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정이기론(性情理氣論)

A. 성선설

유학의 중심되는 이념은 천명(天命) 사상이다. 이는 사서삼경 중 정치적 기록을 담은 서경의 가장 핵심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천명사상은 인간은 어쩌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명해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와 이념적으로 상대적인 것이 인본사상일 것이다. 한웅신화나 천도교에서 말하는 인내천, 홍익인간 등은 인본사상에 속한다. 그러나 상대적이라고 해서 인본사상이 인간의 성(性)을 우연에 돌린다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 시대에 이미 동중서와 왕충에 의해 천과 인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있었었고, 그후 1000년을 지나 송대와 명대에 이르러 육상산이나 왕양명 등의 학자가 마음(心)을 위주로 하는 인본(人本)사상적인 유학의 학풍을 주장하였지만 아직껏 유학의 중심되는 이념은 천명사상이다. 천명사상이 하늘에서 지상으로라면 인본사상은 지상에서 하늘로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천명 후에 인본이 있는 것이 천명사상이며 이것이 공자가 집대성한 유학의 근본 줄기이다.

중용에 '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 라는 글이 있다.

인간의 생명은 하늘에서 성을 받아 생기게 되고 순선무악한 하늘이 준 성을 따르는 것이 도라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성선설이다.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은 성은 선하다는 것 외에 인간의 정은 선을 하여야 한다는 도덕적이고 정언적인 명령이기도 하다. 유학에서 말하기는 순선무악한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성품은 선함에 틀림이 없다. 때에따라 아니 너무도 자주 인간이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性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 성선설(性善說)의 요지이다.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때부터 선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옛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고자가 성은 이리될수도 저리 될 수도 있다고한 말을 듣고 공도자가 의문을 품고 묻자 맹자가 말했다.

乃若其情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 인간의 情을 말하자면 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선하다는 것이다. 」

성선설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정(情)은 주자때에 이르러선 성(性)이 발(發, 드러난다는 의미)한 것이라 하였다. 情은 인간 본연의 성품이 현실 속에서 제 현상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맹자 역시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性은 心과 生의 합자이다. 생명이 이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생긴 것, 그것이 性이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뜻이다. 天命사상에선 이 性을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개개인의 생명은 모두 하늘에 의해 命되어진 것이 된다. 결코 SEX와 관련시켜서만 생각치 말기 바란다.

情은 心과 靑의 合字이고 푸른색(靑)은 오행적으로는 나무(木)를 의미하여 ' 자라나는 것 ' , ' 키우는 것 ' 을 뜻한다. 때문에 性이 불변적이라면 情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이러한 정(情)의 가변성은 본인 스스로에게 내리는 당위적이고 정언적인 명령에 따르거나 법, 제도, 규칙, 교육 등에 의해 절제되거나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일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에게는 분명 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속에서 제현상들과 반응하며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고자가 말했다.

「 (인간의) 성은 맴도는 여울물과 같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른다. 사람의 성품을 선함과 선하지 못함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마치 물에 있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

그럴듯한가

인간의 본성은 백지와 같다는 로크의 주장과 비슷하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환경에 따라 선하게 될 수도 악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보기에는 답답하고 큰일 날 말이다. 맹자는 이런 주장들을 철저히 배격한다. 인간이 때에 따라 악한 행위도 하게되는 것은 본성이 선해질수도 악해질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선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물은 참으로 동서의 구분이 없지만 상하의 구분도 없겠는가.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물은 아래로 흘러내려가지 않음이 없다. 이제 물을 쳐서 튀기면 사람의 이마도 넘어가게 할 수 있고, 거슬리어 흐르게하면 산에라도 올라가게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어찌 물의 성질이겠는가?

외부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선하지 못한 짓을 하게 되는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네. 」

- 맹자 -

맹자에게 있어서 인간의 性은 당연히 선한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고자와 맹자의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견해차는 그들이 인간의 본성을 무엇으로 어디까지 보는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고자가 말하였다.

食과 色은 性이다.

먹는 것과 성욕도 性이라는 것이다. 고자가 말하는 본성은 인간의 본능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맹자는 본능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순수한 마음만을 말하고 있다. 즉 性에서 食과 色 등의 본능적인 욕구는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끝을 볼 수가 없다. 서로간에 기호를 이용 변별하는 한 더 말을 잘하거나 논리적이거나 힘이 강한 자가 그 종지부를 찍을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모든 동물, 예를 들어 ' 개 ' 를 생각해 보자. 개에게도 자기 새끼를 보살피려는 행위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모든 동물에게 있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이 교육을 통하여 그리되는 것일까? 동물에게도 있는 이러한 마음이 인간에게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맹자는 결단코 고자의 주장을 받아들일수 없었을 것이다. 맹자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면 사람은 개만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마는 맹자를 호연지기를 가장 잘한 사람이라하여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동의수세보원에 쓰여있는 사단론, 확충론 등도 모두 맹자가 사용했던 말들이다.

