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의 전염

: 차를 타고,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 가정해보자. 누구든 신호대기에 걸려 서있는 시간은 비록 1∼2분이라 할지라도 갑갑한 느낌이 들것이다. 이때 어떤 한대의 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몇대가 동조하면 곧이어 하나씩 하나씩 여러대의 차가 부릉, 부릉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차를 전진시키게 될 것이다. 가만히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싶어도 뒷차가 오히려 " 빵빵 " 클렉션을 눌러대기에 당신 역시 클러치와 엑세레이더 위에 발을 얹어 놓고 있다 하자,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도 마음만은 재빨리 움직일 각오를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신호대기 중에 있는 거의 모든차는 신호가 바뀌는 즉시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어느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몇대가 그러더라도 다른 더 많은 차들이 반응이 없으면 결코 이런 현상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많은 차속에 있는 사람들이 성급한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무리 통제와 교육에 의해 억눌려 있더라도 불특정의 고립된 개인들의 다수 즉, 군중속에서는 평소 잠재되어 있던 본능적인 성격도 쉽게 튀어나오게 된다.

교차로에 있는 차들끼리의 아니 차속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빠르거나 느리거나의 급하거나, 과하거나의 마음은 성급한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곧 옆에서 옆으로 또 옆으로 뒤로, 앞으로 전염이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과심이나 교심, 긍심, 벌심, 역시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심리는 반응하는 한 전염된다는 것이다.

※구조와 인간

상대적 구조 속의 인간은 스스로 자신은 인간이지만 상대적으로는 구조속의 개인일 뿐이다. 당신이 전쟁터의 졸병이라면 당신은 바둑판의 사석작전 처럼 보다큰 다른 목적에 휩쓸려 타인들이 의해 만들어진 구조속에서 기계적으로 취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들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고귀한 생명체 이지만 상대적 다수속에서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밖에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이글에서의 구조란 상대적인 다수속에 있는 한 인간을 말한다고 하였다. 물론 현재 나와있는 구조주의는 언어, 수학, 역사, 논리, 심리 등등을 인간과 상대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구조의 측면에서 연구함을 말한다. 필자는 한 인간에 대해 다른 모든 인간들을 구조로 보고 쓰고 있는 중이다. 한 나라의 전체적인 모습과 국민성, 문화형태 - 관습, 대중예술, 언론, 경제력정도 , 정치형태 -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사상인의 다수에 의한 성격으로만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 나라의 기후, 토질, 지리적 위치, 지역적조건, 역사적내력, 사회제도, 풍습등 등도 그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형태에 영향을 끼친다. ( 필자는 1권에서는 주로 사상의학의 논거를 위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여보고자 하고 있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인간들이 있다. 갑자기 소양인이나 우리나라 도로 이야기가 나온것도 이에서 비롯된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구조를 분석해 보고자 함이다. 한국사람의 성격이 급한 것이야 매우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 빨리 빨리 " 현상, 이것을 두고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위주의 선진국 따라잡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이러한 성격은 어제 오늘부터가 아니었다.

