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와 뜻

「 대개 천하의 사물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고 이름있는 것은 곧 수(數)를 가진다. 수가 있으면 곧 모두 힘을 가진다. 이미 수가 있다고 말함은 곧 유한과 무한의 틀리는 바 있음이고, 또 힘이 있다고 함은 곧 유형과 무형의 구별이 있음이니, 고로 천하의 사물은 말이 있으면 모두 있는 것이고, 말이 없으면 곧 모두 없는 것이다. 」

- 한단고기 中 -

數자는 셈하다, 촘촘하다 등의 뜻이 있다. 즉 數자에는 일단 가려서 놓아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셈한다는 것을 우리나라에선 ' 헤아린다 ' 라고도 표현한다. 數를 가진다는 것은 곧 구별하여놓는 헤아림이 있다는 말이다. 헤아림이 있다는 것은 기호가 있다는 것이고 기호가 있다는 것은 곧 말, 글이 있다는 것은 의미, 뜻 등을 가진다는 것이다. 기호는 수많은 기호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체적으로 의미, 뜻을 갖고 있다.

꽃, 사람, 친구, 여자, 남자, 배, 바다, 산 등 기호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기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모든 기호는 지시하는 바, 가리키는 바, 뜻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기호가 가진 이러한 특징에 의해 우리는 기호를 인식하며 그것이 ' 무엇이다 ' 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 무엇이다 '를 말하지 못하면 천하의 사물은 없는 것이다. 비록 형식이지만 그 형식이 없으면 본질은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기호와 초점

기호는 물질적 대상이나 구체적 또는 추상적 관념을 표현하여 준다. 눈이나 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추상적인 마음 속의 생각이 말이나 글 등으로 기호화 되는 것은 초점이 맺혀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부조리(absurdity)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혹 그런 단어가 없다면 지금 우리가 " 부조리 하다 " 는 상황을 표현하여야 할 때 여러가지의 상황을 들어가며 설명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 그 마음을 " 말 또는 글 " 로써 전달하고 싶을 때 만일 내가 " 사랑 " 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 난 너를 사랑해 " 를 말하기위해 꽤 여러가지의 기호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기호는 우리의 관념을 고정시키지만 우리의 생각을 쉽게 표현하여 주는 유용한 도구인 셈이다. 그저 막연한 관념에 분명하게 상이 맺히게 초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초점에 의해 인간은 관념을 형성시키고 그 관념은 곧 고정화 된다. 물질들을 지시하여 주는 단어가 아닌 이상 초점이 맺힌 단어는 즉, 예로든 " 부조리 " 나 " 사랑 " 이라는 단어는 현실의 여러가지 상황과 모습들을 축약시켜 놓은 것이고, 그러기에 현실속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도 있다. 여기서 올바른 표현도 왜곡된 표현도 고정관념도 나타난다.

·기호와 작용

기호가 가진 이런 뜻, 의미들은 인간에게 인식되어지며 인간의 머리속에서 기호 하나로써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 꽃 ' 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장미꽃을 연상할 수도, 백합을 연상할 수도 있고, 붉은색을, 하얀색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이외 여자를, 사랑을, 실연을 연상할 수도 있다. 마치 몸에 열이 날 때 아스피린 한 알을 먹으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될 수 있듯이 매콤,고소, 시큼, 새큼, 새콤, 달콤만 발음을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일수 있듯 꽃이라는 단어를 접하며 우리는 정서적으로 그리하여 신체적으로도 안정을 혹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기호는 그 어떤 물질도 아니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서 여러가지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병은 곧 마음의 병은 육체적인 질병보다 치료하기가 더욱 힘들고 오래 간다고한다. 어떻게 기호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슬픔도 노여움도 기쁨도 일어나고,원수도 될 수 있고 친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호에 의해 생각하게 되고 사고행위도 하며 관념도 가지게 된다.

·기호와 조합

기호는 하나하나가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지만 기호의 주된 특징은 서로 함께 쓰인다는데 있다.

꽃과 나비

김윤식

나비의 꿈이 무언지

꽃의 꿈인지 무언지

우리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꽃은 꽃대로 펴나고

나비는 나비대로 생겨났지만

꽃과 나비, 나비와 꽃이란 것은

서로가 한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 꽃 ' , ' 나비 ' 란 각자의 단어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함께 쓰이며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호는 서로서로 조합되고 연결되어지며 여러 가지 사상, 철학, 문학, 경제, 정치 등의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인간의 관념이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진리도 궤변도 나오고, 뛰어난 문학가도, 3류 소설가도, 뛰어난 변설가도, 행동가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합된 여러 기호들은 다시 인간에게 여러 가지 관념을 만들어 준다. 조합된 여러 기호들이 만들어 놓은 각 개인의 관념들은 모여 커다란 사회적 국가적인 관념, 곧 통념도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신화도, 통념도, 법도, 계약도 만들며 계속 기호는 시간의 내리막길을 굴러 내려갈 것이다.

기호와 여러쓰임

"먹다"라는 단어가 있다. 애초에는 어떤의미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으나 주로 밥을 먹다,음식을 먹다 할 때 많이 쓰일 것이다. 그러나 "먹다" 라는 말은 이외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우려먹다, (축구에서)골을 먹다, 잊어먹다, 욕을 먹다, 귀가 먹다 ,나사가 먹다, 등등 "먹다" 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다. 하나의 단어는 분명 하나를 말하지만 쓰임새는 이처럼 많을수 있다는 것이다.

