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 호 론

이책에 쓰인 " 기호 " 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서구철학에서 사용하는 기호(semiology, semiotics) 와 그 쓰임새가 거의 같다. 그러나 다른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기호는 말, 글, 글자, 상징물, 숫자, 표시기능을 갖춘 문자, 그림, 신호 등을 말하며, 이런점에서는 서구에서의 " 기호 " 와 같다. 이책에서는 말, 글, 글자만 다루었다. 또한 이책에서는 기호를 통시성과 공시성 " 기표 " 와 " 기의 " 식으로 분류하여 논리를 펼치지 않았고, 패러다임, 메타언어, 코드, 텍스트 등의 언어와 개념도 사용하지 않으려 하였다. 이런면에서는 " 기호학 " 과는 다르다. 필자의 기호에 관한글은 순수한 기호론에 관한것이 아니다.여기서 말하는 기호에 관한글은 사회속에서의 인간과 기호라고 말하는편이 나을것이다

기호는 현실을 보는 창이자 현실을 여는 문이다. 그러나 단지 도구일 뿐이다. 단지 도구일 뿐인데도 인간은 " 기호 " 를 이용할수록 " 기호 " 에 종속된다. 인간은 습득한 기호를 가지고 현실의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되도록 우리의 " 기호 " 로써 현실에대한 창과 문과 열쇠를 만들고자 하였다.

말의힘

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달콤하다.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
머릿속에 가득한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 


1)기호의 특성

·기호와 열쇠

기호는 막혀있는 현실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의문을 기호를 이용 상당부분 해소시킬수 있다. 인간들과 동물사회의 차이점은 인간들은 동물들보다 기호를 사용하는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데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글과 그림등의 각종 기호들을 이용 현상세계를 해석하고 ,변별하고, 전달하고 있다. 그러기에 일단은 기호를 알아야 우리는 현상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몇몇의 개인들은 신비적인 능력을 갖고있어 태어날때 이미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기호를 이용하여야만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기호는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호는 현실을 여는 열쇠가 될 수있지만 인간을 계속 가두어둔다. 우리는 기호를 이용 현실을 열고 또 그안에 갇혀있게 되는 것이다. 왜? . 기호는 자체적으로는 절대적이지만 어떤기호라도 단지 수많은 기호속에서는 고립되고 구별된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호로써 이루어진 어떤 이념이나 종교 이론도 역시 상대적으로 구별된 하나일 뿐임을 말한다. 곧 스스로외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기호와 형식

「 신지씨는 세세토록 명령을 전하는 직책을 맡고 출납헌체(出納獻替)의 임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다만 목소리에 의존할 뿐 일찌기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에 나갔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하였으나 둘러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어지러이 흐트러져 연결되었으나 향한 곳은 절로 확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 기록으로 남기는 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 기록해 남기는 방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 >

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문자의 시작이라 한다. 그런데 후세에는 연대가 까마득히 흘러서 태고문자는 다 사라져서 존재치 않는다. 아마도 역시 그 만들어 놓은 것이 아직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 태백일사 신시본기 中 임승국 번역 -

이 일은 한웅 때의 일이다. 고대 한국에서 최초로 ' 글자 ' 가 탄생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호를 이용, 감각되어오는 현상을 인식하고 사고하기 시작했을까?

사고행위는 두 가지로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이미지 또는 느낌으로 사고하는 것과 말, 글로써 사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은 모두 원래 나의 머리속에 입력되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개념만 있는 체 머리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글을 쓰면 튀어나오는 것일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이 글을 쓰기 직전 벌써 내 머리속에서 그 문장의 완전한 구성이 끝나 있던 것일까? 아니면 써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옥타비오 빠스는 「누군가 내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했는데 실제 우리는 어떤 짧은 글을 짓거나 말을 할 때 그 글이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두고 있거나 머리속에 입력시켜놓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정말 저절로처럼 되어 나온다.

편의상 사고행위를 둘로 나누었지만 그 둘은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전자 - 이미지나 느낌 또는 육감이기도 하다. 이른바 우뇌의 기능이 강한 사람이다. - 의 면이 강한 사람이 있고, 후자의 면이 강한 사람 -논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 이 있다. 사람은 동물보다 후자의 면에서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별 이론이 없을 것이다. 기호가 나타나는 것은 이미지나 느낌 등이 그림이나 글이나 말이되어 가시화,가청화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나 글은 기호의 한 종류이다. 기호는 말이나 글 외에 부호, 그림, 표시 등의 주로 의사전달을 위해 사용된다. 누군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기호를 이용,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기호의 기능 중 기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함께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인간은 기호를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감각되어오는 세계를 효과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기호의 전달과정 이전에 각 기호는 무언가를 지칭하고 의미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것과 구별되어져야 할 것이다. 기호는 무엇인가를 구별하여 냄으로써 우리의 인식체계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인식하게 하여준다. '여자' 라는 단어는 '남자' 와 구별될 뿐아니라 동물, 식물, 자동차, 그 밖의 여자라는 단어를 제외한 모든 단어와 구별된다. - 심지어 여성, 여인, 숙녀 등과도 -

