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음인은 기뻐하는 性은 넓게 퍼지지만 즐거워하는 情은 몹시 급하다. 기뻐하는 性이 넓게 퍼지면 기운이 肝으로 흘러가서 간(肝)은 더욱 성해지고 즐거워하는 성품이 급하면 기운이 폐를 격동시켜서 폐는 더욱 깎이게 된다. 태음인의 장부가 간(肝)은 크고 폐(肺)는 작게 형성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 원 문 -

태음인은 樂의 감정은 잘 드러나는 대신 喜의 감정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먼저 樂과 喜에 대해 구별을 지어야 할 것 같다.

樂과 喜는 다홍과 적색처럼 다르면서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喜는 기쁨. 樂은 즐거움( 즐김 )이다.

희정( = 기쁨 )이 빠르고 단속적으로 자주 있으며 잠시라면 낙정(=즐거움, 즐김 : 즐김의 뜻일 때는 "요"로 읽어야 할 것이다. 樂山은 산을 좋아한다는 해석보다는 산을 즐긴다라는 해석이 더 본래의 뜻에 가까울 것이다. )은 지속적이고 느리며 길다.

오랜만에 친했던 친구를 만나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기쁠까, 즐거울까, 이럴 땐 "기쁨"의 감정일 것이다. 친구에게 생일날 선물을 받았다면 기쁠까? 즐거울까(즐기다가 아님)?

이럴 땐 다소 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樂을 즐기다로 해석하면 확연히 구별된다. 드라이브를 즐기다. 술을 즐기다. 잡담을 즐기다. 공상을 즐기다. 도박을, 오락을, 사치를 즐기다. "즐김"의 감정은 이럴 때 쓸 것이다.

온가족이 TV에 열중할 때 TV를 가로막고 나서는 어린아이는 무엇을 얻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취할까? 기쁨일까? 즐거움일까? 기쁨의 웃음이 "까르르" 하고 터져 나온다면 즐김. 즐거움의 웃음은 실실거리거나 끽해야 허허허 하고 나올 것이다. "까르르"하는 기쁨의 웃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하면 즐김. 즐거움의 웃음은 평온한 바다의 파도처럼 쉬지 않고 출렁거리는 것이다.

태음인은 낙정(樂情)의 급함과 잘 튀어나오지 않는 희정(喜情) 때문에 무뚝뚝해 보이기도 게을러 보이기도 답답해 보이기도 무게 있게 보이기도 점잖아 보이기도 음흉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드라이빙을 하며 경치가 좋은 곳을 운전할 때의 쾌적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낙정(樂情)이다. 그러나 드라이브에서 강렬한 쾌감을 얻어내려 한다면 이는 희정(喜情)이다. 도박을 하며 놀음을 하며 다만 심심한 시간을 때우는 소일거리로 재미를 붙이고 한다면 "즐김"이다. 그러나 도박이나 놀음에서 짜릿한 감정을 맛보려 한다면 이는 "기쁨"이다. 그러나 짜릿한 기분을 맛보는 "기쁨"을 습관적으로 재미를 붙여 계속한다면 이는 "기쁨"이 "즐김"이 된 것이다.

운동경기를 보며 승리의 기쁨을 얻으려는 것이 "喜情"이라면 경기자체의 긴박함이나 갖가지 변화들을 보고있다면 이는 "즐김"의 감정이다.

사이코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나온다 바로 "즐김"의 감정을 말한다. 기쁨이 겉으로 풀려져 나가는 것이라면 즐김은 쌓여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樂을 주로 즐기다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도 맞다. 즐거운 소풍날이지 기쁜 소풍날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굳이 변별하자면 즐기다가 맞다

樂의 감정은 "느림"과 "끈기"와도 관련이 있다. 대체로 태음인은 카랑카랑하고 활발하거나 불같은 면을 잘 보이지 않으나 신중하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꾸준한 성격이다. 모르는 것처럼 가만히 있지만 대체로 더 생각 해봐야겠기에 성격이 조심스러워 그러는 것이다. 동작이 느리게 보이는 대신 또는 좀 둔해 보이는 대신 점잖거나 무섭게 보일수도 있고 힘이 좋고 덩치도 큰 사람이 많으며 지구력이 강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이다.

가령 옆에서 누군가 싸움이 붙었다 치자.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면 양인들의 성격이 지켜본다손 치더라도 얼마 못 참고 들어가 말리는 성격이라면 태음인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다 서로 힘이 빠져 있을 때쯤 가서야 들어가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어찌 보면 덩치에 걸맞지 않게 약기도 한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그러는 것이 현명하기도 할 것이다. 호탕한 성격도 많은데 기분을 낼 때도 대체로 실속 없는 기분파는 아니다.

