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또미 히데요시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노부나가

일본도 그들 나름대로의 영웅이나 위인들이 많지만 이들 3인은 그 성격의 차이와 함께 일본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노부나가는 매우 공격적이고 과격한 기질의 사내였다. 히데요시는 지략이 뛰어났고 성격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사태 파악이 뛰어나고 치밀하며 세심한 사람이었다. 이에야스는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위협과 인질생활 속에서 자라서인지 본심의 노출을 꺼리고 무한정 기다릴줄 알면서도 포용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루이스 프로이스라는 선교사가 노부나가를 평한글이 있다.

“ 오하리의 주인 노부나가는 명예욕이 강하고 과감한 행동가이다.

전쟁은 썩 잘하지만 제멋대로 행동하고 횡포스럽다.

신불(神佛)은 물론 그밖의 우상도 모두 경멸하는 자이다. 노부나가는 이해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며 현실이 있을뿐 죽은 뒤의 세상따위는 생각지 않는 인물이다. ”

노부나가는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의 문벌따위는 보지 않고 철저히 능력을 보았다.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의해 크게 부각된것도 노부나가의 이런 성격과 관념때문인 것이다. 노부나가는 그 일생을 통해 여린면이나 침체되는 면을 보인적이 거의 없다. 강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일단 노부나가는 태양인으로 보여진다.

노부나가는 소양인일 가능성도 태음인이나 소음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신도 모를 것이다.

노부나가는 부하들을 잘다루었지만 결국 똑똑한 부하의 배반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어떤 경우는 장난이 지나쳐 부하들의 미움을 산적도 있었었다.

당여를 못한것이다. 노부나가는 그러한 소질을 계발시키지 못했서 그런지 폭넓은 인간관계의 교제는 하지 못했다.

오직 전쟁을 통해서 그의 성격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소양인이건 태양인이건 하여간 양인이다.

히데요시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그가 조선과 중국을 정복한 후 인도까지 정복하려한 과대망상가 였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전쟁에도 능했지만 다른 재주와 인간관계도 능수능란했다.

「 드디어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라는 도구로부터 다면성을 발견해 나간다. 일찌기 경리와 보급이라는 숫자 놀음의 재능을 발견하였고 다음으로는 축성의 재능도 발견해 낸 것이다. 숫자놀음과 토목의 재능은 주인의 질투를 사지 않겠끔 히데요시는 가능한한 감추어 두고 있었고 도량있고 의지가 강한 야전 지휘관다운 행동만을 했던것이다. 또 커다란 공을 세운후에도 아낌없이 그것을 노부나가의 덕으로 돌려버렸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의 무사(無私)한 마음과 화끈함에 매혹되어 버렸다.」

- 시바료타로 저 <일본 일본인> 탐구 中 -

히데요시에게서는 꼭 조조같다는 느낌이 들곤한다.

무서운 사내인 것이다. 당시의 일본은 약육강식 외에 각종 지략과 음모 오해, 의리, 이해관계등이 뒤섞여 수틀리면 언제 누구에게 갑자기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데요시는 철저하게 노부나가라는 인물에게 신임을 받고 있던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천민, 혹 서민 출신이었다.

원숭이 처럼 생긴게 초라하였다 한다. 처음 노부나가의 종이 되었을때 그는 "나는 세상 제일의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 한다. 노부나가가 화장실 청소를 맡겼더니 그 화장실은 항상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한다.

히데요시는 매우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할때도 빈틈이 없었고, 작전을 짜거나 적을 공격할때도 완벽한 작전을 구사하는 인물이었다.(소양인이라면 도량이 매우 뛰어난 것이다.) 음모와 모략이 판을 치는 전쟁터에서 또 장군들 상호간의 역학관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당여를 잘한것이다.) 흔히 원숭이 모습에 간사하고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또 한국인에게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살상시킨 원흉으로 알려져 있으나, 하여튼 일본인들에게는 비천한 계급 출신으로 일약 쇼군에 오른 인물이다.

