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성정(性情)론

이 글을 읽다보면 골치아픈 부분이 있을것입니다. 그런분들은 사상론본문부터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단 다음의 몇 문장은 꼭 기억하고 계십시오 .

심(心),마음: 마음 씀씀이가 어떠어떠 하다 할 때의 그 "마음"

성(性):마음이 외부 현상과 접촉하지 않은 상태

정(情):마음이 외부 현상에 접해 어떤 움직임이 일어난 상태

◎중국에서의 심, 성, 정론

조선 유학에서의 성정론은 거의가 맹자와 중용의 구절을 따르고 있다. 맹자의 성선설 혹 인간은 선을 할 수 있다는 논리와 중용에 나오는 天命之謂性과 또하나 주자가 말한 [ 未發은 性, 已發은 情이라는 구절이다. ( 미발(未發) :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이발(已發) : 이미 나타난 것 ) ]

맹자가 말한 " 정(情)이란 선(善)을 하는 것이다. " 라는 정언적 명령도 이발(已發)된 마음인 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글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이발(已發이)니, 未發(미발)이니, 성(性)이니, 정(情)이니 하는 구별이 번잡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꽤나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었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체에서의 사상(四象)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성정(性情)론의 이해는 중요하다. - 물론 체질분류와 건강이나 의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성정론은 몰라도 된다. 그러한 사람은 그에 관련된 필요한 책을 사서 보면 될 것이다. - 중용에서 말하는 하늘(天)은 사심도 조작도 없는 순수 그 차제이고, 거기다가 선이 추가된 개념이다. 인간의 성(性)이 선(善)하냐 악(惡)하냐, 善하지도 惡하지도 않으냐, 善해질 수도 惡해질 수도 있냐 하는 논제는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는 터라 우리의 인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명제일 것이다. 필자는 인간이 성이 선한지 악하지 어떤지 모른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단지 기호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성은 선한 것으로 보고 싶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성은 食色이 배제된 개념이다. 하긴 식색 자체에는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기도 하다. 유학의 학자중에서도 순자가 " 성은 악하다 " 고 했고, 또 그러한 차원에서 현실을 대처해 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현명한 생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본성(本性).이 선한지 악한지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으나 과거 대다수 유학자들은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했다. 그것이 유학의 논리전개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이 내린 인간의 性은 선하다는 유학에서의 논리는 宋대에 이르러 보완이 가해진다.

人性本善 性則皆善 語其才則有下愚

- 정이천 -

인간의 성품은 본래 선하고, 성은 곧 다 선한 것이지만

그 재질을 말할 때는 어리석음이 있다.

정자라 하면 정이천, 정명도 두 형제를 함께 가리킨다. 이 두사람은 주렴계의 제자이고, 이들의 학문은 주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주자학 혹 정주학은 정자와 주자의 학문을 말하며, 성리학(性理學)은 성명(性命)이기(理氣)학을 말하는 것인데 주자학과 같으며 이 모두 송대 이후의 개신 유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자는 정명도가 형이고, 정이천은 동생이며 형 명도의 성품은 온화하고, 동생 이천은 엄격했다 한다. 이들은 성격만 다를 뿐 아니라 주장하는 바도 달랐다. 정명도는 " 삶이 성이요 성은 곧 氣 이고, 氣는 곧 성이다. " 라고 말한 반면, 정이천은 性則理(성은 리이다)라고 했다. 정명도는 性則氣(성즉기)라 하고, 정이천은 性則理(성즉리)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명도의 견해는 조선에서의 主氣論(주기론)과 거의 같다 할 수 있고, 정이천의 性則理(성즉리)는 理論이다(주리론과는 차이가 있다.). 정명도는 " 선은 본래부터의 성이지만 惡 또한 性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하였고 , 사람들의 기질적인 성품에는 선과 악이 있는데 그 惡이 나타나는 것은 기질에 따라 다르다 하였다. 이율곡은 " 사람이 나면 氣가 주어지는데 그 기운에 선하고 악한 것이 있다. 순수하고 선한 것이 理이지만 氣를 타게 될 때 선과 악이 있게 되어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르게 된다. " 하였다. 여기 말하는 기(氣), 기질(氣質)은 情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외부 현상에 응하여 性이 나타나는 것 곧 性은 누구나 있으나 情의 상태가 사람마다 다르며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정명도는 성즉기(性則氣)라 하였지만 이율곡은 성즉기(性則氣)라 말하지 않았다. 이율곡은 성(性)은 理라는 대전제하에 氣의 작용을 매우 중요시 한 사람이다. 때문에 氣론자가 아니고 주기(主氣)론자인 것이다. ( 주리(主理), 주기(主氣)의 분류는 일제시대 다카하시 고 라는 일본인에 이루어졌다. )

