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턱에는 교만(驕)한 마음이 있고, 가슴에는 잘난(矜)체 하는 마음이 있고 배꼽에는 자랑(伐)하는 마음이 있고 , 배에는 과장(과시할 과,과장할 과)하는 마음이 있다. 」

- 원 문 -

교(驕), 긍(矜), 벌(伐), 과()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말한 바있다.

턱, 가슴, 배꼽, 배와 교, 긍, 벌, 과 를 연계시켜 놓기전 이제마의 머리속엔 어떤 생각들이 들어있었을까? 이제마는 어떤 생각속에서 결론을 내려 이러한 단어들을 선택하였을까? 이제마의 깊숙한 생각이야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제 그 단어들을 별 생각없이 연역하고 있다. 이제마가 귀납하여 내린 결론을 이제 그 책을 배우는 사람들은 연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 내 뒤를 따르라 " 라는 말에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할까? 기호가 중점적으로 부각되며 떠오르게 된 관심중에는 communication이 있다. 현재는 communication의 뜻마저 의사소통, 의사전달 차원을 넘어 의사공유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필자와 이제마간에 완벽한 " 의사공유 " 가 이루어져 있고, 필자와 독자간에도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디 될 법이나 할 소리인가? 우리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더더구나 말이 많아지다 보면 말하는 측에서도 오류와 실수가 있을 것이고, 듣는 쪽 역시 곡해와 편견을 통해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는 이와의 완벽한 의사공유를 위해선 듣는이는 토씨하나에 대한 생각까지 말하는 이의 생각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그럼 듣는이는 무엇인가? 로봇인가? 교, 긍, 벌, 과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모두 골고루 들어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타인들과의 관계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 마음을 굳이 4가지로 구별지은 것은 사상인과도 연계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여기선 한문의 뜻을 가지고 교, 긍, 벌, 과에 대해 좀더 풀이해 보겠다. 왜? 이제마도 그런 과정을 거쳐 정의를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교(驕) : 교만 : 잘난체 하는 태도로, 겸손함이 없이 방자하고, 자기가 무엇이든 지 최고라서 남을 무시하기 까지하는 것이다.

교긍 : 자신의 능력, 가치를 스스로 믿어 잘난체 하여 뽐내는 것

교기 : 남을 업신여기고 잘난체 하여 뽐내는 태도

긍(矜) : 창자루긍, 불쌍히 여길 긍, 자랑할 긍

긍지 :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자랑 예)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인으로써의 긍지를 잃지 말아라.

긍휼 : 가엾게 여겨서 도움

자긍하다 : 스스로 자랑하다

긍은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다. 잘난체가 심한 교만한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남이야 어떻건 뭐라건 자신의 생각에 맹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벌(伐) : 칠벌, 벨벌, 자랑할 벌, 방패벌

벌목, 벌조, 정벌, 토벌

人과 戈의 合子로 사람이 창을 가지고 있는 모습, 상대는 당신 앞에 무 릎을 꿇고 앉아 당신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고, 당신은 손에 큰창을 들 고 우뚝 서있는 기분을 상상해 보라, 여자들은 측천무후나 서태후가 되 었다고 상상해 보라.

과() : 풍칠과, 크게 확대시키는 것, 과시하는 것

허풍치다. 크게 부풀리는 것이기도 하다.

과(誇) : 자랑할 과, 뽐낼과

과대 : 사실이상으로 크게 하는 것

과시 : 뽐내어 보임

과장 : 실제보다 지나치게 크게 하는 것

이상이 사전에서 추려본 각단어의 뜻과 쓰임새이다.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을 쓸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네 글자에는 공통되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참 인간은 " 잘 났다 " 이다.

다만 그것이 드러나 보이지 않고 있거나 기회가 없거나 운이 없어서일 뿐 모든 인간은 숨어 있는 은자(隱子)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은 " 100여년 동안의 고독 " 에 나오는 부엔디아 가문의 인물들 처럼 고독한 존재들이다. 모든 사람은 시간과 변화속에서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어떤 인간이든 자라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기 시작할 때가 있다. 존재의 확인의 가장 단순한 방법은 타자들속에서 그들에게 자신이 인식되는 것일 것이다. 가장 불행한 여인은 병든 여인도, 죽어가는 여인도 아닌, 잊혀진 여인이라는 시가 있다.

이것이 어찌 여자뿐일까? 모든 사람이 그렇다.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 100년 동안의 고독 " 의 주인공들도 펄벅의 " 대지 "의 왕룽일가도 파란만장하게 살지만 결국 그 존재의 작은 자취마저 모두 사라져 소외되고 역사의 뒤안길 아니 새로 태어나고, 자라나고 ,활동하는 후손들의 이야기 뒤로 사라져 간다. 대개의 살아 있는자에겐 망각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할 절망일 수도 있다. 인간은 죽음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림을 더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문명이 발달해 시간이 남아돌수록 더욱더 비어가는 시간을 못견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마치 좁은문의 제롬과 알리사처럼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도 자기가 상대에게 인식시켜준, 혹은 그렇다고 상대가 저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틀을 깨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절대로 목둘레의 면도를 시키지 않았고, 잠잘 때 머리맡에 권총을 놓아 두었다는 쇼펜하우어가 사실은 자신이 만든 틀속에 갇혀 그 틀을 깨버리려 발버둥친 사람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글은 더욱더 예리하게 인간의 약점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여하간 존재의 확인은 자신의 틀내에서 스스로의 사색과 행동에 의해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책을 통해서건 선(禪)을 행하건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그러는 중에 절망도, 희망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은 " 좋은 인상 " 을 타인들에게 인식시키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려 노력한다. 자신에 대한 긍정과 이러한 긍정을 타인들에게서도 받으려 하는 것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어려움을 쉽게 해소시키고자하는 것 교, 긍, 벌, 과의 심리적 움직임은 거기서 시작된다. " 자기 긍정 " 이나, " 좋은 인상 " 이 가지는 뉘앙스와는 다르더라도, 말이나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것은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성장과정을 통해 " 자신의 존재 " 를 알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정도까지 발전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는 안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씩은 " 어떤 괜찮은 느낌 " 을 타인들에게 심어주고 싶을 것이다. 이상, 권력, 명예, 성욕, 경제적 부 등의 추구가 인간의 의지인지 본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을 하든 인간은 타인들과의 관계속에 있으며 그속에서 나르시소스도, 화초인간도 나오게 될 것이다.

