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눈, 코와 입은 누구나 다 요순이 될 수 있고, 턱과 가슴과 배꼽과 배는 누구나 다 요순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폐, 지라, 간, 콩팥은 누구나다 요순이 될 수 있고, 머리, 어깨, 허리, 볼기는 누구나 다 요순이 될 수 없다. 』

- 원 문 -

선천적인 몸과 마음은 누구나 다 성인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후천적인 노력 여부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일게다.

신채호는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하였다. 이는 마치 마르크스에 샤르트르를 합친 역사관 같다. 유학에서는 요순시대를 이상사회 였다하지만 한단고기나 중국야사 등을 종합해보면 요순시대 역시 아와 비아의 투쟁이 있었다. 요임금이 순에게 임금자리를 넘겨줄당시 요임금과 그의 아들 단주 사이에는 상당한 알력이 있었고 단주는 반란까지 일으켰던 것으로 여겨진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시기는 황하유역에서는 강한 세력을 가진 두 부족이 번갈아가며 그 지역의 통치를 하던 시기였다.

요순시대의 이상화에는 공자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인간의 사고는 " 지향 " 하는 바가 없으면 권태나 혼돈을 겪는다. 혹 " 지향 " 과 " 혼돈 " 을 넘어 부처나 장자같은 절대 무차별의 경지까지 나아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대다수는 그저 흉내라도 제대로내면 용하다 할 것이다. 공자는 사람들이 지향해야할 바를 구체적인 예로써 가르쳐주려 했던 것 같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속에서 도덕적·윤리적인 ' 가치관 ' 을 세우려 하였었다. 그것을 세우는 방법은 수도없이 많을 수 있다. 공자는 그중 자신의 문화속에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 조상을 공경하는 것, 하늘을 전통을 공경하는 것, 지나간 위인들중 휼륭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본받는 것 " 이러한 행위를 통해 소위 ' 이상사회 ' 즉 평화롭고 보다 인륜적인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듯하다. 그러려면 무언가 보여주고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요순시대는 바로 그 보여주는 것의 표준이 되는 것이었다.

신화의 효과에 후광을 덧붙이고 반복적으로 언급함에 의해 사람들의 가슴속에 어떤 행실을 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가를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인간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과 생각을 심어 놓으려 했던 것 같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에덴동산과 구원을 말하듯 불교도들이 해탈과 니르바나를 말하듯 공자는 유학자들에게 요순을 말하고 꿈꾸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요순보다는 한인이나 한웅 그리고 단군을 말하려 한다. 남의 나라 조상보다는 자기나라 조상에 대해 언급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는가. 이런 생각도 쇼비니즘은 아닐 것이다. 자기 역사를 잘아는 사람이 자기 역사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의 나라의 역사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존중할수 있는 것이다. 상호존중 그것은 억지로라도 규칙이 되어야 하고 " 이상 ", " 지향 " 으로 제시되고 언급되어져야 할 것이다.

「 사람들의 귀, 눈, 입, 코가 착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의 귀, 눈, 입, 코를 가지고 따져봐도 요순이라고 해서 조금도 더할것이 없다. 사람들의 폐, 지라, 간, 콩팥이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은 요순의 폐, 지라, 간, 콩팥을 가지고 따져봐도 보통사람이 조금도 적을것이 없다. 사람마다 요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 원 문 -

선천적인 자질은 누구나다 聖人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리라. 어떤 사람이든 그 감각, 느낌, 감정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단지 이 기능만 한다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좋아하는것도 싫어할줄 알고 싫은것도 좋아할줄 아는데 있을 것이다. 이런 기능을 이성(理性)이라 말한 바 있다. 칠정이나 이성이나 단지 기호일뿐 인간의 마음속에 칠정 따로 이성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칠정과 이성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을 가진 기호에 의해 인간에 대해 연구해 왔고, 필자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서로 상대적인 두 기호가 가지는 인간성의 측면을 초자아니 정반합이니 오성이니 하는 것과 필자가 " 마음 " 이라는 기호를 가지고 설명하려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생각과 마음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마음과 생각은 다른것도 아니고 같은것도 아닌 理氣, 性情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저들의 관점과 확연히 다르다.

