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프시케(psyche)는 나비, 또는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이다. 아프로디테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바닷가 파도의 하얀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아름다움의 여신이다. 따분하고 나른하리만치 화창한 날의 태양아래 지중해를 건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져오는 바닷가 파도의 하얀 포말속에서 태어난 이 여신의 아들은 장난꾸러기 사랑의 신 에로스이다.

프시케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에게 미움을 사게되고 저주를 받게 된다. 어머니의 저주를 - 세상에서 가장 못나고 미천한 자를 사랑하도록 하라는 - 실행하기 위해 프시케에게 갔던 에로스는 잠자는 프시케의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이 빠져 있다가 실수로 자신의 화살에 자기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런데 이 화살은 사랑의 화살로써 그 화살에 상처를 입으면 그 이후 처음 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사랑의 묘약이었다.

그 덕에 프시케는 에로스의 사랑을 받게 되고 많은 고난과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에로스와 결합하게 된다. 이 프시케는 상당히 귀가 얇은 여자였다. 남의 말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타입이었다. 어찌 말하면 순진하고 거짓을 모르는 여자였다.

해모수에게 몇 잔술에 넘어간 유화부인처럼 호기심도 많은 여자였고 오늘 장난감을 선물 받고 부숴뜨리고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린다는 헷세의 아름다운 여인처럼 어린아이 같은 철없는 마음의 여자였다. 그러나 결국 에로스의 사랑의 힘에 감동된 제우스에 의해 암브로시아라는 불로불사의 음식을 먹고 신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선택받은 여자이기도 하다.

프시케(psyche)는 영어발음으로는 싸이키이고 라틴어로는 spirit, soul을 뜻한다. psyche는 오늘날의 psychology(심리학)의 어원인 셈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아마 인간의 심리는 고상하기는 커녕 psyche처럼 변덕스럽고 호기심 많고 말썽꾸러기 어린아이 같은 것이라 생각하였나보다. 심리(psychology)라는 용어의 어원에 대해 말해 보았다.

◎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 융심리학의 내용 중에는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있다. 무의식(unconsciousness)은 프로이트에 의해 체계화된 개념으로 의식에 의해 강하게 억압되어진 채 자유연상이나 최면 등에 의하지 않고는 본인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말한다. 」

융에 의하면 개인 무의식은 일단은 의식적이었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집단무의식은 경험된 일이 없는 것이다.

가령 어둠이나 뱀을 무서워하는 것등은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집단 속에 유전되어 내려온다는 것이다. 개인의 무의식이야 일반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집단 무의식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융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정의는 이러하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특정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감동하는 많은 가능성과 소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세계 속에서 현상을 경험하며 어떤 것을 쉽게 지각하고 그에 대해 쉽게 반응한다. 이것은 집단 무의식이 지각과 행동의 취사선택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 무의식에는 그 민족의 특징 - 융은 민족의 원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 까지 들어가 있다 한다. 융의 심리학에는 내용이 깊고 다양하고 매우 신비적인 요소도 많아 몇 줄의 글로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집단 무의식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이를 원형(原型)또는 태고유형(archetype)이라 부른다. (이하 원형이라 표현) 원형은 크게 개성(persona), 애니마(anima)와 애니무스(animus), 그림자(shadow), 자기(self)로 구분된다.

1) 페르조나(persona)는 극과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말한다. 또는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고 한다. 인간은 살아가며 자신의 감정과 이성, 생각하는 바와 행위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현실에 반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의도 배워야 하고 처세도 해야하고 때론 자기자신의 마음속의 하고 싶은 바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적응원형"이라 부를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인간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위선자가 되거나 혹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인생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결국 모순과 허무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이반일리치처럼 자신이 살아오고 흉내냈던 모든 훌륭한 가치에 대해 죽음을 앞에 두고 이제껏 자신이 과연 무엇을 했는지 심각하게 회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persona가 너무 무시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자가 될 것이다. ( 독자는 필자의 요약 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한 융의 심리학책을 볼 필요는 없다. persona에 관한 다른 내용이 있지만 이 책을 읽는데는 이 정도의 지식만 있어도 될 것이다. )

2) 이번엔 anima와 animus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anima는 인간의 성격중 여성적 측면을 animus는 남성적 측면을 말한다. 그리하여 융에 의하면 대개의 남자들은 그 무의식에 있어 anima를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animus를 가지고 있다 한다. anima와 animus가 잘 조화되면 그것은 의식과 행동으로 조화되어 나타난다 한다.

그러나 잘 조화되지 못하면 가령 남자가 animus만을 발전시켜 anima를 발전시키지 못하면 anima는 무의식에 머물며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거칠고 과격하기만 하고 부드러움도 사랑도 따뜻함도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animus를 발전시키지 못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는 나약하고 섬세하기만 하지 강인함도 용기도 없고 냉정함도 없을 것이다. anima와 animus 역시 이 이상은 몰라도 된다.

아마 융은 야누스 같은 인간의 양면성을 놓고 이렇게 설명하듯 한다.

3)shadow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몰아가는 어떤 힘이라 한다. 시인은 어째서 시를 쓰기 시작했을까. 화가는 어떤 이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려 할까. 단지 그렇게 살아온 환경 탓일까. 왜 어떤 치과의사는 자신의 명예와 안정이 보장된 직업을 때려치우고 "국수"집을 차렸을까. 등등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을 그쪽 길로 계속 몰아세우는 불가항력적인 명령 이것을 shadow라 한다.

4) 자기(self)는 이 모든 것을 이성적 감성적으로 통제하는 자기 "자신"이라 하면 된다. 이제 약간의 비평을 하여 보겠다.

우선 anima와 animus의 분리는 퇴계에게 가한 기고봉이나 이율곡의 성정에 관한 지적처럼 인간의 성격을 둘로 분리시켜 별개로 취급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논의가 진행될수록 사람의 마음을 헤겔 이후의 버릇이 된 사고방식인 모순적인 요소끼리의 변증법적인 운동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점은 persona 역시 마찬가지이다. persona에 집중할수록 인간은 본심을 숨긴 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마치 극중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을 본질로 알고 삶을 연기로 보게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 인생은 연극이다."하고 말하면 하나의 비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인생자체가 연극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이고 그 성격은 둘이 아니며 그 본심은 본인도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몇 마디 말과 몇 가지 인상으로 스스로와 상대를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은 때론 스스로의 말에 모순되는 행위를 하기도 하고 때론 거짓말을 당연히 하여야 할 때도 있고 때론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한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현상분석시 일단은 둘로 가려서 하는 것은 가장 간편하고 상식적인 객관적 분석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이 지나치면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