교, 긍, 벌, 과의 마음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언행으로 튀어나온다. 그러기에 굳이 속이려거나 감추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 어느정도 스스로 조절하기는 하여야 할 것이며 그 방법론이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심은 뛰어나고 똑똑한 것이다. 지나치면 자기가 최고라서 다른사람의 머리속과 마음까지 다 헤아려 주고 있다해도 될 것이다. 긍심은 남들은 모르고 있지만 말을 안해서이지 실제 자신은 뿌듯함을 가지는 것이다. 심하면 자신의 생각밖에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단 " 속으로 " 혼자만 " 속에서 " 이다. 지나친 자신감이다.

벌심은 남앞에 드러내고 " 자랑하는 ", "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 이다.

과심은 별거 아닌일도 보태고 키우거나 있는 사실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확대·포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나 충동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또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또 사람에 따라 모자라거나 지나친 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사람의 마음까지 통제 할 수 있는 것은 극단주의 사상이나 이념, 종교이거나 " 사이비 종교주의 " 일 것이다.

① 과심

사람에 따라 과(과시,과장)심이 두드러 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사에 과시하고 부풀리고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많을 것이다. 국가적, 지역적으로 한 두명이야 이러면 별 문제 될게 없지만 사회문화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문화를 가진 국가는 모든 것이 세계제일이고 첫번째며, 가장크고, 화려하며, 최고여야 할 것이다. 당연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화일수록 그 시대 그 국가의 구성원이 긍(矜)심이 모자라거나 그 모자람의 반동으로 때때로 지나친 矜심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② 긍심

반면 矜心이 두드러진 사람도 있다. 긍심이 지나치게 되면 헛된 명예나, 허세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자기 생각에만 몰입하여 남의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긍심이 지나친 사람은 자신감도 자부심도 지나칠 것이고 나중에는 주위에서 뭐라건 소귀에 경읽기가 될 것이며 자기가 한일은 모두가 정당하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③ 벌심

伐心은 과시하거나 과장하거나 허풍을 치는 것과는 다르다. 외향적인 면이 많고, 떠벌려지며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영웅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伐은 人(사람)과 戈(창)의 합자이다. 矛이 장식이 달린 긴창이라면, 戈은 자루가 길고 그 끝이 낫처럼 구부러진 창이다.

伐은 창을 들고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인 것이다. 무언가를 치거나 벤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가 伐이다. 즉 찌른다는 의미는 없다. 伐心은 그런마음이다. 오늘날로 치면 기관총을 - 소총이 아니라 -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음일 것이다. " 총잡이 " 란 영화가 있었다. 평범하고 나약한 샐러리맨이 우연히 총을 습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용기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영화화한 것이다. 伐心은 그런 용기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矜心 이 내향적인 면이 많고 스스로는 절대 명심하고 있고 가끔 밖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伐心은 외향적이고 한 번 떠벌리고는 잊어버리며 안하무인이며 자주 밖으로 드러난다.

벌심은 지나치게 되면 그 사람보다 잘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위대한 발명도, 이상도, 철학도, 지혜도, 자비도, 사람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 한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될 것이다. 더 잘난 사람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④ 교심

驕心은 혼자서 다 헤아리고 헤아려주고 마음대로 인 것이다. 병주고, 약을 주며 자기덕에 병이 낫는 것이니, 고마워 하라 하는 것, 교심의 태도 일 것이다. 자기에게 힘이 좀 있다고 여러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을 마음대로 이리저리 꿰어 맞춘다면 우리는 그를 교만하다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두고 " 그 사람 참 교만하다 " 생각할 때가 있다. 바로 그런경우가 교심이 해당된다 하겠다. 교, 긍, 벌, 과는 인간의 여러심리 현상중 일부의 현상에 속해 있을 뿐 인간의 마음이 딱히 교, 긍, 벌, 과로 구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 긍, 벌, 과는 하나의 기호일 뿐이다. 사람의 행위가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습을 교, 긍, 벌, 과라는 단어를 가지고 설명해 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교, 긍, 벌, 과의 모습들은 한 인간에게서 때로는 이것이 때로는 저것이 행위로 되어 나오지만 어느 한가지의 모습이 주로 나타나거나 나머지 셋을 이용한다. 가령 이제마는 소양인은 과심을 주의하라 했다. 소양인 역시 교, 긍, 벌, 과의 행위를 하지만 특히 과심이 두드러지게 나오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소양인은 그 성격이 단순 - 때로는 너무치밀 - 하고 성급하고 충동적이며 용맹을 좋아하고, 보기에 따라 경솔하며 사색적이기 보다는 행동적인 사람들이다. 많은 면에서 과심(과心)이 나오기 쉬운 사람들이다. 모든 소양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