서로 상대적인 개념들의 변증법적인 대립운동, 조화등에서 현상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셋으로 구분지어 이상적 혹 진리 차원의 지향점을 가지려 하는 행위들이 한국민족에게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서구에서의 관념론적인 철학도 이와 비슷하다. 한인(환인), 한웅(환웅), 단군왕검을 한데 불러 삼신(三神)이라 한다. 혹 천지인을 삼신이라고도 한다. 이때의 " 셋 "에 대한 생각은 삼신할 때의 " 삼신 " 에도 쓰이고 있고, 단군조선도 그 영토를 신한, 번한, 말한의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숫자를 들라하면 아마 대다수가 3자 아니면 7자를 들것이라 생각된다. 7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기독교의 영향때문일 것이다. 웅녀는 3·7일의 기한을 참고 인내하여 인간으로 되고 한웅과 혼인을 하게 된다. 이때의 3·7일은 열흘을 말할까? 21일을 말할까? 아니면 3과 7이라는 좋은숫자에 맞춘 상징적인 숫자일까? 3·7일은 석달하고 7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런지. 음력으로 하면 28 × 3 + 7 = 91일이 되고, 양력으로 하면 대략 97, 98, 99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대략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굴속에서 견뎌야하는 날수는 100일이었다. 그 날수와도 거의 일치된다. 물론 이당시 일년을 365일로 하는 양력이 있었을것 같지는 않다. 또한 한달이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30, 31일이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철새의 이동 등을 관찰하면 대략적인 일년이 365일 전후 라는 것이 나올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고대에 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관찰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년을 여러개로 나누어 음력과 연관시키며 30일 내지 31일이라는 현재 쓰는 한달의 형식이 나타날수도 있지않을까 한다. 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에 의하면 한웅시대에 책력을 만들고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일년으로 하였다 나와있다. 오늘날의 태양력만큼 정확하다.

이러한 내용은 혹 후세인들이 집어넣은 글일지도 모를 것이다. 그럼 누가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집어넣었을까? 마지막으로 한단고기를 총정리한 " 계연수 " 일까? 20세기 초에 사망한 계연수가 일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 하여 적어넣었을 수도 있다.

그럼 이런 정확한 측정기록을 그는 그당시 어떤 책에서 보고 베꼈을 것이다. 그책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벌써 BC 3898 당시 위와 같은 정확한 측정이 있었다는 것일까?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측정이 있었다면…….

「 사람들의 턱, 가슴, 배꼽, 배속에는 세상을 속여보려는 마음이 항상 숨겨져 있다. 때문에 자기의 본심을 가지고 자기의 본성을 양성한 뒤에라야 요순처럼 지혜가 있게된다. 사람들의 머리, 어깨, 허리, 볼기 밑에는 남을 속이려는 마음이 종종 간직되어있다. 때문에 자기의 몸을 닦고 하늘의 명(命)을 세운 뒤에라야 요순처럼 행실이 있게 된다. 누구나 요순이 될수 있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

- 원 문 -

사람들이 知를 행하는 것에는 항상 세상을 속여보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고 그 행실에는 종종 남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생각은 별 생각이 다들어도 행동화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 의해서이든 덜 나타난다는 말이리라. 알고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이제마 역시 " 요순시대 " 라는 신화적인 힘을 책을 읽는자의 마음속에 계속하여 각인시켜넣고 있다.

요사이는 " 신화(myth) " 라는 용어가 폭넓게 쓰여진다.

「 신화를 만드는 사람 - 예컨대 저널리스트, 교사, 목회자와 승려, 오피니언 리더 등 지성인 일반은 어떤 동기에 의해서 신화를 만들어내지만 신화를 듣고 이용하는 사람은 신화가 이성화되어 매우 자연스런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이 신화의 숨은 힘이다. - 반복적일 경우에는 그리고 수백 수천년의 시간을 두고 여러 사람이 말하게 되면 더더욱이다.(필자 주) - 다른 사람의 숨은 동기가 신화 소비자의 마음에서 자연스런 합리성으로 둔갑한다. 이 변환과정을 통해 소위 불확실성의 흡수라는 괄목할만한 현상이 신화소비자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

