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고 노여워하는 氣가 거꾸로 움직이면(逆動) 갑작스레 튀어나오며 모두 한꺼번에 위로 오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氣가 거꾸로 움직이면 물결치듯이 일어나서 모두 한꺼번에 아래로 내려간다. 위로 올라가는 기운이 거꾸로 움직여서 한꺼번에 위로 올라가고 보면 간과 콩팥이 상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기운이 거꾸로 움직여서 한꺼번에 아래로 내려가고 보면 지라와 폐가 상하게 된다. 」

- 원 문 -

역동(逆動)은 反의 뜻으로 해석하지 말고 순(順)에 역(逆)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바란다.순에 역한다는 말은 일정한 패턴에서 급격하게 벗어나는 현상이다.기(氣)는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강약의 차이는 한 명도 같은 사람이 없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사상의 氣 중 어느 한가지가 우위에 있다. 루빈쉬타인인가 스트라빈스킨가 하는 작곡가가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 "고 말하였다. 기(氣)는 리듬을 타고 흐른다.

인체의 네 가지 기운 그리고 우주까지도 포함해 태소음양의 氣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만약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다면 우주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거나 인체는 죽음의 상태를 뜻한다 할 수 있다.

인체에서의 희, 노, 애, 락의 氣라 이름된 네 가지 기운은 어느 하나는 강하고 어느 하나는 약하다. 그리고 전압처럼 이 氣의 기울기에 의해 氣의 운동이 계속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시도"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불균형이라 할 수 있는 상태가 균형 - 별 탈이 없어서 균형이라 하였을 뿐이다. - 을 향하여 계속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한 결코 그 균형이라는 상태를 가질 수는 없다. 이것이 시도운동이고 이 시도의 강약 완급에 따라 인체에 있어서의 氣의 리듬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시도"운동은 물리학의 엔트로피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살아있는 한 마치 끊임없이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회전운동을 하는 발전소의 모터처럼 인간은 먹고 활동하고 휴식을 취하여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재흡수 하기를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逆動은 이 리듬이 흐트러지거나 격해지거나 깨어지는 것이다. 이 氣의 리듬은 사람에 따라 선후천적으로 어느 정도의 강약의 차이가 있다. 역동은 이 리듬이 순하거나 원만하지 못하고 격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화가 나도 심하게 나고 슬픔의 감정도 북받쳐 치밀어 오르고 희를 요구하는 심리도 심하게 동요되고 낙의 심리 역시 매우 심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때 애기나 노기가 격해지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氣도 끌어올리게 되니 간과 신장이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음, 양기의 격한 움직임이 일어날 때 상대적인 위치에 있는 장부가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상처나 병 등의 원인에 의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 자주 노여워 했다 가라 앉혓다 하면 허리와 갈빗대가 자주 죄여졌다 풀렸다 할 것이다. 허리와 갈빗대는 간이 붙어 있는 곳이니, 허리와 갈빗대가 죄여졌다 풀렸다 하여 안정돼 있지 않고 보면 간이 어찌 상하지 않겠는가. 금시에 기뻐했다가 금시에 그 기쁨을 거둔다면 가슴과 겨드랑이는 지라가 붙어있는 곳이니 가슴과 겨드랑이가 넓어졌다 좁아질 것이다. 가슴과 겨드랑이는 지라가 붙어있는 곳이니 가슴과 겨드랑이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여 안정돼 있지 않고 보면 지라가 어찌 상하지 않겠는가. 졸지에 슬퍼했다가 졸지에 그 슬픔을 그치면 척곡(脊曲)이 졸지에 굽어졌다가 졸지에 펴질 것이다. 척곡은 콩팥이 붙어 있는 곳이니 척곡이 굽어졌다 펴졌다 하여 안정돼 있지 않고 보면 콩팥이 어찌 상하지 않겠는가. 여러 번 즐거워했다 여러 번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등뼈가 들렸다가 갑자기 억눌릴 것이다. 등뼈는 폐가 붙어있는 곳이니 등뼈가 들렸다 억눌렸다 하여 안정돼 있지 않고 보면 폐가 어찌 상하지 않겠는가. 」

- 원 문 -

개인적인 처세나 수양과 관련하여 유학에서는 중용의 마음가짐을 중요시한다. 지나친 희, 노, 애, 락의 마음의 움직임은 가장 경계하여야 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 태양인에게는 몹시 노여워함과 깊은 슬픔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 소양인에게는 갑자기 슬퍼함과 깊이 노여워함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태음인에게는 지나치게 즐거워함과 깊은 기쁨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 소음인은 지나친 기쁨과 깊은 즐거움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

- 원 문 -

모든 사람은 희, 노, 애, 락, 등 칠정의 상태를 가지고 있다. 태, 소양인은 노기와 애기가 강하고 태, 소음인은 희기와 낙기가 강하다 하였다. 노기(怒氣)와 애기는 가벼워 떠오르는 양기(陽氣) 희기와 낙기는 무거워 가라앉는 음기(陰氣)이다.