우리가 기호를 사용, 구별해내지 못하는 것은 이미지나 느낌으로써 남아 있을 것이다. 기호가 다른 무엇과 구별되는 특징이 없다면 기호는 대략적인 윤곽만 있을 뿐이어서 이미지나 느낌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략적인 윤곽만의 느낌이 들 때 우리의 의식은 계속 그것을 뚜렷하게 구별해내려 애쓰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기호를 만들거나 적절한 기호를 찾아내게 되고, 그 기호를 다른 기호들과 함께 사용하여 사고하기 시작할 때, 즉 단어를 가지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그 논리의 타당성이야 어찌되었건 동물의 세계와 구별되는 인간들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책 중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러나 레이더를 통해 그 미사일을 추적하는 사람들은 그 미사일을 실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 혹 목표물에서 먼 지역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레이더나 인공위성 등을 통해 감지되어 모니터하는 사람들의 화면 위에 나타나며 실제 그 미사일이 제대로 날아가 목표물에 떨어지는 것 역시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 이런 상황은 ' Simulation (불어로는 시뮬라시옹)' 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 가상, 모조, 모방' 이라 해석되는 단어이나 이중 어느 것도 정확하게 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 않은 일을 경험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실제 벌어질지 모르거나 실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이리되면 가상이라는 표현은 맞는다 - 가상현실이다.

기호는 이런 Simulation적인면을 가지고있다. 기호는 우리에게 " 그것이 무엇이다 "를 가르쳐주지만 그 실체가 없을 때도 언어, 문자, 부호 등을 이용, 사람들에게 전달되며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실 이러한 것은 기호의 특성이 아니라 기호의 쓰임새의의 특성일것이다.

장자에 이런 글이 있다.

" 손가락이 손가락임을 아는 것은 손가락 아님으로써 아는 것만 못하다. "

거울이 없으면 스스로의 얼굴을 볼수없듯 기호는 상대속에서 구별되어진 다른 것들에 의해 스스로임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아님으로써 손가락이 손가락임을 알게 된다면 그 앎은 사실은 실체가 아닌 것이 될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구별되어 나온 기호는 다른 기호에 의해 구별되어짐으로써 인식이 된다. 한 기호와 구별되는 다른 기호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인식과정에 가장 쉽게 구별되게 하는 것이 비교되는 기호와 상대적인 특징을 가진 기호일 것이다. 즉 남자 ↔ 여자, 불 ↔ 물, 사랑 ↔ 미움, 기쁨 ↔ 슬픔, 보수 ↔ 진보, 연역 ↔ 귀납 등

우리는 불이란 단어를 모르더라도 물이란 단어를 알고 있다면 '불'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른다면 혹 없다면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불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기호는 본체를 지시할 뿐이다. 그런데 본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각적으로 지시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다면 ' 사랑(love) ' 이란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전 한 권을 다 동원하여도 기호를 이용, 사랑이란 단어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단어는 몰라도 미움, 혹 증오 등의 단어를 알고 있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쉽게 설명되고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랑이란 단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미움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설명되어져야 할까?

노자의 도덕경의 첫장은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으로 시작된다. 첫 구절은 건너뛰고 두번째 구절은 무슨 뜻일까? 이름이라 하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라는 것이 이 구절의 한자뜻 그대로의 해석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우리는 왜 ' 각 ' 을 ' 각 ' 이라고 발음할까? 왜 ' ㄱ' 옆에 ' ㅏ' 가 붙으면 ' 가 ' 로 발음되고 ' 가 ' 밑에 ' ㄱ' 을 붙여 ' 각 ' 이라고 발음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당신 머리속에서는 ' 각 ' 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읽고 있는 것일까? 이건 그렇다치고 ' 각 ' 을 알았다고 ' 박 ' 은 또 어째서 ' 박 ' 이라고 머리속으로 읽기도 보기도 발음하기도 하는 것일까? 이것은 자연적인 것일까 인위적인 것일까?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이처럼 끝까지 기호에 대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어릴 적이야 기억은 못하고, 또 기억을 하는 범위 내에선 ' 사랑 ' 이란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기호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직관이라는 인식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본질을 모르고도 기호 속에서 살아 갈 수 있다. 인간은 본질을 대리한 형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형식은 바로 기호이다. 기호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와 덕이 없어진 뒤에 인과 예가 생겨난다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음표나 의미를 모르고도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듯 현상 속에서는 형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형식을 통해, 즉 기호를 통해 본질을 인식한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 옛노래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노래만 남아있다. 」

- 고 은 -

때문에 非常名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