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심교의(驕心驕意)

A라는 어떤 사람이 마치 B라는 사람을 위해 이것저것 다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B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기라도 하듯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려 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B를 위해 성심성의를 보인다고 인식시키려 할 때, 그리고는 스스로 만족해 할 때 B 는 A에 대해서 " 그 사람 참 교만하다 " 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驕)라 지칭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다만 때와 정도의 차이가 문제가 될 것이다. 더더구나 힘든 것은 교(驕)하지 않으려 할수록 인생은 show이고 연극이고 스스로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조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곧 한틀과 인사속에서 인간은 줄곧 인간을 상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지금 서있는 땅위에서 사람들속에서 문화속에서 제도속에서 현실속에서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驕는 이러한 하나의 틀 곧 한틀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한 모습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독재자의 심성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어떤 인간이든 한틀속에서 그 행위가 타인들에게 드러나거나 또는 그 행위를 타인들에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인간들은 타인들도 생각해야 하고 스스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은 두 인간이 될 수 없고 한 인간이 아무리 혼자서 심사숙고하고 순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해도 스스로만의 생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만큼 스스로의 생각속에 타인의 생각이 진정 들어와서 융화될수 있는냐에 따라 驕意의 정도가 정해질 것이다.

驕意(교의)는 스스로 혼자 남을 헤아려주고 생각하려하는 마음과 생각의 흐름이다.

※긍심긍려(矜心矜慮)

긍(矜)은 스스로 내부로 향하면서 뿌듯해하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거나 가지는 마음과 생각의 흐름이다.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벅차다 할 때 矜이 최고조로 높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矜역시 인간마음의 ∼∼한 모습을 기호로써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어떻게 몇가지로 나눌 수 있을까? 아마 설명하기에 따라 수백수천 수만가지의 표현을 빌려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너무나 많기에 단하나 즉 " 움직인다. " 로써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가장 적절한 방법론의 " 화두 " 를 찾는일 일 것이다.

27세에 요절한 가수 짐 모리슨이 리더였던 Rock 그룹의 이름이 " doors " 였다. " 문 " , 문을 여는 것이다. 끝이 없는 방황과 혼란과 불확실성에서 질서를 여는 문이든 , 숨막힐 것 같이 꽉 짜인 논리와 증명의 세계에서 자유와 해방과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문이든 자포자기하는 문이든 하여간 인간은 스스로의 " 문 " 을 열어야 할 것이다.

교, 긍, 벌, 과로써 설명되는 인간의 마음역시 그 문을 여는 손잡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닫혀있는 것이 있으면 열어보고 싶은 것이다.

驕(교)가 고립된 한 인간의 사고 행위가 아무리 넓고 깊다 해도 혼자만의 생각일 뿐인 모습을 나타냈다 하면 矜(긍)은 자신의 행동 및 생각에 자신감을 갖는 것이 된다.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단, 지나침이 문제이다. " 한국인으로써의 ' 긍지 ' 를 가져라 " 이때 쓰인 긍지가 바로 矜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국가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약소 국가라도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자신의 가족과 친구, 나라와 국민, 그리고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 통찰력과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을 때 또는 가지려 할 때 그 사람을 두고 " 긍지 " 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矜의 심리, 인간마음속에 矜이라는 심리가 하나 간판처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행태를 보일 때 우리는 그 형태에 대해 " 矜 " 이라는 이름을 붙여줄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또 인간의 마음속에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矜역시 선천적으로건 후천적으로건 홀로서야 하고, 그러면서도 타인들과 관계하여 살아갸야 하는 인간들이 자연스럽게 갖게되는 심리이다. 이런것도 말이 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 사람은 누구나 다 잘났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다 못났다. " 이것은 사람은 다 잘난 것 같지만 누구나 다 못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말이란건 앞 뒤 문장이 바뀌면 받아들여 인식할때도 다르게 된다. " 사람은 누구나 다 못났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잘났다. " 이러면 뉘앙스가 바뀐다. 하여간 누구나 못나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누구나 다 특별하고 선택되어 있고 뛰어나고 잘나 보이고 싶은 것이다. -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모든 인간은 부모 혹 보호자에 의해 먹여지고, 부양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다. 부모 혹 보호자에게 " 좋은 대접 " 을 받기 위해 아이들의 시선은 부모 혹 보호자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특이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자라나며 여러 가지로 모습이 변하지만 성인이라 하더라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혹 선택된 뛰어난 인간 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의 움직임은 없어지지 않는다. 소위 " 우상" 만들기나 " 영웅의 모습 " 을 흉내내거나 모방하거나 " 따라하고자 " 하는 행위등도 모두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에서 나올 것이다. " 기사도 정신 " , " 청교도 정신 " , " 유학에서 말하는 군자 " , " 열녀 " 등은 그 개념과 형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알고 했었건, 모르고 있었건 인간들은 다른사람에게 자신을 보다 좋게 " 인지 " 시키고 싶은 심리를 갖고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 기사도 정신 " 하면 비록 남성우월적인 사고에서 나왔다 하나, 진정한 " 남자 " 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즉 기준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기준은 선과악, 도덕과 윤리적인 차원과 결부되어 있기도 하고, 않기도 하다. 이러한 기준은 " 남자 " 에 대한 " 모델 " 을 제시하여 줌으로써 선인이건, 악인이건, 부자건, 가난뱅이건, 약삭빠른 사람이건, 과격한 사람이건 지식인이건 운동선수이건 하여간 " 남자 " 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기사도 정신이 제시하는 그러한 기준을 준수하여야 남자로써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령 기사도 정신 중에서 " 숙녀에게는 예절바르게 행동하여야 한다 " 는 내용이 있다하자, 만일 어떤 문화가 남자라면 " 기사도 정신 " 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폭넓게 절대 다수의 많은 사람에게 인지되어지고 있다면 혹, 납득될수 있다면 그 문화속에서 태어나는 남자들은 어떤 형태의 인간이라도 일단은 " 숙녀에게는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것 " 이 진정한 " 남자 " 라고 , 여자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절도 있게 행동해야 남자로서의 자격을 가진다고 알고 있게 될 것이다.

