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와 태양 소양 태음 소음

주자는 음양을 기(氣)라 하였다. 그러나 음양은 모두 기(氣)일 수 없다. 기(氣) 또한 모두 음양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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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이론과 기(氣)의 이론은 서로간 공유되는 부분도 있고 각자적인 면도 있다. 주자가 말한 것은 빗금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주, 자연, 인체 등을 말하며 음양의 원리로써 질서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음양론이라 한다. 단순히 음양의 논리만 말하면 유물론이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기(氣)는 자체적으로는 운동, 생명, 힘, 작용 등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외에 음양론과 결합되면서 범주( categorie ), 종류의 개념까지 갖게된다.

인체는 아니 모든 생명체 및 물체는 기(氣)를 가지고 있다. 혹 기(氣)를 띄고 있다. 이러한 기(氣)는 음양의 논리와 결합되어져 자연의 질서를 설명할 수 있다. 우주에서의 기(氣)도 음양의 논리에 의해 설명되어질 수있다. 소우주라 할수 있는 인체에 있어서도 기(氣)는 음양의 개념과 결합되어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신呵氣包 : 신이 氣( 김, 숨, 생명 )를 불어넣어 감싸 안았다.

- 삼일신고 -

여기씌여있는 氣라는 글자가 처음에는 무슨 글자였는지는 모른다. 김, 숨 등과 관련되는 말을 다시 옮겨 적으며 氣라 하였을 것같다. 성경에도 여호와가 흙으로 만든 인간의 코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었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하며 모체 밖에서의 생명을 시작한다. 氣는 바로 생물체에 있어서는 생명현상을 있게 하는 것이며 무생물에 있어서도 그 특유의 성질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태극이 氣로써 해석되었었다. 중국철학에서 氣는 처음에는 안개, 또는 아지랑이, 수증기, 김 등의 모습에서 그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맹자 시대에도 호연지기라 하여 氣에 대한 글이 있다. 그러나 맹자는 氣에대해 말하기 힘들다 하였었다. 한대에는 전한의 동중서와 후한의 왕충에 의해 인간을 포함한 자연현상, 천지의 질서 등은 모두 氣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고 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석되어 졌었다. 그 당시 氣의 이론은 오늘날의 과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氣로써 또는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것은 이보다 수천년전인 한웅시대에 이미 있었던 듯 하다.

BC 3512년 태우의 한웅때 백성들에게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 조식 하여 精을 보존할 것을 가르쳤다. - 한단고기 소도경전본훈 中 -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氣를 기르는 훈련법인 것이다. 氣에 대한 윤상철 기공협회 회장의 글을 보자.

「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근원은 물론 우주의 근원까지도 氣로써 이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氣는 생명력의 근원이며 氣가 취합한 것이 바로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氣 가운데서도 순수한 精氣가 몸 안을 끊임없이 순환함으로써 생명체의 기능이 가동되고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정신기능을 지배하는 마음의 활동도 氣에 의해 좌우된다. 물질, 생명, 마음은 모두 氣의 작용이며 그것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조화하고 상승하며 존재한다.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氣에 의한 것이며 생명과 정신의 기능도 氣의 작용이다. 때문에 氣가 몸에서 떠난다는 것은 생명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氣가 부족하거나 균형이 무너지거나 氣의 질적 변동이 생기면 병이 되는 것이다. 그 氣는 우주공간에 가득차 있으며 가득차 있는 氣가 응집과 확산을 되풀이 하면서 우주의 만물이 형성되고 또 변화하여 소멸되는 것이다. 이것이 氣의 기본개념이다. 」

이 말을 전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유는 氣로써 모든 것을 보면 모든 것은 氣로써만 해석되어 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기호는 다만 구별되어 있는 하나일 뿐이다. 기(氣)가 모든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다면 위의 글은 氣에 대해 가장 잘 요약되어진 글이라 판단해도 될 것같다.

인체에 있어서의 氣는 크게 선천적인 氣와 후천적인 氣로써 나누어진다. 선천의 氣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고 - 풍수지리에서는 땅에서도 매우크게 영향받는다. - 후천지기는 호흡하고 음식물을 섭취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얻는 氣이다. 선천의 氣야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쳐도 후천의 氣는 운동, 조식호흡이나 감정의 조절, 음식물의 섭생 등을 통해 얼마든지 조절할 수가 있다. 인체에 있어서의 氣는 선·후천의 氣가 합쳐져 있다 할 수 있다. 이 氣는 후천적으로 유전적으로 크게 영향받으며 건강과 활동, 체력, 사고행태, 감정행위까지 두루 관계되어 있다.

