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균 -

남녀의 정욕은 인간의 본능이요

예법에 따르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라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나는 본능을 따르지 감히 성인을 따르지 않으리라.

조선시대의 이단자이자 반항아 허균의 시다.

허균은 서화담 처럼 완전한 기(氣)론자이다.

이황이 이런시를 보았다면 호로자식 감이다.

허균은 어렸을 적 부터 재주가 뛰어났고 누구앞에서도 거리낌없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성격이었다. 당연히 주변과 마찰이 없을 수 없다.

태양인의 솎생을 보면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섞생은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긴다. 하였고, 소양인들은 사람들이 서로 업신여기고 자신을 깔본다고 섞생한다 하였다.

이런 사람들만 모여있는 사회는 어떠할까. 사람들은 극히 보신위주이고 공격적이고 편을 만들고 편중에서도 서로 싸우고 하지 않을까?

당신은 운전중에 갑자기 누가 끼어들면 속에서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가? 당신은 운전중에 왜 앞차와의 거리를 되도록 가깝게 하는가? 당신은 줄을 설때 왜 바짝바짝 앞사람에게 붙어서야 하는가.

섞생, 솎생의 자세는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면 쉽게 알수 있기도 하다. 물론 섞생, 솎생의 자세는 문화속에서 쉽게 사람들에 동조되고 전염되며 확산되어진다.

허균의 성장과정은 정철처럼 고생이 많지는 않았다.

유복한 환경에서 걱정없이 자랐다. 그러나 아마 스승 이달의 영향 (이달은 소위 첩의 자식 이었음)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자라면서 허무적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에는 따르던 형과 누이(허난설헌)가 그의 나이 20살 이전에 죽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는 젊어서는 이율곡 처럼 불경도 공부하였었다. 그후 과거에 합격한후 관리가 되어 시험감독관을 한적이 있는데 이때는 친척의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 이후의 그의 행적은 도저히 몇줄의 글로 요약할 수가 없다. 그는 그가 쓴 '홍길동전'의 길동과 같이 신출귀물하고 싶었을까.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까. 그는 스스로 역모를 꾀한다. 그러나 이상은 앞서있고 모든 계획은 치밀하지 못했다. 배반자가 나오고 결국 어릴 적 친구이기도한 이이첨에게 한마디 변명할 기회도 없이 능지처참이라는 중형을 당해 죽었다. 그의 성격과 행동적인 면은 영락없는 양인이다. 소양인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허균의 누이가 유명한 허난설헌이다. 역시 소양인 혹 소음인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여자들에게는 한학(漢學)을 가르치지 않았었다. 그러나 허난설헌은 수재들이라 소문난 오빠들 사이에서 어깨 넘어로 글을 익혀 어려운 한학서적들을 읽어내니 여신동(女神童)이라하여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난설헌 역시 허균처럼 당시 최고의 한시인(漢詩人)의 한사람이었던 이달(李達)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서자(庶子)로서 냉대받던 스승의 마음에 영향 받아서 일까 허난설헌 역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며 슬픈심정을 토로한 시가 많다. 그녀는 열입곱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 김성립은 그리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오히려 부인의 재능 때문에 비교가 되자 그녀를 못살게 굴은 것 같다 한다. 시어머니 또한 그녀를 구박하였다 한다. 아마 집안일은 후딱 해치우고 책이나 읽고 시나 짓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도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자를 극히 차별하는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난게 한이고 조선처럼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것도 한이었다는 그녀의 시댁생활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 허난설헌 -

달뜬 다락 가을 깊고 옥병풍 허전한데

서리친 갈밭에는 저녁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아무리 타도 임은 안 오고

연꽃만 들못 위에 맥없이 지고 있네

아마 남편이 그녀를 찾지 않는 외로운 밤에 쓴 시이리라.

그녀는 가난한 민중에 대한 동정심과 사회의 불합리한 양반들의 위선에 대해서도 시를 지었다.

- 허난설헌 -

양반댁 세도 불길처럼 융성턴 날

드높은 누각엔 풍악 소리 울렸고

가련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

배는 고파 빈 통이요, 집은 다북쑥.

