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

' 동의수세보원 ' 이라는 책은 이씨조선이 일제에 의해 쓰러져가던 시기인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초엽 유학자이며 의학자였던 동무 이제마 공이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사상인의 심성적 특징과 이제마 자신의 철학관 등이 담긴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광제설 장부론, 또 하나는 그 자신이 창안한 사상의학에 따른 치료와 경험을 담은 의원론 편이라 할 수 있다.

사상의학에 따르면 인간은 태소음양인 중 어느 한 체질을 갖고 태어나며, 이 체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은 장부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써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산성체질이나 알카리성체질이니 할 때의 체질이나 체질개선에서 말하는 체질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은 유전되며 일생을 통해 변하지 않는다. 태음·태양·소음·소양이란 단어는 유학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주역에서 가져온 것이며 한문으로는 四象이라 한다.

주역 계사전에 보면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

라는 글이 있는데 사상의 출전은 이 글에 나오는 사상(四象)이다.

양의(兩儀)는일단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양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음양은 다시 그 안에 양과 음을 생하며 순수한 음인 태음, 음에서 양이 생기는 소양, 순수한 양인 태양, 양에서 음이 생기는 소음으로 된다. 여기서의 태·소음양이 사상이다.

사상이라는 단어의 출전은 주역이지만 이제마는 주역과는 별 관계없이 책을 썼다. 그리고 ' 격치고 ' 라는 또 하나의 저서에서는 양의를 心身, 사상을 事心身物이라 하여 자신만의 어떤 체계를 세워놓았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사상의학은 易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의학의 ' 四象 ' 이라는 단어가 易에서 나왔고 易은 흔히 말하는 점서이기 이전 우주의 이치 - 이 속에는 모든 자연 현상과 생명체의 이치가 포함되어 있다 - 를 밝혀 놓은 책이다. 인간 역시 우주속에 있고 그 우주의 이치에 따라 태어났다. 사상의학과 역은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역과 관련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易과 周易(주역)을 혼동할 것 같은데 易이 필자가 말한 의미라면 周易은 역을 나름대로 해석, 인간사의 길흉을 묻는 점서의 성격을 가진 책을 말한다. 易에는 복희易과 문왕이 만들었다는 주역 그리고 김일부의 正易이 나왔지만 필자가 이책에서 사상의학과 관련시켜 말하는 易은 우주의 질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문왕이라는 사람이 보고 주역을 만들어 내게한 바로 그 역(易)에 대해 교과서처럼 말하려 하고 있다.

인간은 우주속에 작게는 지구속에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우주의 질서속에 있으며, 인간 역시 그 속에 있다. 곧 인간도 易의 이치속에 있는 것이다. 易을 알면 소위 우주의 질서나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것을 별 문제라 하더라도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는 본문을 읽어가다보면 나름대로 가닥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마는 의학자이기 이전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유학자인 이제마가 의학을 배우게 된 것은 그 자신의 고질적인 질병때문이었다 한다. 그의 병은 구역질을 해대며 입에서 침과 거품을 흘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학서적을 탐독하던 중 우연히 사상인의 性理를 알게 되었다 한다.

「 나는 의약의 경험이 있은지 5,6천년 후에 태어나서 먼저 사람들이 저술한 글을 가지고 우연히 사상인의 장부의 성리를 얻어서 책 하나를 저술하고 이름을 동의수세보원이라고 했다. 」

- 동의수세보원 본문 중 -

이제마 역시 유학자였던 만큼 또 동양의학이 음양의 이치에 의해 씌여졌기에 易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추정이지만 그가 사상인이라하여 그가 발견한 네 종류의 사람들은 이름지음에 '사상' 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그 이름을 붙임에 易을 생각하고 그런 듯 하다.

그러나 사상의학이란 말을 이제마가 처음 쓴 것은 아닌듯하다. 단기고사 구물단제(BC 425∼396 44대 단군)편에 보면

"서백원이 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관한 책을 지어 단제께 바쳤다"

라는 글이 나온다.

이제마가 이 글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에 의하면 이제마보다 2000년 먼저 사상의학에 관한 책이 쓰여졌을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책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제마가 말한 먼저 사람들의 저술은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 등의 한의학책에 쓰여졌던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더욱 많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학의 근본이 황제내경의 오태인론이나 주역의 팔괘인은 분명 아니다. 오태인론이나 팔괘인 등은 오행과 주역을 연역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론이나 괘를 연역한 것에 불과해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다 할 수 있다. 때문에 사상의학의 구분과는 비교되는 면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완전히 다르다. 이에 비해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귀납적이다.