이러한 氣는 물질일까 비물질일까? 단순히 입자와 파동의 개념으로 판단하면 될까?


< 그림 000 >

물질과 비물질 유(有)와 무(無) 실증(實證)과 직관(直觀)은 모두 서로 개별적인 단어들이지만 또한 서로 연관될 수 있기도 하다. 그 조합과정에서 진리도 부조리도 나오게 된다. 물질이냐 비물질이냐 형체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하는 관점으로 氣에 대해 생각하려는 것은 실증적이고 유물적인 사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서구철학에서는 깊게 논의되었고 발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필자가 가타부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000 오른쪽의 그림처럼 A, B의 관점에서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물질과 비물질의 관점 외에 다른 관점 간단하게 하여 A, B의 자리에 유물론, 관념론이나 직관, 실증 등을 위치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을 한 번 생각해보자. 여름날 바닷가의 캠프파이어를 연상하면 된다. 타닥타닥 거리며 불길이 붉게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고 불의 열기를 타고 작은 잿조각들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불 주위로는 둥글게 사람들이 모여 여름밤을 둘러 감싸고 있다. 어느 시간 불은 서운함과 아쉬움을 남기며 꺼져 가고 거의 완전한 연소가 된다면 남아있는 것은 검회색의 재밖에 없을 것이다.

잔뜩 쌓여있던 장작더미는 이제는 재가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남아있는 것은 간밤의 불에 대한 기억일 뿐일 것이다. 물질과 비물질의 관점에서 보면 氣는 이와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간밤의 장작더미는 이제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 그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화학적 작용에 의해 열을 발생시키고는 단지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 것일까.

이러한 생각은 입자와 파동간의 관계처럼 상대적인 개념에 의한 것은 아니다. 또한 氣는 이러한 개념 이외의 개념도 가질 수 있다. 건조한 지역의 식물은 줄기와 잎으로는 습기를 잘 보존하고 또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뿌리로는 수분을 강하게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외계와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성질을 갖게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살아남아 있기도 할 것이다.

이것을 두고 건조한 사막지역의 식물에는 그 식물이 갖고있는 각종 구조나 유형의 물질들 외에 수분을 잘 보존하는 또는 보존하려는 성질과 氣가 있다 한다. 이러한 특성에서 몸이 마른 사람에게는 사막지역에서 자란 알로에라는 식물이 약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하고 과학적 분석이 아닌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예일 뿐이다.

사막지역, 건조한 지역의 모든 식물이 덮어놓고 몸이 마른 사람 사람에게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큰 전제일 뿐 개별적인 사항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덮어놓고 무시할 수도 무턱대고 연역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과학은 모르는 것을 색다른 것을 자연의 현상을 의문을 느끼고 쉽게 설명하려하고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관찰하고 탐구 하느냐"는 기술적인 관점인 것이다. 그 관점의 다름이 전혀 색다른 창조적인 생각이 될 수도 있고 현상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질서를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고 터무니없는 별 볼일 없는 생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氣는 단순한 힘, 에너지, 물질, 비물질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인체는 음식물을 섭취할 때 그 음식물이 가진 영양분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그 음식물이 가진 氣도 또한 흡수한다. 장시간의 공복으로 힘이 빠져 있다. 식사를 하게되면 단지 위속에 음식물이 들어갔을 혹 들어가고 있을 뿐인데도 곧 미약하나마 온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단지 기분일까?

뽀빠이처럼 단박에 온몸에 힘이 넘치지는 않아도 미처 소화작용도 거치기 전에 벌써 氣는 생기고 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예로 들면 맑은 공기에도 차이가 있다. 산에서의 맑은 공기와 비내리고난 도심에서의 맑은 공기와 정화기로 여과시킨 맑은 공기는 차이가 있다. 바로 氣의 차이이다.

음양의 이론은 태호 복희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했고 氣에 대해서는 다의발 한웅시대에 이미 개념이 있었다 하였다. 아마 이들 이전에도 갖가지 생각들은 있었을 것이다.

( 태호 복희와 다의발 한웅은 태우의 한웅의 아들들로써 다의발 한웅은 장남 태호 복희는 막내였다. ) 중국으로 건너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