-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中 김경용 -

' 신화 ' 라는 용어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다. 현대에서 말하는 ' 신화 ' 란 용어는 아래와 같다. 어떠한 현상속에서 하나의 가치관 또는 행위에 있어서의 " 어떻게 하겠다는 " 신념, 또는 현상이 어떠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한 후 자신의 행위에 뚜렷한 논리적인 뒷받침이 형성될 것이다. 그 행위는 과거의 행동일수도 앞으로 행동할바일 수도 현재 하고있는 행위일 수도 있다. 가령 한웅신화는 한웅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킨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곧 나옴). 신화는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계속 형성된다. 한때 한국인들은 " 하면된다 ", " 안되면 되게하라 " 식의 신화를 가슴속에 품고있었다. 우리는 매일을 소설을 읽다가 TV를 보다가 신문을 읽다가 은연중에 신화를 형성한다. " 이것이다 " 하고 강한 논리적인 ' 은는 ' 이 형성되어 나오면 그에 대한 신화가 완성된 것이다. 요순시대 역시 이러한 " 신화 " 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만들어준다.

요순시대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성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공자가 또 맹자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있었다」,「이러했었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이러한 신화속에 있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신화부재의 시대였다. 그럼 지금은 사람들은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을까? 모래시계일까? 현대, 삼성일까?

「 귀, 눈, 입, 코의 감정은 길가는 행인들이라도 의로운 일을 돕는다는데 있어서는 모두 같다.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착한 것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은 참으로 공평한 것이다. 지극히 공평하면 또한 지극히 사사로움이 없게 마련이다. 폐, 지라, 간, 콩팥의 감정은 같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이(利)를 따지는데 있어서는 각각다르다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악한 것을 미워하는 실상은 지극히 사사로움이 없으니 지극히 사사로움이 없으면 또한 몹시 공평한 것이다. 」

- 원 문 -

「 인간들이 모여사는 세계에서는 " 利 " 가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성은 교활한 사람의 경우는 위험에 의해 또 평범한 사람의 경우는 궁핍에 의해 발달된다. 그러나 지성이 의지에 종속되어 도구의 구실을 하거나 의지를 대신 하려고 할 때 혼란이 일어나는 일은 불가피하다. 」

- 쇼펜 하우어 -

쇼펜하우어는 하고자 하겠다는 " 의지 " 를 매우 중요시 한다. 성격도, 지성도, 신체까지도 " 의지 " 를 매우 중요시 한다. 이 " 의지 " 가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 지성 " 에 종속될 때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하겠다는 " 당위 " 적인 생각은 바로 " 지성 " 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 지성 " 은 겉으로 보기엔 의지를 선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 의지 " 에 끌려다닌다고 한다.

「 오성(지성과 감성의 사이에 있는 자기자신) 아래에는 거칠고 끈질긴 생명력, 자발적 능동성, 오만한 욕구의 의지가 있다. 때로는 지성이 의지를 선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성은 안내자로써 의지를 인도할 뿐이다. 우리는 어떤것에 대해 그럴만한 이유를 찾아냈기 때문에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하기 때문에 욕구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

- 쇼펜하우어 -

이성 또는 지성 절대론자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글이다. 그러나 심증일뿐이리라 이성은 의지만큼 맹목적이지는 않다. 어떠한 이론이든 절대를 추구하면 할수록 구별되어지고 모순되어진다. 이것은 그렇다고 절대를 추구하지 않아도 그러하다. 하여간 사람들은 해로움 보다는 이로움을 좇는다. 이것도 의지라면 의지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 이성 " 이나 " 지성 " 도 이로움을 좇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이나 지성도 지극히 사사로울 것이다. 그리고 소위 약한자라 느낄수록 지극히 공평함을 바랄 것이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

∼ 중략 ∼

나는 몰락하는 자로써 살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사랑한다.

그는 저쪽을 향해 건너가기 때문이다.

나는 커다란 경멸을 가진자를 사랑한다.

그는 위대한 숭배자이며 피안을 향해 날아가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니체 -

아마 대개의 인간이란 기다리는 상태에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건 결과를 보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Godot 를 짜라투스트라를 세상의 종말을, 죽음을, 희망을 기다리기도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 꿈을 꾸고 있고 꿈이 있기 때문일것도 같다. 인간은 지극히 사사롭고 세상은 지극히 공평하지 못하기에 꿈을 희망하기도 하고 꿈에 절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기다림이 있는때가 좋을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