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학편

사상의학을 쓴 이제마는 의학자이기 이전 유학자였다. 그의 주된 관념은 다분히 유학적일 수밖에 없다. 사상의학은 치료나 예방 위주의 의학적 차원을 넘어 유학적인 윤리나 도덕 등의 내용까지 포함되어져 있다. 이제마 역시 의학뿐 아니라 철학적·윤리적인 분야까지 사상의학의 영역을 확대시키려고 한 의도가 있던 것이 격치고 등의 저서를 통해 보이고 있다.

단순한 인성분류나 체질분류에 따라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 사상인 특유의 심성적 특징과 사고 행위, 행동의 특징까지 분석하고 분류하여 그에 따른 각 상인 나름의 수양의 자세까지 제시하여 놓은 것이다. 그 방향과 자세는 유학적인 것이다.

이 단원 역시 그 방대한 유학의 사상을 다 다룰수는 없다. 기초적이고 사상론의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다루었다.

이 단원은 편의상 유학이라 이름지었지만 그 내용은 유학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유학의 발생 배경과 사상의 개념을 잡기위해 중요한 이기(理氣)성정(性情)론의 이해에 중점을 두었다. 필자는 유학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가) 유학의 발생과 전래

역시 음양론과 마찬가지다. 정신을 집중하기 보다는 편한 시간에 느긋하게 앉아 교양서적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나가기 바란다.

고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이 있었다.

「 옛적에 한인이 계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셔 천산에 사시면서 천신에 제사를 지냈다. 」

- 한단고기 中 태백일사 -

이 지역에서 비단 이러한 제천의식이 桓族(한족 또는 환족)에게만 있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도 하늘과 땅과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글이 있으며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후 은나라의 제사를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아들 무경에게 잇게 했다는 글이 사기에 나온다.

유학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수천년을 내려온 이러한 제천의식과 여러 왕들의 천명(天命)사상 등을 공자가 집대성한 것이다. 공자는 요순시대를 이상사회로 규정하고 개인적으로는 인과 예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현실 속에서는 격물치지(格物致知) 한 후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있게 도(道)와 덕(德)의 실천적 궁행에 힘쓸 것을 역설하였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초학자들에게는 다소 낮설은 내용이 될 것이다. 유학의 근원을 캐다보니 역사책까지 뒤적거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다소 지나치거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것이다 .

◎공자의 가계

공자가 유학을 일으킨 노나라는 유학의 배경을 연구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공자의 관념과 사유체계가 노나라에서 이루어졌고, 공자가 유학에 대한 지식체계를 확립한 곳이 바로 노나라이기 때문이다.

노나라는 공자가 대사구(大司寇 : 사법장관)가 되어 노나라의 사고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았을 때 옛성인들의 사적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하였을만큼 풍부한 역사적 자료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아마 이 자료들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때 모두 불태워졌을 것이다)

공자는 宋나라 왕족의 후손인 숙량흘과 성은 안씨(顔氏女) 이름은 징재로 알려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선조들이 살았던 송나라는 주의 무왕에게 멸망당한 은(殷)나라의 유민들이 모여 만든 나라였다. 공자의 가문은 공자가 태어나기 3대전에 송(宋)에서 노나라로 왔다하며 공자의 아버지되는 숙량홀(叔梁紇)은 키가 2m 쯤되는 거구에 굉장한 힘을 가진 사내였다 한다. 공자도 거구였다.숙량흘의 나이 70에 당시 16세의 안씨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진나라 도공 당시 숙량흘은 노나라 추읍의 대부가 되어 있었다. 이때 초나라와 정나라가 송나라를 침범함에 노나라는 진나라와 송나라와 연합, 초와 정이 송나라를 침범하는 길목이 되는 핍양(   陽)이라는 작은 나라를 먼저 공격하였었다. 이때 숙량흘은 노나라의 장군인 맹손멸(孟孫蔑)의 휘하에 부장으로 출전하였었다. 핍양성 공격에서 숙량흘은 천근이 넘는다는 핍양성 성문이 내려 떨어지는 것을 받쳐올리는 괴력을 발휘, 여러 장수와 병사들을 구해내고 결국 공격을 승리로 이끌었었다. 한편 숙량흘에게는 함께 살고 있던 아내가 있었으며 딸만 아홉 낳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백치에다 절음발이 였다. 이에 숙량흘은 안씨라는 여인의 셋째딸 징재(徵在)라는 여인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아마 징재라는 여인은 이때의 공로로 얻게 되었을 수도 있다.

징재가 예식이 끝난후 지아비를 보니 너무 늙었었다. 쉽게 아들을 볼수 없을까 염려한 징재는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기도하였고 이런 중에 공자가 태어낳다. 공자는 머리위가 오목하여 언덕과 같으므로 이름을 구(丘)라 했고 니구산에 빌어 낳았다하여 자(字)를 중니(仲尼)라 했다.