오행이나 팔괘의 특징에 따라 인성이나 인물의 특징을 분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4종류로 분류되는 것을 발견해낸 후 그것이 易에서 말하는 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호에 의해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속에서 기호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후 사상인에 대해 연구하고 또 여러 가지 사실들을 귀납한 후 동의수세보원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필자같은 사람도 최소한의 의심을 가지고 동의수세보원을 연역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제마가 사상인의 이치를 알게 되었을 때는 마치 실성한 사람과도 같았다한다.

하루는 어떤 처녀가 치료차 이제마에게 왔다. 요즘이야 속살을 보이는거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남녀칠세 부동석의 조선시대에 어찌 외간 남자가 쳐녀의 손목한번 제대로 잡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여자라면 순종하게 교육받아 왔고, 목소리 또한 나지막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선 어떤 여자든 일단 소음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처녀의 체질을 판단하기 힘들어진 이제마는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처녀더러 옷을 하나씩 벗으라 했다. 의사가 자신을 치료하려 그러려니 하고 처녀는 옷을 벗었고, 마침내 속옷 하나가 남자 못 벗겠다고 앙탈이었고, 이제마는 겁탈이라도 하려는 듯 처녀의 옷을 낚아챘다. 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기절하여 쓰러졌고 이제마는 이제 알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마는 그녀를 소양체질로 판단하고 약을 써서 그녀의 병을 고쳐주었다한다.

소양인의 성품은 가만있지를 못하고, 자꾸 들썩거리며 흥분이 쉽게 일어나고, 쉽게 가라앉는 사람들이다. 폭발적으로 흥분하다가도(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쉽게 안으로 삭어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곤 조금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동하는 싱숭생숭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상인의 이치를 깨달은 이제마는 더욱 정밀하게 사상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상인의 신체적 차이점 위에 성정상의 특징, 재주와 장단점, 행위상의 특징, 생리적 특징 등을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광제설 등을 통해 매우 엄밀하고 간략하게 분류하여 놓았다.

아무런 원칙이나 개념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현상을 판단하려하면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한 점의 빛이라도 희미하게나마라도 보인다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방향을 잡고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사상의학은 인간과 인간들이 엮어내는 갖가지 현상들을 판단함에 어둠 속에서의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엮어내는 역사와 문화를 사상의학을 이해하고 보면 한층 새롭고 흥미있고 정확하게 생각하여 볼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마는 사상의학에 대한 연구와 책을 저술하던 중 어떤 생각에서인지 격치고(格致藁)라는 책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 격치고의 格致는 대학의 격물치지를 말하며 격치고는 격물치지에 대해 쓴 원고라는 뜻이다. 격물치지의 풀이를 놓고는 조선시대 이황과 기대승 간에 한바탕 설전이 오고 간 적이 있지만 독자는 현상 사물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을 얻는다는 것쯤으로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 격치고는 의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의 책이다. 」

- 송일병 교수 -

격치고는 방대한 유학의 사상과 저술을 이용, 이제마가 사상의학의 형이상학적인 목적을 위해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마는 사상의학을 단순히 의학적 차원이 아닌 인성론을 비롯 우주론과 연결시키며 심신의 수양을 위한 차원으로까지 발전시키려한 것이다.

太極心也 兩儀心身也 四象事心身物也

八卦 事有事之終始 物有物之本末

心有心之緩急 身有身之先後

- 격치고 -

태극은 마음이며, 양의는 마음과 몸이고, 사상은 일과 마음과 몸과 物(적절한 어휘가 생각 안나 그대로 적었다. 격물(格物)에서의 物일 것이다. 현상세계일 것이다)을 말하며, 팔괘는 일에는 시작과 끝이, 物에는 그 진상과 허상이, 마음에는 느리고 빠름이, 몸에는 - 즉 행동에는 -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이 있다는 말이리라.

사심신물이란 마음과 형체를 가진 인간이 일을 하고 현상되어오는 세계를 분석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상의 글만 보면 격치고는 동의수세보원의 미비점을 보완하며 어떤 사상체계를 세워놓은 책임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유학적인 견해일 뿐 현재와 같은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되어있는 시대에는 적합치 않다고 본다. 이제마의 목적은 이상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聖人까지는 못 가더라도 聖人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善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상사회가 이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제마의 생각이었던 듯하다. 이러한 면은 동의수세보원에서도 많이 나타나있다. 유학이 그렇듯 교훈적이고 윤리적인 글이 많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