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론

이 부분은 관심있는 분만 자세히 보십시오. 조선시대 수백년동안 벌인 성정론에 대한글입니다.
 일반사람들은 마음과 性과情의 관계만 알고 있으면됩니다.

  이황과 기고봉간의 사단칠정 논쟁은 퇴계가 정지운이 쓴 천명도의 글을 "사단은 理가 發한 것이고 칠정은 氣가 發한 것이라고 " 수정한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수정은 유학자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퇴계는 곧 "사단이 發하여 나타난 것은 순수한 理에서 나오기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 칠정이 發한 것은 氣를 겸하고 있기에 선악(善惡)이 있다" 로 재수정 하였다. 그러나 기고봉은 끝내 의문을 풀지않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로부터 조선시대 수백년동안의 사단칠정 논쟁이 시작된다.

주자가 말하는 성과 정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性 ―――→ 情

↘ 發 ↗


性도 情도 다 心이지만 性은 외부에 반응하기 전의 상태이고 情은 외부현상에 반응한(된) 마음의 움직임을 말한다. 정(情)은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發된 이후이다. 기고봉은 우선 정(情)은 이미 發한 것을 가리키는데 칠정(七情)이 또 發했다는 것에 일단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황은 이점에 대해 단순히 인간 마음 속의 선과 악적인 요소를 순수한 理와 氣가 섞여 순수하지 못한 마음의 측면을 구별하고자 할 뿐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 기고봉의 주장은 그리되면 인간의 마음이 둘이 있다는 것이 되고 이는 맹자의 성선에도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성은 理이고 순수한 善인데 이황의 논리대로라면 性속에 理와 氣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장자는 말이 있으면 한계가 있고 구별이 생긴다 하였다. 한계가 없고 구별이 없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한계를 가졌기에 말이 되고 그 말은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다시 말이 생기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역시 끝없이 생기는 문제속에 있을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건 서로 구별되어져 있는 타인들의 관계속에 있다. 그 타인들 모두가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한계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며 살고있는 한 끝없이 그런 문제점을 제기 받고 해결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일 것이다. 그야말로 삶아질 일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우리들은 장자처럼 절대 무차별의 도를 깨닫고 만물 제동의 인생을 살아갈 수도 없으며 공자의 말처럼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수도 없고 아침 이슬을 먹고 바람속을 노닐며 살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작가 이상은 " 어느 시대건 현대인은 절망한다고 " 말했을 것이고, 작가 박태원은 "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다 " 고 말했을거다. 비단 행복뿐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편이고 자기생각대로이다. 자기입장에서 무엇이든 합리화하고 정당화된다. 인간의 심성은 누구나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임어당은 " 독재자는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가 독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했다. " 그것이 바로 인간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와 구별되어지는 것이 없으면 스스로를 모른다. 그리고 기호 역시 그러하다.

논리상으로는 성이 발하여 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성(性)따로 정(情)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기대승의 의견이라면, 인간의 마음속에 성따로 정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性과 情으로 구분지어 생각하여도 안될 것 없다는 것이 퇴계의 생각이었다. 성정론에서는 성(性)에서 정(情)이되는것 즉 성(性)이 외부현상에 접하고 자극되고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氣가 개입되어 일어난다 한다. 이 기(氣)가 개입됨으로써 생기는 감정의 상태를 희노애락애(사랑)오욕의 일곱가지로 나타낸 것이 칠정(七情)이다. - 물론 이외에도 있을 것이다. 칠정이건 팔정이건 구정이건 상관없다. - 이런 감정들의 상태를 유학에서는 소위 ' 중도(中道) ' 를 잃기 쉬운 감정의 상태로 보고 있다. 칠정은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있다는 것이다. 칠정의 상태는 분명 측은해하고, 동정하고, 불쌍해하는 소위 휴머니즘과도 다르고 양보하고 물러서주고, 겸손해하는 등의 신사도나 세련된 마음과도 다르고 자신의 못난점을 부끄러워하고 남보다 못한 것을 인정하는 등의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으려 하고, 틀린점을 가려내려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하는 마음과도 다른 마음의 상태이다.