필자는 처음에 왜 희정과 낙정도 경계하라 했는지 의혹이 있었다. 기쁨과 즐거운 마음은 자주 가질수록 유익한 것이라 생각하였었다. 무턱대고 지나침을 경계할 수도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한 단면일 뿐이다. 이런 예를 들어보겠다. 어렸을 때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혹 버릇없게 자란 사람일수록 희정과 낙정 특히 희정이 강하다. 그는 자라나서 어렸을 때의 기분 좋은 경험을 다시 갖기 위해 항상 어린 시절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희정의 여러 가지 중 다만 한 예이다.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당신은 무엇엔가 특히 도박이나 취미 등에 푹빠져 그 일을 할 때에야 후련하거나 마음이 안정되거나 사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하자. 당신은 낙정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 된다. 희와 낙의 구별이 되었을 것이다. 지나친 기쁨과 즐김(즐거움)을 얻고자 함은 항시 제약이 따를 것이다. 마음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반드시 그에 따른 영향도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웃는 웃음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은 웃음은 보약이다.

인용된 글은 같은 양기는 서로 상승작용하고 같은 음기 역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말도 될 것이다. 태양인이 애성이 넓다해서 슬픔의 감정이 적거나 없고 소양인이 노성이 넓다해서 노여움의 감정이 적거나 없고 태음인이 희성이 넓다해서 기쁨의 감정이 적거나 없고 소음인의 낙성이 넓다해서 즐김(즐거움)의 감정이 적거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이유는 각자의 성격적, 장부적 특이성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러한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서 이기도 할 것이다. 가령 소양인이라 해서 노여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슴속에 쌓아두거나 할 것이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깊이 노여워함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현상에 처해 모두 저마다의 정도로 희로애락을 느낀다. 그중 노여움의 표현을 대체로 잘 희석시키거나 인내하는 소양인이지만 그렇다고 그 노여움의 기억도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소양인은 그러한 감정을 타상인 보다 일단은 잘 잊어버리거나 잘 넘어가기도 한다 . 그러나 어느때 어떤 계기에 의해 절대 잊지 못하거나 두고두고 기억에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다른 상인보다 더욱더 노여움의 표현이 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 슬픔, 기쁨, 즐김의 감정도 이와 같다.
「 고요가 말하기를 「 아 천자로써 힘 쓸 것은 사람을 아는 것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니 우(禹)가 말하기를 아니다, 제요께서도 이것은 어렵게 여기셨다. 사람을 알면 밝을 것이니 능히 사람을 벼슬시킬 것이며 백성을 편안케 한다면 은혜로운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백성들이 사모할 것이니 밝고 은혜롭고 보면 어찌 환두를 근심할 것이며 어찌 「유묘를 옮길 것이며 어찌 말만 번지르르하고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공임을 두려워하겠느냐 」했다.

- 원 문 -

서경고요모(皐陶謨)에 나오는 글이다 고요는 순임금때 형벌을 제정했다는 인물이다. 제요는 요임금을 말하고 환두는 요임금때의 악인이며 묘는 중국인들이 오랑캐라 부르던 종족이다. 동방불패라는 영화에 묘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임은 간악한 사람을 말한다.

속담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하고 있다.

홀, 짝을 맞추는 놀이가 있다. 동전으로써 그 놀이의 예를 들면 한쪽은 어느 정도의 동전을 손에 쥐고 있고 상대편은 그것이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맞추는 놀이이다. 이때 동전을 손에 쥐는 쪽은 홀과 짝을 전혀 우연에 맡기고 한웅큼 쥐거나 아니면 머리를 써서 손을 잡게된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맞히는 사람 역시 상대가 그렇게 잡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경우이다. 어느 것이나 상관없지만 손을 잡은 사람이 처음 홀을 잡았다 하자 두 번째 손을 잡을 때 그는 약간의 머리를 쓰게 된다.

처음 홀을 잡았으니 이번엔 짝을 잡는 방법과 처음 홀을 잡았으니 이번엔 짝을 잡을 것이라 또는 또 홀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상대가 생각할 것이라 예측한 후 역으로 다시 또 홀을 잡는 방법이다. 만약 첫 번째의 경우 상대가 "홀짝"을 맞추었다면 훨씬 더 복잡해지지만 일단 못 맞추었다 하여보자. 두 번째의 경우 또 홀을 잡았다하자.

세 번째 손을 잡을 때에 역시 생각이 필요하게된다. "손"을 잡은 이(A)는 이제껏 홀을 잡았으니 또 홀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상대가(B) 생각할 것이라 판단한 후 또 홀을 잡을 수도 있고 그 생각을 다시 또 이용 짝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른다. 상대는 A가 홀을 두 번 잡았으니 이번엔 짝을 잡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을 역이용 다시 또 홀을 잡을 것이라 생각할 수 도 있고 다시 또 그 생각을 역이용 짝을 잡을 것이라.. 다시 또 그 생각을 역이용 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두 번 짝이라 하여 못 맞추었으니 이번엔 홀이라 하여보자 할 수도 있고 오기로 짝을 연발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세 번모두 A가 이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것은 운이 좋은 것일까. 머리를 잘 쓴 것일까.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B가 "홀"을 맞추었다면 A는 요번에 홀을 잡았는데 상대가 맞추었으니 이번에는 짝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생각을 역이용 홀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처음에는 상대가 맞추었으니 이번에 또 홀을 잡을 것이라 상대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후 또 홀을 잡을 수도 있고 상대도 이렇게 생각하고 또 홀을 부를지 모른다고 생각 짝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B는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도 그냥 아무렇게나 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의 움직임은 사고 행위는 그리고 현실은 그 자체가 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