그 인간성의 됨됨이와 가치 평가는 이 책에서는 논외이다. 천하를 거머쥔 인물들은 거의 그렇듯 히데요시 역시 사람을 잘 다루었다. 히데요시에겐 노부나가 같은 용맹함이나 힘 등은 없었다. 단지 잔혹할때가 많았으며 머리 하나로 일본을 통일한 것이다. 히데요시는 전쟁에는 인력과 물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하+장량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 하겠다. 그러나 히데요시에게는 이른바 "부드러움 후덕함"하는 인격적인 품성은 없었다. 태음인일 가능성은 적다. 그저 지략과 도량이 그의 최대 무기였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전쟁에도 능했지만 그가 점령한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하게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려 힘을 많이 기울였다. 아마 이점이 히데요시의 깊은 생각을 보이게 하는 면일것이다.

그리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물자와 생산이 증가하고 하나로 뭉쳐진 힘도 나오는 것이다.

대망이라는 소설에도 나오지만 히데요시는 그다지 정력적인 인물은 아니었던듯하다.히데요시는 53세까지 후계자가 없었다. 50이 다되 처음 보게된 아들이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던중 임진왜란의 와중에 요도기미와의 사이에서 히데요리가 태어났다. 1589년 히데요시가 죽을 당시 히데요리는 여섯살이었다.

히데요시는 뒷일이 걱정이었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법도를 가진 왕가가 있어 그 아들이 왕위를 잇는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가장 세력이 크지만 그냥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힘이 있는자가 뺏으면 그만인 것이다. 죽기 얼마전 히데요시는 그를 보좌하는 5대로(5大老)를 불러놀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중에는 도꾸가와 이에야쓰도 끼어 있었다.

「부디 히데요리를 잘 부탁하오. 5대로 여러분 정말 잘 부탁하오... 히데요리가 훌륭히 해낼 수 있도록 다섯 분에게 부탁하오. 그 일 밖에는 아무일도 걱정되는 일이 없소」

당시 일본사회의 속성을 아는 히데요시는 늦게 얻은 하나뿐인 자식 걱정에 제대로 눈을 감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히데요시는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지는게 인생이련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이로세!"

라는 말을 남기고 후지산 만한 근심을 안은채 62세로 죽었다. 그리고 이로써 조선의 비극도 막을 거두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소양인이나 소음인으로 생각되는 인물이다.

그의 일생을 통해 태양인이나 태음인의 특성을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인이나 태음인 일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이들의 이야기가 씌여진 책이 대망이다. 저자가 십몇년 동안인가 쓰다가 죽고 그 딸이 몇년을 더 써 완성시킨 연재소설로 알고 있다. 음인들이 이런 집념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을 것이다. 양인이라면 태양인일 가능성이 많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다시 일본을 완전히 평정하고 근 300년 간의 막부체제를 출범시킨 사람이 도꾸가와 이에야스이다. 일찍부터 일본의 일인자가 되려한 마음을 갖고 있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50년이 넘게 숨겨온 전 일본을 제패할 속셈 보따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보다 대여섯살 정도 나이가 적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보다 오래 살아 천하를 차지하려 건강과 섭생에도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한다. 사람의 심리파악이야 제갈공명 만큼 전문가 였던 히데요시도 이에야스의 본심만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정말 무섭도록 냉정하게 자신을 숨기고 인내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처럼 낮은 신분 출신은 아니었지만 세력이 약한 성주의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 부터 볼모 생활을 많이한 사람이었다. 근 13년간의 볼모 생활동안 이에야스의 주된 인생관과 세계관이 형성되어 졌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용의주도하고 철저하게 본심을 숨기며 마지막 기회가 올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농담으로 하는 말중에 바늘을 갖고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에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늘을 가지고 코끼리가 죽을때까지 찌르는 것이다. 두번째는 바늘을 들고 있다가 코끼리가 죽기직전 찌르는 것이다. 세번째는 바늘을 꽂아놓고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놀것 다놀며 기다리는 것이다.

아마 노부나가가 첫번째의 타입이라면 세번째는 히데요시 타입이고 두번째가 이에야스 타입일 것이다. 한국인 같으면 바늘을 씹으면 씹지 도저히 이에야스 처럼 인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신에 근신을 거듭하며 히데요시가 죽기를 기다리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사후에는 매우 신속하게 자신의 대망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전국을 제패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동안 이에야스는 세력의 열세를 절실히 깨닫고 그들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여 나갔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노부나가와도 세력이 비슷해졌고 후에는 히데요시와도 견줄만 했지만 히데요시가 일본의 최강자인 까닭에 또한 아직 히데요시에게는 안된다는 조심스런 마음에 히데요시에게 복속되어 있는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히데요시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히데요시가 죽은 후 전일본을 통치하겠다는 신념하에 차근차근 계획을 꾸미고 사람을 모았다. 그리고 히데요시가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걱정속에 죽자 곧이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미쓰나리 등의 히데요시 가신 그룹이 반발하게 되고 결국 세키가하라의 결전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이에야스는 초반의 열세를 뒤집고 대승을 거두었다.

