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는 식견이 있고 어깨에는 위의가 있고, 허리에는 재간이 있고 볼기에는 방략이 있다. 」

- 원 문 -

◎ 행행 (行行)

이제마는 머리, 어깨, 허리, 볼기를 知의 行을 행한다는 야릇한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한문으로는 行行이라 하였고 행동하는 모습, 행동할 때의 태도, 자세 등을 나타내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제마는 행적(行跡)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행적은 얼마동안의 또는 오랜동안의 행동의 모습, 자취를 뜻하는 단어이다. 행동이 점적이라면, 행적은 선적인 셈이다. 윗글을 풀이하자면 사람의 어떤 행위 또는 평상시에 있어서의 행동하는 모습을 4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네가지는 정보와 지식에 의한 행동, 원칙, 무게, 힘, 권위에 의지하는 것, 사태에 따라 적절한 해결방법을 행하는 임기응변적인 것, 치밀한 구상과, 계획에 의한 것이다.

무엇인가 하고자 할 때 그 행위하는 자세, 태도를 어찌 4가지로만 구분지을 수 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실마리를 잡는 것이다.

이제마의 위와같은 분류는 음양이 연역된 사상에 의해 글의 화두를 잡은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위의 발췌된 글은 행위하기 위하여는 지식, 원칙, 임기응변, 전략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도 된다.

지행이나 행행이나 모두 머리를 쓰고 행동으로도 나타나게 되어 있지만 지행이 현상을 인식하고 그 인식한 내용들을 가지고 적절한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하면, 행행은 그 방법론을 행위하는 모습, 자세, 태도의 특징이다. 이러한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행위역시 네가지로 분류할수있다. 지식, 정보, 자료. 경험 등의 식견(識見), 기준, 명분, 원칙, 규칙, 힘, 일관성, 무게, 위엄 등의 위의(威儀) 임기응변적인 기발함이나 순발력인 재치, 기지, 창의성, 영감, 신축성 등의 재간(材幹),알기 쉽게 척척 또는 알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절차와 방법, 체계등 등의 방략(方略)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의 행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나라와 문화에 따라 특징있게 나타난다. 즉 어떤 사람은 식견을 위주로 행위하고 어떤 사람은 위의가 두드러 질 수도, 재간이 두드러질 수도, 방략이 두드러 질수도 있다.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은 선적인 의미로는 행적으로 나타내고, 점적인 의미로는 행동하는 모습이다. 행동하는 모습에는 식견적인 것, 위의적인 것, 재간적인 모습, 방략적인 모습이 있으며 그것은 때때로 예외도 있고, 돌발적인 상황도 있으나 대체로 보통 사람은 어느 한가지가 잘 나타난다. 그러나 편견에 따라 잘못 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 식견은 결코 빼앗을 수가 없고, 위의는 결코 사치스러울 수가 없으며 재간은 결코 게으르게 할 수 없고, 방략은 결코 몰래 도둑질 할 수 없다. 」

- 원 문 -

일종의 경계의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 수 없고 " 는 " ∼해서는 안된다. " 로 하여도 될 것이다.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은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형태라 하였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어떤 생각에 무게와 힘과 믿음을 가지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활용시키기도 하고, 적절하게 변용시키며 적응하고, 대응해 나가며 그러면서 현상에 대처하는 방법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이다.

① 식견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은 개인적으로는 일생을 통하여 지속되고 대인적으로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문화속에 침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거대한 해류처럼 끝없이 흘러갈 것이다.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특히 식견은 많은 노력과 축적과, 연구, 보존, 경험과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생길 수도 없고, 잠깐 일부분을 빌릴수는 있어도 결코 자기 것으로 될 수는 없다. 특히 국가나 지역 단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식견은 개인적으로 병이 될지 모르나 그래도 아는 것이 힘이다. 국가적으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미셸푸코는 지식과 권력을 하나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 그리하여 < 의사, 판사, 교수. . . > 등등이 바로 지식을 권력으로써 행사하는 사람들의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의 지식은 대중에게 그리고 서로간에게 강제 될 수 있다. 받는측에 의해서도 필요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관행 또는 규정에 의해서 강제로라도 받아들여져야 한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이러한 지식과 권력은 지식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서로에게도 적용된다. 의사는 판사나 교수나 대통령에게도 지식과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고, 교수는 의사나 판사에게 판사는 의사와 교수에게 행사 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의사나, 판사나, 교수 모두 자기의 지식과 권력이외의 분야에서는 지식과 권력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부모는 자식에게, 해설자는 경청자에게 지식과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고, 강대국은 약소국에게 기술적, 학문적 연구가 풍부한 나라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나라나에 지식과 권력을 행사 할 수 있다. 아는 것은 병이 아니다. 이것이 식견이다.

