하게 머릿속에 들어있게 되었다. 필자는 이 책이 이러한 상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는 중에도 하나만은 미친개처럼 물고 있었다.

태소음양인은 성정과 행위상의 특징이 각기 다르고, 나아가 지구상에는 국가와 지역별로 태소음양의 문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쓰는 글들은 대체로 이때 이후 습득한 지식에 의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만 줄이겠다.

태소음양의 문화이야기가 나왔다. 필자는 어떤 지역에는 소양인이 많고, 어떤 지역은 소음인이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국가는 그 나라 국민 중 소양인들이 많고, 또 어떤 국가는 태음인이나 소음인이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국가든 태소음양인이 25%씩 정해져 있는 국가는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러하다면 다수를 점하는 사상인의 특성이 그 지역이나 국가 밖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한 지역이나 국가의 특징은 이러하지만은 않다. 이 외에 그 나라의 역사적·지리적·환경적·사회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 이제마 자신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제마 생존 당시 함흥지역의 사상인 비율은 한 고을의 인구를 만명으로 할 때 태음인 5000명, 소양인 3000명, 소음인 2000명 순이며 태양인은 그 수가 가장 적어 그 수가 10명 이내라고 하였다. 이것은 100년전 당시 함흥지역의 예이고 오늘날의 서울 중부지방을 조사한 바로는 소양인이 가장 많고 태양인도 그 수가 매우 많다고 한다. 」

- 신비한 체질의 세계 中. 이종오 -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었다. 만약 10명이 모여있는 한 모임을 가정하고 그 중 8명이 소양인이며 2명이 소음인이었다 하자.

이런 구조속에서 소음인은 또는 소양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더 나아가 지역과 국가적으로는 상대적 소수의 상인들은 어떤 특징을 띠게 될까?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소음인은 잘 물러서려는 특징이 있고, 태양인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특징이 있다. 현상앞에서 소음인은 소음인대로의 논리가 형성되어지고, 태양인은 태양인대로 논리를 만들 것이다. 소음인이 태양인보다 절대적 다수의 구조라면 태양인의 사고 행위와 행동상의 특징은 제약을 받을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가정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 예를 들면 다른 종족의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약탈하면서 살고 있는 전사의 종족 중에 남을 죽이고 약탈하는 것에 반발하는 개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감정은 종족의 감정과 모순되기 때문에 그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서 분리되고 추방된 것과 같이 느끼는 위험성을 의미한다. 」

- 에리히 프롬 -

양인 특히 태양인은 공격적인 행동을 음인보다 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음인은 양인에 비해 대체로 덜 공격적이다.

공격적인 구조의 사회속에서라면 소음인이나 태음인 그리고 같은 양인이지만 폭팔적으로 흥분하다가도 쉽게 침체되며 냉소적으로 되기쉬운 소양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며 사고하고 행동하게 될까? 어쨌든 한 개인은 집단속에서 고립되어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홀로서는 존재이지만 또한 그 모두가 홀로인 타인들 속에 있다.

만약 어떠한 사고 방식이나 행위형태가 그 지역이나 국가의 전체적인 특징이라면 그 지역이나 국가에서 태어나는 인간들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본인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나가면 평범한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함부로 세상일에 나서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어떠한가? 선생님 물음에 또박또박 - 특히 남보다 잘 - 대답할 것을 가르친다. 한국의 대다수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누구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아마 맞고 들어오는 것은 못 볼 것이다. 열정적인 부모는 돈을 물어주어도 맞아서 코가 깨지는 것보단 남의 아이의 코피를 터지게 해놓고 들어오길 바랄 것이다.

왜 이러할까? 그래야만,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만 그 사회속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일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 이기고 돌아오라고 - 속내야 어떻든간에 그들이 살아온 경험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라고.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그렇기에 의혹을 갖고 그 원인을 분석함에도 가장 오류가 적을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부모가 말을 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나라의 사회가, 문화가 말을 하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속에서 살아온 부모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문화는 분석학적인 면에서 볼 때 구조이고, 아이와 부모는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구조와 인간의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구조는 또 구조끼리 관계하고, 한 인간은 그 나름대로의 구조를 갖고서 인간과도 구조와도 관계한다. 구조는 크게는 문화권, 국가권, 지역, 가정으로 축소되어질 수 있으며 작게는 사상인과 장부의구조 스스로의 성정상의 차이와 생각하는방식, 버릇등으로 분류된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이런 글이 있다.