그러다 일조에 가문이 기울면

그제야 백성들을 부러워 한다.

흥망과 성쇠는 때마다 바뀌는 것

누가 감히 이 천리(天理)를 어기랴

그녀는 마치 일기를 쓰는 것처럼 시를 써 장롱 가득할 정도였지만 숨을 거두기에 앞서 모든 시고(詩稿)를 불에 태워버려 달라했다한다. 청개구리 어미 소원 들어주듯 시댁 식구들은 그녀의 시를 모두 태워버렸다 한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친정에 보관되었던 것을 허균이 모아 간직했던 것이다. 아마 그냥 두었다면 허균이 죽을 때 모두 없어졌겠지만 그 이전에 허균이 명나라 사신들에게 보여준 시들을 저들이 가져가 「허난설헌집」을 간행하였다 한다. 허균이 죽고난후 그녀의 시집도 모두 매장당하였는데 지금 전해지는것은 역으로 명나라에서 수입되어진 것이다.

양인들의 섞생 솎생의 자세는 깔보고 업신여김이다.

필자가 우리나라를 소양형 문화로 보는 것도 이러한 현상이 많아서이다. 물론 한국이라고 태음인이나 소음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역적으로 태음인이 많은 지역도 소음인이 많은 지역도 있다고 생각한다. 음인들은 서로 돕고 보호하는 섞생 솎생의 자세를 가졌다 하는데 이런 자세 역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편을 만들고 권세에 의지하려하고 줄을 찾고, 지연, 학연, 혈연을 찾는것도 이런자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속에서는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는 이러한 깔보고 업신여기고(즉 싸우고) 돕고, 보호하려는 섞생 솎생이 뒤섞여 있다.

허난설헌외에 옥봉, 죽서도 이름있던 여류시인이고 또한 유명한 황진이가 있다.

황진이는 좀 낮은 계급 양반의 첩의 딸로서 태어났다.

그녀 역시 사회의 모순과 차별의 벽속에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슬이 좋았던 것 같다.

그녀는 여느 양반집 딸처럼 예의 범절도 배웠다 한다.

여덟살때 천자문을 띠고 열살때에는 한문고전도 읽고 시도 짓기 시작했으며 그럼에도 가야금에도 능했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하고 아름다워도 신분의 벽은 넘기 어려웠다. 아마 그녀를 짝사랑하다 죽은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인것 같은데 그녀는 기생의 길로 들어섰다.

황진이는 아무리 지체가 높고 근엄한 사람이더라도 그가 남자인한 자기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말았다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집에서는 근엄하고 도도했지만 집밖에 나서서 특히 화류계의 여자들에게는 맥을 못쓴듯하다. 배비장전에도 보면 배비장 앞서의 비장이 기생 애랑에게 "이빨"을 뽑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의 내용에도 있는지는 모른다. 기생들은 이때 남자가 뽑아준 이빨들을 모아놓고 있다가 늙어지면 심심풀이로 꺼내 장난하곤 하였다 한다. 배비장역시 결국 애랑에게 무릎만 꿇은 것이 아니라 호되게 망신까지 당한다.)

뛰어난 머리에 시, 음악, 미모, 남자를 홀리는 말솜씨 까지 있는 여자가 꼬시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도도하고 오만방자 해도 그럴수록 꿇어 엎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무릎꿇고 기어가게 해도 그대로 할 선비들은 넘쳤을 것이다. 하가야 남자들은 목적만 이루고 나면 그런일쯤이야 언젠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관심 없는 아침밥에 대한 기억처럼 될 것이다.

어쩜 황진이의 이런 행위는 조선시대 양반들에 대한 냉소와 격렬한 반항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시는 일상적인 남녀관계에 생기는 여자의 미묘한 마음을 솔직하고 뛰어난 재능을 섞어 지은 글이 많다.

