友人會宿 (우인회숙)

이 태 백

인생무상의 오랜 우수를 시원히 씻고자

친구와 백병의 술을 마시리라

아름다운 밤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만하고

밝은달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구나

취하여 고요한 산에 누웠으니 천지가 곧 베개와 이불일래라

이태백의 시조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술"이요. 다음으로는 "달"일것이다. 이태백은 결국 술에 취해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 물속에 뛰어들어 전설속에 죽었다. 티베트 근처의 이민족 출신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같으면 이민족이라 할텐데 중국인들은 이태백을 중국인이라 하는것을 보면 중국인들의 포용력과 동화력을 볼수 있다.

이태백의 시는 호방함에 있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구불구불하기도 한 것도 아니다. 장자에 나오는 대붕 처럼 파아란 하늘로 일순간에 떠올라 한번 날개짓에 구만리를 날아가는 기개에 있다. 이태백은 태양인 같은데 그의 시조마다 들어있는 까닭모를 슬픔을 보면 소양인 같기도 하다. 물론 소양인만 까닭모를 슬픔이 있는 것은 아니다.소음인의 애절함이나 태음인의 우울함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이태백이 42세때 당현종의 부름으로 장안에 가서 시를 지을땐 당시 궁중의 세력가 였던 고역사(양귀비를 천거했고 안록산의 난때는 양귀비를 죽이기도 했다)로 하여금 그의 신발을 벗기게 하고 양귀비에게는 벼루를 받쳐들게 하였다 한다. 음인이라면 이렇게 까지 오만방자하지 않을것 같은데 태음인도 줏대가 많고 소음인도 당돌한 면이 있으니 함부로 결론 지을수도 없다.

그러나 태양인이나 소양인 이라면 음인보다는 쉽게 이런 행동을 한다.

이번엔 조선 중기의 문인인 송강 정철이 한글로 쓴시를 보자.

영중(營中)은 무사하고 때는 좋은 3월인데

화천(花川) 가는 시냇길이 풍악(楓岳)으로 뻗어있다.

행장(行裝)을랑 다 떨치고 돌바닥길 막대짚어

백천동 옆에 두고 만폭동에 들어가니

은같은 무지개며 옥같은 용의 꼬리

섯돌며 뿜는소리 십리(十里)에 잦았으니

들을때는 우뢰더니 와서보니 눈이로다

이 시는 당파싸움에서 물러나와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도내를 순시하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쓴 글이다. 성격이 솔직하고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정철은 당파싸움에서는 열세에 있던 서인에 속해 있었으니 행적이 순탄할수가 없었다.

1년후 조정에 돌아온뒤에도 적들만 만들어갔다. 스스로 경솔하고 성급하다고 자책하던 율곡조차 사리에 치우치지 말고 냉정히 세상을 보라든지 술을끊고 말을 삼가토록 하라는 충고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친구인 율곡이 죽자 마음의 중심을 잃었고 동인의 집중공격을 받다가 추방되다시피 창평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글 장편시 사미인곡, 속미인 곡을 썼다.

이몸이 생겨날때 임을 따라 생겼으니

한평생 연분이며 하늘도 모를 일이런가

나 한 몸 젊어 있고 임 한 분 날 괴오시니

이 마음 이 사랑은 견줄 데 전혀 없다.

한평생 원하기를 한데 살자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 <사미인곡> 中 -

관동별곡 때와는 달리 슬픔과 탄식 원망으로 차있다. 이후 그가 미워하던 정여립이 모반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달려가 낱낱이 고발하여 많은 동인 세력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이일로 다시 적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동인이 꾸민 계략속에 세자책봉 문제로 쫓겨났던 그는 임진란이 일어나자 잠시 복직되었다. 그러나 다시 그를 미워하는 무리들의 모함속에서 관직을 물러나 강화도에 칩거하게 되었다. 이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생활을 하다 58살을 나이로 1593년 죽었다.