동생 이천은 형 명도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性은 理다. 천하의 理가 나오는 근본을 살피면 그 자체가 善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 정이천의 주장이다. 그러나 재질이나 氣에 대해서는 형(명도)과 의견이 거의 같다.

「 性은 하늘에서 나오고 재질은 氣에서 나온다. 氣가 맑으면 곧 재질이 맑고, 氣가 흐리면 재질도 흐리다. 재질에는 善이 있고 不善이 있지만 性에는 不善이 없다. 」

- 정이천 -

형(명도)이 성에서의 악(惡)적인 요소를 인정한 반면 이천은 성(性)은 분명 선한 것이라 하고 있다.

맹자가 성은 선하다 한 것을 두고 그 틀 내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그 모순점과 타당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性善에 관한 사상은 한단(桓檀) 문화에도 있었다.

고구려 시대 을파소가 백운산이란 곳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한 후 천서를 얻었는데 이를 <참전계경> 이라 했다는 글이 한단고기에 나온다. 책을 얻게되는 과정이야 별로 문제삼을 것 없으리라 본다. <참전계경>에 신비성과 절대성을 부여하기 위해 각색된 말일 것이다. 아마 <참전계경>은 을파소 독자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옛부터 전해오던 글을 얻어 그가 다시 자신의 생각을 보탠 후 새로 편찬한 책이리라 생각된다. 이 <참전계경>의 133조 養性에 이런글이 있다.

養性者는 擴充天性也 天性 元無不善 但人性

相雜 物慾 乘?    苟不擴充 天性

漸磨漸消 恐失其本

「 양성이라는 것은 타고난 천성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천성은 원래 착하지 않음이 없다. 단 사람의 성품은 여러사람이 서로 섞이며 물욕이 불이 피어 오르듯이 타올라가게 된다. 만일 타고난 천성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면 천성은 점차적으로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니 그 근본을 잃을까 두렵다. 」

- 도서출판 유림 심정서, 정송 역 -

고구려 시대에도 性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일까? 善을 권하는 것은 분명 술을 권하는 것보다 국가 이념적으로도 권장될 만한 일일 것이다. 옮겨적은 <참전계경>의 글이 실제 고구려시대 을파소가 쓴 내용과 완벽하게 아니면, 거의 일치하는지 아니면 전해지던중 加筆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본바 없다. 그럼 어째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그런 말들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당장 생긴다. 그거야 고구려가 망하며 고구려 사고(史庫)가 완전히 불타버린게 첫째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기록의 보존에 무관심하다. 아직까지도 불과 수 십년전 기록조차 외국에 가서 찾아보려하고 있지 않는가! 신채호의 말대로 불교를 믿으면 불교도에 의해 유교를 믿을 땐 유교도에 의해 더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지금 이 시각에도 이 과정은 되풀이되고 있다. 도대체 무얼 생각하기에 그럴까?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받아들여 그 모습을 되도록 성급하고 남보다 빠르게 바꾸어 나가려는 민족성이, 그래야 잘나 보이는 것이 옛날이라고 별로 달랐을 것도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 조선시대는 예외였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유학에 따르는 전통과 명분을 중요시하다가 민족 고유의 옛 전통을 존중하지도 못했고 진취적인 정신도 유학에 의해 억눌려 있던 때였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진취적이지는 못했지만 기록의 작성과 보존은 조선시대가 현대의 한국보다도 더 나았다. -

기호는 독재자가 아니고 진리 그 자체가 아닌 이상 인간들은 모순을 느끼거나 계속 의문을 일으키고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낸다. 맹자가 하늘은 순선무악하고 하늘의 命을 받은 性 역시 선하다 하였지만 현실속에서는 계속 의문을 일으키게 되고, 그에 따라 나무가 물을 찾아 땅 속의 빈틈으로 뿌리를 뻗듯 계속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의문은 들지 않는가? 우리의 성은 하늘이 준것도 땅이 준것도 아니다. 부모가 준 것이지 않은가? 인생이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지 않는가?