·기호와 창

' 창 ' 이란 창문을 말한다.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다. 기호는 이 창문의 역할을 하여준다. 기호는 현상세계를 표현하여준다. 당신은 기호의 이해를 통해 다양한 세계의 여러가지 모습중 하나를 쉽게 인식할 수 있게된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사람을 두고 " 그 사람은 ∼∼한 사람이야 " 했다하면 다음번 당신이 그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일단은 당신이 어떻다고 알고있는 기호를 통해 그 사람을 볼 것이다. 기호는 밀폐된 안쪽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볼수있듯 우리의 사고행위의 창문이 되어줄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지 창문일 뿐이다. 사람마다 창문이 있고 그 창문에 끼워진 유리창의 색깔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complex 라는 말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에 대한 대략의 내용은 오이디푸스는 아기였을 때 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숲속에 버려진다. 그러나 결국 죽지 않고 성장하여 신탁의 예언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후 자식까지 낳게 되었으나 자신의 아내가 어머니임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눈을 뽑고 황야를 방랑하다 죽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complex 는 이성의 부모(아들은 어머니, 딸은 아버지)에게는 애착을 가지고, 동성의 부모에게는 적의를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오이디푸스 complex 는 심리학적 용어일 뿐이고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묘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로 야속함이나 미움, 더 나아가면 증오가 뒤섞인 애증의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애증의 감정은 누구에게도 품을 수 있다. 이 애증의 대상에 부모도 포함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애증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두드러지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가장 접촉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부모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변증법적이고 기계적으로 대변하여 오이디푸스 complex 라 이름 짓고 - 이것까지는 가능하다 - 그것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여보고 - 여기까지도 좋다 - 그러다가 인간자체를 오이디푸스 complex 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면 문제가 클 것이다. 기호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처음에는 맹신하지 않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기존의 지식으로 변별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첫문장은 ' 다른 관직은 가하나 목민관만은 구하지 말라 ' 는 말로 시작된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하여야 할 바를 적은 창문이다. 그런데 다산은 왜 이러한 말로써 화두를 열었을까?

·기호와 한길

사람들은 기호를 가지고 한길을 만든다. 기호는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기호들이 마치 줄처럼 이어져 있는 하나의 체계가 ' 한길 ' 이다. 한길은 기호들의 덩어리가 이루고 있는 일관성있는 논리적인 체계이다.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도 그 나름대로의 한길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단 그 ' 한길 ' 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 길로만 다녀야 한다.

앞서 기호와 창에서 나온 ' 창 ' 과 혼동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창이 단순한 한단어의 뜻이나 , 명제, 대의, 중심되는 사상, 결론의 제시 등이라면 한길은 선처럼 계속적으로 이어져있는 체계이다. ' 창 '을 통해 밖을 보고 열쇠(기호)로 문(현실)을 열고 밖에나가 길을 따라 (한길)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창은 선입견이 될 수도 첫인상이 될 수도 있지만 한길에는 그러한 면이 없다. 이제 창과 길을 비교해 보겠다.

컴퓨터를 하는 사람이면 window를 알 것이다. 이 window는 강제적인 주문이다. 창문을 이용 밖을 볼수있듯 우리는 반드시 window를 통해 컴퓨터의 운용체계가 만들어놓은 소프트웨어를 접할 수 있다. 우리는 window의 징검다리(별개의 기호들이 연결되는 것)를 건너는 것이다. 일단 길에 들어서면 조금이라도 다른길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 설계자가 다니라는 길로만 다녀야 한다. 컴퓨터나 소프트웨어가 가진 운용체계를 따르지 않으면 컴퓨터는 고물이나 마찬가지다. 컴퓨터에서 이 운용체계는 컴퓨터에서의 ' 한길 ' 이다.

어떤사람이 컴퓨터에 밤낮으로 매달려 마침내 생활화되었다 치자. 그는 이제 컴퓨터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믿을수 있고 일관성을 갖게하는 ' 한길 ' 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컴퓨터는 그에게 현상을 인식시키고 또 현상의 인식을 가로막고 잇는 것이 된다.

그는 컴퓨터가 가진 한길 이외에는 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기호가 만들어 놓은 길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또 많은 가능성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라 " 고 한다. 정신분석학자인 구스타프 융도 비슷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 되도록 이론적으로 많이 배워라. 그리고 사람을 대할땐 그 모든 것을 잊어라 "

데리다가 사용하는 " 말소하에 둔다는 표시 " 나 차연(差延)의 용어도 이와 비슷한 생각에서 나온말은 아닐까 한다.

·기호와 역사

기호도 살고 죽는다. 쓰지 않는 기호는 없어지고, 자주 쓰는 기호는 살아 남는다. 자연, 사회, 제도, 문화, 역사, 인간 등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는 공맹의 가르침과 음양오행, 제자백가류의 글들만 있으면 거의 충분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한 글들로써만 하지 않는다. 아니 잘 사용하지를 않는다. 오늘날은 과학용어와 서구에서 발달한 여러가지 방법론과 그 안에 들어있는 기호들이 더욱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이 기호들과 함께 사고방식, 생활양식, 문화, 정치, 경제형태, 영화, 상표, 광고 등도 따라 들어온다. 그리하여 이러한 기호들이 예전의 기호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기호들의 현실을 만들어 놓는다. 이때 밀려난 기호들은 흔적만 남긴채 사라져 버리기도,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가끔 쓰이기도, 새로운 의미로 쓰이기도, 이름만 바뀐채 살아남기도, 다시 부활되어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푸코에 의하면 광기 라는 단어를 두고 한때는 미친사람을 뜻하기도 하였고 한때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사람을 뜻하기도 하였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정상이 아님을 뜻하고 있다 한다.)

이것은 유럽에서의 예일 뿐이지만 어쨌든 기호도 살고 죽는 것이다. 때로 격변이 일어나고 난 후 기호들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런때도 글자만 바뀔뿐 그 역할은 별로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때 사람은 바뀌어도 기호는 남을 수 있다. 또 기호는 바뀌어도 사람은 별로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기호는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