공자의 이름인 구(丘)는 현재의 중국어로 발음이 ' 치우 ' 이다. 치우라는 발음의 왕이 단군 이전 한족(桓族)에게 있었다. 신시시대 14대 자오지 천왕은 일명 치우(蚩尤)천왕이며 매우 용맹했던 인물로 전설상의 중국 황제인 헌원과 싸워 승리했던 왕이다. 혹 치우라는 음을 가져와 구(丘)라 이름했고 위의 일화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숙량흘의 선조가 宋나라에서 노나라로 온 이유는 화씨(華氏)들에게 당할지 모를 화(禍)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화씨들은 그 성씨가 의미하듯 지금의 중국민족계열인듯하며 당시 송나라의 실권을 좌지우지하던 귀족이었다. 실지 공자의 선조 중 공부가(孔父嘉)는 화씨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었다. 송에서 노나라로 온 숙량흘의 선조는 숙량흘의 할아버지되는 방숙(防叔)이었으며, 방숙의 선조는 은나라 주(紂)왕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의 동생 중사(仲思)이다. - 중사 역시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와는 배다른 형제인 셈이다 - 주(周)무왕의 아들인 성왕은 미자를 은나라의 유민들이 모여 만든 송나라의 제후로 봉해 은나라의 제사를 잇게 하였는데 미자가 아들이 없으므로 동생이 그 대를 잇게 되었다. (공자는 송나라의 왕족의 후손이 됨) 미자와 중사 그리고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아버지 되는 이는 제을(帝乙)이었다.

제을(帝乙)의 선조 곧 은나라를 개국한 사람은 탕(湯)왕이다. (개국 당시는 상(商)나라라고 하였었다) 탕(湯)은 하나라의 걸왕을 몰아내고 은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탕(湯)의 선조는 설(契)이라는 사람이며 순(舜)임금이 설(契)을 상(商) 땅의 제후로 봉했다 한다. 공자는 설(契)이라는 사람의 자손도 되는 셈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설의 어머니 되는 간적(簡狄)이 현조(玄鳥)가 떨어뜨린 알을 삼킨뒤에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 한다. (사기에 쓰여진 이 내용은 사마천이 쓴 것이 아니라 당나라때 사마정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설에 대해서는 동이족이라는 사람도 있고 한(漢)족이라는 사람도 있다. 한(漢)족 즉 중국인들의 조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설의 아버지가 고신(高辛)이고, 고신은 중국인들의 시조라는 헌원의 종손이 된다고 한다 - 사마천 -. 그러나 한단고기에는 별개의 인물로 나온다. 동이족 곧 한족(桓族 : 고대 한국의 조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동이족 특유의 난생설화와 같으며 설이 고신의 아들이라면 요임금과도 배다른 형제가 되는데 - 사마천이 사기에 의하면 요는 고신이 진봉씨의 여자를 통해 낳았다 한다 - 서경에 보면 契은 순임금때에 그 이름이 나타난다. 요임금은 70년을 제위에 있었다하니 둘사이에 나이차이를 헤아리기 힘들어진다. 설사 그럴수 있다손 치더라도 간적의 이름 중에 있는 적(狄) 역시 한족이 아니라는 소위 그네들이 이적(夷狄)할 때 쓰는 오랑캐를 뜻하는 글자이다. 삼국사기에는 고신씨가 고구려의 조상이라고 나와있다.고신씨는 단군시대 이전의 인물이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헌원은 소전(少典)이라는 이의 자손 - 원문에는 사생아(別孤)로 되어있다 - 으로 되어있다. 안부련한웅(BC 3240) 말기 소전의 별고(別孤)인 공손을 헌구(軒丘)로 유배시켰으며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라고 나와있다. 설을 한족(桓族)이라고 보는 사람은 중국인들이 그들의 시조라고 말하는 헌원까지 동이족 즉 한족(桓族)이라고 보는 것이다.

( 한(깐,칸,간,한,안, 한/헌/혼/훈)이라는 발음은 중요한 발음 중 하나이다. 桓도, 韓도, 恨도, 漢도 다 우리말로는 ' 한 ' 이다. (桓은 환으로도 발음된다) )

한단고기에는 소전은 웅씨(熊氏)에서 갈려져 갔다고 나와있는데 이 당시는 모계사회였음을 우선 알아야 한다.

오늘날 그 사람의 씨를 말하는 성(姓)이라는 단어를 보면 女(계집녀)자와 生(날생)자의 合字로 되어있다. 언제부터 姓이라는 글자를 썼는지 알수 없으나 꽤 오래전부터 쓰여 왔던 것이 이어져 오늘날에도 쓰여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전을 낳은 웅씨(熊氏)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단군신화 또는 설화로 알고 있는 곰과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도 설화도 아니다. 사실의 기록이자 역사이다. 그것이 신화라는 탈을 쓰고 각색되어져 전해져 온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본문 중에서 다시 다루고 있다.

공자의 가계를 밝히기 위해 너무 깊게 들어간 것일까? 그럴지고 모른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면 대충 알수 있겠지만 공자의 조상인 탕이 세운 은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문화에만 속해 있던 것이 아니라 동이문화 곧 고대 우리민족의 문화권과도 관련이 깊은 나라였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그 자신의 학문의 바탕을 세웠던 문화는 전체는 아니지만 단군시대의 문화와도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이다. 전국시대에의 제나라, 노나라, 송나라, 위나라, 한나라 연나라 등은 모두 단군조선과 관계가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유학은 단순히 중국의 문화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