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호와 인간

·기호와 인간

There's a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

Down to the earth

to live on the wind

Born on the wind

and he sleeps on the wind

Thi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누군가 이 세상에 내려보낸 작은 새가 있었지요

세상에 내려와 바람 속에서 살아간다하지요

(사람들은 이 새가) 바람 속에서 태어나 바람 속에서 잠을 잔다하죠.

Marianne faithful 의 노래 This little bird 에 나오는 가사이다.

이 비슷한 내용이 왕가위 감독이 감독하고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인 '아비정전' 에도 나오기에 적어본다.

발없는 새가 있다고 한다.

발이 없기에 세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바람 속에서 산다고 한다.

바람 속을 날아다니다 힘이 들면

바람 속에서 쉰다 한다.

꼭 한번 세상에 내려오는데

그 때는 죽을 때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독백의 일부이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모르고 다른 여자를 어머니라 부르고 자라온 주인공이 어느 땐가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처지를 읊조린 것이다. 중국으로의 귀속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심정을 말하고 있다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어찌 영화속 주인공뿐이겠는가? 모든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체 밖으로 나올 때부터 발없는 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기호 역시 그렇다. 기호는 발이 없는 작은 새와 같다.

·기호와 생활

기호는 생활화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가 아는 기호의 범위내에서 살아간다(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군대생활을 한 30년 한 사람은 군대생활이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그외 회사원, 공무원, 교직자, 성직자, 장사하는 사람, 정치인, 경제인 등 자신의 직업속에서 인간은 그 기호가 가진 의미에 맞게 행동과 사고 방식이 고정되기도 한다. 기호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말이다. 습관은 정해진 형식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다보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의, 예절 등의 정해진 형식을 습관화함으로써 꽁치우(공구:공자)가 말한 군자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위로써 무위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기호를 사용하는한 무위를 하는 것도 인위를 통해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기호는 이처럼 한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기호와 하나로

" 오십보 백보 " 라는 말이 있다.

전쟁터에서 오십보 도망간 사람이나 백보 도망간 사람이나 도망간 것은 마찬가지라는 맹자님의 말씀이다. 매우 그럴듯한 이말은 하도 그럴 듯 하기에 그래서인지 자주 쓰인다. 상대적으로 강한 자들이 스스로를 합리화 시킬때나 상대적 약자가 가진자들을 한통속으로 몰아 세울때 특히 잘 사용되어진다.

" 도망간 것은 마찬가지 " 라는 결과론적인 측면만 부각된 이러한 사고행위는 결국 상대적인 강자든 약자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상대편을 혹 상대와 자신을 단순하게 하나로 보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분명 오십보 도망간 사람은 백보 도망간 사람과 다르다. 거리에서 빵 한조각 훔친 사람과 국민들의 돈 5조를 제맘대로 꺼내쓴 사람과는 다르지 않은가. 오십보 도망간 사람은 더 싸우다가 도망갔을 수도 백보, 구십보, 팔십보 도망간 사람들 때문에 어쩔수없이 도망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말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합리화한 경우가 최소한 한두번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 오십보 백보 " 를 맹자가 말할때는 다 그놈이 그놈인 놈들이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놈이 그놈들은 서로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편리하게 써먹는 말이 되버린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상대적으로 선하게 살려는 사람까지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지는게 " 오십보 백보 " 일 것이다.

현실속에서 이런 부분들은 가려내야 하지만 문제는 이런 명제들이 쉽게 먹혀들어가는데 있다. 이러한 힘의 논리나 우격다짐의 논리는 단순하고 빠르게 결론지으려는 문화형태를 가진 곳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심리적 움직임과 둘 혹 그 이상으로 나누어지려는 심리적 움직임이 있다(본문 성정론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하나로 보려는 것은 창을 통해 밖을 보고 체계를 따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신이 둘로 혹 여럿으로 나누어 보려하는 것도 둘 혹은 여럿의 각기 하나하나를 보기 위해선 일단은 하나로 보아야 한다. 어느 것이든 일단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하나로는 여러가지 지식, 명제, 법칙, 심리, 신념 등이 어우러진 관념과 타성에서 나온 현상을 판단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하나로에는 " 오십보 백보 " 의 심리가 있는 것이다. 단순하고 편하게 결론지으려는 마음이 개입되는 것이다.

하나로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가령 A가 B에 대해 C에게 B는 참 낭만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 다음에 C는 B를 볼때 낭만이라는 단어가 지닌 여러가지 느낌이나 지식을 통해 B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로는 타인을 보는 창이자 문이 더나아가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호와 관성

앞서의 예에서 A와 C가 " 낭만 " 을 통해 B를 보게 될 때 B는 " 낭만 " 이라는 기호에 종속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B는 B 나름대로 알고있는 여러가지 지식, 이미지 등을 통해 스스로를 낭만적으로 만들고, 규정지을 수도 있고, 그러한 행위의 결과 A와 C는 B를 더욱 낭만적인 사람으로써 보게 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움직이는 물체에 관성과 가속도를 붙여주는 것처럼 B를 " 낭만 " 이라는 기호속에 몰아세울 수도 있다.

관성이 붙는 것은 어느 한가지 일에 집중적으로 몰입, 그 생활이 일상화처럼 될때도 생긴다. 자신의 일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점, 의문점들이 술술 풀려나가는 재미에 더더욱 그 일에 몰입할 때도 관성은 생길 것이다.

·기호와 인식

우리의 인식체계는 기호를 받아들이며 다음과 같은 네가지 과정을 거친다.

① 그 기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기호 혹 기호들의 덩어리가 담고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 중 청각적 인식과정이다.