맹자의 ' 선을 향한 의지 ' 는 바로 호연지기의 근본이 되기도 한 것이다. 순수하게 선한 마음으로 좋은일 하자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 감히 여쭈어 보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말하기 어렵다. 그 氣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서 바르게 길러 해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사이에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 氣란 정의와 정도에 부합되는 그것이 없으면 시들어 버린다.

그것은 정의를 모아 이루어진 것이요, 정의가 외부에서 엄습해와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 마음에 만족치 못함이 있으면 곧 시들어버린다. 」

- 혜원문화사 刊 맹자 -

여기서 말하는 氣는 음기·양기 할 때의 氣와는 다른 개념이다.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는 누구의 명령이나 외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조금도 부끄러움이나 떨떠름한 감정이 없이 ' 그리하여야 한다 ' 는 생각을 강하게 실천할 때 생긴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 선을 하겠다는 의지 ' 가 사사로움이 섞임이 없이 거침없고 한결같이 커져갈 때 호연지기가 마음속에 생긴다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때로는 행동하고 때로는 겪는다. 정신이 타당한 관념을 갖는 한 그것을 필연적으로 행동하고, 타당하지 않는 관념을 갖는 한 정신은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 스피노자 -

스피노자의 이러한 말도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호연지기란 공명심에서 나오는 무분별한 용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도 맹자도 이러한 맹목적인 용기는 극히 경계하고 있다.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에게 덤벼드는 사람하고는 같이 일을 할 수 없다하였고, 맹자도 죽을만도 하고 죽지 않을 만도 할 때 죽으면 용기를 해친다고 하여 분별심이 없는 용기에서 나오는 극렬적인 행위는 경계하고 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문화)도 있다.

「 만일 일의 어렵고 쉬운 것을 따져서 행한다면 참다운 충성이 아니요, 죽고 사는 것을 헤아린 뒤에 움직인다면 용맹이 없다 할 것입니다. 」

- 삼국유사 中 박제상 -

' think twice before you answer(대답하기전에 한번더 생각해요)

란 노래가 있다. 또 이런 노래도 있다.

' Don't think twice it all right(처음 생각이 옳아요)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마는 이와같은 호연의 기운은 폐, 지라, 간, 콩팥에서 나오고, 선을 행동하며 분별심을 가려내는 행위를 호연의 이치라 하여 심장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모든 과정에는 마음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의·예·지 사단의 기운을 넓혀서 채운다면 호연의 기운은 여기에서 나올것이요, 비박하고 탐나한 마음의 욕심을 분명하게 가려낸다면 호연의 이치는 여기에서 나올 것이다.

- 동의수세보원 원문 中 -

어찌보면 오늘날의 서구철학의 구조주의적인 생각이다 .과연 인간의 마음을 이처럼 구조적으로 나누어 놓을 수 있을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유물론이니 유심론이니 하는 것이 없다. 이러한 구분은 서구문명의 논리일 뿐이다. 이러한 구분들은 현상계를 분석해보는 좋은 방법이긴 하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건 지나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생명체를 어찌 물질이 더 중요하다느니 정신이 더 중요하다느니 하는 것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마의 논리는 한층더 발전적이지만 비박하고 탐나한 마음의 욕심을 가려내어 호연지기와 호연의 이치만 채운다고 반드시 올바른 행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

- 맹자 공손추 -

맹자의 사단론이다.

「 네가지 단서가 나에게 있는 것을 알아서 확충해나가면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그것을 확충시킬수만 있다면 족히 천하를 보존할 수 있다. 」

- 맹자 공손추 -

맹자의 확충론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마음속에 확충시켜 가득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때에 따라 악한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사단의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단의 마음을 의지를 갖고 굳게 확충시키라는 이야기이다. 한 인간을 인격체로 완성하기 위한 글이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의 인간은 항상 상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 사람의 말이란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말하는 것은 서로간에 말하는 것이 있는 것이며, 그 서로간에 말하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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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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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유가와 묵가 등의 시비가 있고, 이들은 한편이 안된다 하는 것을 된다로 말하고, 다른편은 된다는 것을 안된다로 말한다. 」

- 장자 제물론 中 -

조선말에 대원군이나 명성황후, 개화당이나 수구파 모두 자기들이 옳다하고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위하였다. 그런데 아는 바와 같이 모두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개인적인 수신에 관한 글로는 사단론이나 확충론은 그릇된 바가 조금도 없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논의들은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

세상은 혼자만이 기껏해야 몇몇 사람이나 작은 공동체가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집단 속의 개개인의 마음은 모두 저마다 다른 법이다. 이것을 어거지로 사단이나 확충론에 끼워 맞출수는 없는 일이다. 유학에서는 옳은 것을 하여야 할 바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이런 상황에선 자기 신념만 옳다고 하는 인물들이나 나오게 된다. 너와 내가 둘이 있어 너나 나 중에 하나가 자기만 옳다고 한다면 상대도 그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의견의 절충과 보완이 없다면 어떤 사상이든 당파적인 편견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맹자는 단순히 사단을 말했고, 이제마는 그 사단이 폐비간신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실지 폐비간신에서 우리가 인의예지라고 말하는 마음이 나오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제마와 같은 생각을 이른바 유물론적인 견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의수세보원은 유물론도 유심론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