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그레머스의 기호학적 사변형이 이와 비슷하다.

참고로 조금 적어보겠다. 관심있는 사람만 보라.



① 주체 A가 음이라면 B는 양

C는 양이 아닌 것, D는 음이 아닌 것

② A : 밥을 먹다. B : 밥을 굶다.

C : 밥을 안 굶다. D :밥을 안 먹다.

그레머스 식으로 생각하면 음과 양은 ①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간략한 예이지만 비슷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필자의 논리에서 C와 D는 비 반주체와 비주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필자의 원형에서는 A가 보편, B가 특수일 경우 C는 관념론, D는 경험론일 수도 있고, 형상과 질료일 수도 있다. A가 사람, B가 기계라면, C는 본질, D가 현상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일 수도, 밤과 낮일 수도, 보편과 특수일 수도, 음과 양일 수도 있다. 여기서 A와 C D, B와 C D사이에 어떤 특정한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사상론적 분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호는 이렇게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하여도 인간들은 그렇게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호가 일으키는 작용 역시 인간과 관계되어지면서는 매우 복잡해진다.

사상론에서 나올수 있는 문제점은 그림⑷ A로써 B를 반대하고 C와 D를 이용 B를 부정하거나 B로써 A를 반대하고 C와 D로써도 A를 부정하는 것에 있다. 이외 C와 A, B로써 D를 비판하고, D와 A, B로써 C를 부정할 수도 있다. 사실 사회자체가 문화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中一이 중요한 것이다.

·기호의 여러 얼굴

독자는 어떤 현상이나 문제 등을 해석할 때 자신의 생각을 연역하게 된다.

인간은 모든 기호를 연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호에 의해 표현된 모든 진리는 아무리 보편 타당하더라도 글과 말에 의해 표현되는 한 구별되어진다.

 

α쪽으로 갈수록 : 분명하지만 단지 구별되어지는 하나의 기호일 뿐이다.

β쪽으로 갈수록 : 큰 줄기는 알수 있으나 구체적이지 못하다8.

인간이 기호를 연역하여 α쪽으로 갈수록 알기 쉽지만 단지 수많은 기호 중 하나일 뿐이고, β쪽으로 갈수록 논리적일수 있지만 수백 수천만 수천억 가지 현상속에 흡수된 것이다.

불교 용어로 가장 큰 수는 무량대수라 하여 1068 이고 이보다 좀 작은 수가 1064 이며 不可思意라 한다. 가장 작은 수는 淸淨이며 10-21 이다. 청정보다 조금 큰 수가 허공이며 10-20 이다.

α쪽으로 가든 β쪽으로 가든 무한대로 갈수록 무량대수나 청정으로 향해 간다 할 수도 있을 것 이다. β쪽으로 가는 것은 현상, α쪽으로 가는 것은 본체론적이라 할 수 있지만 β에도 본체가 있고, α에도 현상이 있다. 그러나 α쪽으로 갈수록 수많은 기호 중 단지 하나일 뿐이고 β로 갈수록 기호는 서로 섞이고 이용되어지는 것중 하나의 기호나 체계일 뿐이다.

이 그림을 놓고 보자.

A를 본체라 하면 B는 현상이라 할 수 있고, C를 음이라 하면 D는 양이라 할 수 있다.

C를 말하기 위해서는 D도 A도 B도 필요하다. D를 말하기 위해서도 A, B, C가 모두 필요로 되어진다. 혹 C를 말하기 위해 A와 B는 선택적으로 필요로 되어질수도 있다. 이는 D를 말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A를 말하기 위해 B뿐만 아니라 C와 D가 사용되어져야 한다. (이는 단지 네가지만 말하였을 뿐이다. 수많은 기호를 놓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B를 말하기 위해 A뿐만 아니라 C와 D가 필요로 되어짐은 물론이다.

A의 입장에서도 C와 D의 기호를 사용할 수 있고, B의 입장에서도 C와 D의 기호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각 A와 B 역시 C와 D에 의해 임의적으로 사용되어 질수 있다.

요약하면 첫째, 어떠한 진리이든 기호에 의해 표현되는 한 상대적이거나 단지 구별된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단지 하나의 뜻만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기호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몸에 수만가지의 얼굴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다. 혼란도 독선도 독단도 궤변도 이러한 가운데서 나올 것이다. 이외 일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본문중에 나온다.

·기호와 무한

인간이 어떻게 기호를 조합해도 기호로써 현상세계를 완벽하게 해석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부처와 가섭간에 있었던 이심전심이라면 모를까, 하나의 기호는 단지 구별된 하나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호로써 모든 기호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호와 사상에서 말했듯 기호는 구별된 하나일 뿐이며 그에 대한 "부정"이 있다. 인간은 어쩜 부정이 있으면 긍정을 찾고 긍정이 있으면 부정할 것을 찾는 노력을 무한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 속에서도 그러하다.

긍정된 하나의 기호는 계속 부정을 만들고 혹 부정이 생겨나고 또는 부정이 있고 구별되어진 하나의 기호에는 계속 의문이 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 긍정과 부정 그리고 의문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이나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행위 판단은 할 필요가 없다.

부정과 의문이 없는 문화는 고인 물과 같아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과 의문만 있고 긍정이 없는 문화는 고인 물이 없는 연못과도 같을 것이다.

인간은 그 모습이 다르듯 그 생각은 미세하게나마라도 전부 차이가 있다. 이 미세한 하나의 차이는 바로 하나의 기호가 될 수 있고, 이 기호는 부정과 의문을 통해 박테리아처럼 자가 분열하여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미세한 차이라도 명제의 차이를 낳고 명제의 차이는 "기호들의 덩어리"의 차이를 만들고 이 "기호들의 덩어리"의 차이는 논리와 방법론의 차이를 만들어 간다.

기표, 기의, 공시성, 통시성의 기호가 나타나자 커뮤니케이션이니, 메타언어니 신화니 하는 단어들이 부각되고 기호의 해체에 까지 이르렀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되어갈지 모른다.

이러한 서구체제의 기호들에 빠져들어가도 기호는 기호일 뿐이고 생각의 다름과 차이에서 나온 부정과 의문은 끝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기호들에 빠져들어 갈수록 이번엔 생존, 이상, 그밖의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들에 의해 관념의 차이가 만들어 놓은 기호들은 관성과 가속도가 붙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쓰는 기호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보는 창과 문이 될 때 문화 전체가 그러한 기호들이 만들어 놓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좋은 말로 세계화이고, 나쁜말로 종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