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 명 론

이제부터의 진행은 을유문화사刊 동의수세보원의 원문과 주석을 인용하고 거기에 필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하였다. 원문은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의원론, 광제설, 사상인 변증론으로 되어있고, 이것들 중 성명론은 동의수세보원의 성격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 특징은 유학적인 내용이 많으며 이는 이제마가 의학자이기 이전 유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동의수세보원이 의학이나 체질분류에 앞서 인문학적인 내용을 가지려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천기(天機)는 넷이 있는데 첫째가 지방, 둘째 인륜, 셋째 세회, 넷째 천시(天時)이다.」

- 원 문 -

동의수세보원이 쓰여진 당시는 지금부터 약 100년전 이었다. 그간의 격변의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달라졌다. 때문에 현대의 지식으로만 동의수세보원 원문의 각종 기호들을 해석하는 것은 이제마가 말하려 한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되도록 원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현대적인 해석을 하려 노력하려 한다. 물론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천기는 말 그대로는 하늘의 기밀이나 예정된 작용, 또는 임금의 비밀스런 명령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천기는 한인간이 태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그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져있는 모든 구조적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가정, 자연환경, 지리적위치, 어떤특정한 국가, 제도, 풍습, 사회, 문화 등을 말한다. 이러한 구조를 어떠한 방법으로 몇 가지로 분류하든 관점의 차이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제마는 넷으로 분류하였다.

지방, 인륜, 세회, 천시의 개념속에 모든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구조적인 상태를 해설한 것이다.

1) 지방

지방은 문화, 자연환경등 고정된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인간이 태어난 지역, 시골인가 도시인가 바닷가인가 산골인가 사막인가 평야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한대지방인가 열대 지방인가 아니면 온대지방인가 건조한 지역인가 습기가 많은 곳인가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외 각종제도와 문화구조, 자신만의 환경 등도 해당된다 하겠다.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문화사회적인 환경도 포함된다. 어떤 문화에서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금기시 되지 않는 반면 어떤 문화에서는 금기시 된다. 빨간색이 금기시되는 문화도 있고 선호되는 문화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태어날수도 있고, 독재국가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부유한 나라에서, 집안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찢어질 듯 가난한 나라에서,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 특유의 정서와 풍습과 제도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마다 저마다의 환경이 있다. 한 인간은 그 속에서 생존을 하여야 하고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2) 인륜

인륜은 타인들 속의 한인간이다. 사람들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를 말한다. 인간은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새나 짐승들하고만 살아갈 수는 없다. 한인간은 부모가 있기에 태어났고, 친척이 있고, 친구가 있고, 적이있고, 동료가 있고, 그외 많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다수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한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태어난 이상 인간들속에서 인간들과 관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 다른 모든 인간은 구조이다. 때문에 당신 역시 다른 모든 인간들 속의 한인간에게서 구조로써 취급되어진다. 한인간은 어떤 목적을 가진 운용자에게는 이창호 앞의 바둑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막말로 돈에 눈이 먼 사람 앞에선 당신은 돈으로써밖에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한 인간은 다른 모든인간들에 의해 구조이고, 한인간에게 다른 모든인간은 구조이다. 사람들이 그물처럼 얽히고 설켜 서로 관계를 하고 있는 것 이것이 인륜이다.

3) 세회

세회는 한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곳의 사회, 문화에의 적응, 대응이다. 작게는 지금 당신이 하고있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분명 어떤 문화 속에서 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적응하기도 저항하기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가냐에 따라 나름대로의 그에게 가장 익숙한 사고방식과 행동의 형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은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변형시키고 이용하여 살아가게 된다.

극도로 가난한 나라나 독재국가에 사는 사람들을 서구 민주주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저런 국가에서 사나 할테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삶과 생활의 지혜나 꾀 등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건 그룹회장이건 학생이건 회사원이건, 깡패두목이건 유치원 꼬마이건 누구든 자신에게 다가서는 끝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자신앞의 불확실한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 등이나 자기앞에 놓인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떤 위치와 소속에 있는 한 인간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자기앞의 해결해야할 갖가지 문제들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자기앞의 생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세회는 개별적인 한 인간앞의 해결해야 할 생의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주변환경 속에서 그 지역 특유의 정서를 형성할 것이다. 바닷가에서는 바닷가 사람 특유의 기질이 형성될 수 있고 산악지역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이외에 추운 지방, 열대지방, 건조한 지역, 습기가 많은지역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조건들이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과 서로 섞여 있으면서 그 지역 특유의 그리고 그 사람 특유의 정서를 형성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또 지방과 인륜을 만들 것이다.

4) 천시

천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다. 이제마 생존당시 천시는 어떤 신비적인,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현상의 예정된 순서나 (어떤 계획 등에 있어서의) 하늘이 도움이 되는 때나 자연현상이 진행되는 순서 등을 말하는 것이었다. 천시는 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객관적인 현실이나 현상 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 인간은 그 변화하는 상황속에 있을 것이다. 구라파에서 한발이 일어날 때 미국에서는 홍수가 일어나고, 서울에서는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동남아시아에서는 그것을 TV로 보고 있다. 엘니뇨 현상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세계에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아무리 조선인들이 기를 썼어도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시켜 식민지로 만들었었다. 한인간이 아무리 죽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어도 그인간의 세포조직은 생명의 작용을 계속하고 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을 막으면 고이고, 스며들고, 넘치고, 새어나가 반드시 다시 아래로 흐른다. 시간은 계속앞으로 가고 공간은 계속 쪼개지고 생성하고 다시 합성되는 것을 반복한다. 천시란 변화하는 현실과 현상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인간앞에 있는 자연현상,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기도 할 것이다. 공자가 강변에서 말했다. "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흘러서 쉬는 일이 없구나 " ( 논어 子罕 ) 천시란 항상 변화하여 기계처럼 움직이고 헤아리기가 힘든것이리라.

택지리에서 이중환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지리, 인심, 산수, 생리로 분류하여 놓고 있다. 이중환 식의 천기라 하겠다. 참고로 읽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천기는 주어진 틀이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한틀 (하늘 + 틀)이라 할 수 있겠다. 한틀은 서구철학에서 논의되는 구조와는 조금 개념이 다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책에서 말하는 구조는 공간적이고 고정적이고 정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동태적이고 시간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이제 이책을 읽는 분들은 천기, 한틀의 개념에서 시작, 필자나름의 구조에 대한 분석방법을 들여다 보기 바란다. 포괄적이고 넓은 개념을 가질수록 허황되기 쉽고 분명치 못할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높이 날수록 자세히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천기, 한틀은 큰숲이다 할 수 있고 지방, 인륜, 세회, 천시로써 분석하여 들어가는 것은 나무를 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항상 비평과 색다른 관점의 연구, 다른 문화의 이해와 수용을 통해 최대한으로 극복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훌륭한 적은 가장 훌륭한 동반자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