명도는 " 물의 본성이 맑은 것처럼 性도 본래 착한 것이어서 선과 악이 성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있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치가 천명이고 순응하여 따르는 것이 道요, 그것을 쫓아 닦음으로써 각각 그 천분을 얻게 되는 것이 가르침이라 말하였다. "

정명도는 성선의 틀 속에서 어떻게든 인간속에 있는 성품중 악적인 요소를 설명해야만 하였다. 이 악적인 요소를 정명도, 정이천은 기질의 탓이나 재질의 탓으로 돌렸다. 이를 정이천은 성즉리라 하여 理는 선하고 氣에 의해 악적인 요소가 생겨난다고 일단은 알기 쉽게 말한 반면, 정명도는 성즉기라하여 본성에도 악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기에 유학의 체계하에서는 다소 어려운 논리를 구사하여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논리상의 발전도 이루어 졌을 것이다. 명도는 성은 선하다는 명제보다는 " 정은 선을 하는 것이다. " 는 명제에 주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하면 악한 인간에게도 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한대 ' 동중서 ' 도 갖고 있었다.

「 선은 쌀과 같고 성은 벼와 같다. 벼에서 쌀이 나오지만 벼는 아직 쌀이라고 할 수 없다. 성에서 선이 나오지만 성은 아직 선이라고 할 수 없다. 」

-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中 -

인간은 선을 할 수 있는 가능성만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그 가능성을 선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왕의 교화라는 쪽으로 나아갔던 것이 한대의 성정론이였었다. ' 정이란 선을 하는 것이다 ' 라는 명제에 주목하면 天은 순선이고, 인간은 선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天을 따르는 것이 바로 天命이기도 하다는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명도, 정이천 형제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理와 氣, 性과 情에 대한 논리들은 인간 성품 속의 악적인 요소의 제어를 위해 그리고 성정(性情)의 관계 설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마음(心)의 개념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희에 의해 ' 情은 性에 근거하고 性이 발하면 情이되며, 心은 性과 情을 통섭한 것이다. ' 라는 새로운 명제가 나타난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렇다면 性이 理인가, 心이 理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나오게 되었다. 性이 理인가 氣인가에서 心이 理인가, 性이 理인가로 바뀌었지만, 心이 理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性을 氣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心을 理라고 보는 사람들은 육상산, 왕양명 그리고 조선시대 주기파의 학자들이 대놓고는 주장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 중에는 행동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 있다. 주자의 性情에 관한 말 중 性은 인의예지이며, 情은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이고, 희노애락의 감정은 情이고, 그것이 아직 반응하여 나타나지 않은 것은 性이라 할 수 있다. 주자는 性은 理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주자는 인간의 마음에는 맹자가 말한 사단과 칠정이 있는데 사단은 理에 속하며 선한 것이고, 칠정은 氣에 속하며 악으로 흐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고 조심하여 바르게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칠정이란 희로애락애오욕 등의 모든 감정상태를 말한다. 주자(朱子)에 의하면 성(性)이 외계의 현상에 접할 때(자극될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게 되며 이 반응의 상태를 情이라 한다는 것인데 결국 이번에는 성(性)이 정(情)으로 되는 과정 즉 發의 문제가 제기된다. 성에서 정이 되는 중에 악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방법론이 필요하여지게 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주자는 맹자의 이론을 발전적으로 해석하였다. 인간의 마음에는 인의예지의 마음이 있는데, 주자는 이 인의예지의 선한마음을 크게 확충시켜나가면 칠정역시 중절을 얻을 것이라 하였다. 말은 간단하지만 무엇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마음을 가득 확충시켜 나갈 것이냐는 능동적 주체를 가리게 되면 관점에 따라 마음(心)이 개념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육상산, 나흠순, 왕양명 등의 학자가 心을 중요시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흡사 주자는 主性론, 왕양명등은 主心론이라 할 수 있다. ) 이들의 견해는 일단은 인간이 선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주자는 역시 이들과 다르다. 주자에게 있어서는 心은 性과 情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지만 天命은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이 공자와 맹자의 유학사상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선하지 못하고 악하게도 되는 것은 인간의 心속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양할 줄 알고, 측은해 할 수 있고, 순수하게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타고난 性을 가득 채우지 못해서라는 것이 된다. 능동적 주체가 무엇이든 性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다. 주자는 변덕스럽고, 교활하기도 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心을 性보다 우위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에서의 성정론