「 어저!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라 하면 가랴마는 저가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청산리 벽계수야 ∼ "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남녀관계에 생기는 정, 이별만 노래한게 아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김삿갓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만 월 대 회 고 (滿月臺懷古)

옛절은 말이 없이 어구 옆에 쓸쓸하고

저녁해 고목에 비치어 더욱 서럽구나

태평세월 쓰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

영화롭던 그 시절이 탑머리에 부서졌네

황봉(黃鳳)은 어디가고 참새들만 오락가락

진달래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먹네

송악산 영화롭던 옛 모습 생각하니

봄이 온들 소슬한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두보에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아래는 소세양이란 판서에게 지어주었다는 글이다.

달 아래 뜰 가운데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속에 들국화 곱게 피었네

다락 높아 자칫하면 하늘 닿을듯

사람은 석잔술에 취해 누웠네

흐르는 물 차가워 가야금과 어울리고

매화향기 피리소리 뿜어 보내네

내일 아침 눈물 지며 헤어진 뒤에

그리운 정 물결처럼 끝이 없겠지

이태백이 와도 감탄할 시일 것이다. 한사람의 재능이 아닌 것같을 지경이다.

그녀는 마흔을 전후하여 죽었다 한다.

그녀는 "내가 죽으면 시신을 관에 넣지 말고 마을 밖 냇가에 던져 주시오. 그래서 개미, 까마귀, 솔개의 먹이가 되게 하여 세상여자들의 교훈이 되게 하시오."라고 유언을 했다 한다.

그녀의 인생이 단순한 기생으로써 뭇 남성들과 놀아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일것 같다.

그녀만의 심오한 인생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묘는 개성근처에 있다고 한다.

황진이는 소양인일 가능성이 많다. 태양인 같기도 하고 소음인 같기도 하다. 하도 재능이 많아서 일것이다.

태음적인 시가 잘 인용되지 않는데 필자의 편견으로 이리저리 휘둘러 쳐서 일것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태음인의 글로 보여진다. 너무 길어 인용을 못하였다. 「귀거래사」류를 태음적인 시라 해도 괜찮을성 싶다. 도연명은 조그만 고을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관리들이 거들먹거리고 하찮은 인간에게도 허리를 굽히고 아부해야 살 수 있음을 보고 나는 다섯말의 쌀 때문에 허리 굽혀가며 살지는 않겠다며 벼슬자리를 떠나며 「귀거래사」를 지었다 한다.

흡사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섬」을 읽는 것 같다.

물론 더 뛰어난 글이다. 철학이 있으니 말이다. 플라톤은 철학자의 사회에 시인은 필요없다하지 않았는가?  도연명에게는 시와 철학이 하나인 것이다. 이때가 41살때쯤이고 이후 63세로 죽을때까지 전원생활로 일관했다 한다. 음양인은 모두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다. 양인의 장점중에는 단호한 점이 있고 음인들은 마음을 잘 변치 않는다는데 있다. 조(操)와 지(志)가 많고 강해서이다. 조(操)와 지(志)가 숨어 있다 했듯 언뜻 보기엔 우유부단하고 흔들리는것 같지만 기실은 매우 강한 지조(志操)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체적이다.

단호한 양인들이 배반도 잘한다. 물론 이것도 대체적이고 이 모든것은 상대적인 환경속에서 결정되어진다.

아마 상대적으로 한국에 '음'의 성향적인 시가 적은것은 그만큼 격렬한 사회구조가 원인이 될듯하다.

자꾸 2권에서 쓸 글들이 미리 써지는 부분이 많다.

칸트는 소음인 일것 같다고 말한적이 있다.

"사실상 나는 확신을 갖고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이것을 말할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않은일에 대해 말하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

소음인이 주저하는 것은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알아 행동이 느린 지식인의 모습일수도 있다.

시바료타로의 글중에 이런글이 있다.

"그런데 책상앞에 앉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실컷 이런저런 생각을 하여놓고도 막상 펜을 드니 잘 써지지가 않는다는 말일것이다. 시바료타로는 소양인일까?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많을 것이다. 이때 음인들은 좀더 생각한 뒤에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경향이 51:49식으로 조금많고 양인들은 그냥 글을 쓰는 경향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