" 우리나라 팔도 중에 인심이 두텁기로는 평안도가 첫째고 다음은 경상도로써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 땅과 잇닿아 있으므로 백성의 성질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이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이어서 많이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데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의 들판 고을은 백성의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좆는데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민을 논한 것이고 사대부의 풍속은 또 그렇지 않다. "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는 평이 좋지 못하다. 참고로 이중환은 사색 중 남인에 속해있었고, 노론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하였다. 노론은 소론과 함께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고 서인은 기호지방 사람들의 수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윗글의 말들은 가뜩이나 지역감정이 팽배해 있는 요즘, 괜한 오해나 살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좌우간 원문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어떤 사람이든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중환의 글만을 놓고 볼 때 북쪽으로 갈수록 양인기질의 사람들이 더 많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음인기질의 사람들이 더 많은 것 정도는 추측하여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좁다고는 하지만 각 지역마다의 특색은 매우 다름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이러한 특색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 뿐아니라 문화와 환경 등의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검토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는 그 살곳을 가려서 살아야 한다 말하였고, 이중환도 인심편에 보면 그곳 풍속이 좋지 못하면 반드시 자손에 해를 끼친다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문화적 구조는 이책에서 앞으로 논의할 내용과는 별도로 한 인간의 인격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함은 두말할 것 없겠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람은 세밀하고 중국 사람은 느리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말들은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고 대체적으로 그들 나라에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말일것이다. 이런 글을 사상의학적으로 보면 그 나라에 어떠한 체질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하여 볼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은 국가의 특성은 그 국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국민성으로 이루어진다 하였다. 인간에 대해 말을 할 때는 마치 요새 잘 팔린다는 소피의 세계가 ' 너는 누구냐 ' 로 시작되는 것처럼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먼저 논하여야 할 것이다.

이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를 보통은 ' 나 ' 로 부터 혹은 ' 나와 너 ' 의 관계로부터 시작한다.

필자는 이를 이제마의 ' 동의수세보원 ' 에 나와 있는 ' 사상인 ' 으로부터 시작하여 보기로 하였다. 사상론의 출발은 실존주의 철학적이 아닌 유물론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필자의 주장은 너무 구조주의적이라는 비평도 나올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런분들은 이책을 정독한 것이 아닐것이다.우리 인간들을 둘러싼세계에 대한 분석은 그야말로 분석일 뿐이기 때문이다. 분석의 방법이 다를뿐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의할 것은 이 책은 물리·수학 책이나 영한사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마나 혹은 필자가 말하는 사상인의 특성을 법칙이나 구구단 또는 모르는 영어단어를 사전을 찾아 우리말과 결합시키듯 하지 말아 달라는 거다. 그리고 또하나 책을 읽고난 후 독자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나 생각에 맞게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책을 떠나서도 너무 책에 의지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단고기 소도경전 본훈에 이런 글이 있다.

「 스스로 中一의 신이 있어 능히 三이 된다.

삼신은 천일, 지일, 태일이다. 」

독자는 中一이란 말도 천일, 지일, 태일이란 말도 생소할 것이다. 천일은 하늘, 지일은 땅, 태일은 인간을 말한다는 것쯤으로 알아두자.

3세 단군 가륵은(재위기간 BC 2182∼2137) 中一을 두고 이런 말을 하였다.

「 천하의 대본은 우리 마음의 중일에 있다.

사람이 중일을 잃으면 일은 성취되지 않는다. 」

한 인간으로 말하면 단군 가륵이 말한 中一은 확고한 자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절망한다. "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말이다.

자아는 항상 분열하고 절망하고 또 분열을 통일시키고자 하며 절망속에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도 할 것이다. 여하간 인간은 절망까지는 몰라도 방황을 겪어왔고 또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까뮈가 말하는 시지프스는 언덕위까지 밀어올렸던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어깨에 힘을 주고 그 바위를 다시 위로 올리려 언덕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시지프스같은 상황속에 있고 싶지않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려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는 편이다.

한편 문화나 사회속에서의 中一은 그 국가나 사회의 이상원칙 등 가치판단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의 공통 분모가 되는 구심점, 통념, 관념 등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단군 가륵의 말에서 한 사회의 대본은 그 사회의 중일에 있으니 그 사회가 중일을 잃으면 혹 없으면 그 사회는 원칙이 없이 우왕좌왕 할 것이라는 생각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사회의 중일은 누가 만들까? 인간이 주체라 생각할 경우는 구조를 떠나서는 ,구조가 주체라 생각할 경우에는 인간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하면 필자는 인간들이라고 대답하겠다. 역사속에서 직·간접으로 피부로 와닿는 현상을 겪어야 하는 당사자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상의학을 해설하는 형식으로 문화속의 한 인간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써 나갈 예정이다. 필자의 능력으로는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지만 이 책이 어느 사회든 그 사회의 中一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