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도란?

인간의 생각하는 행위는 편하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되어간다. 그리하여 고정관념도, 독단도, 편견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 쓰인 " 익숙하다 ", " 편하다 " 는 말은 육체적 정신적인 긴장의 해소와 관련이 있다. 또한 어려운 머리속의 매듭을 혹 얼기설기 얽혀있는 골치아픈 생각, 어려운 과제나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계속적인 생각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을 말한다.

피아노로 혹은 다른 어떤 악기로도 도레미파솔라시도 까지 몇번 쳐보아 그 음계에 익숙하여 보자, 마음속으로도 여러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불러보자 그런다음 곧, 도레미파솔라시 까지만 쳐보라. 당신의 마음은 울리지 않은 " 도 " 음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인간의 육체와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 시에서 도를 향하는 운동 " 이것을 두고 이제부터는 " 시도 " 라 할 것이다. 이는 정신적으로는 " 개운 " , " 시원 " 한 상태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불만족에서 만족으로, 불확실에서 확실로, 불균형에서 균형으로의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육체적, 정신적인 운동이 ' 시도 ' 이다. (운동이라는 단어로써 표현했지만 계속적으로 움직여 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른바 " 중독 " 현상도 시도때문에 일어난다.

알콜에의 중독, 마약에의, 음악에의 중독, 컴퓨터에의 중독 지금 붙잡고 하고있는 일이 안풀리면서도 조금씩 풀려가는 " 재미 " 에 계속하다, 마침내 그러한 행위들속에 빠져버리는 것, 편집증적 몰입 모두 시도와 관련있다. 계속 가만히 있게되면 움직이고 싶고, 오랫동안 움직인 뒤에는 가만히 있고 싶은것 이것의 배후에는 필자가 " 시도 " 라고 이름붙인 " 흐름 " , " 움직임 " 이 있다.

그리고 이 흐름, 움직임의 주체는 氣이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하게 되면 분명 피곤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체력이 처하된 상태가 되어 " 피곤함 " 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격분하거나 슬픔을 느끼거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육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그러한 상태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이런 상태는 곧 氣의 흐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하여 육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난다. 가령 심하게 슬픔이나, 분노를 느꼈을때 그러고 난 얼마후, 무언가 마구 먹고 싶거나 피곤을 느끼는 경우가 그런 예일 것이다. 어린 아기를 조금 불편하게 눕혀 놓으면 계속 편하게 되려고 꿈틀거리다 바라는 것이 안되면 마침내 울음을 떠뜨릴 것이다. 이미 다 자란 성인이라고 다른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 시도 " 운동은 무언가 맺혀 응어리진 것을 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육체와 마음의 움직임이다. 당연히 한 인간의 " 가이 " 에도 영향을 끼친다. " 가이 " 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인간이 아무리 현상세계를 객관적으로 보려해도 그것은 인간의 주관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 역린(逆鱗) "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린이란 용의 턱 밑에 있는 거꾸로 붙은 비늘인데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부드럽게 길들여져 있던 용도 노하게 되어 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한 단어이지만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다 역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Complex이기도 하고 다른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선한 사람에게도 때론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둔한 사람도 생존이나 이해관계 앞에서는 오히려 더 극렬하게 정신을 바짝 차릴것이다. 사람에 따라 역린들의 덩어리로 뭉쳐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최소한 한 두 개 정도의 역린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역린은 그 사람의 주관의 형성과 교긍벌과의 심리나 대인관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작용할 것이다. 역린은 시도의 흐름을 격하게 흐트러 뜨린다. 그러면 시도는 더 강해지려 할 것이다.

◎ 시도와 마음

주관에 의해 객관적 현상은 왜곡되고 변형되기고 하고 어느 정도는 제대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주관은 " 시도 " 흐름에 가장 강하게 영향 받는다. 시도에 의해 주관은 습관되어지며 " 버릇 " 이 붙게 된다. 그리고 그 버릇은 다시 시도를 만들고 그 시도는 다시 버릇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끝없는 내적인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되면 눈 내리던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덩이를 굴릴때처럼 흙도 눈도 다함께 겹쳐지고 뭉쳐지며 계속 눈덩이는 커지는 것처럼 될 것이다. 시도의 흐름이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엔 그의 주관과 그의 입을 통해 말이 되어져 나오는 논리 역시 공격적인 언사로 바뀔것이고 그의 행동이 그리 될수도 있다. 시도의 흐름이 방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엔 그의 언사와 행위는 또 그렇게 결정될 것이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시도가 나아가게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족시키며 알게 모르게 자신을 이끌어 갈 것이다. 인간은 배가 고플때, 성욕을 느낄때, 피곤할때, 정신적으로 날카로울때, 머리가 아플때, 화가 나있을때, 의문을 느낄때, 흥분할때, 두려움에 처해 있을때 , 남 앞에 나서고 싶을 때. . . 많은 경우에 있어 " 시도 " 를 하려하고 있다. 시도는 무언가 막힌것이 시원하게 풀리고 싶은것을 찾는 움직임이다. 구르는 돌이 세계의 축을 찾듯 시도는 " 시원 " 을 찾아 굴러다닌다.