② 이해된 기호는 인간의 기억속의 한곳에 자리 잡는다. 본문의 내용 중 미각적 인식과정이다.

③ 기억속에 자리잡은 기호들은 서로 비교되고, 검토되고, 추론된다. 본문의 내용 중 후각적 인식과정이다.

④ 분별된 채 흩어져 있던 기호들은 서로 비교되고 검토된 후, 판단을 이끌어 낸다. 본문의 내용 중 시각적 인식과정이다

①, ②, ③, ④의 과정은 새로운 기호를 접촉하여 순차적으로 일어날 수도 평상시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특히 감정, 욕망, 이해관계 등과 연관되면서 이루어진다. 시청후미각적 인식과정에 대해서는 본문 중 성명론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기호와 글밖

" 행간 " 이라는 말은 줄과 줄 사이, 행과 행 사이를 말하는 단어로써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채 글쓴이의 의도가 글속에 숨어있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이를 글밖이라 하였다. " 글밖의 의미 " 란 글로 쓰여져있는 것의 바깥에있는 의미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 기호들의 덩어리 " 를 읽어내는 사람들은 글밖의 의미를 알아내기도, 못알아내기도 한다.

「굶주린 자에게는 밥먹이기가 쉽고 목마른 자에게는 물먹이기가 쉽다. 」

- 맹자

이 문장이 가진 " 글밖의 의미 " 는 무엇일까? 이 글은 본능적인 욕구를 빗대어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애타게 무엇을 바라거나 기다리는 사람의 심리, 그것은 민주주의 일수도, 기사거리 일수도, PD가 애타게 구상해 내려는 Item일 수도 있다. 선문답중에 이런글이 있다.

제자 : 부처가 무엇입니까?

운문(雲門) : 그건 똥 막대기다!

이건 " 말밖 " 이라 해야되겠다. 겉으로 드러난 기호에만 얽매이게 되면 이런 종류의 문답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적을 보도하며 글쓴이의 의도하에 그들의 소식이나 치부가 줄밖에 드러나기도 하였다. 가령 정치적 탄압을 받고 외국에 나가있던 모씨가 귀국하려 하고 있고, 이 사실은 보도금지가 되어 일부사람 이외에는 모르고 있었다 하자. 이때 신문은 그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몇일전부터 회합을 가졌었고 몇줄 건너 그사람의 가족이 가까운 ○○나라에 출국하였다고 글을 썼다 하자. 이 글에는 직접 표현은 안했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 모씨 " 가 귀국할지도 모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글도 글밖이다.

글 밖에는 이런 것도 있다.

추적 ○○분이라는 사회고발 프로가 있다. 과거에는 이 프로에서 사회 밑바닥의 비리나 퇴폐행위나 청소년의 탈선행위 등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방영을 하였었다. 그러나 이런 프로를 보며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을 만든 이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또는 이러한 의도는 단지 포장될수도 있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기도 한다. 경찰청 ○○ 등의 프로를 보며 범죄자나 예비적인 범죄자는 더 완전무결한 범죄를 구상할 것이다. 이것도 글밖을 보는 것이다.

·기호의 단절과 합리화

기호는 기호로써 설명된다. 또한 기호는 인간이 정한 명제를 합리화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기존의 기호들을 해체시키고 재조직, 재배열 되기도 한다. 가령,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소립자의 운동을 예측하기 어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소립자의 운동을 예측하려면 위치와 운동량을 알아야 하는데 이때 위치를 확정지으려 하면 할수록 운동량은 더욱 불확실해지며 운동량을 확정지으려 하면 할수록 위치가 불확실하여 지는 것에서 그 이론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 상대성 이론 " 과는 그 이론이 배치되는 것이었다. 불확정성의 이론대로라면 빛의 속도는 불변이라는 즉, 확정적이어야 하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이론도 폐기처분되지 않았다. 이는 두가지 모두 실증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존의 이론을 이용하기도 반박하기도 하며, 자기 스스로의 이론을 구축해나가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용어(=불확정성이라는)를 사용해야 했다. 이를두고 새로운 발견에 따른 소위 인식론적 단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기호를 합리화시키는 한 모습이기도하다.

·기호와 이해

인간은 듣거나 보아가며 기호를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기호의 이해가 " 전달 " 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 기호의 " 전달 " 과정에서 기호를 수용하는 측은 기호를 전달하려한 사람의 의도에 맞게 100% 그 기호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이성, 순수이성비판, 주관적 현실, 객관적 세계주체와 대상 등...... 이러한 글을 읽은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기호나 이러한 기호들을 가지고 만들어진 " 기호들의 덩어리 " 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초등학교 학생이 선문답이나, 철학서적, 고등물리학의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듯 기호들을 전달받는다고 해서 그 기호들이 뜻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의적인 " 곡해 " 가 일어나기 쉽기도 하다.

완벽한 " 의사공유 " 는 서로간에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호와 해석

기호는 만능이 아니다. 우리는 기호로써 본체와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고, 각종 제도와 규칙, 법 등을 만들어 놓지만, 이세상의 기호들을 어떻게 짜깁기를 하여도 인간사회의 현상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도 규제할 수도 없다. 인간들은 계속 변화하여가고, 기호들은 단지 인간들의 이용물이기 때문이다. 기호들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간들에 의해 이해되고 분석되고 해석된다. 한 예를 들어보자. 법전속에 있는 문구들이 아무리 자세하다고 하여도 인간생활의 모든면들을 설명하고 규제할 수 없다. 법전속에는 수많은 벌칙과 규제사항이 조목조목 나와있다. 그리고 이 법전속의 기호들의 덩어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기호를 해석하는 인간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