앞에서 예로든 네가지 마음의 상태가 인의예지의 사단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이런 마음을 용어적으로는 기쁨, 슬픔, 노함, 즐거움 등과 다르다. 이런점 때문에 이퇴계는 칠정과 사단의 마음을 엄격히 구별하려 하고 있고 ( 실지 칠정과 사단과는 다른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 기고봉은 " 논리상 구별할 수 있을 뿐이지 두가지 다 한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여 구분 지을 수 없다 " 하였다. ( 이것도 실제 그러하다. )

이황은 어떻게든 인간본연의 순수한 理인 性과 氣에 영향받은 情의 상태를 구분하려는 반면 기고봉은 설사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 구별이 심하기 때문에 후인들에게 끼칠 영향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 하고있는 것이다. 후에 벌어질 성혼과의 논쟁에서 이율곡은 첫째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있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없다 하였다.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있지만 성현이 편의상 그리한 것일 뿐 칠정속에 사단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율곡의 말을 집합의 표현으로 하면 다음과 같다.


칠정 > 사단

그리고 사단이 이치를 주로 했다는 것은 옳으나 사단도 氣에 의해 일어난다. 칠정 역시 이치와 기운을 포함해서 말한 것으로 기운을 주로 한것은 아니다.

- 율곡의 사상 中 -

그러나 이황은 이와 다르다. 이황의 논조는 외부현상에 접하여 원래 타고날 때 부여받은 인의예지의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理發이고, 그것이 그렇지 못하고 기에 영향받아 순수한 性理가 그대로 나타나지 못하고 칠정이라는 마음의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 기발, 엄격히 말하면 기(氣)를 겸하여 드러난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황은 단지 칠정만이 기(氣)를 겸했다고 하는 반면 기고봉이나 이율곡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인간의 외부현상과 접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서 반응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마음의 상태에 이름을 붙여놓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사단이니 칠정이니 하지만 그 모두가 다 칠정 - 그냥 心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 속에 있는 것이지 원래부터 사단을 가리키는 理의 마음과 氣를 겸해 나타나는 칠정이 마음속에 따로따로 존재하다가 경우에 따라 사단과 칠정의 마음이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사단은 칠정중 이치의 한쪽이 發한 것을 말하고, 칠정은 중용에 맞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기운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해 악으로 흐르는 것이다. 」

- 이 율 곡 -

「 성이 발할 때에 기가 간섭하지 못하여 본래 가지고 태어난 선이 곧바로 나타나는 것이 맹자가 말한 사단이고 이것이 천리가 발하는 것이고 이것은 칠정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

- 기고봉 퇴계의 생애와 사상 中 -

사단은 칠정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사단과 칠정은 다 같은 하나의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는 기고봉의 반박에 이황 또한 반론을 제시한다.

「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지만 나아가서 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명칭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옳다, 理와 氣는 서로 체가되고, 몸이 되기 때문에 理없는 氣도 氣없는 理도 없지만 나아가서, 말하는 것이 다르다면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사단은 인의예지의 性에서 發한것이고 칠정은 외부의 형체에 감촉되어 마음속에서 움직여 외부에 따라 發된 것일 뿐이다. 」 - 이 황 -

이황은 순수한 선한 마음을 가리키는 사단은 어떤 경우든 그렇지 못한 칠정과 엄격히 구별하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점이 논리적으로는 뒤지면서도 유학의 天命사상으로 일관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와같은 이황의 방어적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정리한 반론에 기고봉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

「 정은 理와 氣를 포함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습니다. 理, 氣의 妙合중에 理만을 지적하여 發한 것이 사단이고 理와 氣를 같이 말한 것이 칠정이다. 사단이란 칠정중에서 發한 것이 중절된 경우를 말합니다. 」

- 기고봉 퇴계의 생애와 사상 中 -

마음이라는 것이 사단따로 칠정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칠정이 바로 인간마음의 총칭일 수 있는데 그 마음 곧 칠정이 發했을 때 중절된 것이 인의예지의 사단이고, 중용에 나오는 和라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기고봉은 계속 주장을 펼친다.