세키가하라의 결전후 일본천하는 이에야스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이에야스는 안심할 수 없었다.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와 그 어머니인 요도기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고나면 다시 어떤 형세가 될지 모를일이었다. 이에야스는 도요또미 가문을 멸족시켜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세월은 다시 10년이 넘게 흘러가 히데요리는 어느덧 20세가 넘게 되었다. 무섭도록 질긴 이에야스는 14년을 기다려 결국 히데요리와 요도기미가 살고있는 오사카성을 공격할 트집을 얻고 공격에 나선다. 당시 오사카성은 당태종 이세민을 패하게 만든 안시성 만큼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것 같다.

20만의 정예병으로도 10만의 병력이 주둔한 오사카성을 빼앗지 못한 이에야스는 결국 강화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 강화란 것이 사실은 계략이었다.

즉 해자라고 하여, 오사카 성 주위는 마치 서양의 성처럼 성 주위로 못을 만들어 놓았었다. 강화의 조건은 그 해자를 메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성 바깥쪽의 해자뿐만 아니라 어영부영 성안쪽의 해자까지 메우게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오사카측이 이를 항의하는 사이 재빠르게 안쪽의 해자를 메우니 이제는 오사카성은 양반집 담 둘러친 것 밖에는 안되는 격이 되었다.

얼마 후 이에야스는 히데요리 측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후 이를 거절당하자 30만의 대군으로 오사카 성을 공략, 함락시켜 버렸다. 이 와중에 히데요리와 요도기미는 자살을 하였다. 죽은자는 말할 수 있어도 행동할 수는 없다.

이에야스의 소원은 이제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도요또미 가문까지 완전히 멸족시킨 후 몇년을 더 살다 이에야스도 숨을 거둔다. 아마 히데요시 처럼 걱정을 안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음인으로 생각된다. 태음인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에야스는 오늘날 많은 일본사람들에게 modeling되는 인물이다.

오사카성의 마지막은 참 허무하였다.

「 오사카 성의 바깥해자를 메우는 공사는 이에야스의 심복 혼다마사즈미(本田正純)가 담당하였다. 그는 바깥해자를 다 메우자 다시 안쪽 해자를 메우는 공사에 착수하였다. 오사카 측에서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마사즈미는 '나는 아버지 마사노부(正信)의 영향에 따라 이 공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항의할 일이 있거든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라.'라고 말하며 공사를 계속하였다. 그래서 마사노부를 만나 항의하자 그는 '즉시 이에야스 공의 재가를 얻어 공사를 중단시키겠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병에 걸려 있으니 3일간만 말미를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물론 그 사이에 안쪽 해자를 모두 메워버렸다. 그후 오사카에 온 마사노부는 진정으로 사죄하면서 '마사즈미의 죄는 정말 이를 데 없사오나 만약 원상복구를 하자면 메운 공사비의 몇십배의 공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강화를 맺었으니 해자가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제발 그대로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할 뿐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인즉 이에야스와 혼다부자가 사전에 짜낸 계략이었다. 」

- <이야기 일본사> -

「신은 멸망시키려는 자로 하여금 먼저 미치광이 짓을 하게 한다.」는 라틴속담이 있다. 이당시 오사카 측은 미치광이 짓을 한것은 아니었다. 희정이나 낙정에서 나온 「기대심리」가 그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것인 것이다.

마치 증권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이 곧 오를 것이라는 안타까운 「기대」속에 깡통이 되었는데도 정신못차리고 오르기를 기다리는 투자자의 심리와 같을 것이다.

위의 일이 있은지 얼마후 오사카 측의 안타까운 기대 심리는 무너지고 히데요시의 불길한 예감대로 히데요리는 불길속에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일단 평화가 정착되면 또 그상황속에서 민초들은 살아가고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옛날얘기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이야기는 오래전 읽었던 大望의 기억과 청아출판사간 <이야기 일본사>에서 주로 인용하였다.

몇번이고 말하지만 이들의 이책에 나오는 모든 사상인의 분류는 필자의 편견이다.

달리 보자면 얼마든지 달리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