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노여움은 서로 이루어지고 기쁨과 즐거움은 서로 도와준다. 슬픈 性이 지극하면 怒情이 움직이게 되고 怒性이 지극하면 哀情이 움직이게 된다. 樂性이 지극하면 喜情이 움직이게 되고 喜性이 지극하면 樂情이 움직이게 된다. 태양인이 슬픔이 지극해서 이를 그치지 못하고 보면 분함과 노여움이 밖으로 충격 되고 소양인이 노여움이 지극해서 이를 이기지 못하면 슬픔이 가슴속에 움직이게 마련이다. 소음인이 즐거움이 지극한데 이를 이루지 못하면 기뻐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태음인이 기쁨이 지극한데 이를 가라앉히지 못하면 사치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자는 마치 칼날로 창자를 끊는 것과 같으니 한 번 크게 움직이고 보면 10년이 가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죽고 사는 것과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정해지는 기관(機關)이니 알아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 원 문 -


< 그림 000 >

이 그림은 태극이다. 태극은 우주이기도 자연이기도 인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에도 음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음양의 이론을 가져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음의 성격, 양의 성격이 있을 수는 없다. 단지 음이라 할 수 있는 성격과 양이라 이름할 수 있는 성격이 있다.

이름하여 음형의 성격 양형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마치 음양의 운동처럼 음형의 성격과 양형의 성격이 어우러져 있다. 음양은 다시 사상(四象)으로 나누어진다. 음형의 감정상태에는 낙(樂)과 희(喜)가 있고 양형의 감정상태에는 노(怒)와 애(哀)가 있다. 그리고 노와 애는 서로 이루어지고 낙과 희는 서로 도와준다 하였다.

怒性이 깊어지다 보면 哀情이 움직이고 哀性이 깊어지면 怒情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태양인이 애성(哀性)은 넓게 가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픔, 비관, 낙담, 체념, 등의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감정을 잘 느끼지 않을 수도 덜 느낄 수도 잘 이겨낼 수도 있다는 이겨내기도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평소에는 잘 참고, 이해하고, 잘 이겨내던 자질은 그러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였다 어느 순간 폭팔할때는 매우 격심한 같은 양기(陽氣) 또는 음기(陰氣)에 따른 감정으로 표현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경우 마치 칼날로 창자를 끊어내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각 상인(象人)은 어느 하나의 감정의 상태가 분명 다른 셋보다 특징 있게 나타나고 그 우위에 있는 감정의 움직임이 다른 세 가지 감정의 상태를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가령 소음인의 경우 희정의 상태에 다른 세 가지 감정의 상태 노정, 낙정, 애정이 종속되어지며 특히 무언가를 즐기고 싶은 마음의 움직임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 즉 낙정의 상태는 보다 넓게 가지지만 - 낙을 느끼는 마음의 움직임은 미약하나마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 어느땐가에는 희정의 상태로 급격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 가령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자. 그 아이는 사고행위 역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포근한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그리하여 항시 희정의 상태를 얻기위해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할 것이다.

희정이 다른 감정과 사고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쉬운 예이지만 어른들도 이러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어른도 희정의 상태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의 정도의 차이는 있다. 어떤 사람이든 희정은 강하다. 희정이 매우 강한 사람은 곧 눈에 띈다. 마치 나뭇잎이 구르는 것만 보고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처럼 쉽게 웃으려 한다. 모든 것을 자기위주로 합리화시키고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웃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웃을때마다 한 번 젊어진다지 않는가?

희정은 답답함, 조바심, 좀이 쑤시는 것 같은 상태, 마구 움직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상태를 시원스럽게 해소시키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희와 락이 감정이 서로 이루어지며 강하게 움직이면 그는 희와 락을 얻기 위해 모든 감정과 이성을 이용할 것이다. 그는 잠시도 안정되지 못하고 계속 조바심을 내거나 안절부절하거나 극도의 노여움이나 슬픔을 품을 것이다. 이리되면 10년이 가도 회복치 못할 중병의 상태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소양인의 경우는 哀情이 전면에서 움직인다 할 수 있다. 소양인은 슬픔을 잘 느끼기도 잘 삭히기도 할 것이다. 소양인은 노성이 넓다지만 없는 게 아니다. 그의 평소의 노여움의 감정들은 가슴속 깊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 둘 쌓이다가 폭팔 하여 나타날 때 울컥 울컥 "울화"가 되어 치밀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홧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리되면 이른바 칼로 창자를 끊어내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말인 것이다. 소양인의 노성이 넓다는 것은 그런 감정을 잘 절제하는 것이기도 잘 풀어내는 것이기도 하고 잘 표현되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양인 역시 노여움의 감정은 있다.

"노여움"이 일어나는 일이 발생했을 때 태양인은 "노여움"의 감정이 밖으로 곧 터져나오지만 소양인은 잘 나오지 않고 기억의 어느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 파노라마처럼 줄지어 기억에 떠올라 그를 괴롭힐 것이다. 이것이 밖으로 터져 나올 때 격렬한 슬픔과 노여움이 뒤섞여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소양인은 이른바 선이 굵다거나 섬세하다거나 부드럽다거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들을 소지는 대체로 적다.. 그러나 쉽게 의기투합 할 수 있고 통이 크고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경쾌하다는 평을 들을 소지는 많다. 소양인이 그리고 태양인도 함께 하여 섬세하다거나 부드럽다거나 매우 신중해하는 음인의 특징까지 갖게 된다면 그는 능력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계속 반복하여 말하지만 어떤 인간이든 희,노,애,락의 감정이 있다. 태양인도 희와 락을 추구할 수도 있고 소양인도 그러할 수 있다. 태, 소음인도 때에 따라 슬픔과 노여움을 느끼고 그것이 밖으로 분출되어 나온다. 다만 태양인은 노정이 타상인 보다 급하고 소양인은 애정이 태음인은 낙정이 소음인은 희정이 급하다 할 수 있을 뿐이다.

소양인은 애정이 다른 감정보다 두드러지지만 그렇기에 낙정과 희정이 강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자신만의 생각의 구조를 형성하였냐 일 것이다. 희정이 강한 소음인이 눈물도 많다. 소양인이 슬플 때 대체로 "으앙"하고 곡(哭)을 한다하면 소음인은 대체로 눈물을 삼키며 읍(泣)을 스타일이다. 그리고 태음인도 이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도 이론이고 대체로일 뿐이다. 문화와 성장환경, 상황, 그 사람의 관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유교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면 울더라도 거의 "으앙"하고 크게 소리내어 울지는 않을 것이다.

태음인의 경우는 낙정이 매우 급하다. 태음인은 낙정이 급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에 대한 대비도 많을 것이다.( 다른 상인(象人)도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선 그러할 것이다. 항상 정도의 차이가 있다. ) 태음인의 낙정의 상태는 불쾌함, 묵지근함, 막혀있는 느낌, 등등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감정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희정"의 상태와 서로 어우러질 때 편하게 놀고자하는 "낙정"의 상태 또한 크게 움직이게 되고 태음인은 이런 "낙정"을 구하고자 모든 감정과 이성을 이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