하기는 누구나 자기의 환경에 따라 자신만의 환경과 이해관계가 있고 책대로의 성격과 반대되는 측면이 더욱 나타나기도 한다.

대기업의 사장 중에는 태음인이 많다고 하는데 그럴 것도 같다. 풍채가 좋고 무리를 않고 때론 매우 과감하게 행동하며 - 구체적 계획이 세워졌을 때 - 굳이 실속 없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가지 일을 마음먹으면 모나지도 않고 극성도 부리지 않으며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하여 한발한발 자신의 목표에 접근해 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술, 도박, 등에 빠지면 그런 분야에서도 이런 성격은 나타나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자신의 생활 속에 빠져버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태음인은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소양인처럼 단기간에 이루려 들거나 태양인처럼 혼자 앞서 나가지 않는다. 때에 따라 문화적인 영향에 따라 나라에 따라 태양인이나 소양인이 먼저 일을 이루고 크게 얻기도 하지만 태음인은 남이야 보건 말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며 묵묵히 한 걸음씩 자신의 목적하는바에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태양인처럼 너무 앞서나가다 좌초하지도 소양인처럼 좌충우돌하다가 제풀에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먹고 살 것은 즐길 수 있을 만큼 쌓아 놓은 다음 무리를 해도 하기 때문이다.

「 소음인은 樂性이 깊고 굳으며 喜情은 몹시 급하다. 樂性이 깊고 굳으면 기운이 콩팥으로 흘러 들어가서 콩팥은 더욱 성해지고 喜情이 몹시 급하면 기운이 지라를 격동시켜서 지라는 더욱 깎이게 된다. 소음인의 장부가 콩팥은 크고 지라는 작게 형성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 원 문 -

신과 비도 서로 기울어져 "부빈"의 작용 속에 있다. 소음인 역시 감정의 변화가 빠르다. 다만 잘 안 나타날 뿐이다. 그럼 어떻게 빠르다는 것을 알까? 친한 사람끼리 사이에서는 그러하다. 태양인이 전혀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잘 접근하여 말을 붙이고 일단은 스스럼없이 감정의 표현을 하는 반면에 소음인은 혼자서 마음 상해하거나 낮선 상황에선 모든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음인도 있다.

소음인의 기쁨은 남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어느 사이에 그걸로 끝이다. 소음인은 원래 양이 많은 사람들이다. -소양인은 음이 많은 사람들이다.- 단, 작은 음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다. -소양인은 양이 매우 강하다.- 소음인은 많은 양이 작지만 매우 강한 음에 가려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겉으로는 순하고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매우 강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외유내강형이라 할 수 있다.

소음인은 태음인만큼 그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특히 소음형 문화에선- 장점으로 또는 표준된 행위일 것이다. 이는 태음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음인은 조심성이 많기도 하지만 수줍음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하여간 몇 번이고 묻기 전에는 쉽게 그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정의 표현등은 역시 문화에 따라 -소양형의 문화- 쉽게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또 성장환경이나 생각하는 바에 따라 양인도 음인처럼 행동 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소양인 같으면 얼마 동안 하다가 시시하다거나 싫증을 내거나 혹 포기하고 그만두는 일에서도 소음인은 무언가 기어코 찾아내 계속한다. 이룬다는 것보다는 찾아내 매달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소음인은 하여간 자기의 할 바를 잘 찾아낸다. 미학적 성품 즉 무슨 일에서건 의미와 뜻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기쁨의 감정이 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성격상의 특징은 태음인과 유사한 것 같으나 풍기는 이미지는 쉽게 구별된다.

대체로 신중하다기 보다는 침착하다는 인상이고 무겁다는 인상보다는 순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점은 체구가 큰 운동선수에게도 나타난다.

대체로 소양인은 좋은 말로 경쾌하다고 할 수 있지만 소음인은 경쾌한 인상을 풍기지는 않는다. 이지적이랄까? 뭐 그런 편이다. 소음인이 대체로 차분하며 흥분하다가도 곧 가라앉는다면 소양인은 대체로 좀 들떠 있으며 시무룩해 있다가도 곧 들뜬다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사상인의 희로애락의 성정에 관한 글을 정리하여 보겠다. 처음은 아니지만 氣라는 말도 자주 쓰이기 시작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