「 사단과 칠정은 크게 나누어 도식의 위치를 달리하면 설명하기에는 좋지만 두 개의 정과 두 개의 선이 있어 하나는 理에서 발하는 것이요 ,하나는 氣에서 발하는 것으로 의심하게 됩니다. 」

- 기 고 봉 -

이쯤에서 이황은 기고봉에게 자꾸만 하나로 合一하려 하지말고 同중에서도 異가 있음을 보라고 점잖게 충고하여 주며 분석을 싫어하고, 혼륜을 좋아하며, 하나로 종합하려고만 한다는 충고도 하여주고 있다. - 기고봉은 이황보다는 나이로 보나. 학문적으로 보나 매우 후학이었다. - 그러나 기고봉은 근본의 문제를 밝혀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李延平(이연평)은 말하기를

" 發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中이요, 性이고, 發해서 節度에 맞았을 때는 和라고 말하는 것이니 절도에 맞지 않은 것은 不和이다. 和, 不和의 차이는 다 이미 發한 뒤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은 情이지 性이 아니다. "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 性은 善하다 하고, 또 情이란 것은 善을 하는 것이다 " 하여 그 說이 대개 자사에서 나온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칠정을 논할 때 칠정이라 하는 것은 氣만을 가리킨 것이 결단코 아니라고 봅니다.

- 기 고 봉 -

칠정이나 사단이나 다 인간의 性이 發한 것이고, 또 칠정이나 사단이나 다 氣에 반응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氣가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理에서 發해서 선이고 사단이며, 氣에서 發해서 또는 氣를 겸하고 있어 악이 있고, 이런 것이 칠정이라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사단이나 칠정이나 다 理가 발한 것이고 氣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고봉은 계속하여 理와 氣를 따로 떼어 구분할 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 理와 氣를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합니다. 우선 氣라고 하면 理와 氣를 함께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만을 지칭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칠정은 氣로써만 설명해야 하므로 잘못입니다. 理와 氣는 서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情을 理나 氣로 설명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理와 氣를 一物로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理에서 發하고 칠정은 氣에서 發한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칠정의 發은 理의 본체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

- 기고봉 퇴계의 생애와 사상 中 -

지금 서로간의 논쟁에서는 대충 결론짓고 넘어 갈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고 그 논리를 강화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 땐 가에는 퇴계의 논리는 理發, 氣發의 사단따로 칠정따로의 논리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고, 이는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후에 율곡 역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발(發)하지 않은 것에도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잘못이라 하였다. 기고봉(=기대승)의 반론에 대해 이황은 대답했다.

「 사단에도 氣가 있고, 칠정에도 氣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조금 양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머지는 더욱 신념이 확고하다.) 公은(기고봉) 사단과 칠정이 다 理, 氣를 겸하고 있어 實은 같은데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 理, 氣를 분속함이 옳지 못하다는데 있고, 나의 뜻은 다른것(異中)에서 같음(同)이 있음을 보는 까닭에 理, 氣를 혼륜해 말하는 경우가 많고 같음중에서 다름을 알므로 理氣를 말하는 측면에 따라서 主理와 主氣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 분속이 어찌 불가 하겠는가? ( 다카하시고가 분류한 主理니, 主氣니 하는 단어는 이황이 이미 말하였던 것이다. ) 사단은 氣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理를 주로하므로 理의 측면에서 말하여 理의 發이라 한 것이고 칠정이 理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氣의 측면에서 말하여 氣의 發이라고 한 것 뿐이다. 」

- 이 퇴 계 -

퇴계가 보기에는 理가 어떻든 氣가 어떻든 별 것 아닌 것 같고 기고봉이 꽤나 끈질기게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도 같다. 기고봉의 논리가 분명하고 정밀하다면 퇴계의 논리는 담담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이황 역시 사단이나 칠정이나 모두 理와 氣를 갖고 있다는 것에 마침내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理를 주로 하는 것과 氣를 주로 하는 것이 있음을 더욱 확고히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단과 칠정은 다같이 마음에서 發한 것이지만 분명 다르지 않는가? 이황의 반론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