② 위의

어떠한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는 그사람 나름대로의 풍겨나오는 힘, 풍채, 무게, 인상, 말씨, 예절, 에티켓, 규칙이나 원칙에 대한 태도. . . . .등등이 있다. 그사람 나름의 분위기 느낌이라 할수 있다.

이제마는 사람의 행위의 특징중에 이러한 것을 위의라 이름짓고 포함시켰다. 누가 뭐라건 고집 불통으로 오기와 끈기로 일을 해나가거나 위엄있는 말씨, 위엄있는 태도 또는 힘, 싸움, 윽박질름, 명령, 엄정한 태도, 정대한 분위기로써 행위하는 것을 총칭하여 위의라 할 수 있는데 위의는 사치스러우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③ 재간

재간은 임기응변의 신축성, 기존의 태도 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떠한 현상에 처해 기존의 원칙이나 지식, 경험, 자료, 정보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현상속에서 각 상황들을 분석 그때그때 적절한 해결책이나 타개책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상황은 긴급할수록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돌발상황에서는 위엄을 갖출틈도 정보를 기다릴 수도 책대로만 할 수도 없다. 그때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위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간이다. 식견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재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 빠르지만 마치 토끼처럼 나태해지기 쉽기도 하다.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일 것이다.

④ 방략

방략은 방법, 계획, 전략을 짜는 것이다. 어떠한 현상이 진행중이건, 진행되기전이건 방법론을 만드는 것이다. 재간과의 혼동을 피해 진행중인 현상을 일단 배제시키겠다. 방략은 군인이라면 전쟁이라면 어떤 계획, 전략, 전술, 운용지침 등을 구상하는 것이고, 경제인 이라면 그와 관련된 계획, 미래에 대한 설계· 생존과 발전과 관련된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고, 정치인이라면 대통령 선거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선거전략을 짤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이다. 이것이 방략일 것이다. 방략은 몰래 꾸미는 음모나 모략등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말이다.

현실은 마치 마약처럼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병에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식견, 위의, 재간, 방략은 인간이 행위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하였다. 해박한 전문지식과 정보, 자료 등을 위주로 행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칙을 중요시하고 공명정대하고 위엄이 있으며 누가 뭐라건 흔들리지 않고, 오기, 끈기와 뚝심으로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있다. 창의성이 뛰어나고, 영감이 발달해 있으며,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처리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에 의거, 하나의 또는 몇가지의 방법론을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면만 말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너무아는 것이 많아 매사에 아는체하고 꼬치꼬치 따지기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무게나 잡고, 위엄을 부리는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잔꾀가 많고 임기응변이 지나쳐 원칙이 없으며 제멋대로이고 일마다 대충대충 끝내기 일쑤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재주와 머리만 믿고 남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대충 지나칠 문제도 아닐 것이다. 대체로 이제까지는 인간의 마음을 선과악이라는 단어로써 생각하여 오긴 하였다. 그러나 선과 악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생각하여 볼 수는 있지만 主와 客이 뒤바뀌어 선과 악으로써 해석을 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 아무리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해도 잘 모를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인간이 정하였고 단지 기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과악이라는 기호에 의해 생각할수록 기호의 무한대의 늪속으로 빠져들어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세상 모든 기호, 모든 표현수단으로써 설명되어질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항해의 동행자인양 뒤따르는 게으른 바다새를

갑판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한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가련하게도 질질 끈다.

이 날개달린 항해자가 그 얼마나 어색하고 나약한가.

한 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이는 담뱃불로 부리를 지지고

어떤이는 절뚝절뚝 불구자 흉내를 낸다.

시인도 폭풍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던

이 구름 속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걸음조차 방해되네

- 보들레르 악의 꽃 中 -

독자는 이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이 시가 단순히 험한 세상에 떨어진 순수한 영혼을 가진 시인의 불행한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추락한 인간의 추악하고 가련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였는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증명할 길이 없지만 좌우간 인간은 무엇이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동물이다. " 이용 " 할 줄안다는 것, " 불 " 을 이용하고 " 도구 " 를 이용할 줄 안다는 것 바로 노자가 말하는 " 인위적인 것 " 의 시작일 것이다. 어찌 인간이 " 불" 과 " 도구 " 만을 이용할까? 사랑을 이용하고, 명예를 이용하고, 권력을 이용하고, 사람을 이용하는 동물이 " 인간 " 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시쳇말로 자기외에 기껏해야 자기와 우호적인 사람외에는 장기판에 졸때기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너무도 " 인간적 " 이라는 말 역시 두가지 얼굴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러는 것일까? 성욕때문일까? 명예, 권력 때문일까? 보다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 시간 " 이다. 인생은 짧다지만 지금 이 시간은 길다. 세월은 짧지만 시간은 지루하고 긴 것이다. 그 시간은 마치 푸른하늘처럼 텅 비어있고, 인간은 살고있는 한 무엇인가를 계속 채워넣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Killtime 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