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는 나쁜 소리를 싫어하고, 지라는 나쁜 빛깔을 싫어하고

간은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콩팥은 나쁜 맛을 싫어한다

나쁜 소리는 폐를 거스리고, 나쁜 빛깔은 지라를 거스리고

나쁜 냄새는 간을 거스리고, 나쁜 맛은 콩팥을 거스린다.」

- 원 문 -

귀, 눈, 코, 입이 외부 현상의 인식과 관련 된다하면, 폐, 비, 간, 신은 감정등이 관계하는 것이다. 귀, 눈, 코, 입을 통한 인식작용은 이성이나, 감정은 아직 배제되어진 상태이다. 이제 여기서는 희노애락 등의 감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성정론도 다시한번 들춰보아야 할 것같다. 유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성이 주어지며, 아니 성이 주어졌기에 생명이 생기게 된다 한다. 이 때의 성은 온갖 가능성을 가진 상태이다.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외물에 접하며 느끼는 모든 마음의 상태는 정이라 한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그것은 그 사람의 性이 반응되어 나타난 것이다. 성정론의 기본적인 논리는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정에 모두 관계하는 것이 심(心)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현재의 유학자들도 별 이견이 없을 줄로 알고 있다.

이제마 역시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소위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에 속해 있다. 말이 칠정이지 칠정은 모든 감정의 형태를 말하고 있다. 이 칠정을 어떻게 하는냐는 ,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을 性에두면 주리론이 되고, 희노애락애오욕(특히 욕)에까지 범위를 넓히면 주기론이 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성과 감정 그리고 오성(이성과 감정의 위치하여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게하는 행위를 오성이라고 하고 독일어로 ' verstand ' ) 으로써 인간에 대해 탐구하였다. 프로이드도 이와 비슷하다 무의식중에 내재하는 본능적 에너지인 이드(id)와 선악을 판단하고 양심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초자아 (superego) 그리고 이드와 초자아의 중간에서 행위하고 있는 자아(ego) 로써 인간을 분석하였다.

※마음과 생각

유학에서는 이성이란 개념이 따로 없다. 마음이 곧 이성이고 감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과 변증법도 있을 수 없다. 가령 서양에서는 이성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견해를 일리있다는 정도로 알아두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내가 주장하는 바가 옳거나 더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필자의 견해역시 고립된 別論이기 때문이다.이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성과 감정 ,동양에서 생각하는 이성과 감정의 기호가 일으키는 관념이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학이건 도교건 불교건 간에 마음을 중요시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생각도 행위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풍습이었다던 풍류도의 영향일 것이다. 風은 氣의 뜻이고, 流는 흐름이다. 풍류란 기를 타고 물이 흐르듯 신축성있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풍류도는 이 세상 어떤 사상, 종교나 이념도 받아들여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만큼 공허하기도 하다. 지금의 풍류에 대한 통념은 과거 수천년을 이어지다 형식만 남게된 것이라 생각된다. 생각하는 바가 분명 마음먹기에 딸려 있으나 그 마음을 먹는다는 것도 결국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니 마음과 생각은 구별되는 단어 이면서도 서로 합쳐서 생각할 경우가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설명을 하자면 결국 언어의 혼란일 뿐이지만 따로따로 떼어내서 확실이 구별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과 마음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각과 마음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 생각 " 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깊게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불가, 도가에서는 생각을 끊으라고 까지 한다.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말하려 할 때 은연중에 두가지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말하는 논리와 그 논리에 대한 반론의 반론이다. 아무리 뜻이 맞는 사람일지라도 대의를 제외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인 것이고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그 사람의 역량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의 시각에서 자신을 대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서로 상대적인 두가지의 의견이 있는 경우 어느 의견이 옳을 까는 언제나 인간의 사고를 혼란시키고 행동에의 결단을 주저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갈 것이다. 과학에서도 이러한 경우는 흔하다. 과학적인 이론에서는 소리나 빛을 입자와 파동으로 설명한다. 소리나 빛은 입자로도 파동으로도 설명할 수 있고, 또 입자만으로도 파동만으로도 전체적인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입자와 파동은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기호를 조작하여 빛이나 소리를 해석하려 할 때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빛이나 소리를 입자와 파동 모두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입자는 무엇이고 파동은 무엇인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음에 쓰는 글은 바로 "이것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고, 이해를 위한 일례라고 하여두자.

오디오 시스템에 쓰이는 이퀄라이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세부적인 기능과 방법론은 모르더라도 그 모양이나 작동하는 모습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퀄라이저는 대략 위와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 아∼ " 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자, 그 소리는 일단 파동으로 볼 수 있다. 이 " 아 ∼" 하는 소리를 이퀄라이저를 통과시키면 목소리에 변화를 줄 수 있다. " 아 ∼ " 하는 목소리는 혹은 " 뚜 " 하고 같은 크기로 지속되는 음은 하나의 긴 선이지만 각기 점적으로는 아주 낮은음, 그보다 조금더 높은음, 조금더 높은음, 보다 조금더 높은음 . . . 아주 높은음보다 조금 낮은음, 아주높은음이 합쳐셔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쉽게 피아노를 생각하라 . 피아노 건반을 모두 울렸을 때 의 소리는 개별적인 피아노 건반들의 소리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적인 생각하에 이퀄라이저의 아주 낮은음을 가리키는 150㎐ 이 부분을 높이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당신의 목소리는 전체적으로는 비교하기 전보다 굵어져 나오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소리를 입자의 의미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자의 조절을 통해 파동도 변화되고 있다.

빛이나 전파 역시 마찬가지이다. 빛이 입자라면 빛은 1초에 30만㎞를 간다하는데 흐름의 주체는 무엇이냐가 문제이고 그럼 파동이라고 볼수 있는데 쉽게 생각해 빛이 1초에 30만㎞를 간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가능한 입자를 측정치 않고서는 그 속도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된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대해 말할때도 이와 같은 논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만은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말해온대로 구별되어 있는 한 기호가 일으키는 개념은 그 자체로 구별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수 있다.

기호의 불완전함은 구별되어져 있는 다른 개념에 의해 보완되어 질 수 있고 이때 가장 상반되는 시각에서 보는 것이 기호자체가 가진 불완전함을 가장 잘 지적하여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상반되는 시각역시 기호로써 나타나있고 혹 나타낼 수 있고 그리고 개념이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변증법적 모순 운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순이라는 단어역시 구별되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현상을 보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이 몸과 마음이 기호로써 쓰기에는 모순적인 관계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몸과 마음이 모순의 관계에 있지는 않다.

마음과 생각 역시 그러하다. 다만 서로 구별되어 있는 단어일 뿐이다. 유물론과 유심론 역시 그러하다 하겠다. 인간은 분명 물질이지만 정신을 가지고 있고 형상이 없이 정신이 있다는 것은 신비적인 주의나 종교적으로는 가능할 지 모르나 그런 사항은 일단 이 책에서는 논외로 하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현상은 인체라는 물질을 통하여 나타난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인체라는 물체 안에 담겨 있고 인체를 통해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생명현상이 단순히 아메바 같은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는 물질의 현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유물론은 유물론대로 유심론은 유심론대로 발전되어 나가야 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가 있을지라도 어쨌든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귀, 눈, 입, 코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된 각종 외계의 현상들은 우리의 두뇌에 의해 인식되고 인지 되면 마음의 작용을 받는다. 인간의 마음과 육체는 시도 운동속에 시원을 찾아 흐르지만 생각은, 상황은 때때로 아니 자주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도 마음은 막힌물이 방향을 틀 듯 계속 " 시원 " 을 찾아 " 시도 " 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