◎ 시도와 나반

" 시도 " 는 네가지 인식태도와도 관계를 가진다. 네 가지 인식태도는 " 시도 " 에 영향받고 있고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있다. 가령 때에따라 ' 시각적 인식태도 ' 가 가장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미리 말해보는 것이지만 사상인중 소양인이 시각적인 태도를 자주 나타낸다. 소양인은 성격도 성급해서 이기도 하지만, " 척 " 보고 벌써 감을 잡거나 " 결론 " 을 내리거나 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아마 그 사이는 다른 상인보다 몇배나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결론을 내리기 까지는 나머지 미, 후, 청각적 인식태도가 모두 작용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급하고, 직감과 결론이 빠를수록 추상력, 분별력, 진지함등은 부족할 것이다. 시각적 인식태도와 미각적 인식태도는 평형저울위의 양쪽에 있다 할 수 있다. 특히 " 시각적태도 " 가 강할수록 밀란 쿤테라의 " 느림 " 은 통하지 않게된다. " 시각적 태도 " 가 강한 문화일 수록 " 느림보 " 는 눈총받기 일쑤일 것이다. 사람마다 시, 청, 후, 미각적 인식태도를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는 면이 있다. 이제 이러한 인간의 어느 한가지 " 주된 인식태도 " 에도 이름을 하나 붙여두고 넘어가겠다. 이런 주된 인식태도를 이제 " 나반 " 이라 이름붙이겠다. 소양인이 결론을 빨리 내리려고 하는 것, 그것은 시도의 흐름이 그래야만 안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 누구든지 간에 후각적 인식태도가 나반이 될 수도 있다. 주로 태음인이 이럴 경우가 많다. 후각적인 인식태도의 특징은 " 느림 "이다. 시각적 인식태도가 " 빠름 " 이라면 빠르기에 있어 후각은 " 느림 " , 미각은 " 망설임 " 이랄까? 후각적 나반은 한번 듣거나 보거나 결론 지은것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시각적 나반이 빠르고 경쾌하다하면, 후각적 나반은 느리고 신중한 것이다. 때에 따라, 누구든지 간에 청각적 인식태도가 나반이 될 수도 있다. 주로 태양인이 이럴 경우가 많다. 청각적 나반- 청각적인 인식태도가 우선적인 것 -은 빠름이나 느림과는 별 연관이 없지만 하나에의 집중과 이것저것 가려놓는 태도와는 관련이 있다.

청각적 나반은 (나반 : 주된 인식태도) 하나에 집중하여 계속하여 하나의 문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면 무리를 무릅쓰고 끝까지 밀어 부치는 자세이다. 소크라테스는 한번 생각에 잠기게 되면 길을 가다가도 몇시간이고, 몇일이고 그자리에 멈춰서서 있었다고 한다. 청각적 나반이 강한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는 상상이라도 하게되면 시각적 나반은 벌서 대기업의 총수자리에 올라갔다가 무일푼까지 되는 상상을 한다고하면 청각적 나반은 그돈을 어찌어찌 하여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빠름과 느림에 있어서는 시각적 나반과 후각적나반이 상대적이지만 집중하여 몰입하는 것과 관조적 태도에 있어서는 청각적 나반과 후각적 나반이 상대적이다.

후각적 나반이 여러가지 상황을 비교하고 검토하며 요리조리 따져보는 것인데 비해 청각적 나반은 직접뛰어들어 어느 한 상황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청각적 나반과 후각적 나반역시 평형저울의 양편에 있다 할 수 있다. 미각적 나반은 분별, 구별, 구분, 가려내려는 것이다. 실제 시청후미각 중 피부에 직접 접촉시키는 확실한 방법으로 현상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기능이 미각이기도 할 것이다(촉각을 제외하고는). 물론 코로도 좋은 냄새나 나쁜 냄새를 구별할 수 있지만, 설사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자기가 사는 사회의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 시고, 달고, 맵고, 짜고, 쓰고 한맛,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맛없는 것인지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갖추게 될 것이다.

시각적 나반과 미각적 나반의 차이가 빠른 판단과 이런저런 상황을 조목조목 가려놓고 있는 상태라 한다면 청각적 나반과 미각적 나반의 차이는 앞에 나서는 것과 뒤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후각적 나반도 같다.)

미각적 나반은 구별과 관련깊다 하였는데, 미각적 나반이 강해질수록 가르고, 정돈하고, 정리를 하여 놓는 행동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사상인중 미각적 나반이 잘 나타나는 소음인들은 이런 특징 때문인지 말도 또박또박하고, 대체로 깔끔하게 정리를 잘하여 놓고 옷차림새등도 단정하게 입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소음인 여자는 겉모습도, 옷 매무새도, 말씨도, 음식 솜씨도, 집안살림도 깔끔한 편이다.