" 고려공사 삼일 " 이라는 속담이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졸속적이고 성급함을 빗댄 말일 것이다. 또한 나라가 작고, 국민성이 편협한 탓에 생긴 국가적인 complex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세계최초, 최고, 최대, 최○, 최○○ 등을 한국민족만큼 좋아하는 나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뿐인가 범○○, 총○○, 전○○ 등 소위 배운사람이건 아니건 세력을 확대하거나 과시하는 모습은 신문이나 미디어 등을 통해 쉽게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항상 자라온대로 그래서 스스로가 익숙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런 특성은 당대의 사람들에게의 전염 뿐아니라 후대로까지 유전되어 갈 것이다. 허장성세를 부리면서까지 자신을 과시하려는 풍조는 이미 국민학생 , 유치원생까지 퍼져가고 있다. 왜 특히 이러할까? 국민적인 합일점이 없거나 너무 빠른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 계몽적인 교육의 부족탓일까? 물론 한두가지 요인이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어우러지며 이와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순수하게 " 인간 " 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현상은 일반개개인의 성급한 기질과 교, 긍, 벌, 과의 중의 " 과심 ", 그리고 뒤이어 나오지만 무조건 이기려하는 성질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째서 이런 특징들이 전국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을까? 혹, 한국민족의 구성이 소양인 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확률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어느 한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인중의 어느 한상인으로만도 또 사상인이 골고루 25%씩 구성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한 두 상인이 각기 어느정도 25%보다 많거나 적을 것이다. 어느 한 두상인의 구성이 50%넘어 60%, 70%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주 구성원에 의해 그나라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 기질, 성격 등이 가장 큰 특징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외의 구조적인 요인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지만 우선은 사상인의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 한나라의 문화, 정서, 기질, 풍습 등을 파악하여 보고자 할 때 인간과 구조는 마치 입자와 파동간의 관계처럼 상대적이면서도 서로 보완하여야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국가든지 그 어느 한 두상인의 기질이나 성격 등등이 그 나라의 보편적인 기질이나 정서로써 자리잡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나아가 생각하면 어느나라든지 그 나라내에서는 인간성 판단의 " 기준 " 조차 이들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어느 나라의 국민성은 그 나라의 다수를 정하는 특정 한 두상인의 성격의 특징을 중심으로 나타나며 그 나라 국민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 영향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어느나라에선 어린아이의 " 고추 " 정도는 만지작 거려봐도 되지만 어떤 나라에선 성범죄이고 노출시키는 것조차 금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선 술먹고 실수를 해도 웬만해선 그럭저럭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어떤 나라에선 성격이 단순하고 성급하지만 뒤끝이 없고 불같은 행동력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을 표현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선 부드럽고 섬세하며, 사려깊은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나라는 신중하고 사색적이며 냉정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도 할 것이다. 물론 각나라마다 한 가지 특징만, 전국민적으로, 지속적으로 선호되진 않을 것이다. 시절, 시기, 시대에 따라서도 상황에 따라서도, 사람에 따라서도 다른 특징이 선호되기도 한다. 성격마다의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나 상황에서도 그래도 인정되고 좋은 점수를 주는 성격이 있다.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는 항상 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성격은 흉내내고 모방되어지며 성격의 원형으로 자리잡아 있을 것이다. 뒤에 나오지만 그나라 특유의 성격의 원형에는 이러한 주 특성외에 주특성의 단점을 보완하는 면이 추가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따라 주특성을 보완하는 특징적인 성격이 선호되기도 한다.

영어에 cool 이라는 단어가 있다. cool은 차갑다는 뜻외에 멋진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어떤 국가에서는 " 멋진 " 이 아니라 차갑고 냉정하고 냉혹한 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cool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 차갑다 " 는 느낌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 야누스의 얼굴 "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 대해 오해, 편견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왜 그럴까? 사람들은 그 국가의 성격의 원형에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나라의 성격의 원형 속에서 형성된 관념에 그 국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현 시점에서의 한국문화의 조급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분명 도를 지나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사람들이 한국특유의 성격의 원형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타자들 속의 한 인간은 구조 속의 한 인간일 뿐이다. (다른나라들 속의 한 나라는 구조 속의 한 나라일 뿐이기도 하다. 구조에는 한 인간과 한 인간이외의 모든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제도적인 구조는 상대적인 " 나 " 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 상대적인 나 " 들에 대해 " 나 " 는 너무도 무력하다. 솔제니친의 " 이반 데니소비니치의 하루 " 라는 책에 이런내용이 있다.

먼저 그 상황을 보면 이반은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의 형무소에 있는 중이다. 어느날 " 사역 " 을 나갔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는 여기저기로 사역을 나갔던 여러 무리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무리보다 빨리도착 식사를 하고 휴식을 갖기 위해 구보로써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이반은 생각한다.

" 왜 약자들은 서로 단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약자들이 꽁꽁뭉친다면 죄수들의 상태를 밀고하는 자도 없고 그리고 죄수들을 짐승처럼 마구 다루는 간수들도 자신들을 함부로 다룰수 없을 것인데 " 하고, 그러나 현실은 항상 이반의 바램일 뿐이다. 그리고 이반은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 우리일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상대적 약자 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구조속의 강자에 속해 있다. 약자끼리의 무관심, 시기, 전투적행위등은 허구적 구조를 실제로 현실적으로 만들고 그러한 때 하나의 개인은 항상 상대적 약자에 속해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