유학에서 心과 性과 情, 理와 氣를 어떤 관계로 정립시킬 것인가 하는 논란은 조선에서도 이황과 기고봉간의 논쟁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른바 사단칠정 논쟁이다.

이황이 주자의 견해를 충실이 수용하면서 기(氣)를 인정하면서도 理를 더욱 중요시하고 순수 善인 사단과 악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칠정을 엄격히 구분하려 했다면 기고봉이나 율곡은 사단역시 칠정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으로 보았다. 기고봉이나 율곡은 그당시 조선의 학문적 조류에 밀려 왕양명이나 나흠순 등과 같이 강하게 心을 주장하진 못했지만 心의 요소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서화담이나 허균같은 氣파가 아니고 氣에 중점을 두었다해서 ' 주기(主氣)파 ' 라 이름지어진 것이다.

기고봉과 이율곡의 논리는 사단과 칠정이 각기 하나는 선이고, 다른 하나는 악의 요소를 갖고 있다면 한 인간의 마음속에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는 모순이 생기고, 사단은 性이고 칠정은 情이라면 性이 발한 것이 情인데 선한 마음이 발한 것이 악이 된다는 모순이 생기며, 극단적으로 性과 情은 다 인간의 마음인데 性과 情은 별개의 것이라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요약해 본 것이다. ) - 참고로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서화담이나 허균, 임성주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性은 理라는 것을 믿었었다. -

반면 퇴계와 그의 학파는 사단과 칠정이 다 인간의 마음이지만 논리적으로 구분하여 선과 악으로 말하지 못할바 없고, 性은 理란 것은 불멸의 진리이며, 性이 發해 情으로 되는 과정에서 악으로 흐르게도 되는 것은 氣의 탓이지 理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였다. 이러한 논리들은 氣論자들이 볼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氣론자들이 보기에 세계는 오직 氣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理는 인간이 정해놓은 규정일 뿐 현상에는 理가 없다는 것이다. 主理, 主氣, 氣의 주장이 모두 다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한 주장이 다른 모든 주장을 힘으로 잠재워야 할까? 격의없는 토론과, 대화의 문화를 만드는 길고 넓게보는 대승적인 입장을 취하여야 할까? 임기응변이나 상황속에 뛰어들어 그 속에서 아무것도 얽매이지 않은 채 때와 경우에 따라 행동하는 것보다는, 느리고 고루하지만 원칙적이고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가 理를 중요시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氣를 중요시하는 자세는 理의 자세와 상대적이다. 변화와 흐름을 중요시하고, 때에 따라 적절한 방법론을 취하는 자세이긴 하나 극단적인 것이 되면 무소신 무원칙이라 할 수 있다. 오로지 하겠다는 신념만 있지 앞 뒤 가림이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소위 문화라는 것이 있다면 법과 규칙이 있을 것이다. 법은 인간끼리 상호 약속한 협정이라 할 수 있다. 극단적인 理의 자세는 마치 법을 따르는 기계처럼 법에 순응하는 자세이다. 극단적인 氣의 자세는 그때그때 상황에 적절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법이 있으나 마나 한 자세이다 물론 한 인간에게 있어 어느 한 자세가 100 : 0으로 한편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저 대략을 말하면 51 : 49의 비율로 한쪽이 더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 때와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고, 그 나라의 문화나 관습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학문적으로는 그리고 외면적으로는 대부분 理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 다음에 主理, 主氣의 구별이 있다. 그러나 그 행동한 것을 보면 氣적인 자세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