유학에서는 말하는 " 군자 " 는 동양의 " 남자 " 상이다. ' 남아일언 중천금 ' 남자의 말 한마디는 그 만큼 신중하여야 하고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말은 극동3국에서는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많은 사람들 머리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 말이 많은 남자 "는 남자건 여자건 하여간 그나라 국민들이 마음에서 일단은 " 거부감 " 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하긴 요새는 개그맨들이 인기가 좋다. 적절한 유우머 감각은 대인관계에서는 필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외이다. 직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웅의 이미지는 남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소위 " 효부 , 효녀 , 열녀 " 에 대해서도 많은 예와 글들이 있다. 조선에서는 " 일부종사 " 니 "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느니 " 하여 종속적이고 수동적이 될 것이 문화 즉 구조를 통해 여성들에게 강제되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효부, 효녀, 열녀, 좋은 아내에 대한 조선시대적 관념이 아직 이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져 있다.

" 열녀 ", " 영웅 " 에 대한 모방, 흉내 등의 원인을 타인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지시키는 차원을 넘어 " 소위 " 사랑받고 싶다거나 인기를 얻고 싶고 혹, 선택되고 싶다는 마음의 움직임만으로 볼수는 없다. 그것은 소속감일 수도 있고 자신이 남자 또는 여자 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긍정시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 긍, 벌, 과의 심리는 타인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모든사람이 필연적으로 평생을 겪어야 하는 마음의 움직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건 교, 긍, 벌, 과의 마음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교, 긍, 벌, 과의 마음은 숨길필요도 없다.

스스로 그런 점이 있는데 그 정도가 어떤지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모르는 것은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든 다른이에게서 자신과 같거나 다른점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겠지만 그 지적하는 바가 정확하다면 자신에 대한 다른이의 비판에는 일단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자신이 모르는 자신의 교, 긍, 벌, 과의 심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지적하는 바를 보면 그 지적하는 사람의 생각도 알수가 있는 것이다.

矜(긍)의 심리역시 적당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적당함의 수학적인 기준은 없다. 오히려 당연히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다. 驕가 아무리 폭넓고 뛰어난 생각도 혼자만의 생각일 뿐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하면 矜은 스스로의 존재의 가치를 갖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인륜속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서고자하는, 또 그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마음의 흐름이기도 하다. 矜이라 이름지어진 마음의 상태가 약하게 되면 자신감이라고 표현되는 마음의 상태가 약하여 질 것이다. 그는 쉽게 마음이 흔들리며 갖은 생각이 다 떠올라 갈피를 잡기가 흔들릴 것이다. 이러한 것이 矜이 부족한 것이라 할 것이다. 矜의 부족은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거나 정당화 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저하고 고뇌하는 양심인이 될 수도 있고 주체성이 없이 외부의 그럴듯함만을 쫓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집안이 가난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가난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질시 할 수도 있고 약소국가의 사람은 자신의 국가보다 강한 국가의 모든 것을 지향할 것이다. 그러나 矜의 과잉은 개뿔도 아니면서 자기만이 최고라는 상태를 만들것이다. 혼자만의 확고한 논리와 신념속에 자기 주장만 반복적으로 펼치기도 할 것이다.

