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는 바보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을 교육시키려고 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 이제부터 넌 무조건 내가 시키는대로만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알 겠지?

아들 : 예!

아버지 : 자 이제 시작한다 !

아들 : 자 이제 시작한다 !

아버지 : 이 말은 따라하는게 아니야.

아들 : 이 말은 따라 하는게 아니야.

아들은 말씨까지 흉내내며 말했다.

아버지 : 허어 이놈보게

아들 : 허어 이놈보게

아버지 : 임마! 이말은 따라 하는게 아니야.

아들 : 임마! 이말은 따라 하는게 아니야.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하기도 전에 약빠른 혹 우둔하리 만치 충직스러운 아들의 행위에 지친 아버지는 그냥 끝내려 했다.

아버지 : 이제 관두겠다.

아들 : 이제 관두겠다.

아버지는 분통이 터졌다.

아버지 : 이젠 끝내겠다는 데도

아들 : 이젠 끝내겠다는 데도

뭐 어느집에서 아버지와 아들간에 이랬었다는 얘기가 있다. 코미디 프로에서 본일이 있을 것이다.

기호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기도 한다.

기호는 "∼은 ∼이다."를 가르쳐 준다.

이것이 기호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특징일 것이다.

"∼은 ∼이다."는 사과를 두고 "이것은 사과이다"를 말하는 것과 같다. "∼은 ∼이다."는 이외 추상적인 관념을 기호화 시켜 말하여 주기도 한다. "이성", "감정", "모순" 등등의 단어들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은 ∼이다."는 이런 것도 말한다.

"성은 선하다", "성은 악하다"등등 하나의 기호로써 다른 기호를 해설하여 주는 것이다. 한 개념으로써 다른 개념을 설명하여 주는 것도 이와 같다.

수학, 물리학 등에서 쓰이는 "="가 붙는 모든 공식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면에서 기호는 강을 두고 서로 떨어진 양쪽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그 "다리"를 거쳐야만 하는 것과 같다. 기호를 "다리"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기호로써 기호를 말할 때는 위의 예로든 아버지와 아들간에 벌어진 "고대로"의 해프닝이 일어나게 된다.

"고대로"를 거치지 않고는 진정 그 기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가진 기호에서 나오는 "∼은 ∼이다."일수록 앞서 예로든 "고대로"는 일어나기 쉽다.

기호는 현실을 보는 창이고 현실로 들어서는 문이 되고 현실을 가는 길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또는 따를 수 있는 진리 일수록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이런 "고대로"의 상황은 벌어지기 쉽다. 기호는 똑똑한 "밥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이 배울수록 오로지 자신의 체계내에서 자유로운 그리고 그 이외에는 배타적인 "벽속에 갇힌 천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끝없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여 확고하게 있는 것으로 생각되거나 확인된 결과에서 출발한 이론 일수록 "고대로"를 만들기 쉽기에 한치의 오차가 없는 과학적, 실증적, 진리 일수록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 종교일수록 위대한 독재자와 바보를 만든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인도 나오게 된다. 이러한 진리는 대개 밤하늘에 빛나는 수 많은 별들중 하나에 불과하다. 확고하게 증명될수록 그것은 단세포적으로 작은 것이다. 그리고 현상속에선 작아질수록 상대적인 것은 많아진다.

물론 커질수록 이번엔 허황되게 된다. 전자가 빛의 논리라면 후자는 어둠의 논리라 할 것이다.

기호는 아니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빛과 어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속에서의 인간은 기호를 배워야 한다.

1+1=2라는 것의 의미는 둘째치고 기호는 배워야 하지 않는가.

배워도 편집증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가 될 것이다.

단 달을 보자. 손가락을 보지말고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달을 가리켜준 하나의 손가락만 보지말고 달을 가리키는 수많은 손가락이 있음을 알자.

폐쇄된 방안에 고양이를 넣고 실험을 한 일이 있다. 문밖에 고양이 먹이를 두고 문을 조금만 열어놓고 고양이가 나머지 행동을 어떻게 하나 관찰했다고 한다.

대다수 고양이는 문을 더욱 열어 제쳐 놓고 먹이를 먹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반복적으로 여러 번 시도를 하였다. 머리로 미는 놈 앞발로 긁다가 밀어 젖히는 놈, 틈새에 머리를 비집다 열은 놈, 궁둥이로 열어 제친놈 등등이 있었다.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고양이들이 문을 열기 위해 시도하다가 성공한 동작, 위에 예로든 몇가지 동작 중에 성공한 그 동작만을 그 다음번의 같은 실험에서도 계속 시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고대로"이다.