재너머 성권농(성혼)집에 술 닉었단 말을 어제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눌러 타고

아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정철은 술버릇이 고약해 술만 취하면 남을 매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생애를 술과 함께 할마큼 술을 좋아했다 한다. 이태백처럼 술에 관한 구절이 없을 수 없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꺽어 셈하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상여에 많은 사람이 울며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달 가는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그는 마치 율곡처럼 과거 때마다 거듭 수석을 하며 어린시절 같이 놀았던 명종을 기쁘게 하였지만 왕족이 연루된 모종의 사건을 왕의 부탁에도 철저히 조사 단죄한후 파란만장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워낙 출중한 능력이 있었기에 파직되었다가도 곧 요직에 임명되곤 하였다. 정철은 절대로 자기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며 자신의 논의를 자기 스스로 그만두기 전에는 상관의 의견까지 물리치며 끝까지 밀고나가 관철시키는 성격이었다.

타협을 모르고 부모의 3년상도 형식적이 아니고 매일 손수 제사를 올리며 철저하게 지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정철은 양인이고 태양인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다. 태음인일수도 소음일 수도 있다.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한국의 옛시에는 어느시에나 거의 공통된 정서가 있다. 멋과 한(恨)이다. 한도 멋들어지게 표현되어야 하고 멋때문에 한이 서럽고 멋도 한스러워야 한다.

한(恨)은 간(艮)의 마음(心)이다.

간(艮)은 팔괘상에서 동북지역 한반도와 만주지역이다. 결국 한(恨)은 우리민족의 마음인데 그것이 왜 현재처럼 꼬불아지고 뒤틀린 의미가 되었을까 팔괘상으로 간(艮)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인데 말이다.

밥을 빌어서

죽을 쑬지라도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마라

에야아 -어그려지여-

- 배따라기中 -

일본의 시 하나 들춰 보겠다.

봄마다 꽃의 마음이 달라

60의 나이가 되었더라.

- 사이고 -

사이고는 일본의 방랑 승려이다.

우리도 모든 물(物)에는 영(靈)이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하찮은 물건 하나 하나에도 뜻이 있다며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많다. 이른바 미학적 성품이다.

주자학에서는 모든 물(物)에는 물체를 이루는 성(性)이 있다 했다. 시바료타로는 주자학을 무서운 환상이라 하였지만 그들이 가져가 숙독한 이황의 서적은 주자의 영향하에 만들어진 것이니 전혀 주자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하찮은 사물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성질은 미학으로 연결된다. 한국인들이 멋을 찾듯 일본일들은 미학(美學)을 찾는다. 문화의 차이일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조금 말했듯 분류도 잘해놓고 의미도 부여하고 세세하게 잘 가꾸었지만 통합, 종합, 의미창출(이상으로서의)에는 미흡하다. (더 자세한 것은 2권에서 쓰겠다.)

다음의 시를 보자.

........생략.....

" 무엇이 계시는지 알수는 없사와도

거룩한 마음만이 생겨 눈물만이 흐른다. "

사이고가 어느 신사를 보고 지은시라 한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김삿갓 같은 방랑시인 바쇼의 시다.

" 무슨 나무의 꽃인지 알수는 없어도

거룩함을 느끼게 하는 내음이여"

우리나라에 이런 정서의 시나 소설이 있는지 필자는 알 수 없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는 없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무엇"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런 의문은 일본사람들에게는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꽤 따지고 드는 생각일 것이다.

고적한 자리에 있는 아담한 신사와 홀로핀 꽃을 보면 거룩함이 생기는 것 아닌가. 그 신사에 누가 있는지 그 꽃이름이 뭔지가 뭐가 그리 대수인가? 하는 대답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같으면 보고도 곧 잊을 아니 어쩌면 특이해서 기억에 남을 그러나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얼핏 이해해 줄수도 있는 이런시들을 일본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많이 읽고 많이 읽어주었고 그리하여 다른 모든 시들을 물리치고 아직까지 살아 전해오는 것이다.

까닭없이 시가 너무 잘 쓰여지기에 부끄러워 했던 윤동주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