驕가 지나치면 세상을 자기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거나 자기 발아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반면 矜이 지나치게 되는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가 " 잘못한 것이다 " 는 마음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그가 잘못한 것도 어떻게든 합리화의 이유를 생각해 내려 애쓸 것이다. 물론 모든 자신을 내세우는 행위는 교, 긍, 벌, 과 모두에 있다. 矜慮(긍려)는 스스로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갖가지 사고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긍려는 긍(矜)의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갖가지 교묘한 이유를 대며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벌심벌조(伐心伐操)

伐이란 남앞에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矜과 다른점은 矜이 내부를 채우는 것이라면 伐은 바깥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矜이 누가 뭐라건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갖는 것이라면 伐은 혼자만 알아서는 소용없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을 자랑하는 무용담을 남앞에 떠드는 경우등이 이에 해당된다.

伐의 마음역시 인간들과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의 단면적인 모습일 것이다. 伐의 마음역시 억지로 숨기거나 회피할 필요는 없다.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자랑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단 누군가 그것에 대해 기분나쁜 말을 하더라도 유리처럼 상처받거나, 모욕당했다고 느끼고 지나친 " 화 " 를 내지 않으면 좋을것이다. 伐이라 이름지어진 마음의 상태는 소위 합리화나 정당화등과는 다르다. 伐은 자신을 내세우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마음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伐이라는 마음의 움직임도 驕나 矜처럼 마음속에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심리학에서 말하는 structure나mechanism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 mechanism이라는 기호가 형성한 개념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거나 이해하여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말은 절대 mechanism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연역해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기호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기호가 사람을 다루고 더나아가면 기호가 기호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논리회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伐역시 그러하다.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伐操(벌조)는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의 상태를 굳게 잡고 있다고 상상하여 직관하여 보기 바란다.

※과심과지(과心과志)

크게 부풀리고 싶은, 과시하고픈 마음의 움직임이다. 자기를 부풀리어 드러내 내세우고픈 그래서 남보다 우위에 서고싶은 마음의 상태가 과心과 같다. 심하지는 않더라도 좀 재미 있으려면 부풀리기도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과"는 남앞에 드러나는 것에다가 얼마간의 부풀리어 보태기가 있다 생각하면 된다. 맹물을 먹고도 이빨을 쑤시는 마음의 움직임을 矜이라 할 수 있다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만드는 식으로 별거 아닌것도 크게 확대하거나 또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행위를 부풀리는 것, 또는 남에게 강요하거나 떠벌리지 않는대신 분위기 또는 여러 가지 주변상황, 여건을 조성, 은근히 자신을 돋보이려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고픈 마음이 움직임을 (과)라 할 수 있다.

글로써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극단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기호가 이미 극단을 표시하고 있지만 기호는 또 기호로써 설명되어져야 하고 우리의 인식체계는 ' A는 B다 ' 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혼란도, 혼동도, 오류도, 곡해도 있게 된다. 이점은 필자의 해설에 있어서도 극단이 있고 오류와 저마다의 편견도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우리사회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거나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 과시 " 의 형태일 것이다. 이러한 " 과시 " 의 습성은 어느날 갑자기 뚝딱하고 생겨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문제가 된다. "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 고 비아냥 받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자랑과 과시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쉽게 구별되고 있다. 자랑과 과시라고 하였는데 어찌보면 자랑 즉 伐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좀 자세히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의 행위는 대개 " 과시 " 즉 " 내가 이런 정도의 사람이다 " 하고 은근히 뽐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외국 관광지에서 돈을 팡팡 쓰는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그러한 사람이 자신의 돈을 자랑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마음에 컴퓨터 같은 논리회로가 있어 이것은 팥이 되는 것이고 저것은 콩이 되는 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은 형태도 물질도 아니기 때문이다. 팁으로 수십, 수백달러를 뿌리거나 집보다 차부터 사고, 차도 되도록 크고 비싼 것으로 사려는 행위들은 " 과시 " 의 모습일 것이다. 세계최고니, 최대니, 최초니 꼭 자신의 집단, 범○○이니, 총○○이니 하는 것도 "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생기는 현상중에 지나친 자부심, 긍지, 내실이니, 주체니, 원조니, 진짜니 오리지날이니 하는 것의 집착도 유난히 강하게 될 것이다.

志는 그러한 과장 " 과시 " 하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꼭꼭 뭉쳐져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