필자는 인간의 관념도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범위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나와 다른 남아 있다는 것을 알면되지 않을까한다.

이상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기호에 대한 생각들을 요약해 보았다.

말, 글, 글자 등의 기호는 인간의 관념에 큰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인간의 관념은 육체적 상태, 느낌, 의지, 감정, 욕망… 등에서도 강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에 비하면 말과 글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말, 글과 느낌, 의지, 감정, 욕망 등은 서로 큰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비록 빙산의 일각이지만 우리는 인간의 의지나 욕망에 대해서 드러나 있는 "기호"를 이용, 해석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말이나 글 등의 기호는 인간의 관념이 물질화 되어 있는 것이라고 가정한 후 논리를 전개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함에 가장 보편적인 요소인 "시간과 노동"의 개념을 이용했듯, 필자는 사회구조와 인간의 마음, 생각등을 말해 봄에 "말과 글, 글자"를 이용할 것이다 (이런 사항에 대해선 2권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아무리 자본주의 경제의 흐름을 "노동"으로써 정밀하게 분석했다해도 그 이론으로써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분석 할 수 없었듯 필자가 비록 "말과 글, 글자"로써 분석을 시도 했지만 그것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인간의 관념과 사회구조에 대해 완벽하게 분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아지고 정밀할수록 상대적인 것은 많아지고 단지 구별된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구조와 관계·

기호는 사회구조를 만든다. - 이 글에 너무 오해 말아주시길 당부한다 -

인간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모든 것 중에서 나름대로의 진리를 만들어간다. 기호를 이용, 사고를 형성시키고, 세계를 판단하며, 문자, 사회,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현재의 인간은 그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조속에 있었을 것이며, 이전 세대 전에는 이전 이전 세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시대 이후의 세대는 지금 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조속에 살게 될 것이다. - 여기서의 세대는 지금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 하나의 구조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미우나 고우나 그 구조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그 구조에 가장 익숙하게 된다. 한 번 익숙해지면 아무리 더 좋은 조건이 되어도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구조는 그 안에 기호들을 분열시키고 확산시키고 기존의 구조속의 기호들과 결합시킨다. 그리고 그속에서도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기호들과 사람들과 관계하며 살아가게 된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현상이다. 물은 막히면 스며들고 고이고 넘친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물과 빛을 찾아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떠한 장애도 헤쳐나가려 한다. 떡메로 떡을 내려친다고 떡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떡덩어리는 떡메가 내려쳐졌을 때 옆으로 삐져나온다. 그 떡덩어리는 다시 모아지고 다시 떡메가 내리쳐지면 떡덩어리는 또 옆으로 삐져나온다. 잘못 짜여진 만들어진 구조속의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이와 같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해관계나 감정, 욕망 등이 개입될땐 더더욱 심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어도 그 기호가 사라져도 기호가 하던 사람들이 하던 역할은 남는다. 모두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풍토화되었고 문화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바뀌지 않는한 인간들은 그러한 기호들과 인간들의 구조와 관계하며 살아갈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문화가 180˚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화속의 일부 부정적인 요소가 바뀌지 않는한 그렇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문화의 구조는 이래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구조는 검찰이, 경찰이,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로 평범한 민초들이 만드는 것이다. 민초는 말없는 거대한 강이다. 일부 권력자나 있는자들이 물의 흐름을 바꿀수는 있어도 거스를수는 없다. 민초들의 거대한 강의 흐름이 굴곡됨이 없이 제대로 흐르기 위해선 우리들 모두가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눈을 뜨고 있어야만 한다.

구조 속에 태어나는 인간은 그 구조와 관계하며 살아간다. 때론 구조에 저항하고 때로는 구조를 잘 이용할 것이다. 전자가 구조에 대한 항응이라면, 후자는 순응의 자세라 할 것이다. 구조속에는 한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간들이 있다. 구조는 하나의 구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만가지의 구조가 있다. 한 인간은 한 인간나름대로의 구조가 있고 사회 역시 그러하다. 한 인간은 구조 속에 태어나 갖가지 구조들과 관계하며 구조는 또 구조끼리 관계한다. 한 인간은 인간들이라는 구조 속에 있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구조 속에 있다. 다른 인간은 역시 인간들이라는 구조 속에 있다. 한 인간은 구조와 관계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기호와 관계하며 살아가게 된다. 기호는 무한대로 퍼져나가고 인간 또한 그에 따라간다. 인간은 무한대의 기호를 만들고 그럴수록 그 속에 고립되어 간다. 사회도 그리고 문화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